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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2011년 [수필-최월순] 단풍은 내려들고 새 잎은 치핀다-박범신의 『침묵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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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3,154회 작성일 12-01-13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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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은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시적 감성이 넘치는 문체로 현대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를 심도 있게 탐사한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며 수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한창 문학적 전성기를 구가하던 1993년 돌연 작품활동 중단을 선언하여 독서계에 충격을 주었다. 그러다가 1996년 중편「흰소가 끄는 수레」를 문학동네에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재개했다. 오랜 침묵의 시간을 지내고 1999년 발표한 장편 소설 작품이『침묵의 집』이다.

 

『침묵의 집』의 스토리는 평온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사회적 지위가 보장된 중견기업 자금담당 이사로서, 일상의 삶을 살던 장년의 남자가 어느 비 오는 날 노란 레인코트를 입은 한 여자를 따라가면서부터 시작한다. 이 남자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모멸감과 함께 극도의 회의를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사소하지만 인생의 전환점이 될만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 끝에 자신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가는 과정은 어쩌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피 흘리는 투쟁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결국은 가정을 버리고 서울에서 적도, 아프리카를 지나 유럽, 시베리아를 횡단해 북극해로 이어지는 한 여자의 죽음의 여로를 쫓아 간 남자의 여정을 아들의 눈으로 따라가며 서술되는 이 소설은 끊임없이 죽음과 삶의 허망함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침묵의 집」엔 실존의 벼랑 끝과 육체의 피어린 소멸과, 죽음에 이르는 잔인한 본능의 억압과 시간의 주름살에 대한 포악스럽고 끈질긴 반역의지가 담겨있다. 이 소설이 독자들과 지적 평자들에게 부디 배반이기를 바란다. 내가 초대하는 존재론적 침묵의 집에서 진실로 고통스럽게 당신들과 마주 앉기를” 바라며 작가는 소설을 세상에 내어 놓았다.

 

실제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고통스럽기도 했다. 육체의 소멸, 죽음, 본능, 세월의 덧없음과, 끊임없이 삶을 이어주는 생의 지표들 사이로 일상에 구속된 내 삶의 단편들이 어지럽게 너울거렸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을 버리고 일상적 삶의 구속을 벗어나 자유를 찾아 헤매던 아버지의 삶을 서술해가는 화자 역시 삶의 구속성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아버지 보다 훨씬 더 성적으로 자유분방하고 삶에 있어 훨씬 구속성이 덜한 것
같은 세대임에도 말이다.

 

가을은 기척도 없이

 

가을은 기척도 없이
내 생의 문턱을 들어선다
한 때는 목숨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생이 내게 진저리를 치고
떠나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내 생에 매달려 통곡할
그 무엇이 있었나
한결같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가을은 기척도 없이
내 생의 문턱을 들어서고
살아있는 것은 모두
죽음의 씨앗을
품고 있다.

 

“내 삶의 전부가 소유와 유랑의 화두 사이에 갇혀있었음을 나는 지금 본다. 블랙홀같이 강고한 구심력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소유의 끝에 내 죽음이 있고, 시간같이 유장한 원심력으로 나를 밀고 나가는 유랑의 끝에 내 자유가 있다. 죽음과 자유의 가파른 사잇길에서 나는 소설을 쓴다.” 고 작가는 말한다.

 

뜨거운 불꽃같은 사랑의 끝에도 죽음은 있고 유랑으로 이어지는 자유속에도 죽음은 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죽음의 씨앗을 품고 있다. 하여 작가도 아직은 죽음과 자유의 사잇길에서 헤매고 있는 중이다.

 

삼척 하장면으로 가는 길이었다. 며칠 전 잎이 떨어지기도 전에 일찍 내린 눈으로 단풍은 젖어있고 날씨는 추웠다. 길옆에서 할머니 한 분이 손을 든다. 차를 세우고 물어보니 하장 저수지 아래 삼거리까지 태워달라고한다. 마을로 가는 버스를 놓쳤다는 것이다. 머리에는 강냉이튀밥을 한 자루 이고 있었다. 장에서 겨울 간식거리를 장만해 가는 중이란다.

 

노인을 태우고 하장으로 가는 동안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노인에게 바깥 풍경을 내다보며 단풍이 아직 곱다고 인사말을 건넸다.

 

“단풍은 내려들고 새 잎은 치핀다우”라고 노인은 말했다.

 

단풍은 높은 산에서부터 내려 들고 새잎은 산 아래 동네에서 산 위로 올라가며 핀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자연스럽고 당연한 자연현상에 대한 말을 듣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어쩌면 단풍이 들고 새잎이 나는 것처럼 당연한 자연 법칙에 의해 운행되는 것이 우리들 인생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저자는 그것은 인생이 아니라고, 삶의 끝을, 삶의 의미를 찾아보아야 하지 않겠냐고, 어쩜 어깃장을 한 번 놓아봐야 하지 않겠냐고 그런 반역을 우리에게 권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꽃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다. 새삼스럽게 아름다운 가을 풍 경에 목이 메인다.

 

가을 바다

 

잠자리 날아다니던
들길을 걷다가
눈부시게 반짝이는 억새꽃
소리치며 바다로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머리카락 날리며
빛나는 몸뚱어리
뒤 꼭지에 매달린 햇살 한줌까지
미련 없이 내버리고
소리치며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바람이 지나가는 잠깐 사이
동해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가을 들길에서 만나는
동해 바다는
흔들리지 않는
사랑이다.

 

『침묵의 집』을 읽고 불꽃같은 사랑을 꿈꾸기도 하고, 도덕과 관념의 일상을 깬 유랑을 동경하며, 잃어버린 옛 꿈을 뒤적거리기도 하던 멈칫거림이 한동안 일상을 흔들어 놓긴 했지만 다시 태엽을 감은 시계처럼 나의 일상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렇게 평범하게 자연스럽게 사는 것도 충분히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