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호2011년 [시-박명자] 밟히는 풀
페이지 정보
본문
밟히는 풀
가을 바람에 밟히는 풀의 어깨를 눈여겨 살피거라
서편으로 쓰러지는 캄캄한 소리가 들린다
변두리에 오래 서 있는 풀은 계속
모진 바람에 밟혀 왔지
정수리부터 천천히 밟히면서 꿈을 버리지 않았어
밟히는 풀의 배경 위에 <밤의 늑대> 이야기를 들려주렴
불면의 시간 빠르게 자기 영토를 넓혀가는
뿌리의 반란을 누구도 어쩌지 못할지니
질경이 바랭이 땀 흘리는 이마 위에
누가 곡괭이를 끌고 지나간다
긴 기다림의 끝자락 그녀들 베갯머리에
물소리도 수척하게 여위리니
풀밭 위에 어느 님이 헌 지게를 놓아 두셨지
고목 둥치에 수없이 나부끼던 시침
유년의 내 아버지 서슬 푸르던 살점이
내 가슴에 와서 꽂힌다
소리 없는 풀들의 혈색
밟히는 자의 아픔
밟히는 풀 풀 풀 . . . .
- 이전글[시-박명자] 숨쉬는 곡식 한 톨 12.01.19
- 다음글[시-박명자] 탄소 발자욱 12.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