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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2011년 [수필-최월순] 닿지 못하는 그만큼의 거리에 서서-김형경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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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553회 작성일 12-01-1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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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은 30대 중반의 여자 주인공인 세진과 인혜, 두 사람이 겪어 온 사랑과 결혼, 실패에 대해 심리 분석적으로 접근한 소설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의 심리를 정확하게 묘사하고 성에 관련하여, 또 삶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와 관련하여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이 소설 속에서 표현된 여자의 삶의 유형에는 우리나라 전반의 여성들의 심리적 공통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책 속의 문장을 인용하자면 사람들은“ 단 한사람이라도 전 존재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에로스와 리비도가 완벽하게 결합되고 아이부터 노인의 영역에 이르는 정서를 마음대로 오가며, 그 위에서 정신적 성장, 정서적 고양, 영혼의 확장을 이룰 수 있는 사람 ”을 만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한 세월을 살면서 경험하는 인생의 덫에 걸려 인혜나 세진처럼 사람과의 관계가 더할 수 없이 무모하거나 냉정하게 변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의지나 바람과는 다르게 일생을 살게 되기도 한다.


특히 세진의 유형은 타인의 호의와 친절을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로서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다. 세진은 언제나 새로운 사랑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전형적인 고슴도치 딜레마의 양상을 보인다. 상대의 거절로 인해 상처받지 않으려고 항상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다. 삶이란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으며 그것을 극복하고 성장해 가는 과정임에도 말이다. 정신분석 상담을 통하여 그 이유가 유아기에 생성된 분노가 내재된 무의식적 방어기제 때문이었다고 자신을 분석하게 되지만 쉽게 자신의 삶을 바꾸지는 못한다.


관계


네 눈빛이
내 가슴을 관통할 때마다
내 몸엔
오소소
가시가 돋는다


가까이 오지마
나의 가시가
너를
찌를 것만 같다


네 눈빛의 온기가 스미기도 전에
나의 가시는 곤두선다


그 가시의 길이만큼
떨어져 있는
너와 나의 거리


닿지 못하는
그만큼의 거리에 서서
너를 바라본다.


닿지 못하는 그만큼의 거리에 서서 너를 바라본다. 너를 사랑하고 싶지만 너에게 상처 받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너의 손을 잡을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사랑을 이룰 수 없다. 세진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그로 하여 마음이 아프고 몸이 아프다. 이제 자신이 아픈 원인을 알고 충분히 자신을 위로하게 된다면 다시 사랑도 하게 되겠지.


“세진의 노트를 보면서 인혜가 가장 놀란 점은 자신이 얼마나 세진과 치밀하게 같은 사람인가 하는 점이었다. 희박한 자아존중감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조차 애착이 없다는 점에서,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마음깊은 곳에서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서, 삶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점에서,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는 막다른 지점에 도달한 느낌이라는 점까지 빈틈없이 일치했다. 세진이 부를 때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다는 점, 세진에 대한 분노를 한번도 표현하지 않았다는 점, 결핍과 콤플렉스가 삶의 추진력이었다는 점, 그중에서도 어머니와 어머니적인 것의 사랑과, 아버지와 아버지적인 것에 의한 승인욕구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결국 사랑에 대해 무모한 인혜나, 사람과의 관계에 냉정한 세진이나 두 사람이 원하는 것은 진정으로 사랑하고 진정으로 사랑받는 것이다. 마음놓고 타인에게 자신을 열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그것이 그녀들에게 삶의 숙제이다. 그러나 이제 이 두 사람은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진짜 사랑을 찾아 나설 준비가 되어있지 않을까 싶다. 그녀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는 멋진 사람이 있으니까. 다만 바란다면 그녀들이 좀더 씩씩하게 길을 나설 때까지 그들이 끊임없이 참아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