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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2011년 [시-박대성] 달력을 얻으러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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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095회 작성일 12-01-1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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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을 얻으러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연말이면 아버지는 은행, 약국, 백화점을 돌며 달력을 얻으러 다녔다.
마치 자신이 주문한 물건을 찾으러 다니는 사람처럼 의기양양
때 묻지 않은 시간을 찾으러 다녔다.
하지만 아버지가 얻고픈 시간들은 쇼윈도에서 반짝일 뿐
얻어 올 수 없었다.
단골이 아니라는 까닭이었다.


아버지가 얻어 오는 것은
참이슬, 처음처럼 같은 술 회사나 시장통 잡화점 달력들이었다.
그 때문이었는지 언제나 우리 집은 술과 잡화의 과잉과 부족으로 소란하였다.
술회사 달력들은 사시사철 꽃바람 비키니를 입고 가족들을 응원하였다.
덕분에 식구들은 무럭무럭 가족이 되었다.


아버지가 얻어온 새 달력들은 소란으로 얼룩진 벽에 걸리고
집은 방금 도배를 마친 것처럼 화사해지고
식구들의 눈동자는 네온사인처럼 반짝였다.


찬바람이 불어오면 아버지는 달력을 얻으러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