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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2011년 [수필-노금희] 소복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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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375회 작성일 12-01-18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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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지역의 봄은 늘 그렇다. 쉽사리 봄이 오는 법은 없다. 3월의 한가운데, 입춘 지나서 함박눈 펑펑 내려야만 봄다운 봄을 맞는 것이다. 그해 봄은 유난히 따뜻해서 목련도 곧 흰 꽃눈을 보이고 있었는데 다시 겨울 한 가운데 들어선 것 같았다.


2007년 그해 3월 중순 따뜻한 날씨에 남도의 꽃소식은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일상 탈출을 시도했다. 남도 산사 동백꽃 구경을 가고자 약속을 하고 어렵게 벼르고 별러 남편의 허락을 받아냈다. 어린아이 소풍날짜 받아놓고 들뜨듯 꿈에 부풀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속초에서 출발하는 9시 버스시간을 맞추기 위해 일찍 잠에서 깼다. 우선 날씨가 궁금한지라 거실 창가로 향했다. 얇은 거실 커튼사이로 보이는 바깥이 유난히 하얗다.


설마, 하면서 커튼을 올리니 아! 이런,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도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의 눈이 쌓여 있었다. 꽃구경 꿈을 함박눈에 그냥 묻어버리기엔 너무나 아쉬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오전 10시, 언제 그랬냐는 듯 너무나 환한 햇빛에 봄눈은 금방 녹아내려 포근해졌다. 맑은 날씨를 보니 그래도 미련이 남았다. 11시 30분에 있는 남도행 버스를 탈까 망설였다. 몇 번의 통화로 간다, 안간다를 반복하다 오가는 시간에 비해 여행 일정이 너무 짧을거 같아 우리의 남도여행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이런 모처럼의 기회를 저 함박눈 때문에 망치다니, 함박눈이 너무나 야속했다. 소복소복 내리는 봄눈이 이리도 야속하기는...


소복소복, 소복소복...


몇 번 내 입에서 맴돌자 4월 어느 봄날이 생각났다. 나무의 새순이 새파랗게 피어올라 자연의 연두빛이 여러 가지 다른 모습으로 보여지는지 감탄을 하며 지인들과 함께 양양의 오지 법수치 마을로 올랐다.


법수치는 물고기가 많아 밭을 이룬다는 어성전을 지나 계곡이 아름다운 곳이다. 양양의 오지로 매스컴에서 많이 소개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찾아들었고, 오지라고 하기엔 너무나 좋은 길과 계곡으로 들어선 많은 펜션때문에 이젠 더 이상 오지마을이라고 부르기엔 무색할 정도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림 같은 법수치 계곡엔 나무마다 봄이 피어나고 있었다. 길섶에 생강나무 꽃이 지천이었다. 산수유 꽃과 비슷하다며 꽃을 따서 생강냄새가 나는지 향을 음미하기도 했다. 작은 폭포와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계곡을 따라 계속 올라가 산사에 다다랐다.


산사의 뜨락을 한 바퀴 돌아보고 길을 내려서면서, 우리는 약속한 듯 다같이 뒤를 돌아보았다. 뭔가에 이끌려 모두들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 곳에서는 편안한 복장을 하신 스님이 우리를 향해 손짓을 하고 계셨다. 스님의 안내로 우리는 스님 방에 들었다. 요사채 귀퉁이 방은 작고 아담했다.


계곡의 찬바람에 한기가 돌았던 우리 몸은 스님이 내주신 보이차로 따뜻하게 데워졌다.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벽에 걸린 스님의 화두에 눈이 꽂혔다.


소복소복(笑福笑福)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 스님의 좋은 말씀이 소복소복 가슴에 쌓이는 것 같았다. 나도 늘 웃음 짓는 얼굴은 아닌 거 같아 그 이후로는 웃는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우리 집 가훈은‘ 소복소복’으로 정했다.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탐스러운 느낌과, 웃음도 복스럽게 솟아나는 느낌이지 않은가!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많이 웃으면서 살아가는 걸까? 나이가 들수록 웃음도 없어진다고 한다. 매스컴에서 나오는 일들은 가슴 훈훈해지는 것보다 점점 마음이 황폐해지는 이야기가 넘쳐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아예 뉴스와, 신문에서 멀어져야 한다고 한다. 좋은 이야기만 듣고 살아도 인생이 짧다고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웃으면 복이와요’에서 시작해요즘의‘ 웃음전도사’까지 일부러 개그프로를 보고 억지로 큰소리로 박장대소도 해볼 일이다. 억지 웃음도 효과가 좋다고 하니 말이다. 웃음 가득한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바이러스가 전염되지 않을까?


웃음은 신체 면역력을 높여 중증 질환도 치료하고, 우울증도 치료하며, 통증도 제거한다. 웃음은 사랑을 불러 일으키고, 내가 먼저 웃으면 다함께 즐거워진다. 꼭 유머 한마디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웃음은 운동이다. 뇌의 운동이고, 신체의 운동이다. 웃을 일을 만들어 웃음 짓게 하면, 모든 것에서 무장해제를 시키는 신이 내린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한다.


그 해 봄, 여행을 하지는 못했지만 함박눈이 소복소복 내릴 때마다 산사여행이 그리워지고, 그 화두가 나를 휘감고 지나간다.


모든 분들, 늘 소복소복 행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