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호2012년 [시-정명숙] 흐려진 기억 속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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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삼림욕장으로 조성된 등산로
곳곳에 나무들이 쓰러져 있다.
적당한 간격 유지를 위해서 솎아 벤 나무들이다.
한 때는 온 몸으로 피톤치드 뿜어내던
쓰러진 생 위에
하얀 눈 소복이 쌓여있다.
등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향이 좋다며 지인이 건네준
원통형으로 잘린 소나무토막 하나
내 품에 안긴다.
방금 산을 내려 왔는지 젖은 몸이 차다
싸늘한 거실 온후하게 감싸주는 솔 향을 맡다
단면에 새겨진 나이테를 세어 본다.
선명한 둥근 원이 밖으로 커 갈수록
흐려지더니 서른아홉을 넘자
원의 형태조차 알아보기 힘들다.
나무에게도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었나
가지 넓혀 갈수록
간벌될 운명임을 미리 알고 있었나
바람 소리 들린다.
흐려진 기억 속을 맴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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