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호2012년 [시-권정남]자작나무 같은 흰 뼈들이―킬링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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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관 속 해골들이 탑처럼 쌓여 있다
볼포트* 당신들의 천국을 건설하기위해
이념이 무언지 모르는 흰 칼라 단발머리 소녀를,
젖 물리던 어미를, 교사를, 승려를
살색이 희고 안경 썼다고, 손에 굳은살이 안 박혔다고,
지식도 사유 재산이라는 이유로 이백 여만 명 양민을
총으로 팜나무 가지로 그들의 두개골을
찌르고 내버린 저 죽음의 들판에
주인 잃은 치아들이
이팝꽃 처럼 하얗게 널려있다
동료들의 죽음을 관광 상품으로 내다팔고 있는
아낙들의 찌든 미소가
매캐한 향으로 타오르고 있는
왓트만 사원* 앞마당
장작더미로 쌓아올린 자작나무 같은 흰 뼈들이
유리관 속 조선의 막사발 같은 해골들이
한때 노래하고 떠들던 익숙한 목소리들이
캄캄하게 패인 우물 같은 눈으로
불땡 볕, 바깥 세상을 내다보며,
참혹했던 시간들을 성자처럼
하얗게 삭이고 있다
*볼포트 : 캄보디아 정권의 공산화를 실현하기위해 킬링필드 대학살을 주도한 인물
*왓트맛사원 : 킬링필드 사건으로 학살된 유골들을 모셔놓은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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