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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호2010년 [시-박대성] 영랑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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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1,843회 작성일 11-01-0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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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열 두 폭, 설악의 스란치마에 앉으면
아무런 연유도 없는 쓸쓸함이 어디서 오는 건지
보이는 것은 그저 출렁이는 물결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말도 그 출렁이는 물결의 그림자일 뿐
호수와 하늘을 섞어 짠 담회 빛 스란 자락 같은 충혼비 옆에 앉는다.
이 비를 헹구면 어떤 진액이 흐를 것 같고
죽어서 무엇이 된다함을 믿은 사람 하나 걸어 나올 것 같다.

통천군 사람 좋은 이, 여남은 이가
反共하다 산화한 노방초들의 이름을 새겨 넣은 호수의 기슭은
물새들이 앉아 제 흥에 겹다.
란도, 여도, 마양도……
천국일 것 같은 그 곳에서 날아온
물새 한 마리 비문을 읽는다.

검은 돌에 이름을 박아 넣은‘진손부치’라는 사람을 생각해 본다.
거란이나 여진 혹 말갈, 발해 사람이었지 모를 그가
고려 사람을 좇아 고려인들의 반공을 돕다가 목숨을 건네주었을 것이다.

복잡한 생각 없이 좋아하는 친구 따라 강남 왔다가
그저 그 친구 일을 돕다가 목숨을 져버린
남자들의 무모한 우정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정이란 역사의 무엇인가

여기, 생각의 정원
영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