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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2012년 [수필-최선희] 믿음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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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825회 작성일 13-01-04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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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넓은 지구 덩이 속. 바다건너 산 넘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각각 다른 이름표를 붙인 나라들이 많다. 아직도 생김새와 언어가 다른 알리지 못한 소규모 나라를 비롯하여 수많은 크고 작은 국가들이 온 세계에 퍼져있다.

 

 

모두 자기네 선조들이 자리잡아준 땅위에 앉아 조상님들이 시초로 마련해준 신앙을 마음에 담아 진심으로 믿으며 의지하고 사는 백성들이 대부분이라고 본다. 각국의 터 잡은 종교들도 문화의 변천과 이웃국가들의 전염에 의하여 다종의 종교가 침범해 마음의 갈피가 흔들린 민족의 뿌리도 점점 많아진다. 신종의 종교를 나름대로 창조하여 몸과 정신을 쏟아 유혹하면‘ 정말 인간의 삶에 도움을 준다면’ 하고 삶에 허우적거리며 사는 연약한 마음은‘ 정말 그렇겠구나!’ 믿고 빠져보는 신앙심도 많다고 한다.

 

 

어느 민족이나 인간의 심리상태는 비슷하겠지. 행복하게 삶을 영위하고 싶고 일생을 마감 후 저 세상도 있어 그곳에서도 행복 할 것을 부탁하고자 믿음에 도취 해 본다. 내가 몸담고 살아가는 우리 민족도 마찬가지다.

 

 

처음 조상이 생겼을 때는 가신 부모님의 아쉬움과 예의에 이것저것 준비하여 돌아가신 날 영혼만이라도 집을 찾아오실 것이라고 믿으며 음식을 차려 제사를 올리는 조상님숭배 정성이 유교사상의 출발이 아닌가 싶다.

 

 

오늘날 까지 꾸준히 이어지는 조상의 믿음. 그 영혼을 정말 본 후손들이 있을까? 꿈속이나 무속인들 마음의 믿음으로 보일 수 있겠지. 조상님들의 믿음도 후손들의 효심과 우리를 이어준 감사의 보답이며 정이라고 생각한다. 희미해가는 선조님의 믿음도 점점 방향이 타 믿음의 종교로 옮겨져 유교사상은 좁아지고 하나님, 부처님을 주로 믿으며 서낭당이나 무신 등 수 없이 많은 신앙들이 인간의 삶에 도움을 주려고 창조되어가고 있다.

 

 

글쎄! 어느 신앙이 참 믿음을 주며 생존과 사후의 효능에 고마움을 느끼게 할지는 믿는 자만이 만족하고 의지하면 그것이 좋은 결과이겠지. 신앙의 믿음은 자유이니까. 종교에 관심이 부족하여 무식한 생각으로는 하늘에는 태양과 달, 별,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만 보일뿐이다.

 

 

나는 병원에서 심장 대 수술을 받으며 3주 가까이 입원을 한때가 있었다. 혈관의 지혈이 되지 않아 의사선생님들이 이틀 동안 주야로 혈관을 눌러 주어야하는 고통을 받았다. 그중 한 의사선생님이 누워있는 나에게 물었다.

 

 

“혹시 믿는 종교가 있으세요?” 나는 싱긋이 미소 지으며“ 나는 내 자신도 믿지 못하는 바보이기 때문에 종교가 없어요. 아마 내가 신앙심이 부족하여 이런 고통을 당하는가 봐요.” 대답을 하니“ 저도 종교가 없어요. 결혼을 하기위해 천주교 신부님을 한번 찾아 명단을 올리고 결혼허락을 받고는 다시 안 갔어요. 믿음이 안가요.” 나의 부족한 종교심에 위안의 대답인줄은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이 꼭 어떤 혜택을 바라고 유교나 불교 기독교 등 종교의 품속만 따뜻하다고 믿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 믿음으로 내 마음을 안심시키고 만족하고 의지하는 마음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에게 많은 위안과 도움의 정신을 주리라 생각한다. 성경과 불경에 무식한 무신론자의 답답한 마음이겠지. 하늘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의 기독교만 있으면 될 텐데 왜 비슷한 여러 교회로 나누어져야하는가? 기독교인이나 천주교인이 아니라도 하나님동상이나 밤에 보이는 빨간불의 십자가를 보면 마음이 침착해지며 예수님께 하소연하고 위로를 받고 싶은 기도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나를 낳아 길러주시고 삶에 기둥이 되어주신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뒤 부처님이 계시는 절에서 49일을 스님이 기도해 주시면 어머니의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간다는 주변 분들의 인도를 받아 영혼이라도 편안하기를 빌어드렸다. 무조건 믿어야 할 텐데 나는‘ 정말 부처님이 스님의 불공을 받아 좋은 곳으로 보내주셨을까? 의심하면서 믿으려 노력을 하였다. 볼 수도, 연락도 없이 땅속에서 깊은 잠만 주무시는 어머니. 영혼도 보이지 않고 상상만 할뿐.

 

 

어느 날 큰딸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낙산사 홍련암 가서 연등 좀 달아주세요.” “ 석가탄신일이 며칠전에 지났는데 지금 무슨 등을 달아?” “ 범준이가 작년 4학년 때 전국 수학경시대회에서 우수상밖에 못 받아 계속 마음이 꺼림칙해요. 대상을 받아야 되는데, 지금이라도 등을 달고 싶어요. 올해는 제 실력을 발휘하여 최고점을 받게 하고 싶어요.” ‘ 그만하면 아주 잘했는데…’ 중얼거리며 “ 알았어.”

 

 

다음날 낙산사 바닷가 언덕길을 걸어 홍련암에 지각 연등을 신청하였다. 며칠 후 손자의 과학, 수학 전국 경시대회가 있으니 3일 기도까지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사랑하는 손자의 중요한 시험이기에 나는 법당의 부처님 앞에 앉아 스님의 불경기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며 절을 따라하다가 그래도 부처님께 공손히 부탁을 하였다.

 

 

‘우리손자 모르는 시험문제 부처님께서 잘 풀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정말 겸손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의지하고 믿고 싶었다. 동상으로 만들어 앉으신 부처님 앞에 스님은 목탁소리를 내며 중얼중얼 불경 책을 다 외우며 기도하신다. 아무것도 모르며 앉은 나, 정말 부처님의 몸과 마음이 있다면 나를 얼마나 안타까워하실까? 그래도 용서를 빌고 싶었다. 믿고 싶었으니까.

 

 

시험을 끝내고 나온 손자 엄마 눈 마주치며“ 엄마! 나 시험 보던 중 오늘시험은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끝냈어요.” 하며 기분 좋아 하더라는 딸의 보고 전화였다. 2주후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자마자 인사도 없이

 

 

“엄마! 지금 연락받았는데 범준이 지난번 시험 너무 잘 봤데요. 전화가 와서 받으니“ 김범준 과학 경시 전국대상입니다. 축하합니다.”하기에 두근대는 가슴을 억누르며“ 교수님! 그럼 오후에 본 수학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물으니“ 수학요? 잠깐만요.” 하더니 1분쯤 후에“ 아니 김범준이 수학시험도 보았네요. 수학도 김범준이 대상인데요. 와 ~ 정말 천재아들이군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전화 받은 엄마 너무 기뻐 아들에게 빨리 알리고 싶어 학교로 찾아가니 마침 운동장에서 제일 못하는 체육수업을 하고있었다. 살짝 불러

 

 

“야! 너 경시대회 과학, 수학 모두 대상이라고 연락 왔어.” 말을 해주니“정말이에요? 문제들이 쉬웠어요.” 그저 무뚝뚝한 표정. 귀가한 아들 집에 들어오더니“ 엄마! 할머니가 절에 가셔서 등 달아주고 기도도 해주신 덕분인가 봐요.”“ 너 실력은 아니고?” 열두 살 먹은 어린애가 실력이 아닌 부처님에 대한 불심을 더 믿는다는 말인가? 물론 더 자라서 종교의식에 실력을 받으면 이해를 하겠지.

 

 

부처님의 믿음일까? 할머니기도의 고마운 진심이겠지. 그런데 아직 시상식도 있기 전 여름방학이라 외가에 왔다. 이튿날 해수욕장 가는 길에 낙산사 홍련암 들러보려고 언덕을 내려가는데 기도를 마치고 올라오는 젊은 스님이 알지도 못하는 범준이의 손을 잡으며“ 안녕?”하고 지나침에 너무 고맙고 감격스러웠다고 한다. 관광 온 다른 아이들은 그냥 스치면서….

 

 

누구나 급하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고 하였다. 종교를 택하는 것도 자유,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도 자유이다. 문화의 변화에 따라 종교의식도 많이 변해 믿으며 의지하려는 종교인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종교의 믿음에 전심전력을 다하는 모든 분들에게 자비로우신 따뜻한 손길의 도움이 되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