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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2011년 [시-정영애] 블랙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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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097회 작성일 12-01-19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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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아웃


예고도 없이 전기가 나갔다
한 점의 걸작처럼
집이 어둠의 액자에 갇혔다


냉장고가 숨을 멎고
세탁기가 툴툴거리다 급정거했다
영문을 모르는 TV도
덩달아 입과 눈을 닫고 서 버렸다
컴퓨터도 실명이 되자
비로소 어둠 속 쥐 한 마리 풀어준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엉덩이를 흔들다 멈춰버린 집이 그대로
정전 속 소금기둥처럼 섰다
마주 보이는 아파트의 창문들도
관 속처럼 엄숙하다
참을성 없는 어둠이 자꾸 스위치를 눌렀지만
집 한 채를 움직이던 힘은 사라졌다
실낱 같이 가는 줄 하나에
평생 목을 매고 살던 덩치 큰 몸통들
단번에 숨이 끊어졌다
한 번도 켜진 적 없던 비상등이
조등처럼 거실을 비추며
어둠을 조문하고 있다


당신 하나만 믿고 사는 내 몸통에
더듬더듬 스위치를 찾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