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뫼 호수별 보기

41호2011년 [시-박명자] 밟히는 풀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865회 작성일 12-01-19 16:23

본문

밟히는 풀


가을 바람에 밟히는 풀의 어깨를 눈여겨 살피거라
서편으로 쓰러지는 캄캄한 소리가 들린다


변두리에 오래 서 있는 풀은 계속
모진 바람에 밟혀 왔지
정수리부터 천천히 밟히면서 꿈을 버리지 않았어


밟히는 풀의 배경 위에 <밤의 늑대> 이야기를 들려주렴
불면의 시간 빠르게 자기 영토를 넓혀가는
뿌리의 반란을 누구도 어쩌지 못할지니
질경이 바랭이 땀 흘리는 이마 위에
누가 곡괭이를 끌고 지나간다


긴 기다림의 끝자락 그녀들 베갯머리에
물소리도 수척하게 여위리니
풀밭 위에 어느 님이 헌 지게를 놓아 두셨지


고목 둥치에 수없이 나부끼던 시침
유년의 내 아버지 서슬 푸르던 살점이
내 가슴에 와서 꽂힌다


소리 없는 풀들의 혈색
밟히는 자의 아픔


밟히는 풀 풀 풀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