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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2011년 [소설-강호삼] 소실점(消失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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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3,922회 작성일 12-01-12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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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물 여행 가방을 다시 꾸리느라 탑승수속이 늦었다. 미국제 리델만 주머니칼 때문이다. 길이 5센티, 두께 0.7, 폭 1센티미터의 스테인리스 칼 이지만 쓰임새가 다양해서 항상 휴대하고 다닌다. 칼은 기본이고 드라이브, 핀셋, 오프너까지 해서 다섯 가지 용도로 쓸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해칠 수도 있는 물건이다.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날아간 후부터 무기가 될 만한 물건들은 무엇이든지 기내 반입이 안 된다. 특히 끝이 예리하거나 날카로운 도금 유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철저하게 반입을 금지하고 있다. 수하물로 부칠 가방을 풀어 주머니칼을 그 속에 옮겨 넣었다. 저울대 위에 다시 가방을 올려놓았다.

 

“손님 됐습니다.”

 

항공사 여직원이 수하물 표를 보딩 패스에 붙여서 여권과 함께 내민다. 여직원의 시선은 이미 뒤 사람에게 가 있다. 탑승카운터 앞을 돌아 나온 김영식은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누군가를 찾고 있는 표정이다. 카우보이모자를 연상케 하는 청바지 천의 챙이 큰 모자가, 질그릇 깨지는 투박한 경상도 음색에도 불구하고 보통이 넘는 사내의 큰 키에 어울린다. 모자에 달린 까만 줄이 턱 밑에서 미얄할미 가면의 부조가 있는 고정쇠로 고정되어 있다.

 

공항의 탑승 수속대는 이쪽에서 저쪽 끝이 보이지 않는다. 각 수속대마다 큼지막한 영어 알파벳 대문자가 에이(A)에서 에이치(H)까지 큼지막하게 표시되어 있다. 단체 여행객의 수속 대는 북쪽 맨 끝인 에이치(H)다. 에이(A)는 여기서 너무 멀어서 숫제 가물가물하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공항으로 5년 연속 1위를 했다는 공항이다. 하루에도 이착륙하는 비행기 편이 천여 대를 육박하고 12만 명의 여행객이 오간다. 아시아의 허브 공항으로 야심차게 만들었다. 조만간 활주로 두 개를 더 건설하고 공항건물도 증축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갯벌에 불과했던 곳이다.

 

 

수속대마다 세계 각국의 잡다한 인종들이 구불구불하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그들 생김새만큼이나 각기 다른 용무로 이 나라에 왔다. 관광을 목적으로 왔거나 아니면 비즈네스를 위해서다. 외국으로 관광을 나가는 내국인도 한 해, 수백만에 이른다.


활주로에 보잉 747기가 막 착륙했다. 바퀴가 아스팔트에 닿으면서 고무 타는 푸른 연기가 풀썩 피어오른다. 기체가 활주로에 안정되자 조종사가 역 추진 엔진을 가동시켜 속력을 줄인다. 비행기가 남쪽의 활주로 끝까지 갔다가 유턴을 했다. 태국에서 출발한 비행기다. 정시에 도착했다.

 

팔로우 미(Follow me)라고 쓰여 진 대형 입간판을 매단 유도 차의 안내를 받으며 천천히 계류장으로 들어왔다. 이내 유도차가 저만큼 비켜났다. 수신호로 비행기를 유도하고 있던 지상요원의 신호 주걱을 쥔 두 손이 나란히 공중으로 치켜 올려졌다. 비행기의 엔진이 멈췄다. 로딩 부리지가 조심스럽게 이동해서 비행기 옆쪽에 바짝 붙었다.

 

공항건물 바로 밑에서 에스유브이(SUV) 차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로 20인승 미니버스 한 대가 뒤따랐다. 두 대의 차가 계류장에서 로딩브리지 위로 올라가는 철제 사다리 밑에서 멈추었다. 비행기의 문이 열리며 비즈네스 좌석의 탑승객이 먼저 로딩브리지로 나왔다. 이내 일반석의 탑승객들도 비행기 밖으로 나와 입국장으로 향했다.

 

시간을 두고 일단의 사람들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입국장으로 가지 않고 계류장으로 연결된 로딩브리지의 사다리로 내려왔다. 여섯, 일곱 여덟, 남녀를 합해서 모두 열 네 명이다. 일행 중에는 어린이도 있다. 그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지치고 불안하고 두려운 표정이다.


사다리를 내려오자마자 곧장 미니버스에 태워졌다. 에스유브이가 앞장서고 미니버스가 뒤따르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북한에서 중국, 중국에서 태국으로, 태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온 사람들이다.

 

공항은 공항 그 자체로 축소된 하나의 세계다. 김영식의 시선에 저만큼 대기의자에 앉아있는 낯익은 사내의 모습이 잡혔다. 사내의 실루엣이 어딘가 외롭고 무척 쓸쓸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주위에서 웅성거림 속에 사내는 마치 혼자인 것 같다. 사내는 지금, 표정이 없는 텅 빈 얼굴로 앞쪽에 있는 대형 티브이 화면에 시선을 주고 있다.

 

뉴스를 전하고 있었다. 아나운서가 북한 소식을 전하면서 평양방송의 화면을 내보냈다. 일시, 화면이 흐릿해졌다가 치마저고리를 입은 평양방송의 여자가 아나운서가 등장했다. 특유의 과장된 쇳소리로 무언가 남쪽을 거세게 비난하고 있다. 한국의 국정원 직원이 베이징에서 그들과 비밀 접촉한 내용을 폭로하는 중이다. 남북한 지도자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남한이 파렴치하게 돈 봉투까지 내밀며 매달렸으나 과감히 뿌리쳤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떠들고 있다.

전 시간 뉴스에는, 미국의 민간 조사기관이 북한에 들어가서 북한의 식량 사정을 조사한 발표가 나왔다. 외부의 지원이 없으면 9월 추수철이 오기 전에 북한 사람 1/3이 굶주릴 것이라고 했다. 인도적인 조치로 식량지원을 하되 굶주리고 있는 북한주민에게 직접 식량이 전달되는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보도였다.

 

사내가 티브이 화면에서 얼굴을 돌렸다.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다. 얼굴이 무척 어둡다. 주위에 같이 여행을 떠나는 일행들이 아무도 없다. 카운트에서 탑승수속을 마친 사내가 곧장 사내 옆으로 다가갔다.

 

“어디 불편하신교? 압록강 여행하는 사람 맞지예. 왜 안들어가시고 혼자 있능교”

 

사내가 경기를 일으킨 것처럼 화들짝 놀라면서 시선을 들었다. 표백된 것처럼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크게 뜬 눈에 의혹이 잔뜩 담겼다. 잠시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판단하려는 것 같다.

 

사내는, 이내 자신의 앞에 선 사내가 아까 탑승수속 때, 카운트 앞에서 여행 가방을 다시 꾸리던 사내라는 것을 알았다. 사내의 표정이 안정을 되찾았다. 자신이 필요이상 당황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사내가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를 떠올렸다.

 

“아닙니다.”
“다들 어디 보안구역 안으로 들어간기 맞지예?”

 

대답대신 사내가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높게 매달린 전광판에 글자가 바뀌고 있었다. 출발한 비행기 편 시간이 지워지고 다음 떠날 비행기편의 편명과 시간 등이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다시 떠올랐다. 김영식 일행들이 떠날 중국의 남동항공, 심양(沈陽) 행 비행기 편 시간은 아직도 40분이나 남아 있었다.

 

심양은 옛날부터 중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조선에서 조공을 바치러가는 관리나 상인들이 모두 심양을 거처 장안으로 들어갔다. 더러 배편으로 천진을 거치기도 하지만 육로는 신의주에서 심양으로 가는 것이 장안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이번 여행 코스는 인천에서 장춘(長春)으로, 장춘에서 백두산으로, 백두산에서 압록강을 따라 조중(朝中) 국경지대를 답사하는 것이다. 여행 마지막 날은 압록강의 끝자락인 단둥(丹東)에서 버스 편으로 심양으로 가서 인천으로 돌아 올 예정이었다. 일정이 너무 늦게 잡혀서 장춘으로 가는 비행기 편의 좌석을 구하지 못해 일정이 거꾸로 잡혔다.

 

탑승수속을 마친 일행들은 모두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휴대품의 보안검색을 거치고 여권과 비행기 표 확인을 받은 뒤 엑스레이 투시기를 거처 보안 구역으로 통과했다. 어느 때보다 보안검색이 까다롭고 엄격하다. 세계도처에서 하루에도 몇 차례나, 테러가 일어나고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고있다. 죽이는 명분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종교니 사상이니 뭐니 하고 그럴듯하게 치장을 하지만 몇 겹의 치장을 지우고 보면 남는 건 서로 많은 것을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가진 자는 더 가지겠다는 것이고 경쟁에서 뒤처져, 가지지 못한 자는 더 가진 것을 같이 나누자는 것이 서로를 죽이는 싸움의 본질이다.

 

“참! 우리가 정식 인사가 없었지예. 지는 대구 사는 김영식이라는 사람입니더. 공무원 하다가 이 년 전에 퇴직을 안했습니껴. 압록강을 간다캐서 맨 먼저 신청을 했습니더. 말로만 압록강 이야기를 들었지 직접 가보지는 못해서 말입니더.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더”

 

김영식이 사내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내가 마지못한 듯 어색하게 손을 잡는다. 김영식과 비슷한 육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나이다. 병색이 있어 보이는 어두운 표정과는 달리 미남이라고 할 정도로 정돈된 얼굴이다. 녹색 체크무늬가 있는 반팔 티셔츠에 카키색 바지 차림으로 후드가 달린 갈색 등산복을 허리에 두르고 있었다.

 

“저는 전철수라고 합니다”

 

사내는 자신이 탈북자 출신이며 학교에서 북한학을 가리키는 교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참으로 반갑습니더. 인자 우리 밖에 안남은 것 같습니더. 마아 우리도 들어가입시더. 아직 비행기 떠날 시간은 남았습니더마는 들어가서 기달립시더”

 

무언가 머뭇거리는 것 같더니 전철수도 마지못한 듯 일어섰다. 공항에는 삽시간 사람들이 불어났다. 비행기들이 연달아 공항에 내리고 거의 같은 숫자만큼이나 비행기가 이륙했다. 돈이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지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는 세상이다. 오후 1시, 중국의 남동항공편으로, 심양 가는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출국장으로 향했다.

 

전철수는 연초에 종합검진을 받았다. 특별히 이상이 있어서 검진을 받은 것이 아니고 학교에서 교직원을 대상으로 연례적으로 받는 검사였다. 1차 검사 결과가 나왔다. 간의 수치가 정상보다 높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의사가 2차 정밀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2차 정밀검사를 받은 뒤, 그를마주한 의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되도록 방치했습니까?”
“ ……… ?”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간암 말기입니다.”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정도 더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철수는 한 동안 의사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분명 의사는 자신이 수술도 불가능한 간암말기 환자라고 말했다. 종합병원 몇 곳을 더 돌아다녔다. 같은 진단결과가 나왔다. 그제서야 전철수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쪽 사람들이 부러워 하리만큼 단란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그 동안 겪었던 지난날들의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한꺼번에 영화 속의 흑백필름처럼 머리에 떠올랐다.

 

전철수는 1948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출생했다. 아버지의 출신성분이 좋았기 때문에 비교적 부유하게 자랐고 김일성 종합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졸업 후 외화벌이 일꾼으로 체코에 있다가 1989년, 중국을 거처 한국으로 탈북 했다. 한국에서 북한 관련 일을 하다가 대학의 북한학과 개설과 함께 교수가 되었다. 탈북자로써는 성공한 삶이었다.

 

전철수는 서둘러 재산을 정리했다. 부동산을 아내 명의로 등기를 바꾸고 돈이 될 만한 것들도 모두 현금으로 바꾸어 아내 명의로 통장을 만들었다. 결코 적은 재산이 아니었다. 정착금과 강연료와 대학 교수의 월급을 한 푼도 낭비하지 않았다. 가망 없는 일인 줄 뻔히 알면서 통일이 되면 자신 때문에 고통 받은 북쪽의 가족들과 나눌 것을 염두에 둔 저축이었다.

 

이번 압록강 여행은 먼발치에서나마 그가, 고향산천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병세가 여행을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병변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 가족들 누구도 그의 병을 구체적으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내마저 컨디션이 조금 나빠진 것으로만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아빠! 잘 다녀오세요. 오랜만에 고향산천 구경 잘 하시고, 할아버지 할머니께 제 인사도 대신 전해주세요”

 

아침 집을 나설 때, 대학에 다니는 큰 딸은 일부러 어리광을 부리며 서양식 인사로 그를 포옹하고 장난스럽게 볼을 비볐다. 이제, 완연히 여자티가 날만치 성장했다. 고3 수험생인 아들은 수능시험에 매달리느라 새벽부터 학원에 나갔기 때문이다. 어제 밤늦게 학원에서 돌아 왔을 때 잠깐 얼굴을 보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내는 그를 배웅하는 순간까지도 이번여행을 못마땅해 했다. 몸도 성치 않다면서 여행을 강행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일행들이 탑승한 비행기는 인천공항을 이륙한지 2시간이 체 못돼 심양(沈陽) 공항에 착륙했다. 간단한 세관검사를 거친 뒤 공항 밖으로 나와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 편으로 다시 두 시간 정도 더 달려서 조금 전에 단동에 도착했다. 압록강이 내려다보이는 호텔에 짐을 푼 뒤 선착장으로 갔다. 중국의 단둥과 북한의 신의주를 잇는 조중우호교(朝中友好橋)가 있다. 이 철교를 통해서 중국과 북한의 거의 모든 무역이 이루어진다. 바로 곁에 6.25때 미군의 폭격으로 부셔진 철교가 폭격 당한 당시의 상태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저쪽에 놀이기구 보이시죠? 저 놀이기구 말임다 15년 전에 맨글어진건데 지금까지 한번도 돌아가 본적이 없어요. 고럴 수밖에 없는 기 자세히 보시라요. 앉는 자리가 없어요. 거저 철판을 오려서, 이쪽에서 볼 때 그럴듯한 놀이기구로 보이지만 거저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기라요. 제가 5년전에 이곳에 왔을 때는 빨갛게 녹이 쓸어있었는데 요지막에 뺑끼칠을 한기야요.”

 

심양에서 합류한 가이드가 손으로 가리켰다. 연변 자치구의 조선족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다가 가이드가 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가리키는 대로 일행들의 시선이 놀이기구 쪽으로 향했다. 저 만큼 떨어진 거리에, 최근 수십 년 동안 연기가 오른 적이 없다는 공장 굴뚝과 함께 풍차처럼 돌아가는 놀이기구가 눈에 들어왔다.

 

가이드 말처럼 최근에 페인트칠을 한 듯 알록달록 붉고 푸르고 노란 색깔이 유난히 선명하다. 사람들이 저마다 눈을 크게 뜨고 놀이기구를 바라보았다. 사람이 앉는 자리가 없다. 어린이 놀이기구처럼 보이게 한 위장시설이다. 구차하게, 무엇 때문에, 누굴 보라고 저런 어처구니없는 치장을 해 놓은 것일까? 요즘 들어, 새삼스럽게 페인트칠을 한 것은 갑자기 늘어난 남쪽의 관광객을 의식한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신의주가 저만큼 건너다보인다. 강폭은 서울의 한강과 비교해서 조금 더 넓은 편이다. 유람선에서 바라보이는, 강 양쪽의 신의주와 단둥의 두도시가 너무 대조적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두 도시는 비슷했지만 이제 더 이상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인구 240만 명을 헤아리는 단둥의 발전이 눈부시다. 인구 30만 명의 신의주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유람선이 좀 더 신의주 강안 쪽으로 다가갔다. 색갈이 탈색한 회색의 도시가 눈앞에 나타났다. 유람선 선실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왔다.

 

좀 더 자세히 강 건너편을 바라보기 위해서다. 하나같이 낡고 우중충한 건물들은 사람들이 살지 않는 유령도시같이 황량하고 을씨년스럽다. 강안의 부두에 금방이라도 가라앉을 것 같은 빨갛게 녹이 쓸데로 쓴 폐선 직전의 배들이 여러 척 접안해 있다. 일거리가 없어서 그대로 정박하고 있는 배들이다. 배가 강안(江岸)으로 다가가자 부두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트럭 위에서 두 사람의 인부가 짐을 내리고 있다. 미끄럼틀이 트럭과 강가에 정박한 배의 갑판에 바로 걸쳐져있고 두 사람의 인부가 미끄럼틀 양 옆에 서서 마대를 밑으로 내려 보내고 있다. 목선의 갑판에서는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 온 마대를 세 사람의 인부가 갑판에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인부들은 제법 근육이 탄탄히 잡힌 몸매다. 서울의 보도대로라면 먹을 것이 없어 피골이 상접해 있을 텐데 남한의 부두 노동자나 다름없어 보인다.

 

서울의 보도가 날조된 것인지도 모른다. 갑판에는 이미 쌓아놓은 흰 스티로폼 상자가 있다. 모두 중국으로 가는 물건들이다. 마대에 담긴 것은 철광석 원석이고 흰 스티로폼 상자에 담긴 것은 수산물들이다.

 

누런 색 군복정장 차림의 인민군 셋이 사람이 미끄럼틀 옆에서 마대 내리는 것을 감시 하고 있다. 윗부분이 원형인 소련식 모자가 특이하다. 일행들은 우리 안에 든 동물을 구경할 때처럼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한다. 티브이 같은 보도 매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들을 보긴 했지만 생생한 실물을 보기는 처음이다.

 

“이마에 뿔이 없쟎아?”

 

누군가가 다분히 자조적인 말을 내 뱉었다. 나이 든 사람이다. 그는 6.25전후 인민군들은 모두 이마에 뿔이 난 것으로 그려진 만화를 생각해냈음에 틀림없다.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 몇이 피식! 웃음을 베어 물었다.

 

유람선의 이동에 따라, 부두의 흰 벽에 지붕이 푸른 3층 건물이 시야로 들어왔다. 신의주 쪽에서 가장 크고 깨끗해 보이는 건물이다. 지붕 처마 바로 아래, 김일성과 김정일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있다. 조금 더 아래쪽에 <21세기의 위대한 태양 김정일 장군>이라는 붉은 글자가 있다. 글자한 자의 가로 세로 길이가 각각 2미터 이상이다.

 

건물 모퉁이에서 여군이 나타났다. 모두 네 사람이다. 일렬종대로 절도 있는 걸음 거리다. 열의 1번과 2번 여군은 총구를 아래로 향한 총을 어께에 메고 있다. 머리에 둥근 베레모 같은 것을 썼다. 베레모 밑으로 까만 머리칼이 보인다. 두 사람은 꽁지머리이고 두 사람은 어께까지 풀어 헤친 생머리다. 나이는 20여세 전후로 키는 1미터 50센티쯤, 맨 앞의 여군은 팔에 완장을 찼다. 그녀만 군복 색깔이 짙은 녹색이고 나머지 세 사람은 회색이다. 이만큼 다가와서 맨 앞의 완장을 찬 여군을 따라 절도 있게 방향을 바꾼다. 방향을 바꾸는 맨 끝 여군의 동작이 귀엽기 까지 하다.

 

“어머! 쟤들 신발 봐라. 모두 제 각각이야.”

 

일행 중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억제하면서 말했다. 일행의 시선들이 일제히 여군들의 신발 쪽으로 모아졌다. 완장을 찬 여군의 신발은 남쪽에서도 유행하는 5센티가 넘는 통굽이고 나머지 세 여군의 굽은 각기 높이가 다른 하이힐이다. 군대의 지급품은 일률적이게 마련이다. 여군이라고 해서 외외가 아니다.

 

신발이 제 각각인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여자들 사이에서 탄식과 함께 각가지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결론은 군대의 지급품마저 제대로 지급할 수 없이 그들이 가난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말임다. 북한에서 가장 잘 살고 굶지 않는 사람들은 이 국경지대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기 왜 그런지 아십네까?”

 

일행들이 가이드의 얼굴만 멀뚱멀뚱 처다 보았다.

 

“그기 말임다. 밀수를 하기 때문이야요. 밀수 말임다. 밀수를 해서 밥은 굶지 않습네다”
“어떤 걸 밀수하는데요?”
“철광석과 마약 같은 거지요. 내일 가다가 보시게 되갔지만 이쪽에서 보이지 않는 산너머에 북조선 당국이 직접 관리하는 아편 밭이 있습네다. 북조선 사람들도 자기들 뙈기밭에서 몰래 아편을 심습네다.”
“경비가 철저 할 텐데 어떻게 밀수를 하지요?”
“그기 말이야요. 다 방법이 있디요. 물이 들어가서는 안되는 물건은 비날론으로 몇 겹을 사지요. 철광석은 그냥 마대에 넣습네다. 그런 다음 쇠가죽 푸대에 넣는기야요. 쇠가죽 푸대 양쪽에 맨 밧줄을 각각 강 이쪽과 저쪽에서 가지고 있다가 이쪽에서 잡아당기는기야요. 쇠가죽은 물에 들어가면 가죽이 미끄러워서 강바닥에 있는 자갈이나 나무 같은 것에 걸리지 않치요. 물건을 확인하고 이쪽에서 다시 물건이나 돈을 넣은 뒤 신호를 하면 저쪽에서 쇠가죽 푸대를 잡아당기는 방법이지요. 국경지대에 있는 조선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묵고 살디요. 그래서 밥은 굶지 않습네다.”
“인민군들이 지키고 있는데 밀수가 가능합니까”
“그기 말임다. 다 짜고 하는기야요. 알고도 모른 체 하면서 뇌물을 받아 먹는 기야요. 갸들도 묵고 살아야 하지 않으시오? 돈이나 물건을 받고 슬쩍 눈을 감아주는기야요”

 

유람선이 강안 쪽으로 좀 더 다가갔다. 갈색으로 검게 탄 인민군 병사들의 표정까지 식별할 수 있는 거리다. 신의주 쪽 강안을 이십여 미터 거리를 두고 뱃머리를 돌린다. 다시 단둥 쪽의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유람선에서 보는 단둥의 시가지는 뉴욕의 마천루보다 못하지 않다. 하늘을 찌를 듯 고층 빌딩들이 눈앞에 임립해 있다. 모두 30층 이상의 건물들이다.

 

압록강 하구에 떠 있는 섬이 황금평이다. 김정일은 황금평을 50년 동안 중국에 빌려주는 조약을 맺었다. 거기에 중국과 합작으로 공장을 지을 것이라고 한다. 그 반대쪽에 위화도가 있다. 위화도는 고려 말 이성계가 북벌을 위해 주둔한 곳이다. 이성계는 그곳에서 북벌 3대 불가론 내세워 왕명을 거역하고 회군해서 개성으로 돌아와 쿠데타를 일으켰다. 두 섬은 모두 백두산에서 발원한 압록강이, 홍수 때마다 토사를 운반해 만들어진 삼각주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지만, 이성계가 회군하지 않고 그대로 북벌에 성공했다면 고구려 때처럼 중국의 동북 3성이 우리의 영토로 남아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서울을 출발할 때부터 구물거리던 날씨가 이곳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날씨 때문인지 7시인데도 어둠이 깔린다. 저녁을 먹기 전에 폭파된 압록강 철교를 보기로 한다. 북한과 중국을 잇는 철교인데 6.25때 미군의 B29가 전략적으로 폭파했다. 중국이 이 철교를 이용해 북한군을 돕지 못하게하기 위해서였다. 강의 중심에서 신의주 쪽의 철교는 폭파되어 흔적이 없지만 중국의 단동에 이르는 철교는 그대로 남아있다. 중국에게 참전의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한 미국의 고심이 엿보이게 하는 부분이다. 미국은 정확하게 강 중심에서 북한쪽에 이르는 철교만을 폭파했다.

 

중국 쪽에서 출발하는 철교의 입구를 막고 그 곳에 남쪽을 향해 거대한 조형물을 만들어 세웠다. 6.25 전쟁 때 중공군을 이끌고 참전한 팽덕희가 압록강을 건너는 모양을 묘사한 거대한 조각이다. 팽덕희는 망원경을 손에 들고 병사들은 총을 들었다. 조각은 암암리에 중국의 속셈을 드러내고있다. 한반도 5천년 역사 내내 그랬던 것처럼 지금이라도 압록강을 건너한반도를 침략할 것 같은 기세다. 아이러니하게, 조각 전면 바닥의 동판에 영어로<for peac>라는 영문글자를 새겨 놓았다. 일행들은 남아있는 철교 위를 걸어 폭격으로 끊어진 곳까지 갔다. 폭파된 철교 앞에서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리도 그 쪽으로 가서 같이 기념사진을 박읍시더.”

 

김영식은 전철수를 재촉했다. 전철수는 병색 짙은 얼굴로 빙긋이 웃기만 했다. 별로 흥미가 없다는 표정이다. 소매를 잡아 끌다말고 김영식은 사진을 찍기 위해 재빨리 서있는 일행들 쪽으로 종종 걸음으로 달려갔다. 전철수는 혼자 계단을 통해 철교의 상단으로 올라갔다. 그의 시선의 끝에 신의주가 있다. 점점 어둠이 내리고 있는데도 그곳에는 불빛 한 점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단둥 시내는 가로등이 켜지고 화려한 색깔의 네온이 반짝거렸다. 일행이 걷고 있는 철교와 저만큼 바라보이는 조중우호교(朝中友互橋)의 교각과 상판을 장식한 네온등에 불이 들어왔다. 6.25 때 폭파된 철교를 그대로 두고 중국 측이 새로 놓은 다리다. 교각을 장식하고 있는 네온의 빨간 불빛은 마치 압록강을 장식해 놓은 빨간 수실(繡실) 같다. 그 수실이 압록강을 가로지르다가 신의주 쪽에서 뚝 끊어졌다. 그 끝에 불빛 한 점 없는 신의주가 고통스러운 깊은 신음 소리를 내며 웅크리고 있다.

 

오직 한 곳, 누르스름한 불빛이 비치는 곳이 있었다. 평양의 금수산에 독한 보존 약품으로 절어있는 김일성의 시신이 전시되어있고 지방 도시에는 그를 기리는 영생탑(永生塔)탑이라는 것이 세워져 있다. 김일성은 죽었지만 죽지 않고 영원히 그들 곁에서 인민들을 지도하고 있다는 김정일의 교묘한 통치술의 한 부분이다.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자 엷은 분홍과 연두 색 한복 저고리를 입은 여자들이 일행을 생글생글 웃으면서 반갑게 맞았다. 새빨간 입술의 짙은 화장이 어색하다. 머리를 땋아 붉은 댕기로 묶었으나 인상이 천박하다.

 

출신성분이 좋고 노래와 춤 같은 것을 훈련 받은 뒤, 다시 엄격한 심사를 거처 외화벌이에 동원된 여성들이다. 평양냉면이 유명하다는 옥류관은 중국 대도시에 한 곳씩 있다. 손님들은 중국 사람들도 있지만 한국인 관광객들이 대부분이다.

 

“어서 오시라요.”

 

일행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식당 안 여기저기를 휘둘러보며 안내하는 자리에 앉는다. 그들이 경영하는 식당이라고 해서 별 다를 것이 없다.

 

가구와 집기들이 조잡스럽고 초라하다. 한복으로 차려입은 여성이 들쭉술을 들고 있는 광고가 벽면에 붙어있다. 진열장에 북쪽에서 생산된 술을 진열해 놓았다. 남쪽의 평범한 시골 식당 같은 느낌이다. 굳이 여느 식당과 다른 점을 찾는다면 전면에 마련된 간이무대와 그녀들의 한복차림이다.

 

저녁 식사로 청포묵 무침과 김치, 고사리나물과 국, 이밥이 나왔다. 들쭉술이 반주로 나왔다. 식사 서빙을 마친 여성 접대원들이 부채 같은 소품을 들고 간이무대로 올라갔다. 녹음으로 된 반주 음악이 흐르고 남쪽에서도 잘 알려진 그들의 노래를 부른다. <반갑습니다>다에 이어 <휘파람>이 이어지고 무용도 어우러진다. 아리랑을 합창할 때는 접대원이 무대와 가까운 식탁에서 일행 중 한 사람을 무대로 끌어 올려 같이 노래를 불렀다. 이어서 부른 <고향의 봄>은 일행들이 모두 합창했다.

 

“쟤들 도망가지 않나? 여기 나와서 자본주의 물이 들었을텐데….”
“아닙네다. 저 아이들은 누구보다 당성이 강합네다. 부모들이 당의 고위간부이거나 6.25때 전사한 혁명 유자녀들이야요.”
“쟤들은 한 달에 월급을 얼마씩이나 받지요?”
“한국 돈으로 이만 원 정도를 받습네다.”
“그거 너무 적지 않아요?”
“아닙니다. 쟤들로서는 큰돈입네다. 그래서 임기가 끝나도 연장을 하기 위해 당 간부에게 3개월 치 월급을 뇌물로 바칩네다.”

 

간이무대 오른편 쪽 식탁이다. 브이아이피 석에 해당하는 자리다. 전직대학 총장과 어느 잡지의 편집장과 전직 대학교수를 지냈다는 사람들이다. 조선족 가이드와 소설은 쓴다는 여자와 동화를 쓴다는 여자도 자리를 같이 하고 있다. 바로 그 옆 식탁에는 여행 내내 별로 말이 없는 전철수와 공무원 출신 김영식도 여자들과 자리를 같이했다. 대화는 주로 전직 기자출신과 조선족 가이드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다.

 

“‥‥‥더러 자본주의 물이 들어, 남자와 눈이 맞아서 도망을 가는 경우도 있습네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자주 일어나지 않습네다. 쟤들은 이 밥집에서 한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못합네다. 밥집 일이 끝나면 그대로 문을 잠구고 잡니다.”
“그렇다면 외출을 전혀 할 수 없다는 말입니까?”
“생리대 같은 걸 사러 한 달에 한번, 그것도 세 사람이 같이 나갑네다. 그 때도 주재관들의 철저한 감시를 받기 때문에 탈출은 아예 생각도 못합네다. 최근에 탈북하다가 잡혀서 북한으로 송환된 에미나이가 있었는데 혀를 뽑히고 공개 처형되었습네다.”

 

전철수의 시선은 무대로 향해 있었지만 이쪽 식탁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무대에서는 일행 중 한 사람에게, 그녀들이 플라스틱 조화로 된 꽃다발을 증정하고 있었다. 박수소리가 요란하고 다시 그녀들의 노래가 기타반주에 맞추어 이어진다. 일행 중 몇 사람이 더 무대로 올라가 합창을 하며 그녀들과 어우러진다. 바야흐로 저녁만찬이 절정에 이른다. 북한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같은 민족, 같은 동포라는 말이 실감나는 시간이다.

 

피날레를 알리는 박수소리와 함께 저녁 만찬이 끝났다. 일행들이 문을 밀치고 한꺼번에 밖으로 나왔다. 어둠을 배경으로 압록강 철교를 장식하고 있는 빨간 네온 불빛이 더욱 선명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시절, 남쪽의 시골처럼 강 건너 신의주 쪽은 칠흑같이 깜깜하다. 다만 김일성의 영생 탑이 있는 곳만 곧 사위어 갈 것 같은 누르스름한 불빛이 괴기스럽다.

 

압록강이 점차 좁아지고 있었다. 강이 아니고 개울로 변했다. 바닥의 자갈과 모래가 드러난 곳도 있다. 바지를 무릎까지만 걷으면 옷이 물에 젖지도 않고 단숨에 북쪽 땅으로 건너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가이드는 실제로, 굶주린 북한 사람들이 지금도 그렇게 개울을 건너 탈북을 감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버스가 30키로 미터쯤 북동쪽으로 달렸다. 강폭이 더욱 좁아졌다. 중국 지명으로 호산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만리장성의 동쪽 기점이라는 곳이었다. 실제로는 고구려 박작성이 있던 성터다. 당태종이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했다가 이곳에서 대패했다. 성터가 남아 있었으나 2004년에, 중국은 이곳이 만리장성의 동단기점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지금은 시커먼 벽돌로 그 성터 위에 만리장성처럼 급조해 놓고 호산산성(虎山山城)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다.

 

치욕일 수밖에 없는 호산산성을 구경한 뒤 내려와서 가이드가 이끄는대로 산성의 뒤편인 남쪽으로 갔다. 풀숲으로 가려진 작은 도랑이 있고 도랑 앞에 큰 바위가 놓여있었다. 그 바위 일보과(一步過)라는 글자를 음각으로 크게 새겨 놓았다.

 

그 바위의 글자는 국경선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걸음만 더 내딛으면 북한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도랑 너머로 제법 넓은 평야가 누워있다. 북한의 의주(義州)평야다. 평야 저 끝에 회색의 궁핍한 북한의 일자형 집들이 아스라이 보였다. 금방 파종을 한 것 같은 밭 고량에서 농부가 한 사람, 괭이로 보이는 농기구로 뭔가 땅을 파고 있다. 도랑을 하나 사이에 두고 이쪽은 중국, 저쪽은 북한 땅이다. 일보과(一步過)라고 새겨진바위 말고는 별다른 국경선 표시도 없다. 도랑 건너 북한쪽에, 무너져 땅바닥에 널브러진 통 블록 담장이 있을 뿐이다.

 

넓은 의주 평야를 바라보면서 일행들은 하나같이, <도랑 하나만 건너면 북한인데> 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 곳에서 일보과(一步과)라는 바위를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박았다. 그리고 돌아서서 그 곳을 떠나려는 순간이었다.

 

“어머, 어머! 저일 좀 봐요. 저일 어쩨요……?”

 

놀람과 두려움이 가득 밴 여자의 목소리였다. 일행들이 일제히 목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도랑을 훌쩍 뛰어 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경악한 사람들의 얼굴표정이 일시 정지한 비디오 화면처럼 굳어졌다.

북한쪽으로, 도랑을 뛰어 넘은 사람이 돌아섰다. 전철수였다. 애써 얼굴을 일그러뜨려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구십 도로 허리를 굽혀 도랑 이쪽에서 있는 일행들을 향해 인사했다.

 

“미안합니다. 그 동안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이제 고향에 가서 좀 쉬고 싶어서요.”
“전철수씨! 당신 와 그라요? 빨랑 일로 넘어오쇼. 빨랑요. 거기 있으면 큰 일 나요.”

 

룸메이트로 하루 밤을 그와 같이 지낸 김영식이 손을 내저으며 벽력같이 고함을 질렀다. 전철수의 병색 짙은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가 두 뺨으로 주르르 흘러내렸다. 전철수가 다시, 구십 도로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이쪽에서 더 뭐라고 말하기 전에 바로 돌아서서, 저 멀리 아스라이 바라보이는 마을을 향해서 밭고랑 길을 터덕터덕 걷기 시작했다.

 

그 때서야 어디서 나타났는지 작은 키의 꼬마 장난감 병정 같은 인민군병사 두 사람이 달려와서 전철수의 양쪽 어깨를 낚아챘다. 무슨 말인가 주고받더니 이내, 전철수를 가운데로 하고 세 사람이 의주 평야를 가로질러 점차 멀어져 갔다.

 

일행들은 망연히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윽고, 세 사람은 하나의 점이 되더니 일행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밭고랑에 있던 북한의 농부는 별일 아니라는 듯 얼굴을 돌리고 다시 밭고랑 손질을 계속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