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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2012년 [수필-최선희] 하루와 같은 人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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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936회 작성일 13-01-0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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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밤은 새벽이 다가 오면서 희미하던 빛은 오늘을 낳기 위한 진통을 겪는다. 차츰차츰 밝아져 드디어 동이 트는 밝은 햇볕이 지구를 품으며 오늘이 태어난다. 태어난 오늘은 아름다운 향을 마시며 따스한 봄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구름이 덮어버리기도, 빗속에서 갈팡질팡하기도, 퍼붓는 눈 속에서 덜덜 떨기도, 휘몰아치는 태풍에 따귀를 맞고, 태어난 오늘을 후회할 때도 많다. 알록달록 먹음직스러운 과일들이 입속에 침을 만들어주며 유혹하는 고마운 오늘도 많겠지. 소원성취로 행복이 넘치는 즐거움과 슬픔의 불행이 뒤범벅이 되며 오늘은 간다. 그 힘들거나 고마운 오늘은 영원하지 않고 끝이 있다. 다양한 희비애락을 다 겪고 드디어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저녁시간이 비틀비틀 갈 곳을 더듬어 찾아와 어둠속으로 안내하여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해가져 어두워지기 전에 마무리준비에 신경을 써야 되겠지.

 

 

다음날은 날짜가 다른 또 내일이 계속 이어지듯 인간도 세대가 다르게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인간이 어두운 엄마뱃속에서 진통을 겪으며 밝은 세상으로 태어나 일생의 첫발을 내딛는다. 하루가 새벽의 태양을 맞으며 시작되어도 어두운 밤을 각오하듯이 행복과 불행을 주무르며 인생은 어느새 해질 무렵이 찾아온다. 누구나 각자 자기의 팔자소관의 길고 짧음은 모두 다르다. 부모, 형제, 자녀들은 출생의 순서가 있지만 영원이란 어둠을 찾는 순서는 지켜지지 않는다. 마음대로 안 되는 예의 없는 마무리가 가슴을 치게 하지. 예측도 못하고 욕망과 믿음으로 오늘이 가듯이 그냥 따라간다. 태어나는 날은 짐작하여도 인생의 끝 날은 삶의 욕심이 갖고 있다.

 

 

그러나 서쪽으로 기우는 자기의 모습은 준비의 심리를 받아드린다.

 

 

어느새 나도 알고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옷장속의 나이 먹은 옷들이 보따리로 싸여야하고 오래된 작은 검은 자개장도 무늬가 멋있다고 아꼈지만 속을 텅텅 비웠다. 서실의 책꽂이 정리는 몇 주일동안 준비하여 끈으로 묶여진 삼십여 개의 책 묶음이 되어 바닥에 산더미처럼 쌓였다.

 

 

단기4289년 초등학교 앨범은 손바닥만 한 두꺼운 종이 여섯 장의 사진첩이다. 학교 전경, 교직원, 6학년 1반과 치마저고리의 한복 차림으로 순진하고 착한 2반 여자 친구들의 단체사진이었다. 코는 잘 닦고 찍었는지 모두 바르게 앞을 보고 누런 졸업사진 속에 앉아있다. 가장 나이가 어린나는 맨 앞줄 가운데 김선영 담임선생님 옆에 얌전한 표정만 보이고 있구나. 사진속의 다른 친구들은 얼굴도 이름도 희미하여 지금의 주름투성이 얼굴에 굽어진 허리만 상상하며 아쉬움만 달랬다. 초등학교 친구들은 60여년이 가까운 흐름 따라 졸업사진첩이 사라져 모두 없단다. 복사를 해서 다음 모임기회에 나누어 주며 추억을 더듬어 어린 시절의 용기를 되살려 주어야지. 몇 명 남지도 않았지만. 더 어두워져 볼 수없는 인생의 마무리 되기 전에…….

 

 

다른 여러 권의 사진첩들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떠나고, 낯설어지고, 다시 보고픔이 불필요한 사진들을 모아 사분의 일 조각을 내어 검은 비닐집 속에 영원히 숨기니 꽤 배가 퉁퉁하고 무게를 잡았다. 아쉬움보다 냉정한 마음으로 한 가지 한 가지 정리는 되어간다.

 

 

55년 전 중학교 3년 개근상품으로 받았던 학교 직인 빨간색이 콱 찍힌 실용사전(국,한,영)이며 대학교 다닐 때 돈이 없다고 안 살 수가 없었던 두꺼운 교과서 영양학 등 누렇게 변한 여러 권이 시험 공부하던 흔적을 보여주었다. 육십 년대 초 서울에서의 2원50전 전차비 아끼느라고 제법 먼거리를 걸어 다니던 힘들었던 학창시절을 되돌아가 더듬어보며 주름진 얼굴에 쓴 미소를 만들어주는구나. 책들의 아까움보다 그때 그 추억을 묶어 버리게 됨에 세월이 벌써 이렇게 제멋대로 가버렸단 말인가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자녀들에게 맡길 수도, 물려줄 필요성도 없는 모든 자취들이 제법 많음을 느끼며 오늘이란 날들이 모인 수많은 날들을 후회 없는 추억으로 가슴에 얼마나 안고 오늘을 맞았는가? 나도 모르게 오늘이 슬쩍 다가와 점점 어두워지는 저녁노을을 만난 것 같다고 핑계를 대고 싶다. 아직은 힘이 좀 남았으니 마음의 보따리는 아주 조금만 싸고 불필요한 손 떼들만 정리해야 되겠다는 욕심을 부리며 용기를 갖는다. 몇 십 년 된 이브자리며 불필요한 그릇들을 정리 해 박스에 담아 그동안 수고했다며 마당구석에 며칠 쉬게 하였다.

 

 

고물들을 다른 곳에서 더 살려줄 트럭이 업으러 온다는 약속을 하였으니까.

 

 

정리하면서보니 정말 낡아빠진 그들이 많았다. 너도 나도 구질구질하지않게 정리하며 간단하고 깨끗한 준비가 되어야 하겠다. 몸과 마음에 무거움을 걸치고 훨훨 날며 신나게 살 수는 없다. 섭섭한 마음 없이 당연하고 홀가분한 가벼움은 어두운 저녁노을이 한발두발 재촉해도 뒷걸음치지 않고 받아드리겠지. 차츰차츰 준비는 되어가고 있으니까. 섭섭한 가슴도 살살 달래며 다독여주어야지. 배부르다고 나이 안 먹을 수 없고, 흉하다고 주름살 못 오게 할 수도 없고, 멀고 험한 길 안가겠다고 영혼이 발버둥 칠수도 없지 않은가. 아마 태어날 때 서약서에 지장을 찍고 삶의 허락을 받았겠지. 석양의 밝은 빛 뚝 떨어지기 전 하루같은 일생의 보따리정리도 굳은 각오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