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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2012년 [수필-최선희] 교단 위보다 힘든 밭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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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802회 작성일 13-01-0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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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봄이었을까? 아니면 천천히 오라고 두 팔로 밀어내고 있던 봄이었을까? 어떠하던 봄은 그 어떤 부탁의 눈치도 없이 제 멋대로 찾아온 것이다. 농부들을 힘들게 하려고 온 것 같아 미숙 농부는 걱정이다.

 

 

그러나 멋없던 맨땅에 녹색 매트를 깔아주고 앙상하던 나뭇가지에 새로운 봄옷을 입혀줘 더욱 정감이 간다. 매일 누구의 생일이거나 어버이날, 스승의 날로 착각 아닌 즐거운 날로 이어지고 싶은 욕심을 부리나보다. 자랑으로 가지각색의 예쁜 꽃들을 볼 것 없던 구석빼기까지 송이송이 꼽아 주어 고마운 미소를 짓게 하니까. 보이지 않는 공기 속을 뚫고 휘저으며 꽃들과 풀잎의 향긋함이 가슴속을 부풀려주고 웅크렸던 어깨 죽지를 슬며시 제자리로 편히 앉혀주는 봄은 왔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봄, 반가운 포옹은 하였지만 나에게는 걱정 한 짐 지고 비웃음을 주고 있다. 손을 끌어 밭 언저리에 세워놓고 5년째 접어든 집 옆의 넓지도 않은 텃밭의 농사일에 계획표를 작성하란다. 네 번의 실패까지는 봐주었지만 올해의 실패는 소문을 내 주겠단다. 그러나 또 막막하다.

 

 

작년 달력에 체크해놓은 일기를 다시 찾아보며 알맞은 시기를 놓치지 않고 실수 없이 농사에 임 할 것을 다짐은 하면서 또 걱정이 되며 자신감이 도망갈 것 같다. 해야 할 일의 순서와 기술은 해마다 아주 약간씩 향상되었다하더라도 체력이 방해를 놓아 의욕상실의 심술꾸러기가 되고 있다.

 

 

학교교단을 내려와 농사에 무식한 부부가 텃밭을 마련하여 밭고랑에 취직하였다. 동네 주변 밭을 곁눈질로 훔쳐보며 호미자루 들고 엎드려 헤매고 있다. 집 앞을 지나는 농부 아저씨의 가르침을 받으며 다종의 곡식을 심고 가꾸는 자유스러운 흙바닥에 주저앉아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농사 시작 5년. 하지만 자격증 없는 농사란 쉽지 않고 지나는 사람들의 현장 웃음거리와 실패에는 호미자루가 흔들거렸다. 한편 신기하고 기특한 보람의 감동을 받을 때는 꼭 내가 잘한 농부인 냥 뽐내고 싶기도 하다.

 

 

씨앗을 뿌려놓고 벌써 그 이튿날 싹이 트이나 들여다보고 싶고 며칠 지나 씨앗 속에서 아기가 흙 위의 세상구경에 눈을 뜰 때는 너무 반가워 가족들에게 소리쳐 소식을 전한다. 반갑고, 용기를 주고, 신기해서.

 

 

가뭄의 방해나 비료를 잘못주어 모종들이 호흡곤란으로 비실거릴 때는 물을 먹이며 꿇어 엎드려 용서를 빌고 싶다. 물론 힘들지만 연금이 모자라 시작한 농사는 아니다. 농토도 준비되었고 우리 부부 힘으로 가꾸고 결실의 즐거움과 경제적 보탬도 되고 자식들과 친지들에게 무 한 뿌리 고구마 한 톨씩이라도 나누면 가슴이 뿌듯하다. 밭고랑에 주저앉아 당근 뽑아 장갑에 썩썩 문질러 아작아작 씹어 먹는 맛은 어느 과일보다 맛있고 영양섭취에 만족한다.

 

 

농사기술을 배워가는 과정은 실수를 몇 번 거쳐야만 중위권 점수를 받게 된다. 알맞은 시기에 씨앗도 뿌리고, 잡초의 무단침범을 막기 위해 비가 온 후 땅이 젖었을 때 즉시 비닐을 씌워 모종도 하여야된단다.

 

 

시시때때로 제멋대로 퍼져나가는 밭고랑과 주변의 풀과의 전쟁에서 이기려고 풀을 뽑다보면 손톱 밑에 예쁘지도 않은 시퍼런 잡초물이 들어 예쁜 매니큐어 바른 숙녀의 손을 웃기게 만들어 놓는다.

 

 

여름 태양의 힘을 빌려 쑥쑥 자라는 곡식과 채소들 너무 고맙고 힘을 실어준다. 고추 대에 의지하여 조롱조롱 열리는 고추, 나이 먹으면 더 예뻐지는 빨간 고추. 점심시간 밭에 나가 상추, 쑥갓 싱싱한 갈피 솎아 입에 쏙쏙 고마움 느끼고, 토마토 따다 주스 만들어 목구멍으로 넘기는 간식은 가족 몸에 고마운 비타민을 선사한다.

 

 

콩 씨를 심고 며칠간 비둘기와 숨바꼭질하여 이겨야하고 콩꼬투리가 생길 때는 새벽 일찍 고라니란 놈 잘 지키거나 밭 변두리에 망을 쳐 침범을 막아 콩꼬투리를 빼앗기지 말아야한다. 콩을 잘 보호해야 번쩍번쩍 윤나는 검은 콩은 우리가족에게 영양섭취를 책임져 준다. 들깨를 추수해 재래식 기름집에서 짠 구수함이 퍼지는 기름병을 주방에 데려올 때 마음 정말 흐뭇하다. 그러나 호미자루에 힘주어 고구마 집안을 구석구석 뒤져보아도 고구마 덩이 몇 개 겨우 찾고 텅 비었을 때는 팔에 맥이 빠져 그냥 밭에 주저앉아 마음 편히 재미있고 공부가 되는 책이나 읽고 싶다. 봄, 여름 동안 헛수고의 억울함을 잊으려고.

 

 

때로는 괴롭기도 하다. 농사의 결과가 나를 약 올릴 때는 그냥 연금 푹푹 쓰며 여행이나 다니고 농산물 사먹으며 편히 지낼 걸 괜히 사서 고생하고 비웃는 태양에 얼굴과 손등만 시커멓게 만들어 놓았다고 혼자 투덜대며 후회도 해 보았다. 하지만 점심시간 반찬 준비 부실할 때는 싱싱한 부추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 밀가루와 짝 맞추어 달걀에게 조화를 부탁하여 부침이 몇 조각 냄새를 피워 뜨거움 홀홀 불며 젓가락 대신 기름 묻은 손으로 찢어 먹으면 별식의 점심한 끼가 심술스럽던 마음도 후련하게 풀어준다.

 

 

날씨에 따라서도 농사의 즐거움보다 대처방법을 몰라 절절 맬 때도 많다. 새벽부터 배추밭의 방해꾼 벌레를 잡아주어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김치를 먹고 싶지만 4,50포기 벌레 잡기는 오히려 벌레한테 당하는 겪이라고 전문가 농부들의 충고말씀이다. 잘못하면 퍼진 배추포기 묶어줄 때 예쁜 머리띠 묶어 장식하면 그 속의 연한 속살 벌레가 숨어 잘 먹고 잘 살아 빼앗긴 빈 털털이 집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살충제를 뿌리고 잘 씻어내면 괜찮다는 이론과 실제의 교육을 받아가며 이해하고 따라 배우게 된다.

 

 

더욱 억울한 게 고추농사의 탄저병 침범이다. 첫해 고추는 많이 열리지 않아도 깨끗하게 따서 태양에 잘 말려 마음 놓고 김장을 담갔다. 다음해 익은 고추도 몇 번을 아무 이상 없이 땄는데 끝 무렵에 이상하게 고추에 헌데딱지가 생기며 며칠사이에 확 퍼진다. 자꾸 따 버려도 안 된다.

 

 

지나는 농부아저씨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아직 고추의 탄저병도 모르냐고 놀리며 비웃었다. 첫해는 새 흙이라서 균 침범이 없었지만 한번 오면 계속 탄저병이란 전염병균이 쳐들어와 휩쓸어 헛수고가 되니 미리부터 살충제를 치지 않으면 고추 한 근도 추수가 안 된단다. 그래서 약치는 방법도 배우고 내 가족 입에 넣을 고추에 꺼림직 하지만 할 수 없이 농약을 뿌리고 빨갛고 큼직한 잘 생긴 고추들을 트리오 물에 깨끗이 목욕을 잘 시켜 낮에는 베란다에서 뜨끈뜨끈한 태양의 도움을 받고 밤이나 흐린 날은 방안의 전기 매트에서 뒤척이며 건조를 시켰다. 내가 직접 경험 해 보니 유기농이란 믿음이 안가고 정말 힘들다.

 

 

모든 농산물을 돈 주고 사 먹을 때는 눈치도 없이 모두 유기농이라면 무조건 믿으며 쉽게 생산된 곡식과 채소로 알고 체면 없이 한 움큼 더, 한 개 더, 달라고 떼를 썼던 내가 미안하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농사는 정말 어렵다. 농부들에게 전문기술자격증이라도 주어야 한다고 호소하고 싶다.

 

 

봄, 여름, 가을 힘들여 일하는 고달픔은 우리가족, 자식들에게 나누어 먹는 보람에서 오히려 내년에는 더욱 실력발휘와 열심히 노력하여 부자같은 농부가 되어야겠다고 다짐도 해 본다.

 

 

가을 추수 마무리 끝나면 그동안 밭에 주저앉아 절절매며 쌓은 경험과 느낌, 일기로 메모된 농사의 즐거움과 실망, 보람들을 정리하여 시 몇 편을 끼워 수필집 3집을 준비하는데 도움을 청해야 되겠다. 좋은 자료가 되었으면 좋겠다. 시간도 없고 피곤하다는 농사 핑계로 책읽기도 미루어지고 원고쓰기도 소홀해져 머릿속에 꾸며진 문장들이 자유분방 되어 밖으로 나가 놀려고 한다. 지나고 보니 교단 위가 밭고랑에서 해매는 것보다 쉬웠던 것 같다. 그래도 경험을 살리고 열심히 배워 힘내야지. 제법 잘하는 농부가 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