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뫼 호수별 보기

42호2012년 [시-정영애] 스낵 한 봉지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1,854회 작성일 13-01-05 10:56

본문

 

밖에서 돌아와 겉옷을 벗는다

치마와 스타킹을 벗는다

팽팽하게 부풀렸던 속임수를 풀자

뽕을 뺀 허술한 가슴과 늘어진 뱃살,

새우깡 같은 다리

볼품 없는 몸뚱이 한 채 달랑 남는다

화장을 지우고 분주하던 입술까지 지우자

제조일자 선명히 찍힌 봉지 속의 물질이

씨익 웃는다

 

 

세상을 향해 난 늘 과대포장이다

과자봉지처럼 부피만 빵빵하고

수다로 그득하게 쓰여 있는 허약한 상표처럼

유통기간조차 흐릿하게 가리면서

당신들의 눈을 기만한

얼마간의 불량 섞인 물건

공복의 허기를 부추기듯

입 안 가득 군침 고이게 하면서

야만스럽게 바스락거리는 여자였던 나는

질소로 가득 채워진 스낵 한 봉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