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호2011년 [시-권정남] 땡볕, 누워있는 돌하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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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볕, 누워있는 돌하르방
땡볕 내려 쬐는 제주시 도두동 길섶
온몸 벌집처럼 구멍 숭숭 뚫린
돌하르방이 누워있다
자라처럼 움츠린 어깨, 일그러진 한쪽 볼,
뭉그러진 코,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하운*이다.
전라도 길* 시를 구상하고 있는 듯
불룩한 배위에 양손 얹고
처진 입 꼬리 빙그레 명상에 잠긴 채 누워있다
지난 겨울엔 명동거리에서
머리 긁다가 떨어져나간 손가락 싸매며
쓰레기통과 나란히 앉아 밤을 샜다
아직도 남은 두 개 발가락으로
쩔름쩔름 가야만 하는, 먼 소록도 길
제주시 도두동 사거리 그늘 없는 땡볕아래
눈썹 없는 돌하르방이 푸석푸석한 얼굴로
가쁜 숨 몰아쉬며 혼자 누웠다
*한하운 :( 1919~1975)함경남도 함주에서 출생. 나병환자이면서 시를 쓴 시인
*전라도길 : 한하운시인이 쓴 시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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