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뫼 호수별 보기

34호2004년 [시-채재순]큰 발로 시를 쓰는 우체부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갈뫼
댓글 0건 조회 2,736회 작성일 05-03-26 12:11

본문

분교의 오후 수업은
우편물 가득 실은
빨간 오토바이가 조용히 깨우지
오래된 살구나무 그늘에서
손 차양으로 노오랗게 익어가는 살구
눈부시게 바라보다
몰려나온 아이들에게
아픈 소와 강아지의 안부를 묻고,
제기도 함께 차는,
우편 배낭 불룩하게 웃음을 담아
언덕 넘고, 돌다리 건너
산모퉁이 구석구석 걷고, 걸어가는
그가 한없이 부러울 때가 있지

오지 마을 선생을 위해
기꺼이 소포를 부쳐주는 우체부
어떤 날은 시집을 보낼 수 있는 시인은
참 좋겠다며
넌지시 말을 걸어오기도 하지
말없이 차 한잔 건네며
큰 발로 곳곳에 시를 쓰는
우체부가 되고 싶다고,
세상 담은 가방 메고 가보지 못한 마을에
쿵쿵 다다르고 싶다고
속엣말을 하고 또 하는
나른하고도 늦은 봄날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