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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2004년 [시-권정남]붉은 색, 그 설레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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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갈뫼
댓글 0건 조회 2,761회 작성일 05-03-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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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로 고춧가루를 거실에 쏟았다
쏟아진 고춧가루 위에 아침햇살이
실뱀처럼 기어오른다

붉은 색, 그 설레임

해당화 꽃그늘에 숨어
아무도 몰래 첫 생리하던 날
자전거 벨 소리 끝 던져주고 달아난
첫사랑 고백, 붉은 혈서(血書)가
스무 대 여섯 살적 베게 머리 밑에
시집가라며 넣어주던 할머니 부적이
중년 어느 날 머리카락처럼
뭉턱뭉턱 떨어지던 서귀포 앞 바다
동백꽃을 바라보며
그 홍건하던 어지러움들이

아침햇살 환한 거실 바닥에
쏟아진 고춧가루를 보며 생각한다.
내 삶의 한귀퉁이에서
한 때 나를 섬뜩하게 했던
실뱀처럼 스멀거리던

붉은 색, 그 설레임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