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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2011년 [수필-서미숙]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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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374회 작성일 12-01-1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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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휴일이 어버이 날이다.


오랜만에 나들이 하는 서울. 도착한 고속터미널 앞거리는 여기저기 카네이션만발이다. 다들 하나둘씩 들고 있는 꽃바구니 나도 하나 들었다.


문득 수북이 쌓인 꽃바구니를 보는 순간 나도 하나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떨어져 산지 꽤 되었다.


전철을 타도 여기저기 다들 양손에 들고 있는 꽃바구니들. 참 예쁘다.


어릴 적 고사리 같은 손으로 색종이 곱게 오려 옷핀 꽂아 만들어 주던 큰아이의 카네이션이 생각났다. 매년 5월이면 달아주었던 그 작은 손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생각이 나는 걸까.


서울서 가서 산지 꽤 오래인데도 무정하게 카네이션 하나 없다. 갑자기 눈물이 주룩 흘러나왔다.


수업을 하면서 5월이면 아이들과 함께 만들던 카네이션.


정작 내가 카네이션을 만들어 어머니께 드렸던 적은 있었던가, 또 내손에 들고 있는 이 꽃바구니를 나는 얼마나 많이 어머니께 전해드렸나, 멀리 산다는 핑계로 전화 한 통화로 그만이었다.


나도 큰 죄인인데 뭘 바라나 싶다.


유난히 불빛이 현란한 서울 거리는 온통 카네이션으로 축제 마당 같다.


그래 어버이 날이지 맞아.


현관문을 열고 친정에 들어서니 방안 가득 꽃바구니다.


뭘 이런 걸 사오냐며 하시면도 내심 좋아하시는 눈치다.


‘비싸지? 돈 아깝게 다음부터는 사오지 마라’ 하셔도 어머니 얼굴에는 미소가 방긋 이다.


저녁밥상을 차려놓고 밥을 먹으려는데...


딸아이가 말없이 엄마 하면서 쓰윽 카네이션 바구니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딸아이가 밥상머리에서 눈물 뚝뚝 흘리며 울었다.


십 년 만에 사다준 카네이션 꽃바구니도 눈물 뚝뚝 흘린다.

꽃바구니 속에 숨겨진 화해의 손길이 서럽게 운다.

붉게 충혈 된 눈빛으로 마냥 눈물지으며 빠알간 카네이션은 내 가슴속으로 붉게 물든다.

나도 애써 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애꿎은 꽈리고추가 맵다고 핑계를 대었다.

딸아이도 하나 먹어보고는 정말 맵네 하며 밥을 삼켰다.

긴 세월 빨갛게 피어오르려고 저렇게 몸부림쳤나보다.

조그마한 바구니 속에 감춰진 십년의 세월

왜 그리 긴 세월을 먹고 자랐느냐 원망하고 싶지만

지지 않고 활짝 웃어준 네 모습이라도 감사해야지.


얼마나 오랜만에 받아보는 카네이션인지 서럽게 울고 나니 그제서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어서 밥먹자.” 숟가락을 드는데도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래 저도 매번 사주고 싶었던 거야 이렇게...


할머니도‘ 저애가 웬일인지 내 것도 사왔다. 어제는 용돈도 십 만원 주더라.’


그래 누군가 세월이 흐르면 ,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들은 해결된다고 시간이 약이라 했던가.


언제가 작은 녀석이 늦 사춘기를 맞는 것 같아 내가 조바심을 내었더니 나에게 절친한 지인이 시 하나를 들려주셨다.

 

다친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장 슬로

다친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도우려 들지 말아라
그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것이다.
당신의 도움은 그를 화나게 만들거나
상심하게 만들 것이다.


하늘의 여러 시렁 가운데서
제자리를 떠난 별을 보게 되거든
별에게 충고하고 싶더라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라.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이시를 읽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그래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 같다.


지난 시간 난 큰아이를 더 보듬어 주지 못하고 같이 으르렁 거렸던 것이 너무 후회된다. 좀 더 아이를 보듬어 주고 더 많은 사랑을 주지 못한 것에 너무 가슴이 아프다. 난 야단만 쳤고 하는 짓마다 미웠으니 권위만 세웠고 가르치려고만 했다.


그리고 안 된다고 만 했다. 결국 남은 것은 서로 상처만 깊어 졌었다 다시 맞고 싶지 않은 그 시기 이지만 후회가 많이 된다.


부모가 힘든 만큼 아이는 더 힘들다는 생각을 왜 나는 하지 못했을까 왜 그렇게만 키울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하면 가슴이 저미고 더 아이에게 면목이 없다.


이제 제법 엄마도 많이 생각하고 점점 철이 들기 시작하는 아이 내가 아이를 키울 수 만 있다면 현명하게 아이를 다시 잘 키우고 싶다.


아니 그래서 지금 내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에게 유난히 더 많은 사랑을 쏟고 있는지 모른다.


내 죄책감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이 그 아이들이 내 사랑을 알듯 모르듯 난 그 사랑 나눔을 끝까지 할 것이다.


누군가를 기다려주는 것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정말 값진 선물이 될 것이다.


사랑하기도 모자를 시간 왜 그렇게 아이와 싸웠는가, 남아있는 시간들 난 이제 사랑하기위해 살도록 노력 할 것이다.


요즘은 큰아이가 너무 이쁘다.


그날 저녁 난 아이를 꼭 끌어 앉고 잤다. 아니 아이가 꼭 끌어 안겨 잤다. 십 년 만이었다.


어머니도 나도 방이 더워 꽃이 시들 걸 알면서도 꽃바구니를 베란다에 내다놓지 못했다.


온 방안이 가득 빠알간 카네이션 사랑으로 붉게 물들고 있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