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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2011년 [시-정영애] 고비 혹은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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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080회 작성일 12-01-1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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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 혹은 사막

 

불시착한 떠돌이별처럼
수천 마리의 고래를 먹어치운 모래들이 무덤으로 누워있다
탁류처럼 흐르는 핏줄을 감고 전생을 잃은 바다
신화 속 물고기가 밤새 벽화를 그리다 놓고 간 지느러미들이
사막을 빗기고 있다
길이 되지 못한 고비마다 낙타는 상징처럼 걸어갔고
지도에서 사라진 바다를 거슬러 그림자만 도착한 폐선 한 척
어떻게 고비를 넘어 왔는지
사구의 안쪽이 부드럽고 앙상하다


내 안의 길들이 기타 줄처럼 퉁, 끊어졌다
유성처럼 반짝이던 몇 개의 궁리도 날아갔다
끝내 길로 나타나지 않는 내 안의 사막
협곡 같은 낙타의 등을 다독이며 걸어 온 시간의 고비마다
긴 머리를 잘랐다
잘린 머리카락은 도마뱀의 꼬리가 되어
누군가의 고비 속에서 자라겠지만
사막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다
고비의 끝을 따라가면 떠돌이별 한 개쯤 만날 수 있을까
말라가는 입술이
얼마 동안 이어질 건기를 예고한다
안개처럼 감겨오는 내 안의 물음표들을 단단히 묶으며
온몸을 쟁여 넣은 짐 속에서 한 끼의 고비를 덜어낸다
이미 사라진 길도 멸이 아니고 생이라는 것을
다소 가벼워질 등을 향해 중얼거린다


고비도 결코 사막이 아니고 길일 것이다


다시 짐을 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