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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2013년 [ 평론 - 최재도 - 바다의 언어로 하늘과 어울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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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3,684회 작성일 14-01-0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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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언어로 하늘과 어울리다
― 李盤의 희곡 세계

 

1 . 和의 작가 , 李般
    이반의 작품에 설정된 상황들은 대체로 격렬한 대립과 극단적 환경으로 채워져 있다 . 등장인물 역시 생존의 현장을 지키는 이들답게 억세기 이를 데 없다 . 끊임없이 갈등을 조장하는 분단 상황 , 인간성 말살을 강요당하 는 전쟁 상황 등이 연이어지고 , 착취나 비리에 맞선 민중적 분노와 , 전쟁 난민으로서 고향에 대한 피맺힌 그리움을 가진 인물들이 곳곳에 등장한 다 . 인간 대 인간 , 인간 대 자연 , 인간 대 역사와의 갈등이 끊임없이 나열 된다 . 모름지기 극(劇)이란 , 선(善)과 악(惡)의 대립으로 엮어지는 것이 니 , 이반의 작품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을 터 , 이는 전혀 의아한 일이 아니 다 .

 

    하지만 이반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온화해진다 . 웬일인지 작품 무대도 평온하게만 느껴진다 . 그 암울하던 지난 세월이 오 히려 그리워질 정도이다 . 적어도 지난 한 세기 동안은 , 이 나라 그 어디에 서도 태평성대를 지속할 수 없었고 , 이 땅의 그 누구도 온전히 그 인간성 을 유지할 수 없었는데 ,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반의 작품들에게서 그런 별천지가 확인된다는 것은 대단히 의아한 일이다 .

 

    대체 이반은 어떻게 , 이런 극한 상황 속의 인물들에게 온화(溫和)함을 느끼게 하고 , 그 처절한 투쟁의 무대에서 평화(平和)로움을 창출해 내는 것일까 . 선과 악의 그 격렬한 갈등을 대체 어떻게 그처럼 친화(親和)적으 로 해소해 내는 것일까 . 이반 작품에 대한 호감은 바로 이런 의문에서 비 롯되고 , 작가 이반에 대한 경외감 역시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된다 .

 

    이반의 30여 극작품들을 관통하는 일관된 철학은 말할 것도 없이 휴머 니즘이다 . 하지만 그것으로 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을진대 , 바로 그 휴머니티를 이루는 방식과 과정이 매우 독특하다는 점이 부연되어야 한 다 . 그의 극작술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갈등해소의 방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 화(和) ’ 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질적이거나 대립적인 것들을 서로 어울리게 만드는 힘 , 그것이 바로 ‘ 和 ’ 이니 , 이반은 바로 ‘ 和 ’ 를 활 용해 작품 속의 갈등들을 강렬하게 해소해 낸다 .

 

    이는 다른 작가와 다소 다른 방식이다 . 많은 이들은 대체로 ‘ 같음(同) ’ 을 논한다 . 갈등과 폭력이 인류 역사에 끊임없이 등장한 이유가 바로 ‘ 같 음(同)의 논리 ’ 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백승도(白承道 , 문학연구가)는 주장한다 .

 

    폭력은 결코 비이성적이거나 비도덕적인 것에 기원을 두고 있지 않다 . 전 쟁의 대부분은 도덕적 명분을 내걸고 정의를 수호하겠노라고 선언하고 있으 며 ,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 또한 부지기수다 . 이 같은 폭력의 근저에 는 비이성이나 비도덕이 아니라 , 배제의 논리가 놓여 있는 것이다 . 그 배제의 논리는 차별화로부터 비롯되며 , 차별화의 논리는 배제의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한다 . 그리고 차별의 논리 밑바닥에는 중심을 지향하는 ‘ 同 - 동일화 ’ 의 논리 가 깔려 있다 . 결국 표면으로 드러나는 폭력은 다름 아닌 ‘ 同 ’ 의 논리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 同의 논리는 ‘ 같음 ’ 과 ‘ 다름 ’ 을 예리하게 구분하며 , ‘ 같음 ’ 에 속하지 않는 것들은 배제되고 차별된다 . 同의 논리는 내부에 이미 차별화 의 분류 도식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 이처럼 ‘ 주체 ’ 와 ‘ 같음과 다름 ’ 으로 서 타자를 예리하게 구분하는 同의 논리는 , 인간/비인간(동물) , 남성/여성 , 중심/주변 , 자민족/타민족 , 이성/비이성(감성) 등 다양한 변형체를 가지면서 변주된다 .

 

    동일한 논리 선상에서 주체가 수용할 수 있는 ‘ 같은 것 ’ 은 선(善)이 되고 , 수용할 수 없는 ‘ 다른 것 ’ 은 악(惡)으로 규정된다 . 그리고 그 악을 구원하는 일은 도덕적으로 아주 선한 행위가 된다 . 악을 구원하는 일에는 폭력 또한 정 의로운 것이 된다 . 따라서 그들에겐 오히려 도덕적으로 무장하면 할수록 비 극의 크기는 더욱 커지는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 도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 는 사람들도 무의식적으로 배제와 차별 , 심지어 극단적인 폭력을 일삼기도 한다 . 예컨대 , 2차대전 시절의 ‘ 홀로코스트 ’ 는 대단히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 이를 독일인들의 도덕적 타락에서 원인을 찾을 수는 없다 . 그들 대부분은 도 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처 럼 참혹한 비극을 연출했다 . 결국 그것의 배면에 놓인 원인은 도덕적인 문제 가 아니었던 것이다 . 그들은 ‘ 아리아 인 ’ 을 중심으로 한 ‘ 同의 논리 ’ 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 ‘ 같음 ’ 과 ‘ 다름 ’ 의 분류 도식이 ‘ 다름 ’ 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 한 것이다 .

 

    다른 작가들이 이 같은 ‘ 同의 논리 ’ 에 갇혀 ‘ 옳고 그름을 분별 ’ 하고 있 을 때 , 이반은 ‘ 和의 논리 ’ 를 전개하며 그것의 부질없음을 역설한다 . 그의 작품들은 주로 ‘ 분단 ’ 과 ‘ 신앙 ’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 일방적으로 한쪽 편을 드는 예는 절대로 없다 . 한국 근대사의 비극이 남한과 북한의 갈등 에서 비롯되었고 , 많은 작가들이 공산주의나 자본주의 어느 한 편을 선택 해 작품을 썼지만 , 이반만은 이데올로기의 선악을 구분하지 않고 和의 시 412 ※ 참조 또는 인용한 논문의 제목은 아래와 같음 . (년도 , 발행처 등은 생략함) 1) 백승도(문학연구가) , ‘ 장자 진인의 담론방식 연구 ’ 에서 따옴 . 각으로 우리의 현대사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 그는 전쟁의 정당성이나 당 위성을 드러내는 대신 , 그 폭력성과 난폭성을 부각시켜 평화를 갈망하게 한다 . 내 편과 네 편을 가리는 대신 , 그 ‘ 다름 ’ 을 인정하고 함께 어울리자 는 ‘ 和의 방식 ’ 을 제시한 것이다 . 분단문제를 다룬 「 그날 그날에」 , 「아버 지 바다」 , 「환상무대」 등이 모두 그렇듯 ‘ 同 ’ 의 갈등을 어울림(和)의 방식 으로 해결한다 . 「바람 타는 성」에서의 반란군 주모자인 이재수 또한 , 계급 으로 분별되는 차별 세상이 아닌 , 모든 계층이 한데 어울리는 종교적 평 등사회를 갈구한다 . 「아 , 제암리여!」에서는 한국적 전통문화와 기독교와 의 융화를 추구한다 . 전쟁과 폭력이 ‘ 同의 논리 ’ 탓임을 인지하고 , 그 해 결책으로 和를 추구하는 것 , 그것이 이반의 독특한 담론 방식인 것이다 .

 

    이반 희곡에서 발견되는 대부분의 온화함과 평화로움과 조화로움은 다 이것이 근원이다 . 그의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휴머니티는 和를 그 에너지 원으로 삼고 있으니 , 그가 무엇을 논하든 그의 작품에선 오로지 강한 인 간애(人間愛)와 더불어 , 상생과 공생만이 드러날 뿐이다 .

 

 

 

2 . 이반 희곡의 바다와 부두 , 宥和
    이반의 희곡에는 대부분 ‘ 바다 ’ 가 등장한다 . 당연히 항구와 부두도 그 곳에 있다 . 이반에게 있어 바다는 고향이자 어머니이다 . 이반은 열 살 나 던 해 6 . 25 전쟁으로 인해 태(胎) 버린 고향을 잃고 부모를 따라 ‘ 수복지 구 속초 ’ 에 정착했다 . 아버지는 뱃사람이었다 . 그는 아들이 ‘ 바다에 남게 되기 ’ 를 은근히 소망했다 . “ 배를 타고 파도와 바람과 싸우며 사는 삶이 가 장 깨끗한 삶 ” 이라며 배를 탈 것을 권했다는 것이다 . 이반도 그의 아버지 를 닮아 바다를 생존의 터전이자 그리움의 대상으로 삼고 있음에 분명하 다 . ‘ 지금도 의지 ’ 하고 있거니와 , ‘ 장차도 돌아가 기대야 할 곳 ’ 으로 인식 하고 있는 것이다 .

 

  「 그날 그날에」나 「아버지 바다」에서의 바다가 바로 그러하다 . 낚시꾼에 게 있어 ‘ 놓쳐버린 고기 ’ 는 늘 ‘ 월척 ’ 이듯 , 실향민에게 있어 ‘ 잃어버린 고 향 ’ 은 늘 ‘ 낙원 ’ 이다 . 행복과 그리움이 영원히 머물러 있는 곳이기에 , 이 들의 실향은 그 자체가 실낙원(失樂園)이다 . 전 생애를 걸고서라도 꼭 되 찾아야 하고 , 연어가 모천으로 회귀하듯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가야만 할 곳이다 .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에 있어 바다는 , ‘ 겨울바다 ’ 이며 ‘ 새벽 ’ 이므로 죽음과 희망을 동시에 지닌 삶의 모순을 상징한다 . 장면 설명에서 파도소 리를 ‘ 젊은이의 군화소리처럼 몰려오다가 어머니의 자장가 같이 밀려간 다 . ’ 라고 묘사한 것에서 이미 이반이 바다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확 인할 수 있다 . 2)등장인물들 또한 , 그토록 바다에 희생당했으면서도 , 여전 히 떠나지 않고 부두와 배에 머물고 있는 이들이다 . “ 바닷사람이 바다에 아이 나가면 어떻게 되는 줄 아니? ” (노파) , “ 우리가 갈디라구는 바다밖에 더 있니? ” (노파) , “ 그렇지만 나는 바다에 나가야 됩메 . ” (길수) 라며 바다 의 붙박이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 그 인물들이야말로 이반의 분신이 다 .

 

    이반의 바닷사람들은 왜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걸까 .

    “ 아니 , 창길아 , 니 지금 날보구 여기서 떠나 살자 , 이 말이니? 이 바다와 저 사람들을 두구 이사 가자 이 말이니? ” “ 생이라는 기 무시기니 , 생이라 는 기? 박 아바이나 북청 아지미에게 있어서 생이라는 것은 말이다 . 그기 고향을 그리는 맴하고 다른 기 아이다 . ” (김노인)

 

    바다가 곧 ‘ 고향이고 삶 ’ 이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 아들 창길이 아무 리 이곳을 뜨자고 , 바다를 잊자고 권해본들 , 김노인에게는 가당치 않은 소 리일 뿐이다 .

 

  「 그날 그날에」에서 박노인은 죽기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가족을 만나 고 싶다는 염원을 실천하려 의도적으로 월북하고 , 김노인은 통일의 그날 이 꼭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채 , 죽어서라도 그 아내를 고향땅에 묻어 주려 20년 동안이나 시신을 횟가루에 싼 채 다락에 숨겨두고 있다 . 실향 1세대들이 얼마나 고향을 그리는지 이보다 더 극명하게 드러낼 수는 없을 것이다 .

 

    이반은 “ 한숨짓는 실향 1세대들이 사라져 가고 있기에 서둘러 이 작품 을 썼다 ” 고 작품 후기에서 술회했다 . 그는 , 그들의 한숨을 바로 코 앞에서 줄곧 지켜보아 놓고도 , 실향 2세대인 자신이 ‘ 한숨 한 번 쉬어보지 않았 다 ’ 는 사실에 자책한다 . 정말이지 이 작품에는 실향 1세대들의 한숨이 가 득 차 있고 , 작가가 얼마나 그 한숨에 연민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 다 .

 

  「아버지 바다」 또한 , 「 그날 그날에」와 더불어 분단 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 잠시 줄거리를 살펴보자 .

 

    속초항 부둣가 . 어판장 경비원 길모와 작은 어선의 선장 동호 , 포장마차를 하는 성자는 모두 친구 사이이다 . 이곳에 낯선 사내가 찾아든다 . 알고 보니 30년만에 고향을 찾아온 이들 친구 형철이다 . 형철은 장교로 전방에서 근무 하던 시절 ,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여 휴전선을 넘어갔던 적이 있다 . 그 죄로 20년 동안이나 감옥 생활을 했다 . 형철의 아버지는 등대지기였는데 , 6 . 25전 쟁 때 군 작전상 불을 켜지 말라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어민들의 안전을 위하 여 불을 밝혔다가 ‘ 반동 ’ 으로 몰려 인민재판으로 처형된 바 있다 .

 

    한편 , 선주(船主)가 새 배 마련을 위해 노임을 주지 않고 빼돌리자 선원들 은 파업을 계획하는 등 갈등이 격화된다 . 이에 동호가 중재에 나서고 , 여기에 깨달은 바가 있어 선주는 노임을 해결하기로 약속한다 . 이 과정을 지켜본 길 모는 어판장의 갖은 부정을 뿌리 뽑겠다며 새로운 다짐을 굳힌다 .

 

    형철도 친구들이 동요 없이 강하게 사는 모습에 활력소를 얻는다 . 이념과 사상을 초월하여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어둠을 밝힌 아버지에 강한 자부심 을 가지며 , 아버지가 어둠을 밝혀준 등불이 되었던 것처럼 시대를 밝히는 등 불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

 

    이 작품이야말로 이반 작품의 갈등구조와 그 해소방식이 가장 확연히 드러난다 . 형철은 실향 2세대로서 , 어린 시절의 고향이 그리워 철책근무 중 북한으로 넘어갔다가 그로인해 20년 동안이나 감옥살이를 했으니 , 그 갈등은 ‘ 고향을 그리워하는 본성 ’ 과 ‘ 제도적 압제(壓制) ’ 사이에서 발생 한다 . 형철의 아버지 또한 , 작전을 위해 등댓불을 밝히지 말라는 인민군 의 명령을 듣지 않고 , 아직 귀환하지 못한 뱃사람들을 위해 불을 켰다가 처형당했으니 , ‘ 휴머니즘적 사명감 ’ 과 ‘ 권력적 압제 ’ 가 충돌한 것이다 . 형철로선 , 아버지가 처형당할 때 , 아버지의 등댓불에 의지해 무사히 귀환 한 뱃사람들조차 그를 위해 아무런 변명도 해주지 않았음에 매우 큰 배신 감을 느끼고 있던 터이다 .

 

    선주를 향한 선원들의 갈등도 역시 이와 같다 . 마땅히 선원들에게 주어 야 할 노임으로 이자놀이를 하고 있는 선주의 횡포에 선원들은 파업을 하 며 거칠게 대항한다 . 선원들은 , 오징어 ‘ 스무 마리 ’ 를 잡으면 배삯으로 ‘ 열세 마리 반 ’ 을 내놓아야 되는 ‘ 분배의 불공정 ’ 에 대한 불만도 가지고 있다 . 그 외에도 부두엔 여러 부정과 비리들이 얼룩져 있어 , 선원들을 이 중삼중으로 착취하고 있다 . 본성과 압제가 부두 여기저기에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

 

    이 모든 갈등은 용서(宥)와 어울림(和)으로써 해결된다 . 곧 유화(宥和) 이다 . 사전적 풀이로는 , ‘ 너그럽게 대하여 사이좋게 지내는 것 ’ 이다 . 선 원들은 ‘ 선주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또 다른 새 배를 마련하려 한 것 ’ 이라 는 사실을 이해함으로써 용서하고 , 형철은 자신의 인간애와 아버지의 사 명감에 자부심을 가짐으로써 세상과 다시 어울리는 것이다 . 이는 부두에 서 경비로 일하고 있는 길모가 자신이 단속해야 할 무허가 장사꾼들에 대 해 “ 그들이 있어야 내가 할 일도 생긴다 . ” 며 ‘ 적당히 쫒고 쫒기는 게 인생 ’ 이라는 공존 공생의 인생관과도 어울린다 .

 

    분단 갈등을 유화(宥和)의 방식으로 해결하자는 이반의 주장은 , 바다를 소재로 하는 모든 작품에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 만약 바다가 ‘ 우리가 영 원히 머물러야 할 삶의 터전 ’ 이라면 , 그리고 그곳이 ‘ 우리가 종내 돌아가 야 할 고향 ’ 이라면 , 너그럽게 용서하고 다정하게 어울리는 것이야말로 고 향과 터전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

 

 

3 . 이반 희곡의 바람과 배 , 調和

    바다를 논하자면 마땅히 바람과 배를 함께 얘기해야 한다 . 바다가 삶의 터전이 되려면 마땅히 배를 타고 수평선을 향해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 바람이 있어야 배도 움직일 터이다 .

 

    이반이 손가락으로 바다를 가리킬 때 , 대체로 우리는 거기에서 분단과 실향을 보곤 한다 . 하지만 때때로 그것은 종교적 상징이 되기도 한다 .

 

    김화수(루터대)는 이반의 작품을 분석한 라는 논문에서 「샛바람」에 등장하는 ‘ 배 ’ 의 상징성에 대해 논한 바 있다 . ‘ 배 ’ 는 육지에서 만들었지만 동시에 바다에서 필요한 양면 적 존재인 바 , 「샛바람」에서의 ‘ 배 ’ 는 이미 바다에 던져져 있으나 육지에 서의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이상과 현실의 매개체라는 것이다 .

 

    “ 꽁치를 왜 잡는 거야? 니들은 꽁치가 불쌍하지도 않아? 엄마 아빠 꽁 치를 마구 잡으면 새끼 꽁치들은 어떻게 돼? 니들은 나쁜 애들이야 , 니들 은 … ” (수련)

 

    1953년 동해 연안에서 작은 전마선을 탄 세 명의 소년과 소녀들은 배 안에서 이렇게 실랑이를 하고 있다 . 소년이 소녀의 항의에 답한다 .

 

    “ … 바보 같은 기집애 . 우리가 꽁치를 잡지 않으면 포구에 있는 사람들 이 다 굶어 죽어 . 지금 포구에는 정신 나간 늙은이들과 여자들밖에 없어 . ” (기호)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소년과 소녀는 생존에 관한한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다 . 남자들은 모두 전쟁터로 끌려 나가고 포구에는 무능한 늙 은이와 나약한 아녀자들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 ‘ 배 ’ 는 소년 소녀들에 게 있어 구원이며 도전이다 .

 

    아울러 김화수는 이 ‘ 배 ’ 가 십자가의 상징성과 일치한다고 말한다 . 「샛 바람」의 무대 설명에서 이 같은 수사학적 동질성을 설치해 놓았다는 것이 다 .

 

    “ 뒤뚱거리는 돛대와 가로 지리 나무는 십자가가 되어 동쪽으로 향하고 있다 . 십자가는 점점 멀어지고 시간의 흐름을 알리는 음악이 잔잔히 흘러 나온다 . ”

 

    이 지문에서 배의 돛대는 십자가로 변해 있다 . 십자가는 구원이자 희생 이니 , 이 작품에서 배는 곧 ‘ 구원의 상징인 십자가 ’ 이고 , 동생을 구하느라 고 다쳐서 벙어리가 된 소년의 형은 ‘ 희생의 상징인 십자가 ’ 라는 것이다 .

 

    “ 지금까지 전쟁을 배경으로 한 우리 아동청소년문학 중 「샛바람」처럼 슬프고 아름답고 리얼한 작품은 없었다 . 나는 이반의 「샛바람」이 교과서 에 게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 고 아동문학가 권정생은 말한다 . 4) 동감 한다 . 작품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도 그렇거니와 , 「샛바람」은 소년소녀 를 위한 아동문학이자 , 어른을 위한 동화이기도 하고 , 전쟁을 소재로 다룬 전쟁문학이자 , 종교를 내용으로 담은 종교문학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이반은 1901년 제주도에서 일어난 ‘ 이재수의 난 ’ 을 소재로 작품을 썼 는데 , 「바람 타는 성(城)」이 바로 그것이다 . 여기에서 ‘ 바람 ’ 은 외국종교 곧 기독교를 가리키고 , ‘ 성 ’ 은 제주도를 의미한다 . 결국 한국의 전통적 가 치와 외래종교인 기독교와의 대결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 이처럼 이반은 ‘ 바람 ’ 의 의미를 바다와 배에 한정하지 않고 계속 확장시키고 있다 .

 

    주목할 것은 , 그가 이 작품에서 초기 선교사들의 오만한 자세와 기독교 의 권위적인 태도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는 점이다 . 이반은 명백한 기 독교 신자고 , 스스로도 기독교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 그러나 그는 일방적 으로 기독교를 선전하거나 옹호하지 않는다 . 이는 이미 그의 자전적 글에 서 여러 차례 드러난 바 있다 . 꽁트 「지등의 계절에」에서는 목사들의 의식 이 ‘ 어딘가에 갇혀 있다 ’ 고 노골적으로 핀잔을 주었고 , 「이상한 나라」에 서는 교회의 부흥만을 부르짖는 목사들을 강렬하게 힐난했었다 .

 

    이반 희곡을 연구하여 학위를 받은 김문숙(위덕대)은 그의 논문에서 이반의 종교문학은 기독교를 옹호하는 입장 이 아니라 , ‘ 한국적 전통문화와의 융화를 꾀한다 ’ 고 분석한 바 있다 . “ 예 수의 아버지 하늘님과 우리 하늘님은 다른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 예수 도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 ” (채구석) 이재수와 채구석의 이런 대화에서 그 런 작가의 정신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구신부 : 성 밖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

    민신부 : 신부를 향해 총을 쏘는 놈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란 말이오?

    구신부 :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도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 그리 고 그 분은 그들을 위해 죽었소 .

    민신부 :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놈들은 구원받지 못할 이교도들이오 .

    구신부 : 이교도도 신의 백성입니다 . 폭력은 피해야 됩니다 .

    민신부 : 구 신부 , 정신을 차려요 . 이교도와 유색인종의 영혼은 우리 것과 는 달라요 .

    구신부 : 무서운 말씀입니다 . 제가 이 땅에 온 것은 이 나라 사람들의 영혼 을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 우리를 욕하고 헐뜯는 저 사람들의 영 혼을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 그런데 저들의 영혼이 우리와 다르 다면 신부님은 이 땅에 왜 오셨습니까?

 

    두 신부의 대화는 같은 신앙인이면서도 가치관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우리에게 확인시켜준다 . 이반은 이런 식의 오만한 종교적 접근을 경계하 며 , 오히려 전통문화와의 조화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

 

    기미년 삼일운동 당시 마을 주민 중 일부가 시위운동에 참여했다는 이 유로 일본 경찰이 양민들을 교회에 감금한 뒤 그대로 불을 질러 엄청난 사 상자를 낸 이른바 ‘ 제암리 사건 ’ 을 극화한

 

  「아 , 제암리여!」에서는 종교극 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 처용무 ’ 가 등장한다 . 장원재(숭실대)는

라는 논문에서 이반이 처용무를 통해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촉구하며 , 민족 간 , 종교 간 , 문명 간의 화해를 이 야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그러나 이반은 에 서 ‘ 한국의 전통과 기독교가 만나 , 갈등과 융합의 과정을 거쳐 , 새 하늘 새 땅을 여는 조화를 소원하는 춤 ’ 이라고 밝혔다 . 샤머니즘적 요소를 지닌 처용무를 과감하게 종교극에 등장시킨 이반의 의도가 바로 ‘ 융화와 조화 ’ 라는 것이다 . 「아 , 제암리여!」나 「샛바람」에서 기독교적 상징을 부정적 이미지로 사 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조화를 촉구하고자 함이다 . 설화 속의 처용은 가해자를 무조건적으로 용서함으로써 기어코 굴복시켰다 . 여기에서 기원 된 처용무는 용서와 화해의 표징으로 우리에게 전수되고 있다 . 서로 잘 어 울린다는 의미의 ‘ 조화(調和) ’ 는 ‘ 바람 ’ 이 ‘ 배 ’ 를 굴욕적으로 정복할 때 엔 결단코 성립될 수 없다 . 이반 희곡의 ‘ 배 ’ 와 ‘ 바람 ’ 은 , 상생을 위한 조 화(調和)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으니 , 이 또한 이반이 ‘ 和 ’ 를 운용하는 한 방식이라 할 것이다 .

 

 

 

4 . 이반 희곡의 플롯과 인물 , 同和
    희곡은 대사로 진행되는 문학 장르이다 . 이반 희곡의 대사도 표준어와 방언으로 되어 있는데 , 방언은 함경남도 사투리를 사용하고 있다 . 우리나 라 극작가 중 함경도 사투리를 이반처럼 잘 구사하고 많이 사용한 작가는 전무후무하다 . 천승세가 희곡 「만선」에서 호남사투리를 쓰고 , 안수길이 소설 「북간도」에서 함경북도 사투리를 활용할 때 , 이반은 함경남도 동해 안 사투리를 이용해 대사에 영혼을 담아냈다 . 그는 이 언어로 , ‘ 거친 자연 ’ 과 ‘ 열정에 가득 찬 인간 ’ 들을 그려 낸다 .

 

    김성희(한양여대 , 연극평론가)는 <한국희곡>에 발표한 한 비평문에서 “ 이반의 단막극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의 대사가 사투리인데도 힘차고 리듬감까지 있어 매우 아름답다 . ” 고 평한 바 있다 .

 

    이반 희곡의 대사 중 주목할 것은 ‘ 코러스 ’ 다 . 이반은 특히 우리나라 극 작가 중 유일하게 코러스를 활용하고 있다 . 그러나 그의 코러스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 리듬이 있는 합창 ’ 이 아니다 . 그는 음악적 리듬을 배제하고 대사 낭독만으로 코러스를 활용한다 . 그럼에도 기능적으로는 그리스 비극 코러스나 20세기 영국 시극 작가들의 코러스와 동일하다 . 이 반은 시극이 지니는 단아한 정결미 , 우아함 , 제의적 양식미를 살리기 위해 코러스를 활용한다고 말한다 . 실제 그 언어는 시가 지니는 아름다움을 그 대로 간직하고 있다 .

 

    이반이 코러스를 적극 활용하게 된 것은 , 종교극을 익히기 위해 2년 동 안 스웨덴과 영국에 유학을 다녀온 후이다 . 그는 그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그리스 연극의 정수를 목격했다 . 그 덕에 현대극의 플롯 구성과 인 물 운용에 대해 그 누구보다 능란하다 . 그러나 이반은 그 또한 뛰어넘어 독자적인 플롯 체계를 구축했다 .

 

    입센 이후 현대 희곡의 플롯은 아주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으니 , 한 사 회나 가정의 문제가 부각되면 그 문제를 집요하게 추적해 나가는 식이다 . 옆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지더라도 이를 외면한 채 확대시키지 않고 주 플롯만 추적해 나가는 단순성을 미덕으로 한다 .

 

  「 그날 그날에」에서도 발단 부분은 주막에서 어부들의 고기 잡는 이야기 로 매우 단순하게 출발한다 . 이는 「아버지 바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 어 판장의 포장마차가 나오고 , 그곳에 찾아든 낯선 나그네가 등장하면서 극 이 시작되는데 , 독자(관객)들은 작품이 단순한 어부들이나 바닷가 이야기 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 그러나 「 그날 그날에」나 「아버지 바다」 2막에서 플롯은 급하게 분단 문제로 변한다 . 기존의 어촌 이야기를 그대로 지닌 채 이야기 구조를 이동하므로 이중 플롯이라 할 수 있다 .

 

    이반의 이중 플롯 전개 방법은 한국 희곡사에서 특이한 극작술로 인정 된다 . 작가의 의도를 극대화시키는 데는 유리하지만 , 「아버지 바다」의 후 반부처럼 “ 작위적이고 산만하다(김성희) ” 는 평도 때로는 감수해야 한다 . 이반은 이런 플롯 기법을 활용해 , 80년대 한국 사회가 지니고 있던 분단 , 노사 , 인간 삶의 문제를 함께 다루곤 했다 .

 

    이반은 ‘ 미메시스와 미토스(모방과 플롯) ’ 라는 제하의 은퇴 강연에서 “ 모든 희곡의 형식을 동일하게 쓰지 않고 다르게 썼다 . ” 고 밝혔다 . 그는 사실적 방법을 즐겨 구사하며 , 때때로 시극과 다큐멘타리적 방법(「바람 타는 성」) , 극장주의적 방법(「환상무대」) 등을 활용하여 플롯을 전개했다 .

 

    김방옥은 이반의 작품들을 전수(全數) 분석한 뒤 , 극 형식과 내용이 감 정에 치우쳐 멜로드라마적 요소를 지닌 것은 다수 있지만 , 단순 멜로드라 마는 한 편도 없다고 밝힌 바 있다 . 멜로의 중심에는 남녀간의 사랑이야 기가 있어야 하는데 , 그는 단 한 편의 남녀간 사랑이야기도 쓰지 않았다 는 것이다 . 오직 잘 짜인 구성 속에서 분단이라는 사회 정치 문제나 신앙 대하여 관심을 집중해 온 것이다 .

 

    이반의 희곡에서 제시되는 무대가 ‘ 바람 불고 파도치는 선창가나 어촌 ’ 이니 , 인물 역시 그곳에 사는 거친 어부나 생선 장수 , 포장마차 주인 등일 수밖에 없다 . 작품 속 인물들이 살아 있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 그의 작품을 연기한 배우들이 각종 연극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한 것만 봐 도 짐작할 수 있다 .

 

  「 그날 그날에」는 제3회 대한민국 연극제(극단 ‘ 광장 ’ . 조병진 연출)에 출품되었는데 , 김 노인 역을 한 이대로가 남우주연상을 , 80년 대전에서 개최된 전국연극제(연극협회 속초지부 . 신원하 연출)에서 역시 김 노인 역을 맡은 장규호가 남우주연상을 , 제1회 전국연극제 「바다로 나가는 사 람들」(포항 은하극단 . 연출 김삼일)에서 노파역의 신복희가 여우주연상 을 , 89년 대한민국 연극제에 출품된 「아버지 바다」(극단 현대극장 , 김호 태 연출)에서 길모 역의 최종원이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이다 . 「바람 타 는 성」의 이재수나 「카운터포인트」의 소현세자 , 「샛바람」의 기식이나 기 호도 연구 대상이 되는 인물이다 . 영미문학을 전공하는 김한(동국대)은 이반의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에 등장하는 노파와 , 아일랜드 극작가 존 밀링톤 싱그의 「바다로 나가는 기사들(TheRiderstotheSea)」의 노파 ‘ 모리야 ’ 를 비교 분석하며 , “ 또 하나의 가능성이 우리 한국 작가에 의해 구현되고 있다 ” 고 평했다 .

 

    반복해 말하지만 , 이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문득 온화하게 느껴 지고 , 그 무대가 평온하게 감지되는 것은 , 이렇듯 이반의 독특한 플롯 구 성과 인물 운용 방식에 따른 것이다 . 등장인물들은 거칠긴 하나 , 그 저변 에 강한 인간애를 지니고 있는 이들이다 .

 

    자전적 내용을 집중적으로 담고 있는 꽁트(掌篇)집 『반지담』만 봐도 그 렇다 . 그의 어머니는 근면하고 억센 전형적 함경도 할매다 . 이미 처녀시 절 일제 순사의 불알을 움켜쥐고 어판장에 내동이치며 그 기세를 떨친 바 있다(「탄생」) , 그의 아버지는 매사 남에게 양보하는 온순한 어부에 지나 지 않으나 때때로 악랄한 착취자에 당당하게 저항하며 자신의 소중한 수 확물마저 바다에 던져버리는 ‘ 시대의 의인 ’ 이다(「아버지와 아들」) . 그의 장인영감도 , 남편의 외박을 고자질한 당신 딸의 따귀를 후려치는 전근대 적인 인물이다(「촉새와 채찍」) . 그의 친구들도 , 남아선호사상에서 헤어나 지 못하는 구시대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야만의 삽화3」) .

 

    이들 인물들에 우리는 친근감을 느낀다 . 우리 이웃 어딘가에 분명 존재 할 것 같은 , 늘 만나고 있는 주변 인물 중의 하나일 것만 같다 . 평범한 우 리네 일상과 이웃이 , 이반의 작품 속에 들어가는 순간 , 특별한 일상과 이 웃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 이는 작품 속 상황이나 그 전개되는 플롯이 , 부 여된 인물의 캐릭터와 절묘하게 들어맞기 때문이다 . 이반의 작품 속에서 는 , 인물들끼리는 물론 , 인물과 플롯 , 인물과 대사끼리도 서로 어울리며 같이(同) 화합(和)한다 .

 

    이렇게 ‘ 동화(同和) ’ 의 경지에 이르면 , 이반 작품 속의 상황과 인물은 한 장의 흑백사진이 된다 . 옛 사진을 들여다보노라면 그 시절이 아무리 고 통스러웠어도 불현 듯 그리워지는 것이 보편적 감정이니 , 이것이 바로 , 우 리가 이반의 작품에서 온화함과 평온함을 느끼는 이유이다 . 그 암울하던 지난날들도 세월이 흐르면 그리워지거늘 ,

 

    이반의 작품이 마치 한 장의 사 진처럼 인화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으니 , 우리로선 지극히 따분한 일상을 아주 행복한 나날들로 인식하고 , 지극히 평범한 이웃을 매우 각별한 친구 로 맞게 될 수밖에 없다 .

이반의 뛰어난 극작술과 빼어난 안목으로 인해 , 우리는 그의 작품 속에 서 평온과 화평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 동화(同和)의 마술 , 이반의 작품이 바로 그러하다 .

 

5 . 이반 희곡의 돛과 닻 , 和解

  「아 , 제암리여!」를 비롯해 몇 편의 희곡은 일본에서도 공연되었다 . 물론 호평을 받았다 . 이반의 희곡이 단순히 가해자에 대한 질타나 피해자의 분 노만을 수용한 것이라면 , 일본인들에게 그리 각광받지 못했을 것이다 .

 

    앞에서 말했듯 , 이반의 작품 세계는 和를 추구하기에 , 설령 독자(관객) 와 적대적 관계에 있다 할지라도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다 . 그의 분단 희 곡들이 통일 시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빛을 발할 것이라 기대하는 이유 도 바로 이것이다 .

 

  「아 , 제암리여!」를 일본어로 번역 윤색한 일본 연극인 다가도 가나메(高 堂 要)는 , 한국 유신 시절에 일본 동경에서 김지하의 「금관의 예수」를 제 작 연출하였다 하여 한국 입국이 거절되었던 인물이다 . 그가 내한했을 때 한 언론사 기자는 “ 김지하와 이반의 차이점이 무엇이냐 ” 는 질문을 던진 다 . 그때 그는 , “ 김지하는 비판정신과 단호함을 지니고 있지만 , 이반은 부 드러움과 화해 정신을 지니고 있다 ” 고 답했다 .

 

    어쩌면 이것만으로도 이반의 작품세계를 압축해 설명할 수 있을 것이 다 . 和를 운용해 작품을 창작하는 그에게서 화해(和解)야말로 가장 근저 에 깔려 있는 사상임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

 

    또 다른 일본 공연작 ‘ 동경한국YMCA100주년 기념 작품 ’ 「바람과 별 과 석학」에 대해서 일본 아사히 신문은 문화면 톱기사로 뽑아 ‘ 상생과 공 생의 연극 ’ 이라 평했다 . 이 역시 , 이반 희곡의 본질을 꿰뚫는 명쾌한 분석 이라 할 것이다 .

 

    우리 평단에서의 이반 희곡에 대한 평가도 그와 유사하다 . “ 이반 희곡 의 미덕은 그가 지니고 있는 격한 울분의 감정을 억누르는 지적(知的) 균 형감각에 있다 . ” 고 김방옥은 말한다 .

 

    연극평론가 조보라미도 이반 희곡은 한국예술계의 큰 자산이라고 주장 한다 . 이반의 분단극은 함경도 아바이 마을의 말씨와 풍속을 재현하고 있 다는 점에서 소중한 자산이며 , 종교극 역시 ‘ 종교극이라는 카테고리조차 제대로 자리매김 되지 못한 ’ 한국 연극사에서 본격적인 장을 열었다는 점 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

 

    실제 그의 작품들 대부분은 발표될 때마다 연극계는 물론 , 문화계에 문 제점과 시사점을 던져주곤 했다 . 70년대를 마감하고 80년대를 시작할 때 , 그 전까지만 해도 분단 문제를 다루지 못했던 한국 연극계에 이반은 과감 하게 도전장을 던졌다 . 신앙인이면서도 부당한 종교 현실과 대차게 맞섰 다 . 척박한 예술환경 아래에서도 이반의 작품들이 유독 빛을 발할 수 있 었던 것도 이런 저력 덕분일 것이다 . 그 결과 이반은 한국 희곡계에서 분 단극과 종교극의 대가로 우뚝 서게 되었다 .

 

    이반은 철학자와 예술가와 종교인으로서의 삶을 누렸다 . 그의 사유와 그의 작품은 이렇듯 문학과 철학과 신앙이 혼재해 있다 . 문학으로 철학을 했고 , 철학으로 문학을 했다 . 작품 세계의 깊이를 논할라치면 우리나라 그 어떤 예술인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

 

    여담이지만 , 李盤은 그의 필명(筆名)이다 . 그 이름 ‘ 盤 ’ 자는 소반이라 는 뜻을 가지고 있다 . 글자를 풀어보면 배(船)를 그릇(皿)이 떠받고 있는 형국이다 . 우연이겠으나 그의 이름엔 이미 작품의 방향이 제시되어 있는 셈이다 . 바다와 바람과 배와 부두와 뱃사람들의 이야기를 한평생 이어 올 수밖에 없었던 노작가의 운명이 그 이름에 서려 있었던 것이다 .

 

    이반에게 있어 바다와 바람과 배는 늘 작품의 주요 모티브가 되어 왔다 . 하지만 그의 작품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하늘이다 . 실제 이반은 정 년퇴임 기념 강연에서 자신의 마지막 소망을 이렇게 피력하며 마무리했 다 .

 

    “ 천도의 북쪽에 서서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바다와 하늘 이야기를 쓰 고 싶다 . 내 세계의 반반씩 차지하고 있는 바다와 하늘은 내게 구원이며 종교다 . ”

 

    확실히 바다와 하늘은 이반에게 있어 ‘ 영원히 머물러야 할 터전 ’ 이고 , ‘ 종내 돌아가야 할 고향 ’ 이다 . 머무르려면 닻을 내려야 하고 , 돌아가려면 돛을 펴야 한다 . 이반에게서 그 닻과 돛은 두말할 것도 없이 ‘ 화해(和解) ’ 이다 .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이반은 화(和)를 운용한 극작을 통해 , 작품의 휴 머니티를 실현시킨다 . ‘ 바다 ’ 로 상징되는 이반의 분단극에서는 민족주의 적 입장에서 ‘ 너그럽게 용서하고 다정하게 어울리자 ’ 는 유화(宥和)의 대 안을 제시하고 , ‘ 바람 ’ 으로 상징되는 이반의 종교극에서는 전통문화와 기 독교의 ‘ 조화(調和) ’ 를 촉구한다 . 이반의 모든 작품에서 인물과 인물들은 서로 절묘하게 어울리며 플롯과 일체를 이루어 동화(同和)를 구현한다 . 이로 인해 이반의 작품에서는 선과 악의 갈등을 가장 친화(親和)적으로 해소해 냄으로써 , 공존 공생의 메시지와 더불어 강한 인간애(人間愛)를 구현한다 . 강인한 인물들에 의해 극렬한 갈등 속에서 치열한 생존의 현장 이 펼쳐짐에도 , 작품 전편에는 오히려 온화(溫和)함과 평화(平和)스러움 과 조화(調和)로움이 넘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 이반 희곡의 예술적 성취는 바로 이렇듯 ‘ 화(和) ’ 와의 ‘ 성공적 어울림 ’ 에서 비롯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