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호2012년 [시-채재순]양귀비꽃,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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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관사 마당 귀퉁이가 환해졌다
불쑥 피어난 양귀비꽃 다섯 송이
화장실 앞에 보란 듯이 피어
집의 중심이 되었다
시름시름 앓던 내게
마른 양귀비 삶아 먹이던
할머니 살아온 듯 반가워
절로 웃음꽃 피어나던 나날들
며칠 후 집 비운 사이
사라졌다, 양·귀·비·꽃
봄앓이가 시작된 건 그 무렵부터
그 후로 봄은 왔지만 봄의 심중에 이르지 못해
상처의 꽃밭으로 욱신거리고
가녀린 꽃대 위에
결기 가득한 눈빛으로 밝히던 꽃
속절없이 봄은 가고
양귀비꽃이 구름 속에서
집 찾아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 저벅저벅
선연하게 들려오는 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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