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뫼 호수별 보기

40호2010년 [시-장은선] 실패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1,954회 작성일 11-01-04 11:37

본문



오래된 문갑을 여니
어머니 아끼던 실패가 들어온다
크고 작은 바늘들이 이정표로 꼿혀있고
색색의 실들이 화선지에 수를 놓았다
봉숭아 꽃물들이던 흰손이
땡볕에 사금파리를 고르던 호미질로 주름이 가도
알전구가 시침소리에 흐려질 때까지
바늘로 논두렁에 핀 들꽃들을 그렸지
사립문 밖에 어둠이 걷히고
호박넝쿨이 어머니의 땀방울처럼 송굴거릴때
허리는 누에고치처럼 구부러져
우리에게는 솔기달린 새옷이 되었지
부뚜막 찬물에 살얼음이 스미도록
씨와 날줄로 되새겨진 오래된 습관이
흐린 돋보기로 마른 삭정이를 찔러대었지
어머니의 고이 벗은 허물인
푸른 이파리를 갈아먹은 애벌레들
출근길 바람에 날리는 넥타이를
노랑나비처럼 가슴에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