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뫼 호수별 보기

40호2010년 [특집 회고-윤재근(문학박사)] 『갈뫼』의 不惑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3,130회 작성일 11-01-05 17:40

본문

『갈뫼』와 나는 인연이 매우 깊다. 30대 중반에 만나서 70대 중반까지 줄곧 연줄이 닿아있으니 말이다.

『갈뫼』를 가꾸는 文友들을 맨 처음 만나고자 갔던 길은 한계령을 넘지 않고 진부령을 넘는 쪽이었다. 내설악 자락  굽이굽이 백담사로 가는 길을 거쳐서 속초시로 가고 싶어서였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걸어서 갔습니다>
  이렇게 萬海가 읊어야 했던 그 길이 바로 내설악 자락을 따라 흘러내리는 山川의 굽잇길이지 싶고『님의 沈默』속으로 들어가는 <푸른 산빛의 단풍나무숲길>도 여기서 생겼지 싶은 생각은 나에게 지금도 변함이 없다.

  자갈길을 털거덕거리며 시속 40km 정도밖에 못 달리던 속초행 버스가 해가 뉘엿거릴 무렵에서야 나를 실어다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버스를 내리려는 나를 가로 막는 분이 있었다. 몸매가 건장하고 유난히 넓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한껏 담고서 걸걸하고 우렁찬 목소리로“윤 선생님 먼 길 고생 많으셨지요.”내 손을 덥석 잡았던 그분이 바로 윤홍렬 선생님이었다.
  이렇게 윤 선생님을 버스 문턱에서 처음 뵈었고『갈뫼』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강원도에『갈뫼』보다 먼저 나온 文學誌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關東에서만은 맨 처음으로 속초 文友들이『갈뫼』를 내놓았지 싶다. 전국을 통틀어서도 文學誌가 몇 개나 될까싶던 때에 이미 최북단의 자그마한 항구 속초시에서『갈뫼』를 펴낸다는 사실이 고맙고 놀라웠다.

『갈뫼』때문에 속초를 처음 찾게 되었지만 속초와 연줄이 닿았던 것은 황금찬 선생님을 통해서 인연이 닿았던 李聖善詞伯덕이었던 셈이고 따라서 尹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 뒤로 해마다 윤 선생님은 나를 불러주었고 해를 거듭하면서 서울을 기웃하지 않고 속초 문학을 위하여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는 윤 선생님의 정열이 놀라웠다.

  나는 그런 윤 선생님이 좋았다. 政治는 서울에서 주도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文學은 결코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다. 어찌 서울이 문학의 중심이겠는가? 문학의 중심이 있고 변두리가 있다는 생각부터 성립될 수 없다. 문인이 터잡고 문학을 창작하는 그곳이 바로 文學의 産地로 중심을 잡으면 그만이다. 이런 관점에서 윤 선생님과 나 사이에 뜻이 맞았다.
  무엇보다『갈뫼』에 끈끈한 土着愛가 짙게 배어 있음은『갈뫼』의 강점이다. 좋은 詩나 小說은 텃새의 노래 같아야 숨이 길지 철새의 흉내잡이로써는 숨이 길 리 없음이 문학의 미래요 그 운명이다. 이를 잘 새긴 문인일수록 문학에 토리가 있음을 사무치면서 詩를 짓고 小說을 創作해가는 법이다.

  안태가 없는 出生이 없듯이 文學의 出生도 제 本籍을 터전으로 삼아 담금질될수록 文香오래오래 풍기는 법이다. 물론 어느 곳에 가거나 서울 文壇을 기웃기웃 하면서 자신의 文名을 빛내보려는 性向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性向이란 한 때 불다가는 돌개바람 같아 오래 가지도 못하고 그 文運도 별것 아니게 그치고 만다. 이는 朝鮮朝를 돌이켜보면 自明하다. 지금껏 숨쉬는 朝鮮朝의 文學은 거개가 다 지방에서 뿌리를 내리고 꽃피웠던 것들이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고약한 속담은 정치판용이지 결코 문학용은 아니다. 토박이 文學일수록 숨이 길어 그 文香이 오래 가는 법이다.

『갈뫼』야말로 關東에서 시-소설-수필 등 작품들이 제뿌리를 내리고 토박이 文氣와 文香을 품어내게 터전을 40년에 걸쳐 그침 없이 일구어왔다. 사람으로 친다면 불혹(不惑)을 넘긴『갈뫼』이겠지만『갈뫼』야 關東文學의 텃밭으로 늙을 리 없다. 오히려 不惑을 넘긴『갈뫼』는 關東의 토박이 문학의 터전으로 未來를 열어가면서 제뿌리를 튼튼히 담금질해 청청한 젊음을 이어갈 것이 분명하다. 참으로 인생은 짧아도 문학은 길다.

『갈뫼』를 가꾼 文人들이 늙어 사라진다 한들『갈뫼』는 文氣와 文香을 더욱 짙게 온 사방으로 품어낼 것이다. 그래서『갈뫼』는 속초의 文友들로 하여금 쉼없이 문학의 텃새가 되어 새롭게 삶을 지저귀도록 할 것이고 해를 거듭해 갈수록 토박이 文學誌로 터를 잡고 속초 文友들이 설악산-동해의 정령(精靈)을 듬뿍 받게 늘 젊은 텃밭이 되어줄 것이다. 文學이 새롭다고 함은 늘 미래를 열고 있는 까닭이다. 이를『갈뫼』를 이구어온 속초 文友들이 모를 리 없을 터이다. 이런 文友들이 속초에는 줄줄이 있으니 不惑을 넘긴『갈뫼』는 더욱더 젊어져 關東文學의 未來를 온 사방으로 뿜어내는 탁약이 될 터이다.

  끝으로『갈뫼』를 통해 속초의 文人들이 토박이 文香을 뿜어내야 한다고 확신했던 윤홍렬선생님이 미수(米壽)를 누리면서 강령(康寧)하길 바라고, 詩人박명자 여사님의 文運이 쉼없이 창창하길 바라며, 詩人김춘만 詞伯과 더불어 설악문우들께서 萬海禪師가 건봉사(乾鳳寺)에서 씨를 받아 오세암(五歲庵)에서 열매를 맺었던 인연(因緣)을 되새기면서『갈뫼』를 텃밭삼아 늘 새로운 文學의 풀무(槖籥)가 되어주기를 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