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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2011년 [시-장은선] 탈곡기를 돌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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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071회 작성일 12-01-19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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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곡기를 돌리며


단풍들 을긋불긋한 가을 오후
빈 들판에서 농부가 탈곡기를 돌린다
저녁 길을 재촉하듯 술취한 페달은 툴툴거리고
마른 벼를 넣으며 바람개비처럼 돈다
속살까지 흠뻑 비를 맞는 나무로 서야
목마른 논에 물을 댈 수 있었지
바람이 갈대를 흔들어 길을 내기도 하지만
그 길은 들판 속으로 수수대만 남기고
단단한 땅심만이 사람을 붙들어 준단다
탈곡기가 일으키는 바람에 코스모스들이 하늘거려
시큼털털한 상처들이 꽃가루가 되어 흩날린다
껍질을 벗기는 아픔을 견디는 알곡들을 털며
길이 몸에서 실핏줄사이로 출렁거렸으리라
볍씨를 뿌리며 모진 비바람과 살을 섞고
논두렁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흙을 들이켰으므로
한 톨의 곡식을 터는 일이 집을 일으키는 일이다
바람 따라 흔들리지 않을 기둥을 세우는 일이다
그 바람에 흔들려 진흙빛 가슴만 남을 일이다
투명해서 서러운 가을 들판
겨범벅이 된 농부가 흙내음을 아스팔트에 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