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뫼 호수별 보기

41호2011년 [수필-최월순] 목련꽃 그늘 아래서-박완서의 『너무도 쓸쓸한 당신』을 읽고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468회 작성일 12-01-18 14:10

본문

해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꽃나무들을 보며 사람도 해마다 새로 태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올해도 우리 도서관 앞뜰에는 어린 목련이 환하게 꽃그늘을 드리웠습니다.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그대는 늘 내게 도서관에 근무하니 책을 많이 읽겠다 하시지만 생각처럼 쉽게 책을 읽진 못합니다. 다만 책에 대한 정보가 남보다 빠르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남보다 먼저 새로운 책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도서관에 근무하는 사람의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저는 많은 문학작품 중에 박완서의 소설을 좋아합니다. 그의 소설은 문체가 유려하고 인간 심리의 내면적 묘사가 뛰어나기도 하지만 읽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마 인간의 나약함과 생에 대한 애착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때문일 지도 모릅니다.


출판된 지 몇 년 되기는 했지만 박완서의『 너무도 쓸쓸한 당신』이라는 소설집을 아시는지요『. 너무도 쓸쓸한 당신』에는 노년의 삶을 묘사한 여러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그 중에“ 환각의 나비”라는 작품이 있지요.


이“ 환각의 나비”에는 치매에 걸린 노인이 나온답니다. 노인은 시골에서 열심히 농사를 짓고 성실하게 살며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아 도시로 보내 공부도 시키고, 남부럽지 않게 모두 결혼도 시켰습니다. 그러나 자식들을 출가시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사망하고 노인은 치매에 걸리게 됩니다. 요즘엔 애지중지 키운 자식이라고 해도 모두들 제 살길이 바빠 부모님 모시고 살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 노인의 아들 역시 직장일 하랴, 처자식 먹여 살리랴 힘들게 살다보니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결국 그는 어머니를 방안에 가두고 맙니다. 물론 함께 사는 며느리의 고통도 말할 수 없이 컸겠지요.

 

어머니를 보러 왔다가 방안에 갇힌 어머니의 모습을 보게 된 딸은 너무나 마음이 아파 자신의 집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갑니다. 그러나 옛날 어른들에게 딸이란 출가외인인지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이 노인은 딸네집에서의 생활이 편하지가 않은 겁니다. 그래서 며느리의 구박에도 불구하고 늘 아들네 집으로 가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몇 번을 아들네 집으로, 딸네 집으로 들락날락하다가 어느 날 노인은 길을 잃고 맙니다. 딸은 어머니를 찾아 동네 주변은 물론, 어머니가 갈만한 곳은 모두 찾아다녔지만 간 곳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딸은 한적한 시골 농가에서 어머니를 발견합니다. 어머니는 낯선 여자와 함께 마루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이루며 살고 있었습니다. 딸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자신의 과거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평화로움이 가득한 모습으로 말입니다. 딸은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