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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2012년 [시-지영희]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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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625회 작성일 13-01-0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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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와도 덥다고 불편해 하지 즐길 줄 몰랐습니다.

여린 잎들이 푸른 핏줄을 뻗어

새들의 둥지가 되어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를

온몸으로 펄럭이며 말하고 있을 때 말입니다.

 

가을이 와도 세월의 빠름을 탓하느라 낭만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총총히 맺힌 열매 사이로 나눔을 꿈꾸는 것이

얼마나 풍성한 일인지

꽃 같은 나뭇잎을 뿌리며 축하해 줄 때 말입니다.

 

 

겨울이 와도 내내 봄을 기다리느라 삶의 의미를 되짚어보지 못하였습니다.

다 내려놓은 빈 몸으로

고통 끝에 달린 기쁨을 눈꽃으로 한껏 피어 올리며

우아한 자태를 저녁 어스름에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성스러운 일인지

혹독한 바람을 내색하지 않고 서 있을 때 말입니다.

 

내내 기다리던 봄이 드디어 와도 기뻐하지도 못하였습니다.

껍질을 깨며 나오는 발효된 시간 덩어리인 꽃들의 이야기가

우리들에게 얼마나 큰 힘인지 잊은 채

노근한 오후를 탓하며 바쁘게 골목길을 빠져나가곤 했습니다.

 

 

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이시여, 용서하소서

가을겨울봄 그리고 여름이시여, 용서하소서

겨울봄여름 그리고 가을이시여, 용서하소서

봄여름가을 그리고 겨울이시여, 용서하소서

지금,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