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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호2010년 [특집 수필-박종철(영동수필회장)] 설악의 빛과 갈뫼의 영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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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3,060회 작성일 11-01-0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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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악산을 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대청봉은 나에겐 희망봉이었다. 먼 나라 땅에 솟아있는 봉우리처럼 좀체로 만날 수없는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회사의 산악회원들은 여러 번 대청봉을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절찬하는 설악의 아름다운 풍경이 뇌리에 입력되면서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회사의 바쁜 업무를 핑계로 회원들과 합류할 수 없었기 때문에 풀지 못하는 숙제로 남게 되었다. 그러다가 꿈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회사를 그만두고 가족과 함께 설악을 올랐을 때이다.

  10월, 오색약수터에서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산길을 더듬어 올랐다. 오르막이 계속되어 숨을 헐떡이며 굼벵이처럼 오르다가 해질녘에야 겨우 대청봉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진하여 대청봉 정상에 서니 사방은 첩첩산중이요 깊은 계곡과 깎아지른 바위산이, 산과 산이 파도처럼 출렁이어서 현기증이 났다. 중청봉 휴게소에서 피난민처럼 새우잠을 자고 이튿날 눈부신 햇살을 따라 천불동 계곡을 밟았다.

  단풍은 설악을 붉게 물들여 산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봉우리마다 솟아있는 기묘한 석상과 질식할 것 같은 기암절벽, 푸르른 기상의 노송들이 연출하는 황홀한 비경에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첫 대면한 설악은 자연의 신비로운 색채를 내 가슴에 짙게 물들여 주었다. 그 후로 신흥사, 권금성, 울산바위, 금강굴, 봉정암, 오세암, 비룡폭포, 비선대 등을 두루 찾아 나서게 되었다.

  마침내 설악은 우리 가족을 속초 땅으로 유인했다. 시민의 정서와 도시의 환경을 눈에 담으면서 새로운 고장을 만나게 되었다.

  속초의 입구 대포항을 거쳐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99년도에 국제 관광박람회가 열렸던 넓은 엑스포광장에 차를 세우고 청초호 서쪽 상류에 서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기다란 모래톱에 철새들이 한가롭게 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듯 내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온다. 슬그머니 접근하여 망원경으로 살펴보면 여러 종류의 철새들이 갈매기와 어우러져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또 영랑호는 어떤가. 어느 날 짐승만한 초어 한 마리가 길바닥에 쓰러져있었다. 초어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수질오염에 대하여 걱정을 하게 되었다. 마침 영랑호의 수질개선을 위해 준설작업을 하고 있어서 다소 안심이되긴 하였지만, 호수가 맑아질 때 속초 땅도 밝아지리란 생각을 해 보았다.

  시민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중앙시장은 서민의 삶을 펼쳐놓은 전시장 같은 곳, 그들의 참모습과 혼잡한 질서에 마음이 빠져들었다. 중앙시장을 벗어나서 시내와 아바이마을을 이어주는 갯배에 올랐다. 바다와 호수가 한 통속이 된 어항은 아름다웠다.

  시내는 상가로 번창하고 있었고 아바이마을은 한산한 주거지역이었다.

  다닥다닥 붙은 나지막한 집들은 어떤 슬픔을 안고 있는 공동운명체인양 쓸쓸해 보이기도 하였다. 한적한 골목길에서 실향민들의 아픔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6·25가 낳은 이산가족의 고통은 아직도 치유할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

  이따금 강릉에서 속초로 떠나는 길은 그때마다 설레임과 같은, 38선을 넘으며 다가오는 분단의 회한 같은 것. 그래서 속초 땅을 들어설 때마다 가슴에는 파도가 일고.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절망 같은 것에 마음이 어두워진다. 그 뒤로 갈뫼문학회와 마주하게 된다.

  갈뫼가 탄생한 지 40여년의 세월이 갈뫼문학을 설악산처럼 우뚝 서게 해주었다. 설악의 화려한 빛깔과 뛰는 맥박이, 동해의 푸른 숨결과 통일의 염원이 한데 용해되어 속초 문인들의 영혼을 일깨우며 일으켜 세웠다. 그리하여 갈뫼의 문학 탑을 높게 쌓게 하였으니 수려한 자연환경이 많은 문인들을 예술의 길로 인도하였던 것이다.

  강산이 네 번이나 변하는 40여 년 동안 훌륭한 문인들을 많이 배출하였으며 본래의 문학정신을 연연히 이어오고 있음은 자랑이자 긍지다.

  설악의 정기와 모정과 같은 넓은 바다를 품고 사는 갈뫼회원들은 이 땅에 문학의 향기와 평화를 심는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해 내리라 믿는다.

  눈부신 설악의 빛이여, 치열한 문학정신을 이어가는 갈뫼의 영광이여!길이길이 빛나라.

 

 

 

| 약력

1991년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 수필문학상(1977), 한국불교문학상(2003), 소월문학상

(2004), 강원문학상(2006) 등 다수 수상. 시집「은파도」수필집「아버지의 땅」외 다수의 저서가 있음. 한국수필문학가협회 부회장, 수필문학작가회 회장, 영동수필문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