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호2012년 [시-정영애] 속초에는 그리움의 번지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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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쯤에서 속초를 떠올리니
언젠가 살았던 것 같은
불빛 따뜻한 창문이 돋아나고
이 세상에 없는 번지수 하나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무작정 난파선처럼 밀려왔던
내 마음의 포구
수평선 풀어가며
그물 같은 마음 촘촘히 기워 갈 즈음
낯 선 듯, 낯설지 않은 듯
내 몸의 지도 밖으로 목선 한 척 지나가고
실핏줄 푸르게 비치는 바람들 불어와
간간하게 간이 밴 시 한 줄 놓고 갔다
거친 손바닥으로 얼굴 씻겨주는 해풍 속에
그물 깁는 여자처럼 마음 담그고 앉아
조금 더 헐렁해지고
조금 더 무뎌지고
조금 더 늙어져서
살아있음이 루머로 퍼져도 기꺼이 좋을 것 같은
길을 잃으면
누구나 한 번쯤 등대 아래서 길을 받아 적는 곳
먼 훗날,
빈 배로 돌아온 당신이 오래도록 정박하고 싶은
속초에는 그리움의 번지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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