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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2011년 [수필-이은자] 동행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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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370회 작성일 12-01-1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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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논산 마을 길섶, 울바재 마다 줄강낭콩 꽃이 만개했습니다.


당신이 이승을 떠나 먼 길 채비를 단장할 적에 마지막에 신은 버선, 그 담홍색 꽃버선 말입니다. 당신은 떠났지만 해마다 여름 막바지엔 이 꽃이 어김없이 핍니다. 당신을 생각나게 하는 꽃이지요. 작은 몸집 탓에‘ 꼬마각시’란 별명을 달고 살았지만 이름 하나는 참 멋들어졌습니다. 아버님께서 자식 농사 맨 끝에 태어났다고 그렇게 작명 하셨겠지요.


김홍엽(金紅葉), 우리세대 보편적 이름엔 하나 같이 자(子)야 인데 비견해서 얼마나 차원 있는 이름입니까


내가 당신과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82세였고, 영원히 이별한 것은 90세 때였습니다.


70여 년 간 동행 했으며 그 나이로는 결코 짧지만은 않은 세월이라 봅니다. 하지만 당신은 언제나 꼿꼿 하셨고 총기가 맑았습니다. 당신이야 말로 논산 동리의 산 역사며 이 산천과 같이 변해 가셨지요. 나와 함께 밭을 붙일 때 땅 한 뼘이라도 먹을거리 아니면 제아무리 예쁜 꽃이라도 못심게 하셨습니다. 언제나 내게 후하셨으나 그 점 만은 단호 하셨습니다.


당신이 가고 안 계신 지금, 나는 그 밭에 잘 가지 않습니다. 이젠 내 맘껏 꽃밭으로 만들어도 나무라실 당신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왠지 아무런 흥이 나지 않아서지요.


가을바람이 선 듯 문턱을 넘어 들어옵니다. 담홍색 꽃신 신고 떠난 당신을 그리며 내게 남긴‘ 잠언’ 들을 되뇌어 봅니다.


논산 벌이 온통 논과 밭 이였던 때를 나도 압니다. 이른 봄이면 물댄 논에선 소를 어르고 달래가며 못자리 준비가 한창이고 그 논둑 여기저기에 선 하얀 찔레꽃이 무리지어 피고지고 했습니다. 찔레꽃 노래는 누가 부르는 것이건 모두 슬픈 노랫말로 돼 있습니다. 그 벌에 부영APT 단지가 들어서며, 토박이들은 벼락부자가 됐지요. 그 뭉치 돈이 어느 집엔 복이 되고, 어느 집엔 재앙이 됐지요. 부자간, 혹은 동기간에 돈을 놓고 분쟁이 생겼기 때문이었지요. 그 틈바구니 속에서 늙고 병든 부모는 천덕꾸러기로 전락 했구요. 우리가 204호, 207호에 나란히 살게 된 것도 당신의 막내아들이 서울 에 같이 살자 해도 여길 못 버리는 당신 맘을 헤아려, 헌집 부수고 밭을 일구어 어머님 소일하시라 가까이에 옮겨두신 것이지요. 당신은 그 돌짝밭 한 고랑을 내게 부쳐보라 하셨습니다. 문하생 하나 두신 즐거움이 당신에게 신바람 나게 했다 하셨습니다.

 

# 오이 세 개 ---후사 (侯嗣 )의 특권(에배소서 3장 6절)---


근 반년 만에 당신의 큰 딸이 왔습니다. 딸은 올적 마다 힘든데 농사 그만 하라 지청구를 해 댔습니다. 그러나 그 것은 엄마를 아끼는 처사가 아닐겁니다. 그일 조차 없다면 노인이 마음 붙이며 긴 세월을 무료하지 않게 보낼 방도가 따로 없지 않습니까. 보청기가 소용없으리 만치 못 들으니 노인정에 간들 남 따라 웃고 수다를 떨 것입니까. 문맹(文盲)인데다 시력 또한 기댈 것이 못 되니 좋아하는 성경책 이나마 읽으며 시간 보낼 것 입니까. 번번이 내가 편들어 줘서 좋아 하셨지요. 그가 온 이튼 날 이른 아침, 당신이 내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나는 순간 생각하길 이 노인이 또 무슨 사고 냈을까? 문 앞에 선 당신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어 내 짐작이 맞거니 했는데, 당신은 뜻밖의 보고를 하였습니다.


“집사님, 이걸 어쩌겠나, 옥이란 년이 글쎄 외 세 개를 홀라당 따먹었잔나. 집사님을 한개 주지도 못 했는데. 며칠 더 키워서 줄라 했던 것을 물어 보지도 안코 말이라네....”


그 말 나는 곧 알아들었지요. 가차이 (가까이) 흐르던 개울이 APT 단지가 들어서며 2m 아래 축대 밑으로 흐르게 되어, 봄 가뭄에 내가 매일 개울에서 물을 퍼다 오이를 키웠는데 어먼 딸이 똑 다 따먹었으니 노인이 내게 미안해서였지요. 내가 다른 일이 있어 2~3일 밭에 안 나가면 당신은 내게 슬쩍 돌려 말하곤 했습니다.


“외 넝쿨이 축 처진 게 집사님 올 때만 바랏코 있다네. 허 허....” 물 좀주라는 말인 줄 나는 곧 알아듣고 밭으로 갔지요. 미쳐 못 따라 오시며 당신 얼굴에 흐믓한 웃음이 번지는 것을 보는 것이 또한 나의 보람이었지요. 그런 첫 수확물을 똑똑 다 따 먹은 것에 너무 미안해 하셨지요.


“ 날 가지고 농새 하지 말라 야단치던 년이 외는 어느새 보고 따먹었으니 어떡하면 좋너어... ”


나는 매일 같이 물 주었어도 넝쿨손이 지짓대를 거뭐 쥐고 벋어 오르는 것만 신기하고 기특했지, 박꽃을 닮은 하얀 꽃이 맺히고 피는 것 만 봤지 잎새 밑에서 자라고 있는 오이는 미쳐 보지 못했지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당신에게 위로가 될 성경 말씀 한 구절이 퍼뜩 생각났지요.


“후사 (侯嗣) 즉 적자, 상속권자란 말씀 있잖아요. 옥이씨는 바로 당신의 후사이기에 따 먹어도 무방해요.. 내가 아무리 물주고 했어도 당신 허락 없이 한개 라도 따먹을 수 있나요? 남이니까요. 옥이씨는 엄마 것은 무엇이나 가질 수 있는 관계니까요. 나는 이 말이 가지고 있는 뜻에 대해 관념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오늘아침 옥이씨 일로 확실한 이해가 됐어요.


옥이씨에겐 아무 잘못 없어요. 난 전혀 노엽지 않아요. 정말이지 난 서운하지 않아요. 옥이씨 가고 난 뒤에도 오이는 계속 달릴 것 아녀요.”


그제서야 당신은 긴장을 푸시고 계면쩍게 웃었습니다. 얼마 안 가서‘장마’가 시작됐고 더 이상 오이 넝쿨은 목말라 하지 않았지요.

 

# 개 잡아먹은 사람들. #


2002년 봄, 청대산엔 큰 불이 나서 아름드리 소나무 울창했던 것이 시커먼 송장처럼 뼈만 앙상하니 흉하게 서 있었습니다. 당신은 그 산불에 피해 입은 집들을 심방하고 와서 내게 넋두리 하듯 쏟아 놓았습니다.


“불난 날 목줄을 맨 채 튀쳐 나갔다 사흘 만에 돌아왔다던 그 개 있잔너. 아 그 것이 얼마나 놀랬게 집에 와서도 또 사흘을 물(개먹이)을 못 먹드래. 개도 입맛이 딱 떨어진 게여.. 그런 개를 오늘 가니까 잡았다며 문 앞에 큰 다래(대야)에 벌건 핏물이 흥건하지 뭐야. 오늘이 불난지 보름이나 지났나? 그 새 기다리지 못해 그런 야박한 짓을 했지 뭐야. 주인 바락코 살던 미물이지만 정은 어디가겠나? 해필(하필) 이 기간에 말이여. 목사님 설교말씀 다 뭐로 들었단 말이여. 예수 믿는다는 젊은 것 들이 정신 있는 짓이냐고. 지금이 무슨 기간인 줄이나 알고 개 잡아 보신이냐고. 금식하며 기도해야 하는 수난일 중에도 중한 고난 주간 아니여. ”


당신은 단숨에 역정을 쏟아냈습니다. 숨 한번 크게 쉬고는 또 이어“ 그제서야 그것 덜이 그 생각 미쳐 못 했다고 우물쭈물 하잔너.” 내가 훈수들기를“ 그래 뭐라 하고 오셨어요?” 내 집 현관에 풀석 앉으며 ,“ 이미 다 저지른 일이잔너 , 아이고 주여! 하고 왔지 뭐..”


나이 많아 총기도 흐릿할 텐데 당신은 교회의 절기에 대한 경외심만은 여일 하였습니다.

 

#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


장마철이라서 며칠째 비 오던 그 날, 하루 종일 APT 복도엔 사람 발길이 없었습니다. 당신은 그 날도 새우등 같이 모로 누워‘ 썩어질 옛날을’회상하는 듯 했습니다.


당신의 옛날은 모두 썩어질 것들이라 말하곤 했으니까요.


나는 당신 등 뒤로 살작 이불자락을 들어 누웠지요. 여전히 돌아누운 그 자세로“ 집사님 왔구나.” 나는 당신 몸을 내 쪽으로 돌려 뉘며“ 보지 않고 어떻게 난 줄 알아요? ”반사적으로 내 말에 대답이-“ 지금 이 시간에 예수님 말고 내 옆에 와 누울 사람이 집사님 밖에 더 있너! ”


나는 온 몸에 전율을 느껴 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주와 동행하고 계셨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말이 그런 순간에 나올 수 있었겠습까. 그런 믿음으로 사니까 여러 해를 혼자 살면서도 외로워 하지 않고 그닥 고독해 하지 않고 살아내심입니다.


인간으로서 죽음이란 턱을 거치지 않고 하늘나라에 간 사람이 두 사람 있지요. 구약 성경에‘ 에녹 (창세기5장24절)’ 그리고 엘리야 (열왕기하2장11절) 뿐입니다.


당신의 믿음도 그런 경지에 가까이 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놀라웠고 부러웠습니다.


나도 늙는 길에서 열정보단 곰삭음이 요구된다고 봅니다.

 

# 나를 부르는 방법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


가을이 머물고 있는 동안 우리는 가을걷이 초벌은 다 해놨습니다.


들깨며 서리태는 꺽어서 단을 지어 세워두었으니 이젠 고구마와 무만 밭에 남았습니다.


두 집이 지척 간인데 전화로, 좀 와 보라시기에 밤에 갔더니, 당신 식탁엔 튜립꽃 모양의 양초가 옥색 둥그런 사기 접시에 앉아 수줍게 타고 있었습니다.“ 예쁘네요. 웬 촛불?”“ 집사님이 하는 걸 나도 따라 해 봤지.”촛불보다 더 수줍게 웃었습니다.


소리를 잘 듣지 못 하는데다 후각마저 망가진 당신은, 집안에서 역겨운 냄새나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어, 가끔 내가 치우고 환기시켜 드렸는데 나를 따라 했다는 거였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순진한 웃음이 모든 말을 다 대신 하였습니다.


소싯적 몸으로 받아낸 고생의 흔적이 당신 몸 여기저기에 있었습니다.


통증으로, 기형인 체형으로 말입니다.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서야 어찌 그 나이 되도록 의연하게 살아낼 것입니까.


그날 밤 당신은 이삭 주운 늙은 호박 한 개와 꽈리 가지 세대를 내게 내밀었습니다. 가지에 조롱조롱 빠알간 꽈리를 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더러 금년 농사 참 잘 했다고 칭찬 했습니다. 모두가 주의 은혜라 하셨습니다. 옳아요. 주의 은혜 맞아요. 농부는 약간의 수고를 할 뿐, 농사는 하늘이 다 하심을 당신과 동행하며 알았습니다.


고구마 캐고 무우 뽑을 즈음, 황량한 밭 두렁엔 줄땅콩이 마른 줄기에 얼기설기 놓여있었지요.


나도 모르게 당신이 어느새 심은 씨들이 알알이 맺혀 낙엽 속에 있었지요. 어떤 상황에라도 씨를 심으면 하늘은 반드시 열매를 거두게 하심입니다.


올 해 가을도 이제 깊어 갑니다.


당신과 동행하며 얻은 삶의 지혜, 그 잠언 몇 도막을 회상했습니다.


지금의 내 나이 보다 15년이나 더 살으시며 늘 의연했었습니다.


나도 그럴 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담홍색 콩 꽃을 보며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곁에 계시면 이런 날엔 기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