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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2012년 [수필-서미숙] 그리움으로 벗어 던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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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300회 작성일 13-01-04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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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가슴속에 늘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멋진 남자가 있다.

 

 

그는 늘 인자한 모습으로 나를 그윽하게 바라보았고 어린 내 눈에는 그가 늘 멋있었다.

 

 

그는 항상 깔끔한 옷차림이었고 양복이 잘 어울리는 남자였고 집을 참 잘 고치는 만능 재주꾼이었다. 늘 하얀 운동화를 신고 다녔고 몸은 날렵했다. 얼큰하게 취하는 날이면 그는 주머니에서 땅콩을 한줌씩 꺼내주었고, 어떤 날에는 내손에 맛난 센베 과자봉지를 쥐어주었다.

 

 

가끔은 집안 뜰에서 채송화도 키우고, 여러가지 채소를 가꾸는 그의 등 뒤에 매달리기도 하고, 어깨에 기대어 잔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잠이 들기도 했다.

 

 

저녁어스름 해가 지는 시간이면 그가 연주하는 기타소리와 노래소리를 들으며 내가 원하는 노래를 신청하기도 했다.

 

 

배가 아프면 배를 살살 문질러 달라고도 하고 업어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말 한마디 없이 그는 나의 아픈 배를 살살 문질러 주고 그리곤 등을 내주곤 했다.

 

 

또 가끔은 그의 손을 잡고 영화도 보러가고, 가끔은 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이것저것 사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유난히 손재주가 남달리 뛰어나 집안의 모든 수선은 그가 했고 부서진 내 책상다리도 고쳐주고 가끔은 동네의 부서진 모든 기물들도 무료로 고쳐주고 그의 것도 나누어 주기도 했다.

 

 

남의 부탁을 거절을 잘못해서 주는 대로 독한 진달래 술을 먹고 길거리에 쓰려져 있는 바보 같은 모습을 내가 부추겨 오기도 하고 그러는 그가 죽을 까봐 동네 아주머니한테가 녹두죽을 쒀달라 떼를 써서 살려내기도 했다.

 

 

전축을 틀어놓고 혼자 노래를 따라 부르면 나는 그의 발등에 올라가 그의 배에 매달려 부르스를 추기도하고 같이 손을 잡고 춤추자고 부추긴적도 꽤있다.

 

 

또 동네잔치가 있으면 손목을 억지로 잡아끌어 구경 가자 하기도 하고 앞자리에 앉고 싶다고 억지떼를 쓰고 어른이 신는 뽀족 구두(요즘 하이힐)을 사달라고 해 어린이용 뾰족구두를 맞춰 신고 절뚝거리며 신고 다닌 적도 있다.

 

 

그 멋진 남자는 나의 아버지시다. 내 가슴속 한 켠에 담겨져 있는 그 멋진 남자가 생각난다.

 

 

계절 중 4월이 오면 유난히 아버지가 생각나고 그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끔은 베개를 적시며 울기도 하고 지금은 아버지를 위해 기도 하며 잊으려고 애쓰고 있다.

 

 

예전만큼의 그리움과 애달품은 아니지만 어김없이 4월이 오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아버지를 너무도 그리워한다.

 

 

속초의 4월 어느 날에 어김없이 봄은 찾아왔다. 설악산 입구에도 만발하게 핀 벚꽃들이 겨울의 눈꽃만큼이나 눈이 부시다.

 

 

그림도구를 챙기고 거리를 낭만에 젖어 달려간다.

 

 

하늘의 푸르름과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설악산을 겨울에는 눈으로 그리고 봄에는 벚꽃으로 이 거리를 여행한다. 봄빛이 참 아름답고 푸르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 서정주님의 푸르른 날이 생각났다.

 

 

오래전 이렇게 봄빛이 푸르른 날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신록이 넘치고 온통 도시가 새 날개 돋음을 하고 새로운 기상들 속에 꽃들이 숨을 쉬는 이 눈이 부시도록 푸르른 날에 그는 먼 길을 가셨다.

 

 

아버지는 유난히 벚꽃을 좋아하셨다.

 

 

살아생전 벚꽃놀이는 몇 번이나 가셨을까?

 

 

딸이면서 한 번도 헤아려 보지 못했다. 오늘 설악산 입구에 북적거리며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더 아파온다.

 

 

속초의 이 아름다운 설악산 구경도 못시켜 드렸는데 진즉에 이곳이나 모시고 와 볼 것을 후회가 되었다.

 

 

점점 더 많아지는 인파를 보니 마음이 심란해 졌다

 

 

그림을 다 그리고 일행들과 짐 보따리를 싸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차가 밀렸다. 벚꽃구경 인파때문에 밀리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도 빨리 그 인파 속을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죄스러운 마음이 앞서고. 후회의 소리가 나의 뇌리 속 전율이 더 울리는 것 같아서였을까?

 

 

집에 돌아오니 이 생각 저 생각에 무리를 한 탓에 저녁 내내 온몸이 신열이 오르고 아팠다.

 

 

고등학교 2학년 때도 이렇게 심하게 앓았었다. 그날도 이렇게 4월이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열이 39도 8분으로 오르고 있는 내 이마를 짚고선“ 오뉴월에는 개도 감기 안 걸린다.”

 

 

봄빛에 감기가 걸려 끙끙 앓고 있는 딸에게 미움 반 안쓰러움 반으로 아버지는 야단을 치셨다.

 

 

그 전날 친구들과 창경원 벚꽃놀이를 하며 돌아다닌 탓에 감기가 걸려버린 것 이었다.

 

 

밤이 늦도록 야경속의 벚꽃을 구경하느라 걸린 감기였다.

 

 

난 그날 얇은 교복을 입고 화실에서 그림을 오래도록 그리다가 늦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적지 토해내지 못한 나만의 비밀이었다.

 

 

그 열에 학교도 못가고 누워있는 나에게 던진 아버지의 말씀

 

 

“오뉴월에는 개도 감기 안 걸린다.”

 

 

‘내 잘못을 아셨을까?’

 

 

‘내 거짓말을 아셨을까?’

 

 

연신 오뉴월을 말씀 하셨던 아버지한테 난 그 아픈 와중에도“ 지금은 오뉴월이 아니야 오뉴월이 아니야” 했단다.

 

 

그래 그때는 기온 차가 심했던 4월이었으니까.

 

 

창밖의 4월이 향이 짙어지던 날 라일락꽃이 화알짝 피고, 목련이 거리마다 어우러져 피던 대낮에 열병을 앓았던 난 꼭 이맘때가 되면 그 뜨거운 이마를 짚어주시던 아버지의 손길이 생각난다.

 

 

그 어릴 적 서울의 창경원 벚꽃은 여기 속초벚꽃은 비교할 수 없으리 만큼 아름답다.

 

 

여기 속초는 설악산의 정기 때문에 밤낮의 기온차가 아주 심하다.

 

 

그래 벚꽃이 빨리 피고 빨리 진다. 일주일도 채 넘어가지 않고 져버리기 때문에 그 기회를 놓치면 설악산의 벚꽃은 구경하기 어렵다.

 

 

요즘은 오색찬란한 불빛을 더 해놔 밤에도 그 모습은 설악산과 어우러져 소리 없는 야상곡의 무대가 펼쳐진다.

 

 

그 아름다운 벚꽃을 난 이렇게 해마다 만끽하고 있는데 아버지는 어디계신 걸까?

 

 

이렇게 4월이 오면 아버지가 너무 그리워진다.

 

 

해마다 이렇게 벚꽃이 피는 날이면 늘 남몰래 눈물로 가슴을 적셔야 했다.

 

 

이 아름다운 설악산의 벚꽃을 보셨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살아계신다면 아버지와 손 꼭 잡고 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에 이 환상적인 아름다운 날을 맞이하고 싶다.

 

 

꼭 한번만이라도 이렇게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아버지와 그곳에 가보고 싶다.

 

 

올해도 어김없이 4월은 찾아왔다.

 

 

갑자기 걸려온 지인의 전화, 벚꽃놀이를 가자고 했다.

 

 

맛있는 밥도 먹고 곳곳마다 사진도 찍고 포즈도 취했다.

 

 

깔깔거리며 벚꽃이 휘날리는 하늘을 보면서 아버지를 생각하지도 않았다.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그저 지인들과 웃고 떠드느라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수업 때문에 더 즐기고 싶은 맘을 억누르고 그 길을 돌아 나왔지만, 그날은 나에게 잔인한 4월이 아니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보니 여러 통의 전화가 와있었다. 왜 핸드폰으로 안 하고 하고는 핸드폰을 보니 역시나 여러 통의 전화가 들어와 있었다.

 

 

무음으로 해놓았던 전화라 듣지를 못했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4월의 아버지 제사, 곧 다가오는 제사 때 서울에 올 수 있냐는 친정엄마의 전화, 이렇게 난 세월을 잊고 있었는데...

 

 

그래 올해는 꼭 아버지 제사를 모시러 가자.

 

 

해마다 제사도 제대로 가지 못했던 그 마음에 나의 4월은 그리 잔인했던 것은 아닌지? 그리 슬펐던 것은 아니였을까?

 

 

올해는 꼭 그 잔인한 4월을 잊고 오자.

 

 

그리움을 벗어버리고 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