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호2012년 [시-박대성]외상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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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소소한 외상들로 익어 가는가?
글 모르는 점빵 영감은 골목 사람들의 외상 품목을 공책에 그려놓았다. 곁들여 외상 진 사람들의 몽타주도 그려놓았다.
영감의 아내는 서툰 글씨로 삐뚤빼똘 그 외상들에 주석註釋을 달았다.
앞짱구네 국수 반 관, 삐뚤이네 편지봉투 한 장, 떠듬이네 활명수 한 병, 코주부네 소주 한 병, 합죽이네 두부 반 모 등의 비밀장부를 만들어 놓았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다 안다. 자신들의 별명이 있다는 걸. 그리고 맘에 들지 않는 별명도 외상을 지려면 감수해야 한다는 걸
장부에 적힌 그들 삶의 外傷들. 고뿔, 종기, 버짐, 부스럼……들
점빵 영감내외는 동네 사람들이 무엇을 앓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장부 좀 봅시다.”하면 내외는 장부를 꺼내어 보여주었다.
동네 사람들은 진료카드 같은, 처방전 같은 자신들의 별명을 들여다보았다.
상처란 늘 스스로 낸 것들이어서 또한 자신이 거두어들여야 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그 빚을 무던히 갚던 사람들
그런데
그 상처들이 명절 밑에는 씻은 듯이 나았다.
신기하게도 나았다.
그러나
명절 다음 날부터 다시 돋기 시작하던 동네 사람들의 상처들
그 골목의 소소한 외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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