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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2011년 [시-최명선] 밥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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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313회 작성일 12-01-1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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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줄


점심때라 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 얼큰한 육개장이 생각났습니다 식당 밖에는 낡은 리어카 바닥에 폐지들이 조금 깔려있었고 리어카 주인처럼 보이는 노인 한 분이 라면 한 그릇을 막 들고 있었습니다 막상 젓가락을 들었으나 감기를 된통 앓고 난 후라 그런지 입맛이 없어 서너 술 뜨다 말고 숟가락을 놓는데 할아버지 내 그릇 속에 시선을 꽂습니다 뭐 더 드실래요 차마 묻기도 난감해 슬며시 일어나 밥 한 공기와 머릿고기 시켜 상 위에 올려 드렸습니다 물론 어색해 하지 않도록 아버지가 생각나서요 라는 소리를 얹었겠지요 자리로 돌아와 다시 상 앞에 앉는데 나도 몰래 슬픔이 북받치는 겁니다 목숨의 바다, 그 밥줄이 닿는 수심은 도대체 얼마나 깊은 걸까 왜 남루의 배후에는 늘 밥이 있는 걸까 어쩌면 저한 끼가 하루분의 생존이리라 생각하며 육개장 반 그릇을 묵묵히 비웠습니다 수저를 다시 내려놓는데 문득, 함민복 시인의 시, 눈물은 왜 짠가가 떠올랐습니다 시인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다대기 넣고 깍두기 얹어 나머지 반을 마저 비웠습니다 목울대 울리던 시뻘건 시를 삼키며 발우공양 하듯 깨끗하게 비웠습니다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불구의 시간, 입맛이 없다는 말은 아무래도 엄살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꾸만 헛헛한 마음 속, 슬픔 한 올 밖으로 당겨놓고 천천히 일어나 신발 끈을 맵니다 그리고 마음이 내는 또하나의 길을 따라 한참을 그냥 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