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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2011년 [동화-이희갑]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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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3,521회 작성일 12-01-1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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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솔밭에서 찬송 소리가 들려옵니다. 향긋한 솔 냄새가 함께 날아옵니다. 식물학자로 유명한 정경태 선생님은 숲 사진을 찍다 말고 발걸음을 멈추고 섰습니다.


한 가족이 야외에 나와 예배를 보는 듯합니다. 젊은 부부와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할머니 무릎에 앉은 예쁜 여자 아이. 엄마 품에 안긴 갓난아기. 참으로 보기 좋은 가족의 모습이었습니다.

 

가족들은 빙 둘러앉아 찬송을 부르면서 서로 쳐다보며 웃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여자 아이까지도 환한 표정을 지으며 찬송을 부릅니다. 언뜻 보아도 가족은 정말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어쩜 저리도 다정한 모습의 가족이 있단 말인가?’

 

정 선생님은 멈칫 하더니 모자를 벗었습니다. 오른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옆으로 쓸면서 하늘을 바라봅니다. 소나무 숲 사이로 노르스름한 송홧가루가 날립니다. 소나무 가지사이로 햇볕이 쭉쭉 내려 비칩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 보다 더 고운 백합화

 

가족들이 부르는 찬송가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정 선생님은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의 찬송을 같이 부릅니다.

 

‘참 아름다워라 -.’

 

첫 소절을 부르자마자 정 선생님 가슴 속 한 구석에서 찌잉 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머리도 약간 어지러웠습니다. 눈이 아픕니다. 금방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니 핑 눈물이 고입니다. 정 선생님 눈앞에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어른거립니다. 사람들이 빙 둘러 앉았습니다. 소나무 숲이 우거진 곳입니다. 역시 찬송 소리가 울려 나옵니다. 낮 익은 사람들의 표정이 보입니다.

 

‘아-’

 

정 선생님의 카메라 쥔 손이 풀리면서 팔이 축 늘어집니다. 정 선생님을 머리를 몇 번 흔듭니다. 정 선생님 앞으로 나타나던 소나무 숲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어른거리던 사람들의 모습도 서서히 사라져 갔습니다.


정 선생님은 이마에 내려뜨려지는 머리카락을 다시 한 번 손가락으로 끼어 옆으로 치켜 올렸습니다.

 

“경태야, 경태야!”

 

영미가 다급한 목소리로 불렀습니다. 경태는 돌아서서 싱긋 웃고는 영미의 소리를 못들은 척 했습니다.

 

“경태야, 너 정말 그러면 안 돼.”

 

영미의 목소리는 아예 울음이 잔득 섞여 있었습니다. 교회학교 시간 경태는 영미의 손수건을 빼앗았습니다. 영미가 아버지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감촉이 아주 보드라운 분홍 꽃무늬의 손수건입니다.

 

“우리 아빠가 힘들 때 땀도 닦고 친구 땀도 닦아주라고 선물했어.”
“그래? 그럼 잘 됐다. 내 땀도 닦아야지.”

 

경태는 빈정거리며 영미에게 낚아 챈 손수건을 자기 얼굴에 마구 닦았습니다. 우악스럽게 쥔 손수건이 경태의 손아귀에서 꼬깃꼬깃 떨고 있었습니다. 영미의 얼굴이 난감해지더니 금방 눈에 눈물을 가득 담았습니다.

 

“경태야, 너 얘긴 맞아. 친구의 땀을 닦아주라고 영미 아빠가 준 손수건이니까. 하지만 주인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 거야.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주인 허락이 없이 제 맘대로 남의 것을 자기 것처럼 쥐락펴락하는 건 나쁜 일이야.”

 

영미가 하도 서럽게 울자 교회학교 박 선생님이 경태를 불렀습니다. 경태는 머리를 숙였지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습니다. 경태의 얼굴에선 하나도 반성의 빛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영미에게 미안하다고 말 해.”

 

경태는 멈칫거리면서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 말이 없니. 너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

 

경태는 여전히 말이 없었습니다.

 

“너가 빌려달라고 말만 했어도 빌려 줬어.”

 

영미가 아직도 물기 젖은 눈을 하며 말했습니다.

 

“휴~”

 

박 선생님은 끝까지 대답을 하지 않는 경태 앞에서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경태야, 그렇게 남의 속을 아프게 해야 니 맘이 좋니? 그러지 마. 정말. 영미가 너한테 얼마나 잘 하는 친구니. 너도 인정하지?”

 

경태는 대답대신 싸늘한 눈빛으로 박 선생님 뒤에 서 있는 영미를 쳐다보았습니다.

 

“생각이 있다면 영미한테 그러면 안 되지. 정말이야, 다음엔 영미를 울리지 말거라. 알았지?”

 

박 선생님은 경태를 돌려보냈습니다. 문을 나가면서 까지 자기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경태였습니다. 수없이도 박 선생님에게 불려와 얘기를 듣는 경태의 태도에 박 선생님의 남은 힘이 다 고갈되는 것 같았습니다. 언제나 변함이 없는 경태와의 만남에 박 선생님은 그만 경태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습니다.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박 선생님은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교회학교 박 선생님은 늦게 결혼한데다가 늦게 아들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박 선생님은 모질게도 고난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별안간에 남편과 아들을 한꺼번에 사고로 잃어버리고 제 정신이 아니게 살았습니다. 목사님과 장로님, 그리고 권사님들이 번갈아가며 정신을 다잡지 못하는 박 선생님을 쉴 새도 없이 찾아왔습니다.

 

교회 사람들의 정성으로 박 선생님은 몇 년 만에 겨우 정신 줄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어렵고 힘들게 사는 어린이를 위해 자신을 내던지기로 했습니다. 박 선생님은 주일 내내 보육원에서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어주고 주일이면 교회학교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영미야, 네가 이해를 해 줘야 하겠다. 경태가 원래 나쁜 아이는 아닌 걸넌 알지?”

 

영미의 얼굴에선 아직도 어이없는 표정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박 선생님의 말에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박 선생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영미입니다. 참으로 가슴에 큰 슬픔을 아직도 다 지우지 못하고 사는 박 선생님이 경태를 위해 애쓰는 모습은 어린 영미에게도 감동이기 때문입니다.

 

경태가 유일하게 말하는 친구는 영미입니다. 워낙 짓궂고 심술이 많아 친구들이 경태를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학교에서나 교회에서 경태는 완전 왕따입니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자기 멋대로 입니다. 탐이 나는 물건이 있으면 남의 손에 있든 없든 자기 물건처럼 취급합니다. 물건을 빼앗긴 아이들이 뭐라고 그러면 발을 걸고 때리고 욕을 해 대고 합니다.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는 친구들은 경태에게 정나미가 떨어져 돌아섭니다. 경태에게 당한 아이들은 다신 경태에게 다가 가지 않습니다. 말이 통하질 않습니다. 자기 말만 옳다고 하고 남이 말하면 윽박지르고 소리도 못내게 합니다. 자신이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소리를 빡빡 내 지릅니다. 절대 양보가 없습니다. 우기는 데는 정말 도사입니다. 아이들은 질겁하고 맙니다. 경태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큽니다.

 

“재수 없는 놈이야.”

 

아이들이 비죽거리며 가 버립니다. 언제나 경태는 나중에 혼자가 됩니다.

 

경태에게 친구가 생긴다면 그게 바로 기적입니다. 그런데 영미는 그런 경태와 유일하게 이야기하는 친구 사이입니다. 물론 일방적으로 영미가 당하고 상처입고 하지만요.

 

경태는 교회에 와서 가만히 있는 때가 없습니다. 설교 시간에 열심히 듣는 아이들의 옷을 잡아당기거나 가방을 몰래 감춥니다. 자기가 듣지 않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다른 아이들까지 설교 듣는 걸 방해합니다.


예배가 경태로 말미암아 엉망으로 되어버린 일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전도사님이나 교회학교 선생님이 성경공부를 할 때도 말끝마다 토를 달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끼어듭니다. 전도사님도 교회선생님도 친구들도 함께 하기에는 너무도 버거운 경태로 인해 고생합니다.

 

울상이 되어버린 교회선생님들이 박 선생님께 달려옵니다. 그런 날에는 경태의 성경공부는 박 선생님이 맡습니다. 언제나 냉정하기만 한 경태를 박 선생님은 변함없는 모습으로 묵묵히 돌보아 주었습니다. 경태가 울 때도 같이 울어주고 경태가 아파할 때는 같이 아파하며 상처를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영미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친구들이 경태와 엮어진 일이라도 생기면 영미를 먼저 부릅니다.

 

“내가 뭐 경태 가족이나 돼?”

 

영미도 어떤 때는 참지 못하고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습니다. 그 때 마다 박 선생님이 영미에게 부탁합니다.

 

“영미야. 영미는 가족이 있잖니. 너를 사랑해주시는 엄마 아빠가 있잖니. 경태에게 없는 걸 넌 가졌으니 경태에게도 쬐끔은 나누어 줘.”

 

영미 엄마도 영미에게 부탁합니다.

 

“경태도 옛날에는 좋은 가정 속에서 참 착한 애였어.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니 얼마나 불쌍하니. 너가 좀 따뜻하게 대해 주거라.”

 

영미는 아빠의 말씀도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마라. 때가 되면 이루리라.”

 

아빠가 들려주신 성경말씀. 그 뜻은 잘 모르지만 영미는 때가 되면 자기의 기도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도 경태 때문에 힘들고 낙심하는 일이 있을 때 영미 아빠, 엄마는 영미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경태네 가정도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되게 해 주옵소서. 길 잃은 양처럼 헤매는 경태를 주님 따스한 품으로 안아 주옵소서. 우리 영미에게도 힘 주시고 주님의 선하신 일이 이루어질 때도록 은혜 베푸소서.”

 

기도를 마치면 영미는 언제나 자신의 얼굴에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 경태가 다시 좋은 사람으로 돌아올 때까지 난 최선을 다 할 거야.’

 

지그시 입술을 깨무는 영미의 얼굴이 아주 평안해 보였습니다.

 

경태네 가정도 여느 가정처럼 처음에는 단란한 가정이었습니다. 노래 잘 하는 경태 아빠는 시간이 날 때마다 경태 남매들에게 노래를 가르쳤습니다.

 

나는 주의 화원에 어린 백합꽃이니
은혜 비를 머금고 고이 자라납니다.

 

경태네 삼남매가 어린이 찬송가를 부를 때에는 모두 부러워했습니다.

 

“경태네 가족 노래 솜씨는 정말 대단해.”

 

교회 여기저기에서 경태네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노래도 잘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저렇게 아빠가 다정하게 아이들과 함께 하는 가족은 드물어.”

 

사람들은 경태네 가족을 칭찬하였습니다.

 

경태 엄마는 요리를 잘 합니다. 무엇이든지 아이들이 먹고 싶다고 하면 뚝딱뚝딱 금방 맛있는 요리를 해 냅니다.

 

“잉, 그래도 난 맘마 피자가 좋은데----.”

 

경태 막내 동생 경희가 칭얼거리면

 

“너 엄마 실력 정말 몰라주기야?”

 

하면서 엄마는 소매를 걷어붙입니다.

 

“짜잔 ~~ 엄마표 피자 배달입니다!”

 

금방 나온 엄마표 피자는 정말 먹음직스럽습니다. 경태네 식구들이 화목한 모습으로 음식을 먹을 때 주위에서는 또 부러워합니다.

 

경태는 동생들을 잘 돌봅니다. 경태는 삼남매 중 첫 째입니다.

 

“형아, 나 배 아파.”

 

아래 동생인 경호가 울상을 짓습니다.

 

“거봐, 아까 천천히 밥 먹으라고 했잖아. 형 말 안 듣고----”

 

경태는 엄마가 집에 들어올 때까지 경호의 배를 문질러주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줍니다. 경호는 형의 이야기를 듣고 깔깔 대고 웃습니다. 그러다 배 아프면 다시 찡찡 대고 또 다시 웃고 그러다보면 아프던 배는 어느새 사라지고 맙니다.

 

“오빠 나 머리----.:

 

경희가 부스스한 머리로 다가오면 경태는 살갑게 경희의 머리를 빗으로 빗어줍니다. 경태는 동생들에게 늘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행복했던 경태네 집에 검은 구름이 드리워졌습니다.

 

경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입니다. 경태아버지는 사업에 손만 대면 줄줄이 실패를 합니다. 처음에는 실패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사업은 잘 되질 않았습니다. 경태 아빠는 사업을 회복시키려고 아주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사업이 소생하기는커녕 더욱 내리막을 탔습니다. 경태아버지는 더 이상 사업이 회복되지 못한 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절망하고 말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빚은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습니다.

 

경태 아빠가 괴로워하니 엄마도 괴로워하고 엄마가 괴로워 하니 경태 남매들이 괴로워 졌습니다.

 

아빠와 함께 하는 노래도 사라지고 엄마와 함께 하는 요리 시간도 사라졌습니다. 경태 아빠는 방황하였습니다. 밤늦게 집에 돌아올 때면 언제나 술에 젖어 있었습니다. 경태 엄마는 눈물로 한숨으로 지냈습니다.


주일날이 되어도 교회도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경태 아빠와 엄마는 교회에서 봉사도 잘 한다고 남들에게 칭찬도 많이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좋은 줄만 알았던 아빠는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을 믿음으로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아빠를 원망하는 엄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경태 형제들 앞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루가 멀게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자주 다투었습니다. 경태 아빠와 엄마는 다툰 뒤에는 아주 괴로워했습니다. 하지만 싸움은 멈추지 않고 더 심해져 갔습니다. 경태 아빠는 자기 말만 옳다고 아이들 앞에서 엄마를 비난했습니다. 엄마도 질 새라 아이들 앞에서 아빠를 비난했습니다.

 

싸움은 더 큰 싸움으로 이어졌습니다. 날이 갈수록 불 번지듯 더 활활 타 오르기만 했습니다. 집안은 온통 난리가 난 것 같습니다. 집기가 여기저기 날아다닐 때면 아빠 엄마 모습이 완전 딴 사람 같았습니다. 그런 날이면 경태 남매들은 공포 속에서 떨었습니다. 경태는 다락에 올라가 동생들을 부둥켜안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싸움이 끝나면 아빠 엄마가 서로 경태네 형제들에게 와서 다신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두 분이 아이들 앞에서 울기까지 했습니다. 온 집안은 눈물바다가 됩니다. 아이들은 잠시 안도의 숨을 쉽니다. 하지만 그게 며칠을 가지 못합니다. 그리곤 절대 서로에게 질 수 없다는 듯이 싸우고 또 싸웠습니다.

 

“엄마, 아빠 싸우지 마세요. 난 엄마 아빠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이 보고싶어요.”

 

경태가 울면서 말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말 할 때 소리가 커지면 가슴이 덜컹덜컹 거려요.”


경호가 말했습니다.

 

“잉잉, 엄마 아빠 잉잉”

 

막내 경희는 그냥 울기만 합니다.

 

경태 아빠와 엄마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것이 말뿐이란 것을 경태는 차차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날이 그렇게 지나가면서 경태는 울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빠 엄마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빠가 미웠고 엄마가 미워졌습니다. 나중엔 동생도 미워졌습니다. 학교 친구도 밉고 교회 친구도 미웠습니다. 아니 자기 앞에 보이는 사람 모두가 미웠습니다. 그러던 때에 영미 아빠와 엄마가 심방을 왔습니다. 영미 아빠는 살다보면 누구나 절망은 있다고 했습니다. 성경 욥기에 나오는 욥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동방의 의인이라는 욥이 어느 날 10명의 자식과 전 재산을 한꺼번에 잃어버렸습니다. 아내는 욥을 저주하고 떠났습니다. 욥 자신은 온 몸에 종기가 나 기와조각으로 벅벅 자기의 몸을 긁는 비참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욥은 주신 것도 하나님이요 가져가신 이도 하나님이니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했습니다.


영미 아빠는 경태 아빠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경태 아버지, 어머니. 모진 고난을 이긴 욥을 생각하며 위로 받고 힘내세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다시 회복시킬 것입니다. 믿음을 굳게 하십시오.”

 

영미 엄마도 말했습니다. 경태네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다시 가정을 일으켜 세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잠시 경태네 가정은 훈훈한 바람이 부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경태 아빠는 예전으로 돌아가질 못했습니다. 가정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었습니다. 다시 경태네 집은 찬바람만 불었습니다.

 

뭉게구름이 하늘위에 둥둥 떠가고 며칠 째 무더위가 계속되던 어느 날. 경태네 집에 구역장님이신 심 권사님이 찾아왔습니다.

 

심 권사님은 경태네 집에 들어서자 경태 엄마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피곤한 경태 엄마가 얼굴에 살짝 미소를 띠며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권사님은 방 안을 한 번 휘 둘러보더니 여기저기 나뒹구는 아이들의 물건들을 주섬주섬 주어서 가지런히 권사님 옆에 정리해 놓았습니다.

 

경태 엄마는 그저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권사님은 다시 한 번 경태 엄마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말없이 머리만 끄덕이셨습니다. 이미 모든 사실은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경태 엄마의 눈에 눈물 글썽이었습니다. 심 권사님은 힘을 내라고 위로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참 뒤에 권사님은 나오미와 룻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방인의 땅에서 두 아들을 잃어버리고 굶어 죽을 수밖에 없던 상황의 나오미. 그러나 그런 절망을 딛고 며느리 룻과 함께 꿋꿋하게 살아가면서 행복을 찾는 룻기 이야기를 하며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경태 엄마, 경태와 경호, 경희가 잘못 크면 어떻게 하겠어요. 제발 어른들의 감정으로 앞길 창창한 아이들이 잘못되지 않도록 하나님께 모든 것 내려놓으세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완전히 엎드리세요."

 

심 권사님은 한참이나 이말 저말 하면서 엄마와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엄마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 진 것 같았습니다.

경태는 자꾸만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습니다. 며칠 째 집을 나간 아빠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 거렸습니다. 부모님이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경태에게는 너무도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영미 아빠 엄마가 다녀갔고 심 권사님이 찾아와서 저렇게 간절히 경태네 가정을 위해 애쓰는 모습이 너무도 좋아보였습니다. 답답하던 마음 한 구석에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았습니다.


심 권사님이 다녀간 뒤로 엄마는 조금 생기를 되찾은 것 같았습니다. 경태네 집은 많은 위안을 찾았습니다. 경태 아빠와 엄마는 다시 교회에 나갔습니다. 서로 싸우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경태네의 고난은 거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경태 아빠의 사업이 마지막으로 빚에 다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경태 아빠는 다시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허둥거렸습니다.

 

“이젠 끝이야.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했는데 다 필요 없어.”

 

경태아빠는 넋두리를 하다 고래고래 소리를 치다가 휭 하니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오랫동안 아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경태네 가정은 가난에 힘겨워졌고 빚 독촉 오는 사람들에게 온갖 멸시를 받아야 했습니다. 고통의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생활의 어려움 속에 생계를 혼자 떠안은 엄마는 더 이상 경태 남매를 돌보지 못했습니다. 온 종일, 그리고 밤까지 나가서 일하는 경태 엄마의 모습은 날로 초췌해 갔습니다. 그러던 중 경태 아빠의 소식이 왔습니다. 경태 아빠는 여러 사람의 빚을 갚지 못해 경제범으로 교도소에 들어가 있다는 소식입니다. 또 한 번 경태네 집은 거센 회오리바람이 휘몰아 쳤습니다. 울음바다가 된 경태네 가정은 오랫동안 한 겨울처럼 싸늘하게 식어만 갔습니다.


어느 날 장로님이 오셨습니다. 교회에서 제일 엄 하시다고 소문난 방 장로님이십니다. 아이들도 무서워하는 장로님이십니다. 물론 반듯하시고 엄하신 장로님 앞에서는 어른들도 함부로 말을 하질 못합니다. 그런 장로님이 어떻게 아시고 경태네 집까지 오신 것입니다.

 

방 장로님은 몇몇 교회 사람과 함께 오셨습니다. 교회 사람들은 경태네 집안 구석구석을 깨끗이 청소를 하였습니다. 집 안이 훤해 졌습니다. 이어서 가지고 온 음식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물론 경태 형제들도 맛있는 음식을 오랜만에 마음껏 먹었습니다. 방 장로님은 경태와 동생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방 장로님은 어쩌면 영영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던 요셉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아 상인들에게 팔려간 요셉. 어떻게 보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요셉을 지키시고 모진 고난 중에서도 이길 힘주신 것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장로님이 이야기 하는 동안 경태 엄마는 쉴 새 없이 눈물을 닦았습니다.

 

“경태 어머니.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는 고난 중에도 그 분의 뜻을 펼치십니다. 그냥 겪으라고 주는 고난은 없답니다. 믿음을 굳게 하십시오. 요셉의 모진 고난 끝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요셉이 애급의 총리대신이 되고 집안과 민족을 살린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경태네 가정에 경태 아빠에게 그런 역사를 주실 줄 믿습니다.”

 

방 장로님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함께 한 교우들이 숙연한 모습으로 머리를 숙였습니다. 엄하시기만 하시던 방 장로님한테 어디서 저런 모습이 있었나 경태는 그게 놀라 장로님의 말씀을 다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경태는 뜻을 잘 알 수 없었지만 장로님이 몇 번이고 읽으신 성경 말씀을 되풀이하여 중얼거려 보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과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며 오래 가지도 않습니다. 이 짧은 고통은 영원히 다 함이 없는 영광을 가져올 것입니다.’(고린도후서 4장 17절)

 

장로님이 다녀가신 뒤에도 경태네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못했습니다. 경태 엄마는 여전히 고된 일에 시간을 보내고 경태는 학교 갔다 와선 칭얼거리는 두 동생을 돌봐야 했습니다. 경태는 아직 어린 나이지만 일찍 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엄마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챙겨야 했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없자 아이들도 점점 제멋대로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쳐 버린 경태도 동생들에게 자주 짜증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일이 계속되자 형제들 끼리 욕하고 트집 잡고 싸우기를 계속했습니다. 이미 단란했던 경태의 가정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상처받은 경태 형제들은 그렇게 제 멋대로 자랐습니다. 그 중에서 경태가 제일 비뚤어지게 나갔습니다. 학년이 올라가고 머리가 좀 컸다고 경태는 모든 일에 비판적이 되어갔습니다. 남을 좋게 보는 마음도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그저 무슨 일이든 원망하고 의심하고 비판하며 자랐습니다.

 

경태의 생활은 바람 잘 날이 없는 날이었습니다. 남을 원망하고 의심하고 믿지 않으며 흠을 잡고 약을 올리고 하다 보니 아이들과 매일 싸우느라 학교에서는 골치 덩어리가 되어 갔습니다. 주일학교는 그래도 빠지지않고 나왔지만 성경 공부 시간에 방해하고 눈만 돌리면 사고를 치느라 교회학교에서도 문제아가 되었습니다. 학교 선생님 말씀도 교회 학교 선생님 말씀도 교회 어른들 말씀도 이젠 경태에게는 코웃음거리였습니다.

 

‘피, 나를 사랑한다고? 날 자기 자식과 같이 사랑으로 대해 줬나? 다 자기 얼굴 내려고 날 사랑하는 척 했지, 내가 모를 줄 알고?’

 

경태는 절대로 남에게 고맙다거나 다정한 표정을 짓지 않았습니다. 영미가 다가왔을 때도

 

“뭐야. 너네 아빠가 또 성경 말씀대로 그렇게 살라고 해서 나한데 그런거야?”

 

하고 면박을 줍니다.

 

“치. 다 쓸데없는 말이야. 자기네 아이들이나 잘 하라고 그래.”

 

영미 엄마가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나섰습니다.

 

“경태를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되겠어요.”


영미 엄마는 구역에 알렸습니다. 구역 담당이신 진 목사님께서 나섰습니다.

 

“경태를 지도할 사람이 필요해.”

 

진 목사님은 며칠을 고심한 끝에 박영희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진 목사님의 얘기를 들은 박 선생님께서 한참이나 말이 없더니

 

“한 주 동안 기도해 보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박 선생님의 얼굴에는 무언가 결심하는 듯 긴장된 표정을 보였습니다.

 

일주일 후 경태는 박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박 선생님은 경태의 얼굴에서 보통 아이와는 다르다는 것을 첫 눈에 알아봤습니다. 눈빛이 강하고 얼굴이 돌처럼 굳어버린 경태. 잔뜩 움츠린 어깨에서 지나치게 자신을 방어 하려는 모습을 느꼈습니다.

 

박 선생님은 경태의 마음 문은 조그만 틈도 없음을 직감했습니다. 마음의 문이 닫힌 사람에게는 그 어떤 말도 허사입니다. 박 선생님은 긴장했습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박 선생님은 우선 경태와의 대면에서 말을 아꼈습니다.

 

박 선생님은 조용한 곳에 가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이 어려운 상황을 뛰어넘을 지혜를 주옵소서.”

 

경태는 박 선생님에서 며칠 째 지시하거나 시키는 일에 대해 아무 말도 듣지 못했습니다. 성경 공부 교재와 자료를 가지고 박 선생님은 되도록 말대신 손짓과 표정으로 경태를 지도하였습니다. 박 선생님은 스스로 공부하는 프로그램을 경태에게 제시 했습니다. 하지만 경태에게는 노는 시간이 많아진 모양이 되었습니다. 경태가 지루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빈둥빈둥 거리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선생님. 뭘 하면 되요?”

 

경태가 답답하여 먼저 말을 걸어 왔습니다. 박 선생님은 딴 일에 바쁜 척 하다가 경태가 물으면 깜짝 놀라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러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슬쩍 웃음을 날릴 뿐이었습니다.

 

“에이 씨-”

 

경태의 입에서 불평의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난 갈 거예요.”

 

경태가 교회공부방 문을 나서려고 했습니다. 박 선생님은 그냥 살짝 미소만 또 한 번 날렸습니다.

 

“뭐 예요!”

 

경태는 문 밖을 나가려고 손잡이를 잡았지만 비틀지는 않았습니다. 손잡이를 비틀면 문이 열립니다.

 

‘이건 중요한 약속이야. 박 선생님과 함께 두 시간 씩 공부하는 것이 너의 책임이야“

 

구역담당 진 목사님의 말씀이 머릿속에서 번뜩 울렸습니다. 경태는 슬그머니 손잡이를 놓습니다. 박 선생님은 낌새를

알고도 모른 채했습니다. 경태는 어머니에 대한 감정은 아직 그대로 있었습니다.

 

‘불쌍한 우리 엄마’

 

이게 경태의 마음입니다. 교회에서는 말썽꾸러기 경태의 맘을 돌리기 위해 경태 엄마가 나서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경태야 집에서는 내가 너를 돌 봐 줄 수 없구나. 그건 네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 거기다가 경호와 경희까지 너가 돌 볼 수는 없어. 그러니 박 선생님께 가서 공부해라. 공부도 하고 성경도 배우면 얼마나 좋겠니. 그리고 동생 돌보는 수고도 덜게 되고. 또 나도 안심하고 일하러 가고 그 시간에 경호 경희는 어린이집에서 생활하고----. ”

 

엄마는 교회에서 배려해 준 기회를 강조했습니다. 가정이 해체 되지 않는 방법이라고 경태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알았어요.”

 

경태는 풀 죽은 강아지처럼 겨우 소리를 냈습니다. 경태는 알고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모두 나서 자기의 가정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경태는 겉으로는 모른 채 딴 청을 부렸습니다. 경태는 짜증을 내며 다시 책상에 앉았습니다.

 

“에이. 내가 참아야지.”

 

박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 공부할 때만 빼고. 그 때도 절대로 사적인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소리 내어 읽어 보세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누구를 보냈는지 써 봐요”

“ 독생자는 누구를 말하는지 적어 볼래요?.”

 

이런 식이었습니다. 경태가 써내면 맞으면 동그라미를 하고 틀렸으면 정답을 써 주었습니다. 칭찬도 꾸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경태와 눈을 맞출 때 웃음을 한 번 씩 날리는 일 뿐이었습니다.


박 선생님은 알고 있었습니다. 경태는 누구보다도 가정을 사랑하는 아이란 것을. 그리고 어쨌든 가정을 다시 회복시키길 간절히 원한 다는 것을. 하지만 비뚤게만 나갔던 자신의 행동을 바로 잡기에는 아직도 모자란다는 것을. 그리고 마지막 어쭙잖은 자존심까지 다 내 놓고 눈물을 흘려야 할 때가 와야 하는 걸. 금방 올 수도 있고 무척이나 더디게 올 수도 있다고 박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박 선생님은 경태가 필요한 것을 위해 마음을 많이 썼습니다. 경태 모르게 경태가 학교공부나 성경공부 할 수 있는 환경이라든지 자료. 간단한 간식을 직접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정리되고 안정감 드는 실내분위기를 만들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박 선생님 자신이 단아한 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박 선생님은 그러면서 기회를 보아 경태의 마음의 문이 열리는 날 뛰어 들어가려고 준비를 단단히하고 있었습니다.


경태와 이런 관계를 보낸 지 닷새 째 되던 날. 영미와 경태와의 손수건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박 선생님은 경태가 사람의 마음을 진심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영미와 손수건 문제로 벌어진 사건 후에 박 선생님은 경태에게 처음으로 단호하게 교육을 하였습니다. 박 선생님 입에서 간결하고 힘 있는 타 이름이 쏟아져 나오자 경태는 처음 무척 놀란 눈빛으로 박 선생님을 힐끗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더니 얼굴 모양이 점점 찌그러져 가기 시작했습니다. 경태도 참았던 것이 있었다는 듯이 박 선생님께 대들었습니다.

 

“그러게 뭐라 그랬어요? 누가 교회 다닌다고 했나요? 저를 왜 여기에 불렀어요. 치, 싱경질나게.”

 

경태가 이렇게 나오자 박 선생님은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았습니다. 경태가 이 말 저 말 되지도 않는 말을 하더라도 박 선생님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걸리고 긴 그림자들이 교회 마당에 쭉 늘어섰습니다. 경태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긴 침묵이 흘렀습니다.

 

“이젠 집에 가야지.”

 

박 선생님은 억지로 경태의 손을 끌어당겨 잡았습니다. 그 손에는 거부할 수 없는 강한 힘이 실려 있었습니다. 경태 손은 가늘게 떨렸지만 박 선생님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습니다. 박 선생님은 안도의 숨을 쉬었습니다.


경태가 더 이상 말없이 침묵했고 손을 빼지 않은 그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경태의 그런 행동은 결국 상황을 시인하고 박 선생님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증거라고 박 선생님은 느꼈습니다.


“교회에선 말썽 안 일으키겠다고 약속해 줘. 그리고 꼭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해. 다른 집사님들께도 공손하고....”

 

경태는 문을 박차고 나갑니다. 채 끝맺지 못한 박 선생님의 말이 경태의 등에 붙어 함께 나갑니다.

 

“내 말 잘 알아들었지? 넌 네 마음을 우선 잘 추슬러야 해.”

 

경태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문을 박차고 교회 마당 밖으로 사라졌습니다.

 

한 동안 경태는 조용했습니다. 박 선생님께 와서 공부도 열심히 하는 것 같았습니다. 여전히 박 선생님의 말에는 잘 응대하진 않아도 시키는 대로 잘 했습니다. 박 선생님도 더욱 다정한 말을 쓰면서 경태를 돌보았습니다.


인사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말하는 태도랑 남을 지칭할 때의 말 태도 등에 대해 박 선생님은 가르쳤습니다. 경태가 궁금해 할 것 같은 얘기를 많이 꺼내어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퉁명스런 경태의 모습은 변한 게 없었지만 박 선생님은 알고 있습니다. 경태가 다 듣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박 선생님의 얼굴에도 생기가 올랐습니다. 가슴의 크나큰 아픔을 여전히 묻고 사는 박 선생님이기에 생기 찬 얼굴은 행복해 보였습니다.


따스한 봄바람이 귓가를 스쳤습니다. 온 세상은 봄꽃으로 수채화 물감처럼 온통 물들어 있었습니다. 주일날이었습니다.

 

“박 선생님, 박 선생님!!”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났습니다. 박 선생님은 막 교회학교를 마치고 성경교재 연구를 하러 책을 펼치던 참이었습니다.

 

“경태가, 경태가...”

 

어느 집사님이 숨이 넘어갑니다. 박 선생님은 깜짝 놀라 묻습니다. 집사님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박 선생님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해졌습니다.

 

박 선생님이 달려간 곳은 교육관을 개보수를 하는 공사장이었습니다. 벌써 사람들이 모여들어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박 선생님은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갔습니다.

 

박 선생님은 자기보다도 더 하얗게 질린 경태를 보았습니다. 박 선생님을 얼른 달려가 경태를 덥석 안았습니다. 박 선생님의 품에 안긴 경태가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경태의 몸이 뻣뻣하게 경직되어 있는 걸 박 선생님은 느꼈습니다. 박 선생님은 금방 경태가 큰일을 쳤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경태는 교회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교육관 앞 공터에서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새로 만든 담을 받쳐 놓은 장대 사이에 공이 빠졌습니다.

 

“야, 빨리 공 안 빼내 올꺼야?”

 

경태가 소리를 쳤습니다. 아이들이 머뭇거렸습니다. 사실 공은 경태가 차 놓고 다른 아이들 보고 가져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안 가져 올 꺼야?”
“안 돼. 거기 들어가면 안 돼. 거긴 공사장이라서 위험하다고 했어. 선생님이 절대 그 곳에 가면 안 된다고 했어.”

 

늘 경태 때문에 힘들어하던 준배가 말했습니다.

 

“안 되긴 뭐가 안 돼, 니들 선생님 말 다 들으면 할 게 있는 줄 알아?”

 

경태는 씩씩 거리며 장대 틈 사이의 공을 빼려고 힘을 주었습니다.

 

“어라?”

 

좀처럼 꽉 끼어서 공이 뺄 수가 없었습니다. 경태는 힘을 주었습니다. 그래도 꿈적 하지 않았습니다.

 

“경태야, 빨리 나와. 거긴 위험해.”

 

아이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치, 너희들 그래서 겁쟁이라는 거야?”

 

경태가 코웃음을 치고 나서 다시 한 번 있는 힘을 다 해 공을 잡아 당겼습니다. 빠지지 않던 공이 쑥 빠져 나왔습니다. 경태는 공을 얼른 가슴에 안고 아이들 쪽으로 걸어왔습니다. 아주 당당한 으스댐이 얼굴을 덮었습니다.

 

“겨겨 경태야!”

 

아이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경태는 속으로

 

“짜식들. 이런 걸 가지고....”

 

하고 웃으며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은 경태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경태의 뒤를 바라보면서 파랗게 질려가고 있었습니다. 경태는 느낌이 안 좋았습니다. 불현 듯 불길한 위기를 느꼈습니다. 경태가 몸을 획 돌려 뒤를 보았습니다. 방금 공을 빼내던 장대가 좌우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놀랄 사이도 없이더니 장대들이 쓰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와르르----’

 

아직 채 마르지도 않은 교육관 담장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경태는 자기도 모르게 공을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교육관 담이 무너지면서 길옆에 세워두었던 자동차를 덮쳤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 사택으로 장대가 굴러갔습니다. 담 옆을 그 때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지 사람까지 다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사람들이 뛰어나오고 야단이 났습니다. 교회에서 제일 엄하신 장로님 차와 어느 집사님 차가 일부 파손 되었습니다. 사택에서는 사택집사님 아들이 마당에서 놀다 한 쪽 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모여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경태에게 쏠렸습니다. 박 선생님은 느낌이 왔습니다. 얼른 경태의 얼굴까지 품에 안았습니다.

 

경태가 교회 사무실에 소파에 앉았습니다. 너무 놀라 한동안 말을 하지 못한 경태가 이제 울기 시작했습니다. 영미가 손수건으로 경태의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뿌리치고 화를 낼 경태가 아무 힘도 없는 사람처럼 영미가 하는 대로 그냥 놔두었습니다.

 

박 선생님은 처음부터 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경태가 어디 다쳤는지, 괜찮으냐는 말 뿐이었습니다. 박 선생님은 경태의 등을 토닥거리며 놀라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하고 되 뇌일 뿐입니다.


한참 후에 장로님과 집사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장로님은 경태의 손을 따스하게 잡아주었습니다. 역시 자동차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너가 안 다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감사합니다. 하나님.”

 

집사님도 자동차 이야기 대신 경태의 머리를 살짝 만져 주었습니다.

 

“경태야, 괜찮지? 다행이다.”

 

교회에서 야외예배를 가는 주일입니다. 경태는 영미와 박 선생님이 꼭 와야 한다고 다짐을 한 것을 떠 올렸습니다. 하지만 경태는 갈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자기를 용서한다고 해도 교회에 큰 상처를 남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남의 말을 듣지도 않고 제멋대로 하는 행동의 결과가 얼마나 큰지 경태는 철저히 경험하였습니다. 비뚤어진 마음을 가진 다는 것이 자기와 이웃에게 얼마나 큰 짐이 되고 있는지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학교 교문을 나서는데 영미가 빨간 카드를 내밀었습니다.

 

♥ 경태야. 이번 야외예배 도시락은 내가 책임진다. 짜잔! ♥

 

야외예배의 날이 돌아왔습니다. 교회에서는 일 년에 한 번씩 오월 둘째 주 어버이날을 기념하여 야외예배를 갑니다. 온 교회 어린이들이 다 들떠있습니다. 어린이뿐만 아닙니다. 선생님들도 집사님들도 다 그런 같습니다. 온 가족이 야외예배에 나가 가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 주신 아름다운 자연을 맛보며 가족의 사랑을 함께 느끼는 행사라 기대가 큽니다. 여전도회에서는 특별 메뉴를 준비하고 남선교회에서는 시원한 음료수를 준비했답니다. 청년회에서 재밌는 보물찾기 순서를 준비하고 상품도 많이 주겠다고 벌써부터 선전이 대단합니다.

 

경태는 야외예배를 가지 않았습니다. 가족은 오늘도 엄마가 일하러 나가야 합니다. 동생들을 경태가 데리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진짜는 그게 아닙니다. 낯을 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태의 맘은 야외예배에 가 있습니다.

 

어느새 경태는 자기도 모르게 동생들을 데리고 야외예배 가는 언덕까지 갔습니다. 멀리 야외예배가 열리는 숲으로 가는 길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빵빵!”

 

경태가 놀라서 뒤를 돌아봅니다. 박 선생님 자동차였습니다. 영미가 조수석에 앉았습니다.

 

“뭘 해! 한참 찾았잖아.”

 

박 선생님이 활짝 웃으며 차에서 내렸습니다. 검은 선글라스에 나풀거리는 머플러를 두른 박 선생님이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너희 집까지 갔다 왔어.”

차에서 내려 하얀 이를 보이며 활짝 웃는 영미도 너무도 예뻐 보였습니다.

“자자자, 너희들도 차에 타야지.”

 

박 선생님은 경태의 동생들을 차에 태웠습니다. 차창으로 스쳐 지나가는 꽃들마다 경태를 보고 웃고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아침 해와 저녁놀 밤하늘 빛난 별.
망망한 바다와 늘 푸른 봉우리
다 주 하나님 영광을 잘 들어내도다.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경태는 어린이석에 앉아 찬송을 부릅니다. 저 쪽 어른들 자리에 앉은 장로님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장로님은 너그러운 미소를 머금고 머리를 끄덕여 주었습니다. 경태도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홍 집사님과도 눈이 마주쳤습니다. 사택집사님과도 눈이 마주쳤습니다.

 

아니 모든 교인들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모두 웃어주었습니다. 평안함이 듬뿍 담겨 있었습니다.

 

경태는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쭉쭉 늘어선 소나무 사이로 노르스름한 송홧가루가 향내와 함께 휘날렸습니다.

 

“아빠, 저 쪽 숲에서 좋은 향기가 나요. 무슨 향기지요?”

 

아들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정 선생님은 잠에서 깬 듯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마 우리를 놀라게 하는 예쁜 꽃이 피었을 거야.”

 

딸이 말했습니다.

 

“여보, 아이들 말 들으셨어요? 무슨 생각을 했나요?”

 

정 선생님의 부인이 된 영미가 다가오며 팔짱을 낍니다.

 

“음, 그래, 우리 가족처럼 아름답고 향기 나는 곳이 있을까?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작은 천국. 난 우리가 가족으로 함께 산다는 게 너무나 행복해. 이 만큼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큰 축복이지.”

 

정 선생님은 영문을 몰라 자기를 동그랗게 쳐다보는 아내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숲속을 걸어갑니다. 찬송이 가족의 입에서 흘러나옵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산에 부는 바람과 잔잔한 시냇물
그 소리 가운데 주 음성 들리니
주 하나님의 큰 뜻을 나 알 듯 하도~다.

 

정 선생님은 숲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찬란한 햇빛을 봅니다. 장로님과 집사님들, 박 선생님과 인자한 웃음을 보여주던 그 때 그 어르신들의 모습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장로님과 어르신들.


그리고 박 선생님은 이제 하나님 곁으로 가셨지만 그들이 베푼 사랑이 새로운 생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정 선생님에게 아름다운 가정으로 활짝 피어나게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