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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2012년 [소설-이희갑] 청대산의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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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3,376회 작성일 13-01-0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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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르는 소리

 

 

“선유야, 오늘 떠나야겠다.”

 

 

회사에서 퇴근하신 아버지가 내 방문을 열더니 대뜸하시는 소리였다.

 

 

나는 처음에 무슨 소리인지 몰라 눈만 끔벅거렸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휘익 하고 감이 잡히는 뭔가가 있었다.

 

 

“그렇게 빨리요?”

 

 

“음, 하긴 나로서는 그리 빠른 것도 아니지. 벌써 그 사건 난 지가 언젠데.”

 

 

나는 얼른 일어났다. 이미 무슨 일이 닥칠 거라는 예상을 한 사람처럼거침없이 벽장문을 열었다. 그러다가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아직 엄마는 퇴근을 안 하셨다. 그런데 아빠가 오늘 떠나야겠다는 말씀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엄마랑 의논한 사항인가? 나는 벽장 속 옷걸이에서 점퍼와 티셔츠 몇 개를 걷어 가방에 넣으면서 힐끗 거실에 있는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거실 서재에서 창문 쪽으로 이어진 책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무얼 가지러 가는 줄 난 짐작했다. 책장 제일 아래 서랍에는 낡은 앨범이 몇 권 있다. 가끔 아버지는 그 앨범을 들춰 보면서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엄마가 불러도, 내가 다급한 소리를 내어도 잘 못 들을 때가 많다. 그 만큼 아버지는 앨범 속으로 쏙 들어가곤 한다. 오늘도 아버지는 내가 준비를 하는 동안 책장 서랍을 열어 틀림없이 앨범을 볼 것이다. 그리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분명히 잘 듣지 못할 것이다. 뻔하다.

 

 

내가 가방 속에 이것저것을 넣을 때 거실이 조용한 걸 보니 아버지는 앨범 속에 벌써 퐁당 빠진가 보다.

 

 

아버지와 집을 나섰을 때는 아직 저녁이라고 하기에는 일렀다. 더군다나 유월 초순이니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때라 몇 시보다는 해가 하늘 어느쯤에 와 있냐는 것이 더 실감나는 시간 재기였다.

 

 

“아빠, 엄마는?”

 

 

나는 다시 엄마가 걱정되어 물었다.

 

 

“글쎄다. 니 엄마는 어디 있는가?”

 

 

아버지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나는 걱정도 났지만 짜증이 확 났다.

 

 

“아빠, 놀리는 거지?”

 

 

“뭘 놀려?”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까 보단 무언가 있는 것처럼 들렸다. 난 아버지 스타일을 좀 안다. 아버지 때문에 엄마를 비롯해 나도 가끔 당황할 때가 있는데 어떤 때는 놀랬다가 어이없다가 나중에 화가 나기도 한다. 그 때마다 아버지는 재미있다는 듯이 계속 웃는다.

 

 

“선유야, 이해해라. 니 아빠란 사람 별난 취미가 있잖니.”

 

 

“그래두요. 아빤 너무해.”

 

 

“엄마도 처음엔 많이 당했는데 이젠 안 속는다. 봐라 아빠가 심각한 얼굴을 하면 엄만 도리어 웃음이 난다니까.”

 

 

엄마는 아빠가 가족을 대상으로 나름대로 개그를 한다고 하지만 이젠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아빠는 엄마에게 안 통하는 개그를 더 할 수 없어 처음에는 풀이 좀 죽어지내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드디어 나를 대상으로 아빠의 개그가 되살아났다. 난 아빠가 하는 개그가 유치한 것도 있고 엄마에게 통하지 않아 나한테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잘 받아 줬다. 사실 아빠랑 개그하면서 지내는 것이 나에게는 참 재미있고 즐겁다. 어떤 날은 아빠랑 말장난 같은 걸 하고 나면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다. 그러니 아빠하고 나하고 개그를 안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그 이그, 둘 다 한심이, 두심이야.”

 

 

엄마는 빈정대기도 하는 것 같고 정말 딱하다는 표정을 지을 때도 있지만 왠지 얼굴이 밝아지고 웃는 모습이 다른 때보다 훨씬 예쁘다. 나의 오랜 경험으로 아빠의 개그는 엄마를 예쁘게 하는 뭔가가 있는 건 확실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아빠, 엄마랑 짜고 날 골탕 먹이려는 거죠.”

 

 

“아니야 얜. 근데 정말 니 엄마랑 연락이 안 되어서 어떻게 하지?”

 

 

아버지의 얼굴엔 진짜 근심이 끼어있는 것 같았다. 난 처음에 아버지의 개그이거니 했는데 점점 그런 확신이 사라지는 걸 깨달았다. 슬그머니 겁이 났다.

 

 

“아빠, 엄마한테 연락해 봐요.”

 

 

“얼마나 연락했는데. 근데 계속 통화중이라는 거야.”

 

 

버스 정류장에 서니 마침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자, 선유야. 타자.”

 

 

“아빠, 엄마는 -.”

 

 

난 울상이 되고 말았다. 아빠가 무지막지한 아빠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또 엄마하고도 얼마나 다정한데 엄마를 내버려두고 떠날 사람도 아니라는 것도 안다. 어쩌면 아빠 개그의 한 프로그램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엄마 때문에 목이 메는 건 사실이다. 아빠는 나의 얼굴을 잠시 훑어보더니 얼굴이 굳어졌다. 내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을 알고있었나 보다.

 

 

“선유야, 미안. 미안.”

 

 

아빠는 급한 김에 나를 달래느라 두 손바닥을 펴 손사래를 쳤다.

 

 

“사실 엄마하고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어. 됐니?”

 

 

난 또 아빠에게 속았구나 하는 분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엄마가 안전하고 또 우리와 만나기로 했다는 생각에 그만 눈물이 찔끔 나오다 말았다.

 

 

“선유, 우리 선유, 아빠가 미안.”

 

 

아빠는 눈 속에 고인 눈물을 훔치는 나를 보며 아주 미안해했다. 나는 그냥 씩 웃고 말았습니다.

 

 

고속버스 터미널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엄마는 보이질 않았다. 사실 보이질 않았다기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어디에다 초점을 두고 살펴야할지 몰랐다. 아빠도 실수를 인정했다. 급한 김에 엄마보고 터미널에 오후 4시까지 나오라고만 했지 만나는 장소를 정확히 얘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빠도 덜렁댈 때가 다 있네요.”

 

 

나는 입이 쓴 표정을 지으며 바람 새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는 연실 휴대폰을 눌렀다가 귀에 대었다가 하면서 엄마를 찾고 있었다.

 

 

“선유야, 엄마하고 통화됐어. 근데 엄마가 준비 좀 해오느라 늦는데. 그래서 우리 보고 좀 기다리래. 미안하대.”

 

 

아버지는 나를 근처 제과점에 데리고 갔다. 제과점 안에도 사람들이 북적대었다. 오늘부터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라 모두 어디론가 떠나기로 약속이나 한 사람들처럼 거리마다 건물 마다 사람들로 꽉 들어 차 있었다.

 

 

“선유야, 잠깐, 아빠 친구한테 전화 좀 하고 올게.”

 

 

아버지는 주문한 빵이 나오기도 전에 뭐가 급한지 전화하러 밖으로 나갔다. 나는 정신이 집중이 되질 않았다. 아버지의 급한 결정과 엄마와의 불통,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고 거리에 차들이 줄을 길게 늘어지게 이어진 모습에서 피곤이 쉽게 찾아왔다. 음료수 한잔을 꿀꺽꿀꺽 들이키곤 빵 한 조각을 포크로 찍어 입에 넣었다. 빵조각에 묻은 향기가 입 속으로 콧속으로 한 바퀴 돌았다. 그러자 제과점 가게 안 내가 앉은 테이블은 왠지 조용하고 한가한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약간 평온해 지면서 사방 흩어졌던 생각들이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아버지의 고향에는 청대산이 있다. 청대산은 별로 높은 산은 아니다. 서울의 남산보다도 낮다. 청대산에서 서북쪽으로 이어진 달마봉의 허리에도 차지 앉는 작은 산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청대산 이야기를 그 어떤 산보다도 많이 한다. 청대산이 끼지 않으면 고향 이야기가 안 되고 고향 이야기에서 청대산이 끼지 않으면 고향 이야기가 아닐 정도다. 그 만큼 아버지에게는 청대산이 중요하다. 왜 중요하냐고 물어보면 중요하니까 중요하다고 개그를 했다. 처음엔 나도 중요하니까 중요한 것이 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왜? 가 따라 붙었다. 왜 중요한데? 왜 청대산이 고향이고 고향이 바로 청대산인데? 왜? 왜? 왜? ----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청대산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 다 궁금해지고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청대산에 관한 얘기만 나오면 나도 아버지에 뒤질세라 설쳐 댔다. 그래야 내가 궁금해 하는 청대산 이야기를 빵 조각 하나 폭 찍어 입에 넣어 먹듯이 한 조각 한 조각 얻어 들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는 참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전에도 아버지가 전화하러 간 아빠 친구도 청대산에서 함께 놀던 친구란 걸 안 보고도 다 안다. 꼭 청대산 갈 때마다 떠나기 전에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는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아버지 친구들은 바쁘거나 일이 있어 함께 동행하는 일은 아직 없다. 하지만 다른 일로 청대산 마을에 갔을 때 거기서 친구들을 우연히 만나면 그땐 밤을 새운다고 한다. 아버지 말 대로면‘ 참 잘 놀다 왔다.’가 된다.

 

 

이번에 아버지가 청대산을 보러가는 건 지난 봄 아주 큰 산불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생전에 이런 바람은 처음이라고 했다.

 

 

바람이 얼마나 센지 사람이 걸음을 걸을 수가 없고 작은 자동차는 들썩들썩 거려 다닐 수도 없었다. 거리의 간판은 종잇장처럼 날아다니고 전신주에 매달린 전선은 윙윙 통곡을 하며 몸부림을 쳤다. 또 몇 백 년이나 된 나무들이 버티질 못해 쓰러져 버렸다. 산등성이에 검불들이 커다란 덩어리로 뭉쳐 이 산 저 산 날아다녔다. 그런데 기어코 일어나지 말아야할 일이일어났다. 불이 난 것이다. 산불이다. 산불은 바람을 타고 훨훨 있는 힘껏타 올랐다. 그리고 검불덩이에 불이 붙어 불덩어리가 되어 이 산 저 산 마구 날아다녔다. 산불덩어리가 떨어진 곳에서는 새로운 산불이 일어나고 새로운 산불은 다시 불덩어리가 되어 또 이 산 저 산으로 미친 괴물처럼 날뛰고 다녔다. 청대산 일대는 그야말로 불바다가 되고 말았다. 불 앞에서는 모든 것이 힘을 잃었다. 여기도 타고 저기도 타서 재가 되고 말았다.

 

 

골짜기도 타고 산등성이도 타고 집도 타고 공원도 타고 산 속의 절도, 과수원도 옥수수 밭도 모든 것이 불앞에서는 꼼짝을 하지 못하고 타고 말았다. 심지어 삼불을 끄러 온 불자동차까지도 날아온 불덩어리에 타고 말았다. 청대산 일대의 산불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죽하면 이런 바람과 산불은 머리털 나고 처음 봤다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그 때 뜬 눈으로 지내다 시피 했다. 온 밤을 안전부절 못했다.

 

 

당장 청대산으로 가려고 나서기도 했다. 엄마가 아버지 앞에 떡 버티고 나갈 틈을 주지 않았다.

 

 

“당신이 가면 어쩔 건데요. 산불을 막을 방법이나 있으면 가세요. 소방차도 불에 타고 사방에서 불덩어리가 휙휙 날아다닌다는데 뭘 하러 갈 건데요. 안돼요. 못 가요 선유 아버지.”

 

 

그래서 아버지는 지금까지 못 가고 있었던 거다. 그 대신 기회가 되면 함께 가기로 하자는 엄마의 설득에 아버지는 잘도 참은 것 같다. 하지만 아버지의 마음 속 귀에는 그 날부터 쉬지 않고 청대산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난 그걸 안다. 아버지가 하는 모든 일에는 청대산 냄새라 할까 그런 것이 풍겼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마음 속에는 늘 청대산이 있었다. 아빠의 마음은 내 마음이다. 청대산이 우리 아버지를 부르면 곧 나도 함께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난 언젠가 아버지가 청대산으로 떠나면 나도 즉시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해 두었다. 마음의 결정은 곧 모든 일의 시작이요 완료 까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아버지의 예고 없는 말에 잠시 머리가 띵하긴 했지만 얼른 알아차리고 아버지와 함께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전화를 하러 나간 아빠가 제과점 문을 열고 들어 왔다. 그런데 아빠 뒤에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아빠 친구에게 전화했을 거라는 나의 짐작이 어긋나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엄마의 얼굴이 제과점 윈도우에 꽉 차는 느낌을 받았다.

 

 

“엄마!”

 

 

나는 벌떡 일어나 엄마에게로 달려갔다. 엄마는 양손에 무겁게 보이는 짐을 들고 있었다. 거기에다 커다란 배낭까지도 메고 있었다. 엄마는 달려드는 나를 향해 짐을 든 두 팔을 올리려다가 힘에 겨워 다시 내렸다. 대신 내가 엄마의 한 손에 든 짐을 받아 들었다.

 

 

“선유야, 많이 기다렸지?”

 

 

엄마의 얼굴이 더워서 빨갛게 되었다. 마침 제과점 가게 안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 엄마는 한 손으로 부채질을 하려 다가 그만 두었다. 나는 얼른 찬 물을 떠다 엄마에게 갔다 드렸다. 엄마가 눈을 살짝 올려 뜨며 웃었다.

 

 

불안했던 내 마음이 갑자기 확 풀어졌다.

 

 

“현수 친구는 이번에도 못 간대.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텐데.”

 

 

아빠는 엄마를 보고 이야기 하는 것 같은데 사실은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 현수 아저씨가 아직도 어딜 떠나기는 힘든 모양이구나..

 

 

청대산으로 떠나는 차표는 미리 예매해 두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뚫고 대단한 뭐라도 되듯이 버스에 올라탔다. 아빠는 짐싣는 도우미 아저씨와 함께 엄마가 가져온 짐을 짐칸에 실었다. 엄마는 청대산이 고향이 아니지만 아빠를 따라 다니다 보니 청대산 부근에 사는 여러 어르신들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그 어르신들이 해주는 산나물 반찬이며 시골 밥상 같은 음식을 대하고 난 뒤로는 늘 집에 와서 연습하곤 했다.

 

 

물론 실패가 더 많아 아빠와 내가 그 음식이 떨어질 때까지 극기 훈련에 들어간다는 사실은 엄마만 모르는 것 같았다. 엄마는 그런 음식을 열심히 익히고 배워야 진짜 청대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아빠와 나는 꼼짝없이 극기 훈련을 달갑게 받고 만다. 엄마는 청대산 음식이 힘이 솟고 살도 안찌고 건강에 좋다고 동네 엄마들에게 자랑까지 하고 다녔다. 엄마의 입담이 효과가 있었는지 청대산에 가면 산나물이며 된장, 고추장, 등 등을 꼭 가져다 달라고 하는 엄마들이 늘어났다. 청대산으로 가는 엄마 가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주문을 적은 수첩이다. 간식을 못 챙겨도 수첩은 꼭 챙긴다. 나에게도 수첩 넣었느냐고 꼭 확인 한다. 물론 엄마가 다 챙기면서도 나보고 확인한다. 엄마는 청대산 어르신들에게 음식 만든 레슨비로 봉투를 내밀었다가 면박을 당했다.

 

 

“누가 돈 보고 밥 줬나. 다 정으로 준거지.”

 

 

그 후 엄마는 청대산으로 갈 때 요즘 유행하는 티셔츠나 머플러, 바지 등을 사가지고 가곤 했다. 이번의 짐도 그런 것이다.

 

 

고속버스는 예정 시간에 정확히 출발하였다. 버스가 서울을 빠져 나가는 속도는 너무 느려 차라리 걸어서 가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버스 안에 사람들은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모두 눈을 감고 있었다. 지루함이 찾아오기 전에 잠을 먼저 초청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잠을 초청해도 잠이 초청을 거절한 것 같았다. 오히려 눈이 더 말뚱말뚱해 졌다. 엄마도 뒷 자석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으레 여행을 떠나면 아빠와 개그가 잘 통하는 내가 함께 앉게 하고 엄마는 뒷좌석이나 앞좌석에 음악을 듣거나 눈을 감고 명상인지 뭔지 하는 것에 잠기기도 한다.

 

 

버스가 겨우 서울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버스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

 

 

창밖의 풍경이 아까보단 빠르게 슥슥 지나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나를 보고 씽긋 웃었다. 나도 아버지를 따라 머리를 끄덕이며 웃었다. 버스가 빨리 가서 좋다는 신호다. 이 때다 싶어 나는 아빠에게 현수 아저씨의 상황을 물었다. 현수 아저씨는 지금도 아빠와는 정말 죽고 못 사는 친구다. 하지만 건축 일을 하다 사고가 생겨 크게 다친 뒤로 최근에는 자리에 누워 지내는 때가 많다고 한다.

 

 

“요번에는 꼭 같이 가기로 했는데. 어서 빨리 일어나지.”

 

 

아빠의 말 속에 정말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이 듬뿍 들어 있었다.

 

 

버스가 속도를 높였다. 이젠 제 속도를 찾은 것이 기쁜지 엔진 소리도 상쾌하게 들렸다. 한참 달리다 보니 함께 따라오던 작은 산들이 물러가고 눈에 확 트인 너른 논과 밭이 보였다. 논에는 모내기를 마쳐 파르스름한 모들이 연두빛깔 무리를 지어 줄도 반듯하게 논바닥에 꽂혀 있었다. 아직 한 쪽에는 모내기를 하는 논도 있었다. 사람들이 바지를 걷고 맨 종아리차림으로 허리를 굽혀 모내기 하는 모습이 신기해 보였다. 요즘은 기계로 모를 심는다고 학교에서 배웠는데 아직 다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논에는 물이 출렁거렸다. 목욕탕처럼 물이 가득한 곳에 서 있는 모들은 어딘지 모르게 편안해 보였다.

 

 

“저 논엔 물도 많고 모내기도 잘 했으니 잘 가꾸면 풍년이 오겠네.”

 

 

아버지가 약간 더듬으며 말했다.

 

 

버스는 이제 큰 강을 끼고 달리고 있었다. 나는 한참 강줄기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꾸벅했다. 날 보는 아버지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머리를 흔들었다. 졸지 말라는 뜻 같았다. 하지만 나도 이젠 잠을 자야할 것 같았다.

 

 

초청할 때 오지 않던 잠이 이젠 막 쳐들어오고 있나보다. 하품이 나왔다.

 

 

나는 몇 차례 더 하품을 하고 좌석 뒤로 몸을 밀었다. 아빠가 뭔가 신호를 보냈다. 나는 얼른 알아챘다. 이야기 해 주겠다는 뜻이다. 나는 머리를 좌우로 몇 번 흔들었다. 잠이 놀라 도망가라고 말이다. 버스 소리와 들판의 풍경이 나를 더욱 나른하게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나긋한 말소리가 귓속으로 쏙쏙 들어오고 있었다. 아버지의 이야기가 속에는 마치 꿈길로 가는 길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눈을 감는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이 눈앞으로다가왔다.

 

 

 

 

2. 딱사벌 물구덩이

 

 

“얘들아, 거긴 파 봐야 물이 안 나와. 저 저런 헛수만 하네 쯧쯧.”

 

 

“그래도 파 놓은 게 아까워 계속 팔래요.”

 

 

담임선생님의 말을 듣고도 민호는 낑낑 거리며 땅을 파 들어갔다. 다른 아이들도 짝을 지어 물이 나올 만 곳을 찾아 땅을 파고 있었다.

 

 

“허, 날씨하군-”

 

 

담임인 황 선생님은 연실 이마의 땀을 수건으로 닦아가며 하늘을 쳐다보다가 들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논은 넓었다. 유월의 태양이 이글거리며 열기를 땅으로 쏟아놓고 있었다. 벌써 두 달째 가뭄이다. 이미 흐르던 강줄기도 바닥을 드러냈고 저수지도 다 말라버려 쩍쩍 갈라진 거북등을 보였다. 모내기철이 되었는데 비는커녕 있던 물기까지 다 사그라지는 날이 계속되었다.

 

 

“드뎌 우리 학생들까지 나서게 되었다. 내일 학교 올 때 곡괭이나 삽을 가지고 등교 하거라.”

 

 

아이들이 우~하는 소리를 질렀다. 민호도 인상을 쓰며 뒤돌아보았다.

 

 

민호와 눈이 마주친 현수의 얼굴도 순간 찡그러졌지만 금방 얼굴 한편으로는 뭔가 기대하는 듯 미소가 희미하게 번졌다. 또 작업을 나가야 한다는 말에 종례 시간은 하교의 기쁨이 여지없이 날아가 버렸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벌써 민호네 학교에서는 두 차례나 물을 찾아 삽을 들고 나갔다. 물구덩이를 파고 구덩이에 물이 나오면 마을 어른들이 달려와 기계를 돌려 물을 퍼 올린다. 퍼 올린 물은 물길을 따라 논으로 들어간다. 물이 논으로 들어가자마자 쩍 갈라진 틈 사이로 순식간에 숨어 들어가 버린다. 겨우 퍼낸 조그만 물길이 논에서는 맥을 추지 못한다. 물이 필요한 논바닥보다 물의 양이 터무니없이 적기 때문이다. 문제는 물구덩이를 팠다고 다 물이 있는 건 아니다. 워낙 가물어서 그런지 열 개를 파도 물구덩이 하나를 찾기가 힘들었다. 아이들은 나중에 앓는 소리까지 내며 구덩이를 팠다.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꾀를 부리고 싶어 삽을 쥔 손에 힘을 빼다가는 다시 잡는다. 물이 없으면 농사를 못 짓는다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집에 돌아오는 아이들은 하나 같이 후줄근한 바지 보다 더 흐느적거리며 돌아왔다.

 

 

가뭄은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주었지만 특히 농사짓는 사람들에게는 시간과의 싸움으로 이어졌다. 금방 심은 어린 싹은 물이 필요 하다. 마치 갓난아기가 엄마의 젖이 필요한 것처럼. 그런데 모심기를 끝내고 한참 물을 꿀컥꿀컥 먹어야 하는 모들이 먹을 물이 없다. 논바닥은 자기들에게 먼저 물을 달라고 벌어진 입을 더욱 쩍쩍 벌리고 있다. 물을 먹지 못하는 어린 벼들은 영양실조에 걸린다. 그러면 처음엔 시들시들하다 끝내는 노랗게 말라비틀어지고 죽고 말 것이다. 그러니 물이 있어야 한다. 사막을 헤매다가 지쳐 쓰러져 죽는 사람들이 마지막 하는 말이‘ 물, 물, 물’ 이다. 지금 논에 있는 어린 벼들이 그런 상황에 빠졌다.

 

 

벼농사를 망치면 나라 경제가 힘들어진다. 농업이 주가 된 나라에서 농사가 안되는 게 경제가 안 되는 것이다. 또 흉년이라도 들면 나라 경제는 정말 엉망이 된다. 나라 경제가 엉망이 된다는 건 한마디로 먹고 살기 힘들어 진다는 이야기다. 그렇지 않아도 해마다 식량이 모자라 많은 국민들이 입에 풀칠하기 바쁘다. 거기에다 흉년까지 든다면 정말 굶어 나자빠지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아 질 것이다. 물론 농사짓는 사람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나라에서는 물푸기 작업에 학생들 까지 동원하였다. 시간은 없지 논과 밭은 타 들어가지 이젠 어린 학생들 손까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민호야. 내일 쌍천 옆에 갈 모양이야. 그러면 알지?”

 

 

집에 가는 길에 현수가 달려와 말했다.

 

 

“뭘 알아?”

 

 

민호는 무슨 말인지 알면서 짐짓 모르는 체 말했다.

 

 

“얘가 또 딴청이야.”

 

 

“무슨 딴청?”

 

 

민호는 안달이 난 현수를 놀려주고 싶었다.

 

 

“무슨 딴청이라니.”

 

 

이번엔 현수가 어이없다는 듯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쳐다보았다.

 

 

“ 너 너 지난 번 하 한 말 이 잊어버렸어?”

 

 

현수는 좀 급해지거나 답답해지면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다. 그 버릇이 나오는 걸 보면 어지간히 현수가 안달이 난 것 같았다. 사실 민호는 현수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현수가 자꾸 조르니 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고 그 때 한참 물푸기 작업하였지만 물구덩이 하나 파지도 못하고 기진맥진 했을 때라 귀찮기도 해서 건성으로 대답했던 것이다. 물푸기 작업에 땅을 파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데 반에서 제일 달리기를 잘하는 복영이가 말을 꺼냈다.

 

 

“야, 물푸기 작업 끝나면 저 앞산으로 가자. 삽도 있고 곡괭이도 있겠다 칡이나 파자.”

 

 

“그래 거기에 칡이 아주 많대. 저 번에 형근이가 아주 토실토실한 칡을 캤는데 그 칡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입에서 살살 녹더래.”

 

 

정환이가 태영이의 말을 거들고 나왔다.

 

 

“맞아, 나두 형근이한테 칡을 얻어먹었는데 맛이 끝내 줬어. 칡 속에서 얼마나 단물이 많은지 한 입 깨물면 시원한 칡물이 콱 쏟아 나와. 죽여주더라.”

 

 

현수도 질세라 나섰다. 민호는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현수를 쳐다보았다.

 

 

“정말이야. 정말이라니까.”

 

 

그래도 민호가 못 믿겠다는 듯한 표정을 거두지 않자 현수는

 

 

“너 너 다음 작업 뒤에는 나 나 하고 앞 앞 앞산에 가는 거다. 아 아 알았지?”

 

 

하고 소리를 질렀다. 민호는 현수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민호는 웃음기를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그런 일을 가지고 현수는 민호가 대답을 했다고 우기며 내일 작업 뒤에는 앞산에 가야한다고 난리를 피우는 것이었다.

 

 

다음날은 토요일이었다. 하지만 어제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민호네 중학교 2학년 전원은 물푸기 봉사 활동을 예정대로 나가게 되었다. 봉사 활동은 쌍천 옆에 있는 논이었다. 쌍천도 말라버려 겨우 도랑물 수준이 되어 졸졸 흘러가고 있었다. 예전엔 하얀 물줄기가 힘차게 흐르고 어떤 곳은 제법 푸르스름한 빛을 띠우며 작은 연못처럼 깊은 곳을 만들던 쌍천이었다. 그러나 그런 쌍천 강줄기가 사라지고 대신 하얀 모래톱만 반짝이고 있었다. 원래 쌍천은 민호네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싼 달마봉에서 시작된 강줄기이다. 달마봉 남쪽 계곡과 북쪽 계곡에서 각각 발원하여 흘러내리던 물이 하나로 합해지는 곳에 딱사벌이라는 벌판이 있다. 쌍천은 거기에서 구불구불 민호네 마을 남쪽을 흘러내리다가 호수로 들어간다. 쌍천 가에는 버드나무들이 쭉 늘어서 있고 강모래가 쌓여 조금 높은 곳에는 갈대와 부들이 쭉쭉 큰 키를 자랑하고 물이 맞닿은 곳에는 개구리밥을 비롯하여 이름 모를 풀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쌍천의 물은 천천히 흐르기도 했지만 조금 경사진 곳에서는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속도를 내어흐르기도 했다. 물줄기가 흐르면서 실어 나른 모래톱들이 하얗게 여기저기에 쌓아 놓고 쌍천의 물은 흘러간다. 쌍천의 물은 참 맑았다.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이랑 물잠자리가 꼬리를 물속에 집어넣은 모습까지 다 볼 수 있다. 또 갈색, 검은색, 회색, 흰색 조약돌이 흐르는 물에 몸을 씻으며 매일 더 깨끗해지고 있었다. 쌍천에 흐르는 물이 한번 꺾어지며 흐르는 곳에는 싱싱한 수초들이 수북이 물위에 머리를 내밀고 서 있다. 쌍천에 유난히 가시고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학교에서 떠나 쌍천을 끼고 한 시간 거리를 가면 딱사벌이다. 오늘 민호네는 딱사벌에 있는 논에 물을 넣기 위해 물구덩이 파기 봉사 활동을 해야 한다. 딱사벌은 민호네 마을에서는 보기 드믄 너른 벌판이다. 딱사벌의 들판에는 논이 많이 있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아무거나 심던 밭이었는데 워낙 평평하고 넓은 곳이라 논농사가 좋겠다고 해서 하나 둘 논이 밭대신 들어앉은 곳이다. 금년 같은 가뭄이 아닐 땐 딱사벌의 논에는 언제나 물이 출렁거렸고 벼들은 푸르게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봄이면 연두빛 바다, 여름이면 초록빛 바다. 가을이면 황금빛 바다. 겨울이면 흰 눈의 바다 같은 곳이 딱사벌이다. 특히 벼를 수확하는 때가 되면 누렇게 익은 벼들이 바람결에 몸을 이리 흔들 저리 흔들거리는 모습이란 정말 황금바다의 황금물결 그 자체였다. 그런 때가 되면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딱사벌 황금벌판을 지나가며 저절로 한마디 씩 했다.

 

 

“정말 좋다.”

 

 

내년은 올해 보다 덜 배고플 것이라는 믿음이 사람들 마음을 편안하게했다.

 

 

“자, 오늘 우물 파기 장소를 정해 주겠다. 1조는 저기, 2조는 여기, 3조는 저어 쪽....”

 

 

황 선생님이 농촌 지도서에서 나온 분과 이야길 나누다가 아이들이 작업할 장소를 가리켜 주었다. 선생님이 앞장서서 걸어가다가 삽을 들어 땅을 푹 찔렀다. 거기가 물구덩이 파는 곳이다. 아이들은 자기 땅이라도 되는 것처럼 야~ 하고 소리를 치며 빙 둘러서서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빨리 물구덩이를 찾으면 그 조는 작업 끝이다. 거기에다가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 휴식 시간에는 쌍천에 나가 졸졸 거리는 냇물이지만 물놀이도 할 수 있다는 허락까지 받으니 손 놓고 있을 순 없다. 아이들은 물구덩이를 빨리 파는 건 기본이고 구덩이에 물기가 나타나길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쏘아보고 또 쏘아본다. 하지만 가뭄은 그리 호락호락한게 아니다. 이미 땅까지 딱딱하게 만들어 삽날은 팅팅 튀어나오고 곡괭이는 자그만 구멍하나 만들어 내는데 그치고 만다. 참으로 땅 파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거죽의 딱딱한 땅만 거둬 내면 그 다음 부터는 쉬워진다. 쌍천 옆이라 땅 속은 모래가 많이 섞여 있는 흙이 많기 때문이다. 곡괭이를 가진 친구가 낑낑 대며 곡괭이질을 한다. 땀이 금방 빗방울처럼 이마에 맺혔다가 떨어진다. 그래도 처음은 곡괭이로 파지 않으면 땅을 팔 수가 없다. 곡괭이질에 땅에 흠집이 생기면 삽을 든 아이들이 달려든다. 흠집 사이로 삽날을 집어넣어 쑤시고 퍼내고 하다보면 어느새 커다란 땅 구멍이 생겨난다. 그러나 여전히 땅은 아이들에게 저항을 계속한다. 그러면 다시 곡괭이 부대가 곡괭이질을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삽 부대가 들러붙어 퍼낸다.

 

 

땅 구덩이는 점점 넓어지고 깊어져 간다. 이렇게 수없이 반복되는 작업이 계속되면 어느새 아이들의 몸 절반은 땅 구덩이 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운 좋으면 물 샘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쌍천 옆이라고 해도 물이 있는 곳이 있고 없는 곳이 있다. 대부분 구덩이에는 어른 허리만큼 파 들어가도 물이 나오질 않는다. 그런 구덩이를 파는 아이들은 정말 재수가 없다. 죽을 힘 다해 더 깊이 더 깊이 파 들어가도 물 대신 땀만 비 오듯이 쏟는다. 아이들의 얼굴은 상기되고 점점 불평으로 두 볼이 부어오르다가 나중에 그만 기진맥진하여 땅 구덩이 옆에 너부러지고 만다.

 

 

민호네 조에는 현수와 형근이, 그리고 네 명의 아이들이 정해 졌다. 민호네도 곡괭이 부대, 삽 부대가 번갈아 가며 열심히 땅 구덩이를 파 들어갔다. 허리 쯤 팠을 때 현수의 입이 실룩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관심없었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자그맣게 무슨 소리를 내고 있었다.

 

 

“물 나오라 뚝딱. 물 나와라 뚝딱.”

 

 

아이들이 일을 멈추고 현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모두 배를 움켜잡고 웃었다.

 

 

“야, 여기 무슨 도깨비 방망이가 있냐?”

 

 

“아이고 힘들어 죽겠는데 웃기면 어떻게.”

 

 

아이들이 이렇게 말하면서도 깔깔 웃다가 모두 구덩이에서 파낸 흙덩이 위에 주저앉았다. 현수는 겸연쩍은 모습을 하다가 자기도 허리를 움켜쥐고 웃는다.

 

 

“너, 빨리 끝내고 앞산에 가고 싶어 그러지?”

 

 

형근이가 코를 벌름거리며 말했다.

 

 

“아니야. 무슨, 물이 빨리 나오면 농사에 좋지... 안 그래 민호야.”

 

 

현수는 말끝을 흐리다가 민호를 향해 두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정말 못 말려.”

 

 

민호가 웃으며 말했다. 아이들이 함께 웃었다. 그 때 저쪽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물 나왔다. 물. 물 ”

 

 

태영이네 조에 터진 목소리였다.

 

 

“뭐야, 우린.”

 

 

민호네 조 아이들이 벌떡 일어나 다시 땅 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었다. 잠시 뒤에 여기저기에서 물이 나왔다고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민호네 3조는 물은커녕 돌멩이 섞인 흙만 자꾸 나왔다. 현수가 물이 나왔다고 하는 친구들 쪽을 연실 쳐다보면서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물구덩이 파다가 힘 다 빠지면 칡은 무슨 힘을 팔긴가.’

 

 

민호넨 운이 없는가 보다. 현수가 물 나와라 뚝딱 까지 했는데도 물구덩이 방망이는 다른 아이들한테 가 버린 모양이었다. 먼저 물구덩이를 판 아이들은 선생님 앞으로 모여 봉사확인증에 도장을 맞고 있었다. 그런 다음 쌍천으로 몸을 씻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는다. 쌍천으로 달려가는 아이들은 하나 같이 야이오이 하는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현수가 부러워하며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현수야, 우리도 빨리 물구덩이 파고 쌍천 가야지.”

 

 

민호가 땀을 닦으며 말하자 현수가 놀란 사람 마냥

 

 

“아 아 알았어.”

 

 

하고 구덩이 속으로 뛰어 들었다. 아직 물구덩이를 발견하지 못한 친구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현수의 눈에는 쌍천에서 괴성을 지르며 물장구치는 아이들만 들어 왔다.

 

 

“잠깐, 저게 뭐야.”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 소리와 함께 아이들은 금방 삽질하여 떠 낸 흙덩이 속에서 꾸물꾸물 지렁이 같은 가는 줄기가 나타나는 곳으로 시선이 딱 모아졌다. 가는 줄기를 형근이가 손으로 훔쳤다. 그러더니 물기가 묻은 흙이 형근이의 손가락에 붙었다. 다음 순간 물이 스며 나오고 있었다.

 

 

“와, 물이다!”

 

 

아이들은 똑 같은 순간 똑 같은 소리를 질렀다. 민호는 다시 한 번 손으로 물이 나오는 곳을 후볐다. 그러자 물이 갑자기 샘처럼 솟아 나왔다.

 

 

“물이다. 물이야.”

 

 

현수가 춤을 추듯 노래하듯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다 만세까지 불렀다.

 

 

“어, 현수가 말더듬이 안하네.”

 

 

오히려 아이들은 물보다 현수를 쳐다보았다.

 

 

“말 더듬는 사람이 노래는 안 더듬는대.”

 

 

형근이가 말하자 모두 와아 하고 웃었다. 현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소리 지르는 걸 딱 멈추고 머리를 갸웃 거리며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그 때 황 선생님이 뛰어왔다.

 

 

“야, 더 파봐“.

 

 

민호가 삽을 들어 물이 나오는 곳을 푹 찔렀다 힘을 주어 흙을 깊게 퍼 내었다. 삽을 들어올리기 전에 물은 이미 구덩이에 흥건히 고여 있었다.

 

 

“됐어. 이 정도는 아주 양호해.”

 

 

언제 왔는지 농촌지도소 선생님이 입이 쩍 벌어진 얼굴로 말했다.

 

 

“3조, 임무 완료!”

 

 

황 선생님이 작업 종료를 선언했다. 3조는 모두 봉사확인증에 도장을 맞았다.

 

 

“와이오이아!”

 

 

민호네 조 아이들이 쌍천으로 뛰어가면 내는 소리가 딱사벌 너른 벌판으로 퍼져 나갔다.

 

 

 

 

3. 가재 골짜기

 

 

쌍천에 먼저 온 아이들은 한바탕 몸을 씻고 옷을 말리고 있었다. 조금 따가울 만큼 한 햇볕이 내려 쬐는 곳에 아이들이 몸을 말리고 있었다. 민호네 조 아이들도 땀범벅이 된 옷을 벗었다. 웃통을 훌렁 벗고 쌍천에 얼굴을 씻었다. 아이들은 먼저 등목을 하다가 시원찮으니까 바지를 입은 채 물로 뛰어 들었다. 물이 예상보다 차가웠다. 하긴 얼마 전까지 달마봉 골짜기에 얼음 눈이 다 녹지 않은 게 마을에서도 보였으니까. 가물어서 예전처럼 많은 물이 흐르진 않아도 쌍천은 군데군데 물이 고여 있는 곳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무릎 깊이 정도 되는 곳으로 달려간 현수가 손짓을 했다.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갔다. 그리고 서로 물싸움부터 시작했다. 얼굴에 물을 맞은 아이들이 어푸어푸 하면서도 친구 얼굴에 조금이라도 물을 더 퍼 부으려고 이를 악물고 물을 튕겼다. 그러나 너무 좁은 곳이라 물 뿌리가 신통치 않자 모두 냇물에 머리를 푹 박았다. 민호가 물속에서 눈을 뜨니 깨끗한 모래알들이 물살에 굴러가는 것이 보였다. 가끔씩 작은 물고기들이 꼬리를 요란하게 치며 도망가기 바쁜 모습이었다. 물 흐르는 소리가 물속에서도 맑게 들렸다. 쌍천의 물은 정말 투명하리만큼 깨끗하고 맑았다. 햇볕의 그림자까지도 물 밑에서 어른거리는 게 보일 정도다.

 

 

이것으로 오늘의 일과는 일단 끝났다. 한바탕 물놀이를 끝내니 몸이 으슬으슬 추워졌다. 민호는 냇가로 나와 벗어 놓은 옷을 챙겼다. 그리고 물에 젖은 바지를 벗어 냇가 옆에 있는 큰 돌멩이 위에 넣어 놓고 말렸다. 속옷은 입은 채 말린다. 모두 다 그러니까.

 

 

아직 작업이 다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좀 있으면 점심시간이다. 작업은 늘 점심시간 전에 끝난다. 점심을 먹으면 그대로 해산이다. 딱사벌에서 집까지는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물론 뛰어가면 한 시간은 안 걸리지만 작업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뛰어 갈 사람은 없다. 지난번 작업 때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쌍천 가에서 놀며놀며 집으로 갔다. 쌍천가에 죽 늘어선 버드나무 밑에서 버들피리를 만들어 놀다가 수초들이 수북한 곳에서 가시고기를 잡느라 놀다가 모래톱에 앉아 모래성을 쌓고 놀다가 그럭저럭 저녁 무렵에 집에 도착하였다. 늘 그랬다. 자연과 더불어 노는 것 외는 달리 놀 것이 없다. 물론 몇몇 친구들은 사이 길로 빠졌다. 생각을 해도 조금은 엉뚱하고 위험하기도 한 곳으로 말이다.

 

 

딱사벌 물구덩이 파기 작업은 끝났다. 많은 아이들이 물구덩이 파는 데 실패를 했지만 이제 작업을 마쳐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김 선생님은 아이들을 집합 시켰다. 쌍천에서 일찍 감치 물놀이하며 쉬던 아이들도 다 모였다. 민호도 자기들 조를 데리고 모였다.

 

 

“자, 수고들 했다. 더운데 고생 많았다. 너희들 덕분에 몇 군데 물구덩이가 나와 물을 푸게 되었다. 딱사벌 논에 너희들이 판 물이 죽어가는 벼들을 살리게 될 거야.”

 

 

김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수고와 감사의 말을 몇 번이나 거듭했다. 농촌지도소에서 나온 직원도 머리 숙여 감사하다고 말했다.

 

 

“자, 이제 해산이다. 점심 싸 가지고 온 사람은 적당한 장소에서 점심을 먹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각자 알아서 한다. 절대로 다른 곳에 가지 말고 곧장 집으로 가길 바란다.”

 

 

민호는 현수를 바라보았다. 현수의 입이 삐죽 튀어나온 것 같았다. 하지만 민호는 살짝 웃어주므로 현수의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현수와 같이 앞산에 칡 파러 가기로 한 것에는 변함이 없다는 표시다.

 

 

점심은 쌍천을 건너 산 아래 마을 쪽 언덕배기처럼 높고 널따란 밭둑에서 먹기로 했다. 밭둑으로 가는 동안 대부분의 아이들과는 헤어졌다. 그리고 이미 칡 파러 가기로 한 아이들이 걸어가는 도중에 자연스럽게 한 무리를 이루었다. 밭둑에 다다라 함께 점심을 먹는 아이들은 5명이 었다. 민호, 형근이, 정훈이, 태영이, 그리고 현수였다. 점심 도시락이야 변변치 않았다. 정훈이만 괜찮게 살아 달걀 프라이도 있고 햄도 담겨 있었지만 나머지 아이들은 흰쌀 보다 보리쌀이 더 많아 보이는 밥에 달랑 김치 몇 조각이 담긴 도시락이 전부였다. 그 중에서 현수 도시락이 더 심했다. 밥이라고 하기엔 정말 뭐한 통밀 삶은 밥이 찌그러진 양은 도시락 속에 헐렁하게 담겨 있었다. 어딜 봐도 반찬은 없고 된장뿐인데 마른 멸치 몇 마리가 된장 속에 섞여 있었다. 아이들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도시락을 서로 펼쳐 놓고 서로 맛있게 나누어 먹었다. 작업을 하고 온 뒤라 어떤것을 먹어도 다 꿀맛이었다. 한참 먹을 나이에 자기들이 먹은 도시락은 부족했다, 덜 찬 배를 채우기 위해 아이들은 물을 꿀꺽꿀꺽 소리 나게 마시는 것으로 대신했다.

 

 

“밥 다 먹으면 곧장 일어나자. 태영이가 지난번 칡을 팠으니까 우린 태영이를 따라 가면 될 거야.”

 

 

민호가 태영이를 바라보자 태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태영이 얼굴에 걱정하는 빛이 살짝 덮였다.

 

 

“태영아, 다음엔 절대 산에 가지 마라. 사람이 잘 들어가지 않는 산은 위험해.”

 

 

태영이 아버지는 태영이가 칡을 파 온 날 태영이를 크게 나무랐다. 태영이 아버지는 옻나무에 조금만 스쳐도 옻이 오르는 체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태영이를 크게 야단쳤던 것이다. 옻이 오르면 손바닥, 겨드랑이 사타구니 같은 연한 피부 부분에서부터 붉은 색 종기와 물집이 번지다가 심하면 온몸으로 퍼진다. 심한 가려움과 열을 내며 얼굴, 목, 입안까지 염증이 번지는 무서운 증상을 일으키는게 옻 중독이다. 빨리 치료하거나 대처를 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도 있다. 체질에 따라 옻이 잘 오르는 사람과 옻나무를 만져도 멀쩡한 사람이 있다. 태영이네 아버지는 옻에 크게 고생한 적이 있어 그 가족들은 절대 산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옻이 오르는 체질을 식구들이 다 갖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영이는 그런 사실을 잘 느끼지 못했다. 이제껏 산이고 들판이고 잘 뛰어 놀았던 것이다. 옻이 올랐다면 잘 뛰어 놀리 없었다. 하지만 태영이가 옻나무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태영이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할 까 숨기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막상 칡 파러 가려고 하니 아빠의 얼굴이 떠올라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현수는 그것도 모르고 태영이의 팔을 끌어 당겼다. 아이들은 일어나 걸었다. 밭둑을 넘어 한참을 걷다 앞을 보니 어느새 청대산이 우뚝 앞을 가로 막고 서 있었다.

 

 

멀리에서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아주 우람하고 높아 보이는 산이다.

 

 

민호가 태영이 옆으로 다가섰다.

 

 

“태영아, 어디로 올라가야 돼”

 

 

“응? 아 저 저기로.”

 

 

태영이가 진땀을 흘리며 말을 흐렸다. 민호는 담방 알아챘다.

 

 

“태영아 무슨 일 있어?”

 

 

태영이가 움칠대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무슨 일이 있긴.”

 

 

민호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얼른 앞장 서 걸었다. 민호는 청대산에 이처럼 가까이 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태영이를 길잡이로 왔지만 생각보다 청대산이 크고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한 생각이 들었다. 민호는 태영이가 가리킨 곳을 향해 계속 걸었다. 잠시 후 본격적으로 산이 시작되는 오르막길에 접어들었다. 사람 하나 겨우 걸을 정도의 작은 오솔길이었다.

 

 

오솔길은 아이들 앞으로 쭉 이어졌다. 한참 걷다 보니 오르막이 끝나면서 산비탈 같은 곳으로 오솔길이 구불구불 이어졌다. 오솔길 옆으로는 뽕나무들이 쫙 늘어서 그늘을 만들었다. 조금 더 걸어가니 좁은 도랑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민호가 훌쩍 뛰어 넘자 모두 쉽게 뛰어 넘었다. 새 소리가 산 위에서 들리고 청대산 아래 들판에서 소 울음소리가 몇 차례 들렸다. 하지만 아까 아이들이 점심을 먹던 곳은 산모롱이에 가려서 보이질 않았다.

 

 

“태영아 많이 더 가야 해?”

 

 

정훈이가 조용하던 분위기를 깼다. 모두 태영이를 쳐다보았다. 왠지 겁을 잔뜩 먹은 표정을 짓는 태영이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다.

 

 

“조금만 가면 돼.”

 

 

민호가 얼른 나서서 말했다. 아이들 시선이 민호에게로 쏠렸다. 민호는 얼른 태영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씩 웃었다. 태영이도 억지웃음을 웃느라 얼굴이 찌그러졌다.

 

 

갑자기 가파른 비탈이 나타났다. 뽕나무 숲은 끝나고 참나무 단풍나무 아카시아 나무들이 섞여서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멀리 보았을 때는 나무가 별로 없어 보였는데 산으로 들어와 보니 웬만한 나무들은 모두 민호보다 컸다. 오솔길은 이제 산길로 바뀌었다. 길이 험해 졌다. 돌멩이들이 불쑥불쑥 나온 길이 걷는데 신경이 써졌다. 한참 올라가는데 갑자기 옆에서“ 꿩!”하고 소리가 났다. 아이들은 깜짝 놀랐다. 장끼 한 마리가 소리를 냅다 치고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비탈을 다 올라서니 내리막이었다.

 

 

오르막을 걷느라 약간 숨을 거칠게 쉬었는데 내리막길을 만나니 거친 숨이 숨어들었다.

 

 

“야, 냇물이 흘러.”

 

 

남들 보다 땀을 많이 흘리던 형근이가 소리치며 뛰어갔다. 골짜기에는 정말 맑은 냇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아이들은 냇물에 얼굴을 씻었다.

 

 

냇물은 얼굴이 조금 아릴 정도로 차가웠다. 정말 맑은 냇물이었다.

 

 

“이 물 먹어도 되지?”

 

 

아이들이 태영이를 보고 말했다. 태영이는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자기는 모른다는 뜻이다.

 

 

“이 산위에 아무도 살지 않으니까 이 물 먹어도 될 거야.”

 

 

민호가 말했지만 아이들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아, 여 여기 조 좀 봐.”

 

 

그 때 현수의 짧은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렸다. 현수는 돌멩이 하나를 손에 든 채 냇물을 내려 보고 있었다.

 

 

“가재다!”

 

 

형근이가 물속에 손을 집어넣으려고 했다.

 

 

"잠깐“!

 

 

민호가 소리를 쳤다. 현수가 들어 올린 돌멩이 밑에 있던 가재는 웅크린 채 두 집게발을 모으고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가재 잘못 잡다가 물려. 얼마나 아픈지 아니?”

 

 

민호는 가재의 뒤쪽으로 손을 뻗혀 재빠르게 집어 올렸다. 민호 손에 잡힌 가재는 커다란 집게발을 좌우로 휘어 저었다. 민호는 절대 집은 손을 놓지 않았다. 가재는 물으려고 뒤꼬리를 파닥거리며 집게발을 더욱 요란하게 흔들었다.

 

 

“으와. 저 정말 무 물리면 크 큰일 나 나겠다.”

 

 

현수가 겁이 잔득 난 목소리로 말했다.

 

 

“태영아, 너 도시락 꺼네.”

 

 

태영이가 얼른 빈 도시락을 가져왔다. 민호는 한 손으로 도시락에 물을 반쯤 담았다. 그리고 한쪽 손에 잡은 가재를 도시락 속에 놓았다. 도시락 물속에 들어간 가재는 꼬리를 뒤로 재끼면서 빠르게 움직였다.

 

 

“가재가 이렇게 뒤로 빨리 움직이는 줄 몰랐어.”

 

 

아이들이 신기한 듯 눈을 둥그렇게 뜨고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정현이가 나서며 말했다.

 

 

“가재가 앞으로가는 건 대부분 먹이를 잡으려고 할 때고 이동하거나 위급할 때는 뒤로 재빨리 움직여.”

 

 

아이들이 다 우- 하고 정훈이를 쳐다보았다. 도시락 물속에 들어간 가재는 이제 조용해 졌다.

 

 

“여기 가재가 많은 가봐. 우리 가재부터 잡고 가자.”

 

 

아이들이 모두 가재를 잡자고 했다. 민호는 아이들에게 가재 잡는 법을 잠깐 말해 줬다.

 

 

“가재가 있는 곳은 바위틈이나 돌 밑이야. 또 작은 돌이 쌓여 있는 곳에도 있어. 물살이 너무 센 곳보다는 천천히 흐르는 곳에 많아. 잡을 땐 아까 내가 잡던 방법으로 잡아야지 물리면 무지 아파. 조심해.”

 

 

아이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돌을 뒤집기 시작했다. 물을 담은 도시락을 냇가 옆에 놓고 모두 바지를 걷고 냇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여기저기서 가재다! 하는 소리가 연방 터져 나왔다. 이 골짜기에는 정말 가재가 많은 것 같았다. 아이들 도시락에 가재들이 하나 둘 늘어가더니 잠깐 사이에 세기도 힘들 만큼 많은 가재를 잡았다.

 

 

“아야!”

 

 

갑자기 형근이가 소리쳤다. 형근이는 가재에 물린 팔을 올려들었다. 새끼손가락을 물고 대롱대롱 매달린 가재가 보였다. 형근이는 아파서 팔짝팔짝 뛰었다. 아이들이 깔깔 웃었다.

 

 

“얼른 물에 잠궈.”

 

 

민호가 소리쳤다. 형근이는 다시 손을 물속에 넣었다. 형근이 새끼손가락을 물던 가재는 물을 만나자 형근이를 놓아 주고 뒤로 재빠르게 달려가 큰 바위 밑으로 숨었다.

 

 

“ 남 아파 죽겠는데 웃긴.”

 

 

형근이는 투덜대었지만 얼굴이 환하게 피었다. 아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가재 잡는 기술이 늘어났다. 요란하게 떠들며 가재를 잡던 아이들이 이젠 느긋한 모습으로 가재를 하나 둘 잡기 시작했다.

 

 

민호가 가재를 재미있게 잡는 태영이 옆으로 갔다.

 

 

“태영아, 말해 봐. 뭐 말 못하는 게 있지?”

 

 

태영이는 처음에 머뭇거리다가 민호가 다정하게 대하자 옻나무 이야기를 꺼냈다.

 

 

“난 또 뭐라고. 걱정 마, 내가 옻나무에 대해선 잘 알아. 나만 따라다녀.”

 

 

“넌 옻을 어떻게 알아? 또 가재 잡는 법도---.”

 

 

“응 그건 내가 어렸을 때 강원도 화천 깊은 산골에 살았던 적이 있어. 그 때 우리 집에서 함께 일하던 형이 있었는데 그 형한테서 배운거야.”

 

 

태영이 얼굴이 금새 환하게 밝아졌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태영이의 모습이었다. 태영이는 훌쩍 일어나더니 냇물로 첨벙 들어갔다. 태영이의 가재 사냥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모양을 보고 민호는 빙그레 웃었다.

 

 

민호는 골짜기 위를 쳐다보았다. 골짜기는 위를 향해 구불구불 뻗어 있었고 골짜기 사이로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민호는 골짜기를 타고 올라가면 정상이 나올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왠지 골짜기를 타고 가면 또 다른 세계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민호는 골짜기 냇물을 딛고 몇 걸음 걸어 위로 올라가 보았다. 아이들은 민호가 가는 걸 알지못했다. 가재잡기에 정신이 팔려 누굴 볼 사이가 없었다. 골짜기가 휘어지는 곳에서 민호는 잠시 서서 귀를 기우렸다. 골짜기의 냇물이 끊임없이 재잘거리며 흘러내렸다. 민호는 분명 다른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 몇 걸음 더 나아갔다. 골짜기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고 냇물을 더욱 차갑게 발목을 간지럼 주고 있었다. 산그늘이 골짜기를 어둡게 했다. 아이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모든 소리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민호는 갑자기 혼자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