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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2011년 [수필-박성희] 순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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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383회 작성일 12-01-1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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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을 뛰어 넘은 시간, 초등학교와 여고를 함께 다닌 순덕이를 만났다.


연락을 받고 너무 반가워 모든 일정을 포기하고 다음날 내가 있는 일산과 순덕이가 사는 수원 중간에서 만나기로 했다. 내가 순덕이를 찾고자 했다면 벌써 찾았을 것이다.


원래 순덕이 부모님과 나의 부모님은 절친한 사이였다. 그래서 부모님을 통해 순덕이 가족 소식은 가끔 전해 들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몇 년 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 또한 뒤이어 세상을 뜨셨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마음에 담지 않으려 했다. 그동안 아이들 키우며 바쁘게 사느라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쓸 여유가 없어 연락을 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것은 핑계일 뿐이다.


순덕이와 만나기로 약속한 후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순덕이는 어릴 때부터 성품이 너그럽고 온순한 아이였다. 항상 얌전하고 침착했다. 얼굴도 뽀얗고 키가 컸으며게다가 언제나 예쁜 옷만 입고 다녔다.


6학년 가을쯤이었다. 예쁜 옷만 입고 다니는 순덕이를 시기하는 나와, 같은 무리 몇 명이 방과 후 정문에서 기다리다가 그 아이를 보는 순간 때리고 옷에다 흙을 묻히고 집으로 도망갔다. 그 시절 우리는 입어 보지 못하는 원피스를 주로 입고 다니는 순덕이에 대한 질투였던 것이다.


순한 아이라 선생님께 이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불안하고 초조했다.


집에 돌아와 얼마나 지났을까? 학교에서 호출명령이 떨어졌다. 안 가고 버틸 수 없어 30분은 가야하는 학교를 두려움 가득한 마음으로 다시 갔다.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순덕이를 선생님께서 불러서 자초지종을 듣고 우리를 부른 것이었다. 선생님께 벌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그 뒤부터 우리는 졸업할 때까지 순덕이와 말을 하지 않고 서먹하게 지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행동이 정당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끄러운 마음에 오히려 순덕이에게 냉담하게 대했던 것 같다.


중학교는 서로 다른 학교에 갔다. 하지만 3년 후, 여고에서 다시 만났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도 순덕이와 가깝게 지내지 않았다. 나는 의도적으로 피해 다녔다. 여고 졸업할 때까지 자주 대면했지만 말을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고, 만나도 미소조차 짓지 않았다. 내 마음 속에 있는 부끄러움 때문에 차라리 모르는 척 하는 게 편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고 막상 순덕이를 만나보니, 순덕이는 내 마지막 기억 속의 여고3학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느긋한 마음, 너그러운 성품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남편이 목사라고 했다. 남편 직업에 순덕이의 성품과 이름이 잘 맞는다고 했더니 이름을 바꿀까 생각 중이란다. 난 그녀의 대답이 떨어지기 바쁘게 말했다.


“바꾸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이름과 성품이 잘 맞는 사람은 흔치 않아. ”


순덕이만큼 이름과 성품이 잘 맞는 사람이 흔할까 싶다. 순덕이는 그냥 미소만 지었다.


그녀는 내 소식을 알고 싶어 작년에는 내가 살던 마을에 가 봤다고 했다. 그래도 연락처를 알 수 없어 답답하던 중에 동창에게 내 소식을 듣고는 바쁜데도 이렇게 달려왔다고 했다.


난 조심스럽게 초등학교 때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순덕이는 전혀 기억이 안 난다며 그런 일을 아직 기억하고 있느냐며 오히려 핀잔이다. 기억이 안 나는 것인지, 나를 생각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동안 순덕이 앞에서 떳떳하지 못해 외면했는데 무의식에 자리하고 있는 부끄러움을 이젠 내려놓아도 될 듯싶다. 나 혼자 순덕이를 피했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데 순덕이가 문자를 보내왔다.


"오늘 만나서 정말 기쁘고, 열심히 살아 주어서 고맙고, 좋은 모습으로 만나 주어서 또 고맙다."


나도 문자를 넣었다.


"찾아주어서 고맙고, 어린 시절 모습 그대로 나이 먹어서 정말 고맙고, 나의 상상력을 깨지 않아서 또 고맙다."


이제 연락처를 알았으니 자주 소식 주고 여행도 가자고 했다. 가장 허물없이 지낼 어린 시절 친구를 25년 동안 외면하고 지냈으니 나의 어리석음이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