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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2011년 [시-최명선] 상실傷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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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087회 작성일 12-01-19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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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傷失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적 있었다
세상 모두가 배경이 되어
든든하게 내 생을 받쳐주리라 생각한 적
있었다, 어른이 되고
일상이 박하향처럼 환하게 듣던 날
믿었던 사람 하나가 뚫어 놓은 작은 틈새로
새 나가는 줄도 모르게 새 나가던 봄물이라니
부도라는 명제 앞에
좀체 풀릴 줄 모르던 사철 겨울 속
필 듯 말 듯 한 그런 봄날 몇 해나 보냈던가
한 발짝만 내딛으면 벼랑 같던 생
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는 가엾은 희망을
탁발처럼 쓸어 담던 그런 날도 있었다만
돌아보니 아픔도 나를 키운 지혜라
난장 같은 생이어도 한 장을 걷어내면
적요를 차고 오르는 날빛 고운 시간들
시시때때로 기억을 찌르는 날카로운 통점에
상처는 빛으로 인화되지 못했다만
더 이상 북풍의 행방은 묻지 않겠다
흔들리며 넘어온 생의 물마루,
지명과 이순의 두물머리에 앉아
펴지지 않던 불혹의 휜 등을 가만히 어룬다
뜨거워지는 몸 밖으로
우수수 떨어지는 시간의 껍질들
이제 기억 속 빙하가 녹으려나 보다
녹아 푸르게 봄물 들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