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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2011년 [수필-최월순] 끔찍한 희망에 대하여-공지영의 『봉순이 언니』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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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961회 작성일 12-01-1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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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엔 다들 어떻게 지내시나요? 요즘엔 주5일 근무하는 직장이 많아 주말이면 휴가를 즐기시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긴 합니다. 그러나 직장에 다니는 여자들은 휴일이 오히려 더 힘들 때가 있지요.

 

직장에 나가면 집안일은 잊어버리고, 또한 집안일을 잘 하지 않아도 흉이 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휴일엔 평소에 보이지 않던 일거리가 눈에 보이기도 하고, 미뤄둔 약속을 챙겨야 하고, 평소에 함께 놀아주지 못했던 아이하고도 놀아주어야 하구요. 할일이 정말 많아진답니다.

 

요즘은 집안일이 바쁘면 파출부를 쓰기도 하지만 옛날엔 웬만큼 살만한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가난한 집 아이들을 데려다 "식모"로 쓰기도 했지요.

 

아이를 데려다 잘 먹이고 잘 키워서 시집보내준다는 명목으로 말이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를 키워준다는 것은 결국 먹고 사는 걸 해결해 주는 대신 성인이 되어 결혼하게 될 때까지 아이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아예 입양을 해서 자식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지요.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는 그러한 삶을 살게 되는 한 인간의 모습을 같은 집에 사는 주인집 딸인 다섯 살 난 짱아라는 아이의 눈으로 묘사되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봉순이는 가난하지만 마음이 착해서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는, 억척스럽고 성실하게 일도 잘하는 아이입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오해도 많이 받는 것이 세상일이라 억울하게 도둑으로 몰리기도 하고 , 데려간 집에서 딸처럼 키운다고는 해도 실제로는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며 가족 나들이에도 끼지 못하는 겉으로만 가족인 채 살게 됩니다.

 

그렇게 몇 년을 살다가 처녀로 자란 봉순이는 세탁소에서 일하는 허풍쟁이 청년과 도망을 갔다가 배신당하고 임신한 몸으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짱아 엄마는 결국 봉순이를 이끌고 병원에 가서 아이를 지우고 맙니다. 그리고 나서 짱아 엄마는 봉순이를 빨리 시집보내려고 부랴부랴 신랑감을 모색 하는데 흠이 있는 처자라 결국 상처한 홀아비와 선을 보게 합니다. 크게 부자는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살만하고 사람이 착하다는 이유로 말이지요.

 

선을 보지 않겠다고 버티던 봉순이는 또한 마지못해서 나간 맞선자리에서 그 남자를 보고는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그를 보살펴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와 결혼하기로 합니다.

 

맞선으로 처음 만난 홀아비와 결혼한 봉순이.

 

홀아비이지만 한 남자와 결혼한 봉순이에게는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한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도 낳고 평범한 삶을 살던 봉순이의 남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폐병으로 죽고 맙니다. 조금 있는 재산도 병원비로 다 날리고 봉순이는 또다시 가난하고 힘겨운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시간이 흘러 짱아는 여러 가지 삶의 고난을 넘어서 혼자 사는 어른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어느 날 짱아는 봉순이 언니를 회상합니다. 성이 다른 아이 여럿을 두었고 또다시 결혼한다는 봉순이 언니의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짱아가 어린 시절에 보았던 한 인간의 삶이 얼마나 힘겹고 고달팠는지 잘 알고 있는 그는 이 소식에 끔찍하게 몸서리가 쳐지는 것이었습니다.

 

끔찍한 희망

 

마음속에 무엇이 있어
이렇게
가난한 영혼에 이끌리는가

 

사랑을 외면하고
돌아서는
영악한 세상 속에서도

 

안쓰러운 것들을
껴안고
영문모를 세상의 분노를
받아들이는

 

남루한 세상에
자신을 내던지는
끔찍한 희망

 

그것으로 세상이 굴러가고 있네.
끝없이
되풀이되는 허망함을 딛고서.

 

죽을 때까지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봉순이 언니.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렇게 희망을 걸게 하는 것일까. 그 끔찍한 희망에 대하여, 그 삶의 무모함에 대하여 짱아는 자꾸만 몸서리가 쳐지는 것 이었습니다
.
그러나 삶은 정말 허망하기만 한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