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호2010년 [시-박명자] 지구별에 사는 가을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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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유리접시 같은 하늘 아래 가을 저녁 6시 20분
뜻밖에 신라금관을 머리에 가득히 쓰신
처사 한분 황포를 입으시고 외연의 뜨락 배회 하시네
당신 사유의 집채 보다 한발자욱 뒤쳐져
그 분은 천천히 내안의 캄캄한 벽을 노-크 하시며…
떨리우는 나뭇잎 틈새로 감성의 창을 화안하게
몸체를 싸안아 올려 우리의 눈 맞춤은
허공에서 원으로 이루어졌으며…
서녘 하늘로 사라지는 마지막 놀처럼 이상한 조화의
장면이 조용히 떨림으로 건너올 무렵
지구별에서 오신 가을 남자
600년 수령의 은행나무 등걸 속으로 천천히 미끄러지고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일적 마다
심엽형 영락이 좌우로 흔들리며 마구 눈이 부시었다
침묵의 깊은 눈으로 우리의 수화는 계속 이어지고
금관의 출자(出字)형 마다 천개의 빛살 되쏘여
수만개 나비형 영락이 팔랑 팔랑 날개짓을 보였다
한 폭 가을수채화 같은 우리의 반경에는 잎새들의 떨림이
울퉁불퉁하게 퍼져 황금물결로 구비쳐 나갔다
지구별에서 오신 가을 남자. 600년 수령의 은행나무…
천천히 걸어 스르륵 나를 열고 깊숙이 침잠한 후
나와 완전히 합일을 이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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