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호2010년 [시-최명선] 신의 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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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가방이다
부드럽고 질긴 물가죽가방이다
신선한 것을 늘 채워두시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걸 가져가게 하시지만
예고 없이 지퍼를 잠그시기 때문에
가끔은 대속처럼 죄 맑은 자가
그 속에 갇혀 질식사하기도 한다
아무리 소리쳐도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는
할 수 없다는 것만이 진실인 그곳,
그곳은 태초에 말씀을 부은 곳이자
생의 마지막 것들이 흘러드는 곳이기에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안 될 묵약의 곳간이다
늘 열려 있지만 우리의 생을 물고 있는 바다,
언제 닫힐지 모르는
병기 같은 지퍼를 가진 바다는
교만과 방종을 허락하지 않는
절대자의 질긴 물가죽 가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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