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호2010년 [시-최숙자] 초승달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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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도 덤빈다는 가을 날
부모님을 도와 드린다고
몰래 낫을 들고 산에 올랐던
열서너 살 적
한창 물드는 나무 아래서
신나게 가지를 내리치는 순간
쇳덩이가 소리를 지르며
저만치 나가 떨어졌다
그 날
부러진 낫을 들고 울다
아무도 몰래 곳간 뒤에
깊이 묻어야 했고
온 밤 가위에 눌리며 앓았다
야속한 내 속도 모르고
온 오랍뜰 다 뒤지며
애타게 목낫을 찾던 아버지
저승에 까지 낫을 찾으러 가셨는지
하시던 일도 다 내팽개치고
일찌감치 하늘나라로 가셨다
아직도 용서받지 못한 세월
곳간 뒤에 숨어 기웃거리는데
그 낫을 이제야 찾으셨는지
부러진 낫 하나
하늘 귀퉁이에 내 보이며
환하게 웃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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