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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2011년 [수필-최월순] 부석사, 그리운 내 사랑-신경숙의 『부석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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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883회 작성일 12-01-18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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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신경숙의 소설을 읽으면 작가의 감성이 내게 전이된 것 같이 한동안 그가 만든 이미지에 흔들려 힘들어하곤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소설같은 거 읽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또다시 책을 집어 들곤 하지요.

 

신경숙의 소설『 부석사』는 한 아파트에 사는 남자와 여자가 우연히 서로의 눈에 띄어 알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같은 산책길에서 스치기도 하고 아파트 복도에서 마주치기도 하면서 서로를 곁눈질하지요. 그들은 서로 이름도 모르고 몇 층 몇 호에 사는 지도 모르지만 어느 날 우연하게도 같은 차를 타고 함께 부석사를 찾아가게 됩니다. 부석사를 찾아가는 도로 위에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생각에 빠집니다.

 

남자에게는 군에 가기 전에 사귀고 있던 애인이 있었습니다.

 

힘든 군대 생활 속에서도 매일매일 보내오는 애인의 편지에 위안을 얻곤 하던 그에게 어느 날부터인가 편지가 뜸해지게 됩니다.

 

그에게는 애인과 함께 을왕리 해수욕장에 가서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가슴 떨리는 하루를 지낸 기억과 데이트를 할 때마다 그녀의 집까지 바래다주곤 그녀의 방 창문 앞에서 까치발을 하고 그녀와 입을 맞추던 황홀한 기억이 있습니다.

 

어느 날 휴가를 받은 그는 그 여자의 집 앞 골목에서 그녀를 기다립니다. 날이 어두워지고 골목길에는 그와 그녀가 함께 머물렀던 그녀의 집 대문 앞에서 서로 헤어지기 싫어 아쉬워하며 몇 번씩 되돌아보는 또 다른 한 남자와 기어이 방에 들어가서도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입맞춤을 하는 장면이 옛날 영화테이프를 보는 것처럼 똑같이 재생되는 그 모습을 보며 남자는 눈물을 흘립니다.

 

함께 부석사로 가게 된 또 다른 여자도 자신의 오래된 기억을 회상합니다.

 

그녀에게는 대학을 다닐 때 누구나 그녀의 애인이라고 말하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꼭 결혼할거라는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누구에게나 그녀의 파트너는 그 남자라고 하는 공인된 커플이었지요. 자상하고 다정하고 늘 그녀를 챙겨주며 옆에 있던 그 남자가 어느 날 부잣집 딸과 약혼을 합니다. 가난하지만 비굴하지 않고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가던 그 여자는 세상의 모든 것에서 배신감을 느낍니다. 그녀는 아파트 앞에 나란히 놓여있는 화분을 일부러 흩어 놓기도 하고 자동차를 일부러 삐딱하게 주차하기도 하지요. 그녀에게는 세상에 반항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해야 그런 것 들뿐이니까요. 그러나 그 남자는 친구들에게 이 여자를 "독한 여자"라고 말하면서 다닙니다. 자신이 약혼을 했어도 오랫동안 결혼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전화 한 번 하지 않았다구요. 여자는 더욱 심한 모멸감을 느끼죠. 전화 한 번 한다고 해서 무엇이 바뀔 수 있는 걸까요? 상대는 부잣집 딸이며, 아름다운 외모와 지성, 더구나 자신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지도교수의 딸인데 말입니다.

 

서로의 상념에 빠져있던 이 두 사람은 결국 부석사 가까운 지점에서 길을 잃고 맙니다. 날은 어두워지고 마침 라디오에서는 폭설이 내릴 거라는 예보가 나오고 절벽 앞에서 차는 멈춥니다. 벌써 차를 뒤덮을 정도로 눈은 내리고 있습니다.

 

부석사, 그리운 내 사랑

 

1. 남자의 기억

 

어두운 골목길을 돌아
무수히 많은 별과 바람을 만나고
용유도 을왕리 바닷가
성큼성큼 걸어가는 거인의
뒷모습처럼
세월이 넘어가는 모습도
함께 보았다 그때까지도
그대에게 나는
유일한 존재인줄 알았다
세상을 향해 찬란하게 빛나는
바다 위의 길을 걸어
뜨거워지는 몸으로 기쁘게
그대에게 간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쉽게 대체되는
내 사랑
지척에 두고도
결코
다다를 수 없는
부석사,
그리운 사랑이여.

 

2. 여자의 기억

 

세상이 고단하다해도
우리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닿지 않는
깊은 계곡 열목어
같은 종족인줄 알았다
온 하늘 가득하던
아카시아 향기
네 머리카락을 휘감고
달콤한 꽃잎 같던 네 입술
세상의 가지런한 것들을
훼방 놓고 싶은 건
네 꽃잎 같던 입술 때문이다
모든 것 다 버리고 순간으로
타오르고 싶던 광기가
지난 후 아직도 남아있는
미움
지척에 두고도
결코
다다를 수 없는
부석사,
그리운 사랑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