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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2011년 [수필-최월순] 안헤도니아에 도착하다-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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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787회 작성일 12-01-18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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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정의란 무얼까.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정의하기 어려운 단어 중 하나가 이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사랑이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일반적으로 일정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말하자면 누구를 만나서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고, 접근하고, 서로에게 빠지게 되는 과정을 말이다. 그러나 서로가 사랑한다 인식한 순간부터는 서로 싸우기 시작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되풀이되는 오해와 이해의 반복 속에서 마음이 식고, 헤어지고, 괴로워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는 이런 평범한 사랑의 이야기를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해 가는 과정을 서술하면서 진행된다.


파리에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 속에서 그래픽 디자이너인 클로이와 옆 좌석에 앉은“ 나”는 낭만적 운명론에 빠져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서로를 이상화하여 서로에게 맞추려 노력하며 사랑하지만 클로이가“ 나”의 친구에게 호감을 가지면서 관계는 변한다. 결국 실연을 당한“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자살을 기도한다. 그러나 자살기도는 실패로 끝나고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난 후“ 나”는 또다시 새로운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결코 다시 올 것 같지 않던 사랑이 또 시작되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평범하기까지 한 이러한 연애의 과정을 아리스토텔레스, 비트겐슈타인, 역사, 종교, 마르크스의 이론까지 섞어 인간의 심리적 변화를 묘사해 낸다. 중요한 것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하는 변하지 않는 사랑의 딜레마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려 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들이 사랑의 과정을 헤쳐 나오는 심리적 묘사를 따라가며 나 스스로 연애를 하는 착각이 들었다. 화자가 남자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화자가 나의 상대역인 것처럼 상대의 마음속을 읽어보는 나름의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음...그렇구나...그랬어...하고 공감하면서 말이다.


연애하는 청춘의 남자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남자들 심리의 세부적인 묘사가 뛰어나다. 만약 남자의 마음의 행로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특히 상대를 사랑하면서도 또 다른 여자에게 눈길이 가는 자신에게 그로 하여 포기하여야할 대상이 있다는 사실에 실망하는 것, 익숙해질수록, 상대를 알아갈수록 처음의 감동적인 감정들이 사라지는 것, 마음이 변해가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이라는 것을 증명하려 하는 것 등은 연애를 해 본 사람들은 모두가 아는 현상일 텐데도 심리철학적 용어로 묘사되어 새롭게 읽는 맛이 있다. 또 하나“ 안헤도니아”라는 단어는 이 책에서 처음으로 접한 단어인데 이 단어가 자꾸만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이 소설에서는“ 안헤도니아”를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는 행복을 느끼다가 정작 도달하고자 했던 행복의 상태에 이르러서는 고통을 느끼게 되는 상태라고 해석한다.


심리학에서는“ 안헤도니아(Anhedonia)” 를“ 무쾌감증”이라고 명명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 단어는 평소 재미나 보람, 행복을 느꼈던 일에서 쾌감 자체를 느끼지 못하게 되는 그런 증상을 말한다고 풀이한다. 아기엄마가 아기를 들여다보며 느끼는 행복감, 운동을 하고 나서 느끼는 상쾌함,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느끼는 만족감, 사회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보람, 재물이나 명예를 얻으면서 오는 성취감, 심지어는 성행위를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 등 우리가 생활하면서 갖게 되는 많은 행복의 순간, 그 절정의 순간에 도달하게 되면 느닷없이 안헤도니아 증상을 나타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의학적으로는 도파민 경로 이상에 의한 우울증이나 신경정신과적 증상으로 본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행복의 절정에서 느닷없이 우울증상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사랑의 최고 시점에서, 자신이 원하던 사랑의 풍경 앞에서 갑자기 쓰러져 침대에 누워버린 클로이는 정말 행복의 극점에 도달했었던 것일까? 행복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일까? 왜 행복하고자 했던 목표에 도달했는데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행복이 두려운 것일까?


안헤도니아에 도착하다


온 몸에 가시가 박혔다
행복의 바다에 이르렀을 때
문득 온 몸으로 퍼지는 통증
낯선 나라에 들어선 현기증이
온 몸을 휘감아 나를 쓰러뜨린다
밥을 먹다가 운전을 하다가
자꾸 목울대가 아프다
마음에 마음을 얹는 일이
얼마나 가소로운 일인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그러나 사랑이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다. 아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알수 없는 것이다. 어느 날 나의 연인도 머뭇거리던 나의 감성을 일깨워 그가 손짓하던 먼 하늘의 맑은 달을 함께 바라보게 되었을 때 문득 그도 안헤도니아에 도착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온 몸에 가시가 박힌 스웨터를 입은 것 같은 통증으로 밤마다 앓는다. 나도 안헤도니아에 도착했나보다. 클로이! 나도 행복의 극점에 도달했나봐! 맞아?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