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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2011년 [시-정영애] 무례한 먹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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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149회 작성일 12-01-1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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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먹성들


검은 구덩이가 육식을 시작했다
굴삭기에 등 떠밀려
흙의 식도로 미끄러지는 비명 덩어리
뭉크러지다 절규하는 살색 공포
디룩디룩한 먹성들을 폭식하는 땅의 식성은
이제 잔혹한 육식성이다
구제할 길 없는 목숨들을 날것으로 묻으며
참담한 인간성도 같이 묻는다


희망과 절망을 뒤집듯
하필 오늘 저녁 삼겹살을 굽는다
노릇노릇 구워지는 숨소리를 들으며
간신히 구제된 짐승의 한숨을 듣는다
소화불량의 내가 역류하여
그들의 언어로 구토하고 싶은 시간
메스꺼운 식탁엔 그들의 침이 튄다


학살처럼 파 헤쳐진 한 무더기의 아가리가
평화로 꼭꼭 다져질 때
날것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 커다란 입
드디어 땅의 살점까지 야금야금 축내는
붉은 먹이사슬


저, 무례한 먹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