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호2010년 [시-이구재]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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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모퉁일 지나다
쓰레기 봉투 속 삐죽 나와 있는
빗자루를 만났다
모든 물건들 수명이 있어
망가지면 고쳐 쓰기도 하지만
달아빠진 비는 주인의 손길을 떠나
쓰레기가 되었구나
세상에 이렇게 착한 것 또 있을까
평생 먼지와 쓰레기만 만나는 삶
다 쓴 다음엔
문 뒤 어두운 곳에 갇혀
혼자 우두커니 서 있어야 하는 삶
깨지고 부스러진 조각들
구겨 던져진 것들
쓸어 내 다시 모으는 일 만 하다가
키 줄고 몸 다 닳아 없어 질 때까지
깔끔히 쓸고 쓰는 일 만 했는데
아무 공로 없으니
숨죽이고 어둠에 서 있으라 했다.
고달프고 지쳐 야윈 몸
빗자루의 끝은 주인의 손에 끌려
쓰레기가 되었구나
빗자루의 마지막을 보며
우리 언제 비처럼 요긴하게
쓰여 진 적 몇 번이나 있었던가
내 삶을 돌아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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