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호2012년 [시-정영애] 스낵 한 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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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돌아와 겉옷을 벗는다
치마와 스타킹을 벗는다
팽팽하게 부풀렸던 속임수를 풀자
뽕을 뺀 허술한 가슴과 늘어진 뱃살,
새우깡 같은 다리
볼품 없는 몸뚱이 한 채 달랑 남는다
화장을 지우고 분주하던 입술까지 지우자
제조일자 선명히 찍힌 봉지 속의 물질이
씨익 웃는다
세상을 향해 난 늘 과대포장이다
과자봉지처럼 부피만 빵빵하고
수다로 그득하게 쓰여 있는 허약한 상표처럼
유통기간조차 흐릿하게 가리면서
당신들의 눈을 기만한
얼마간의 불량 섞인 물건
공복의 허기를 부추기듯
입 안 가득 군침 고이게 하면서
야만스럽게 바스락거리는 여자였던 나는
질소로 가득 채워진 스낵 한 봉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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