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호2012년 [시-정영애] 비열한 모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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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추억’이라는 모텔 앞을 지나가다
달빛 같은 간판을 올려다보고 있는
군인과 아가씨를 본다
모텔에서의 하룻밤이 추억이 된다면
우리의 추억은 몇 회쯤 되는가
혹, 이별을 면회 왔을 그녀의 구두가
충성을 맹세하며 포복 할
일등병의 무릎을 찍고 지나갈지도 모르는데
고정관념의 육면체로 서 있는
굳건한 모텔의 이마를 올려다보며
차가운 골목 담벼락에 붙어
서투르게 더듬던 첫 입맞춤을 생각한다
그 밤
마루의 괘종시계처럼 밤새 잠 못 들고 둥둥거리던
추억모텔로 들어가는 그들의 결심을 바라보며
서둘러 저지른 그들의 추억을, 그래서 생의 저 멀리
아무렇게나 던져버린 휴지 몇 장의 허무를
모텔 혼자 굳건한 그리움으로 간직해 줄 것이라
비겁하게 믿으면서 추억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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