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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2011년 [수필-박성희] 숨바꼭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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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498회 작성일 12-01-18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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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난 초등학교 때 주로 친구들과 술래잡기하며 놀았다. 그때는 지금처럼 오락기가 없다보니 친구들과 할 수 있는 놀이가 술래잡기나 고무줄놀이, 공기놀이였다. 요즘 아이들이 이러한 놀이를 하는 모습은 보기 드물다.


그런데도 난 큰아들이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10년 넘게 컴퓨터를 두고 술래잡기를 해야만 했다. 술래잡기에서는 술래가 하나부터 열을 셀 동안 몸을 숨겨야 한다.


술래가 번호를 셀 동안 장독대나, 화장실, 마루 밑 등으로 숨는데 숨을 수 있는 장소는 집 주변이면 된다. 집을 벗어나면 술래가 빨리 찾지 못하여 재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술래가 금방 찾을 수 있도록 가까운 곳에 숨는다. 술래에게 들키는 사람이 다음 술래가 된다. 하지만 술래는 숨은 사람을 모두 찾아야 한다.


요즘 아이들이 즐기지 않는 놀이를 큰아들과 내가 시작한 것은 큰아들이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다. 학교 수업이 끝나도 집에 돌아오지 않는 아이를 찾아 학교 가는 길로 가면 어김없이 거리의 미니 게임기에 붙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술래잡기처럼 나는 아이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학원 가 있어야 하는 아이가 학원에 가지 않았다는 전화를 받고 찾아 나서면 길거리의 미니 게임기 앞에 주저앉아 내가 다가가도 모르고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게임 방에 종종 갔다. 아이의 게임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한 가지 게임에 싫증이 날만하면 새로운 게임이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또 빠져들곤 했다. 난 아이를 찾아 술래잡기를 9년이나 한 셈이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 내가 일방적으로 술래만 하지 않았다. 잠잘 때 마우스나 키보드를 베개 밑에 깔고 잤으니 아이는 밤에 몰래 일어나 게임하려다 낭패를 보게 되었다. 그때부터 마우스를 사서 책가방이나 방 구석구석에 숨겨 두었다가 들키기도 했다. 대청소를 하다 마우스를 옷장 속과 책갈피에서 찾았을 때의 심정은 참담하다 못해 암흑이었다.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어‘ 컴퓨터로 갈등 빚는 일은 없겠지’생각했다.


고등학생이 되어 자신의 장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때가 되었으니 절제하리라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컴퓨터를 못하게 하려는 나는 필사적으로 하려는 아이와 한 판 승부를 겨루었다. 난 컴퓨터에 비밀번호를 걸어 놓고 아이가 집에 있어도 안심하고 일하러 갔다. 하지만 컴퓨터에 관해선 아이가 한 수 위였다. 아니 몇 수위였다.


고1 겨울방학 때 일이다. 안산에 사는 여고 동창이 남편과 함께 일산에 왔다기에 얼굴이나 보고 가라고 붙잡았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회포나 풀 생각으로 큰아이에게는 늦을 거라고 말해 두었다. 그런데 동창은 저녁을 먹자마자 약속이 있어 가야한다는 거다. 한 시간 만에 헤어졌다.


집에 돌아오니 마음 놓고 인터넷을 하던 아이는 컴퓨터를 끌 생각도 못 하고 민망한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나만 쳐다보았다. 컴퓨터에 비밀번호를 설정해 놓았기에 항상 마음 놓고 밖으로 나갔는데, 큰아이에게 감쪽같이 속았던 것이다.


설마 비밀 번호를 알아낼까 하면서도 혹시나 싶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번호를 바꾸었는데 어떻게 인터넷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비밀번호를 알아냈느냐고 물었더니 묵묵부답이었다. 단호한 나의 말투에 피할 수 없음을 안 아이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부팅되기 전 도스로 들어가면 된다고. 도스는 우리 세대에는 배웠지만 요즘 아이들은 모른다고 생각한 나의 잘못을 탓해야지 누구를 탓하랴. 지금의 컴퓨터는 윈도우에서 사용한다는 생각으로 안심했으니 내 생각이 얼마나 짧은가?


그 뒤 컴퓨터를 두고 큰아이가 술래가 되었다. 난 외출할 때나 출근할 때마다 키보드를 집안과 밖에 숨겼다. 때로는 창고에, 이불장에, 장롱 위에, 냉장고 위, 세탁기 사이에 또 그것도 아니다 싶으면 현관 밖 상수도 검침기 속에 두고 다녔다.


아무리 잘 숨긴다고 해도 집안은 뻔한 장소이니 아이가 찾으려고 마음먹으면 못 찾을 리 없었다. 매번 놓은 위치가 조금씩 바뀌어 있었다.


귀찮지만 아들을 위해서 키보드와 마우스를 쇼핑백에 넣어 보물처럼 가지고 다니는 방법을 선택했다. 매일 키보드와 마우스를 들고 다닌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귀찮은 것도 문제지만 가방만 들고 우아하게 다닐 수 있는 나의 모습을 포기해야만 했으니, 속상한 마음만 컸다. 난 그것을 들고 집을 나올 때마다 아들을 위하는 일이라고 다짐하고 또 위로하며 불편을 감수했다.


이제는 아이가 인터넷을 못할 거라고 자신만만했다.


키보드와 마우스가 없는데 무슨 수로 인터넷을 하겠는가? 그것도 나의 착각이었다. 감기몸살 기운이 있어 평상시 보다 빨리 집으로 향한 어느 날, 밖에서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서니 아이는 당황해서 미처 마우스를 감추지 못하고 얼어붙은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어이없었다. 난 아무 말 없이 마우스만 빼앗았다. 하지만 궁금했다. 키보드가 없으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어떻게 입력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둘째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형은 키보드를 어디 숨겨 두었니?”
“모르겠는데요. 그렇지는 않을 걸요.”
“어떻게 키보드도 없이 인터넷을 할 수 있지? 아이디는 컴퓨터가 기억하도록 설정한다고 해도 비밀번호는 키보드가 있어야 하지 않니?”


아이의 대답은 또 나의 상상을 넘어섰다.


“엄마, 형은 한글사이트에 들어가서 마우스로 자판의 글자를 조합해서 필요한 글자를 만들어서 인터넷 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큰아이에 대한 배신감보다는, 둘째도 형에게 배워 나 몰래 컴퓨터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너도 할 줄 아니?”
“전 방법을 몰라요. 컴퓨터 연구할 시간 없어요.”


정말 모르는 것 같아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이에게서 마우스를 빼앗은 다음날도 아이의 방에서 마우스 하나를 더 발견했다. 더 이상은 컴퓨터로 향하는 아이의 마음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아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 어찌할까? 마음껏 컴퓨터나 하게 둘까? 하지만 고2 아닌가? 학생의 신분에 충실하도록 이끌어줘야 할 책임이 내게 있지 않은가?’ 마음은 순식간에 칡덩굴처럼 얽혔지만 차분히 생각했더니 얽힌 마음을 풀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다. 그건 모니터와 함께 출근하는 거였다. 키보드와 마우스보다 몇 배는 커다란 모니터를 들고 출근한다면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모니터에 시선이 쏠릴 것 같아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그 방법만이 가장 확실했다.


이제야 큰아들이 컴퓨터를 포기하고 공부할 거라는 생각에 비로소 마음에 등불이 켜졌다.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 똑같듯이, 나도 아이가 공부에 관심을 가지면 잘 할 거라 믿었다. 컴퓨터만 생각하는 아이의 마음을 공부로 향하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이의 속마음을 알 수 없는 내 마음만 타들어갔다.


공부에 정신 집중하길 바라는 내 마음과 컴퓨터에 정신 팔려 있는 아이…난 아이가 마음대로 컴퓨터를 하지 못할 확실한 방법을 찾고는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드디어 내가 이겼다는 통쾌감을 느끼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모니터를 들고 다니자고 생각했다. 모니터를 들고 다니면서부터 나와 아이에게는 술래가 필요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아이의 마음이 공부로 향했다고 확신할 수 없다. 남편에게서 아이가 새벽5시에 사무실에 가서 컴퓨터를 하고 학교 가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사무실이 집에서 5분 거리니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이다. 그것까지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안 나는 한 시간 정도는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위로하며 마음을 접고 또 접었다.


10년 후, 웃으면서 큰아이 학창시절 모습을 이야기하겠지. 중학생 때는 마우스를 책가방에 넣어 다니더니, 고등학생 때는 책꽂이와 책갈피 사이에 마우스를 감추어 두고 나와 술래잡기 했다고, 추억처럼 말할 때가 멀지 않겠지.


큰아이에게 추억 하나 더 만들어 주기 위해 한마디 했다.


“이제 결정해야겠다. 학교를 선택하든가 컴퓨터를 선택하든가. 컴퓨터를 선택하면 최고 좋은 것으로 장만해 주마. 빠른 시일 내로 결정해서 이야기해라.”


하지만 난 안다. 둘 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아이를 그냥 보고만 있을 나도 아니다. 아이와의 술래잡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는 다는 것도 안다.


이 숨바꼭질은 언제나 끝이 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