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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2013년 [ 동화 - 이희갑 - 청대산의 소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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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3,238회 작성일 14-01-0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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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대산의 소나무

 

전편의 줄거리

 

선유는 아버지를 따라 급히 청대산을 향한다 . 연휴를 맞아 회사에서 돌아 온 아빠는 늘 하던 대로 짐을 챙겨 선유를 데리고 청대산을 향해 떠난다 . 아 빠의 갑작스러움에 불안한 선유는 이미 아빠와 약속이 된 엄마를 버스터미널 에서 만난다 . 지난봄에 청대산에는 매우 큰 불이 났다 . 그 때 아빠는 매우 안 타깝게 생각하며 청대산으로 갈 기회를 찾으나 회사일로 가지 못한다 . 그러 다 연휴를 맞아 부랴부랴 시외버스를 타고 선유와 선유 엄마를 데리고 청대 산을 향한다 . 엄마와 선유는 늘 그러시는 아빠로 인해 어느덧 청대산이 또 하 나의 고향과 같이 느껴지게 된다 .

 

아빠 고향인 청대산을 향해 가는 버스 안에서 선유는 아빠와 청대산의 관 계에 대해 조금 이해할 만한 이야기를 듣는다 .

 

아빠는 어릴 적 청대산 이야기를 할 땐 옛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 다 . 가난하고 어려운 중학교 시절 가뭄으로 인해 물이 없어 모내기를 할 수 없는 농촌에 국가적으로 학생과 공무원이 물 찾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 청대 산 아래 펼쳐진 딱사벌 벌판에서 선유 아빠의 중학교 친구들과 물구덩이를 파며 지내던 얘기는 정말 지금은 볼 수 없는 먼 나라 동화 얘기처럼 들린다 . 가난했지만 친구들과 모두 다정했고 씩씩했던 그 때가 새롭게 들린다 . 고생 끝에 물구덩이를 파고 선생님으로부터 해산 명령이 떨어지면 그냥 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칡을 파러 청대산으로 향하게 된다 . 가는 길에 꼭 거쳐 가야 하 는 가재골 계곡에서 선유 아빠를 포함한 단짝 다섯 친구들이 가재를 잡느라 정신을 판다 .

 

가재 잡기가 열심일 때 문득 선유 아빠 민호는 가재골짜기 위로 올라간다 . 골짜기를 오를수록 물소리 새소리와 더불어 찾아오는 이상한 분위기를 민호 는 느낀다 . 아무도 없는 청대산 골짜기 . 그곳에서 민호는 이상한 감정에 빠진 다 .

 

 

 

 

 

4 . 청대산 바람 소리

청대산 가는 버스가 휴게소에 섰다 .

 

“ 여보 , 여보 . 일어나야지 . ”

 

앞좌석에서 달리던 버스와 함께 달리던 엄마의 잠은 계속되는가 보다 . 아빠가 엄마의 어깨를 흔들었다 . .

 

버스가 서자 아빠의 이야기도 함께 섰다 . 방금까지 청대산 골짜기에서 소곤거리던 새소리 물소리가 갑자기 아빠의 귀에서 사라지고 이상한 느낌 을 받으며 멍하니 섰던 아빠가 선유 앞에서 잠에 취에 깨어나지 못하는 엄 마를 흔드는 모습이 조금은 새로웠다 .

 

유월의 태양은 아직도 하늘 중간에서 이글이글 타올랐다 . 휴게소 너머 로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산마다 경쟁이나 하듯 푸른 녹색을 진하게 담고 있었다 .

 

“ 여보 , 선유야 , 덥지? ”

 

아빠와 선유가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어느새 재빠른 엄마는 시원한 주 스 세 병을 손에 움켜쥐고 해맑게 웃으며 다가왔다 .

 

“ 또 무슨 얘기꽃을 피웠게 ~ ~ ”

 

엄마는 아빠 팔짱을 살짝 끼면서 말했다 .

 

“ 응 . 선유한테 옛날 물웅덩이 파고 가재 잡던 얘기 … ”

 

“ 당신두 참 , 나한테 써 먹더니 이젠 아들래미한테로 고객을 바꾸었네 ”

 

아빠는 선유를 슬쩍 쳐다보다가 엄마에게 아니라고 눈짓하는 것 같았다 .

 

“ 엄마 , 고객이 원했거등요 , ”

 

선유가 얼른 받아 치자 “

 

그렇지 그래 고객이 왕이니까 … ”

 

겸연쩍게 있던 아빠 얼굴이 금방 펴지면서 웃었다 . 웃는 아빠의 앞니가 유난히 하얗게 보였다 . 엄마와 선유는 서로 눈을 맞추며 살짝 미소를 지 었다 .

 

버스는 다시 달렸다 . 남북으로 뻗은 태백산맥을 끼고 버스는 아까보단 조금은 힘차게 달렸다 .

 

“ 엄마 , 아빠랑 같이 앉으세요 . ” 선유는 엄마를 혼자 앉게 한 것이 미안해서 말했다 .

 

“ 괜찮아 . 니 아빠 옛날 예기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 할 텐데 나보단 니 가 필요할거야 . 지금 아빠의 고객은 너니까 . ”

 

엄마는 웃으면서 아까 앉았던 자리를 고집하였다 .

 

“ 그러면 나야 좋지 ~ 잉 ”

 

선유는 콧소리를 내 가며 아빠와 하이파이브를 하였다 .

 

버스가 긴 굽은 도로를 벗어나 커다란 호수를 끼고 달리기 시작했다 . 호 수물이 햇빛에 반짝이는데 가끔씩 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

 

“ 아빠 , 계속하셔야지요 . ”

 

“ 뭘 . ”

 

선유가 말하자 아빠는 괜히 시침을 떼며 나 몰라라 하는 표정이다 . 선유는 속으로 우스웠지만 그대로 가기로 했다 .

 

“ 청대산 골짜기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면서요? ” 아빠가 말하고 싶어 못 견딜 거라는 것쯤은 알지만 선유는 아빠의 체면 을 생각하여 말했다 . 아빠는 잠시 헛기침을 하며 뜸을 들였다 . 선유는 또 웃음이 나왔다 .

 

민호는 갑자기 사라진 물소리 , 새소리를 느끼지 못했다 . 나중에 생각하 니 그 순간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는 걸 기억해 냈다 . 이상한 느낌이 골짜기 위로 민호의 시선을 돌리게 했다 . 골짜기 위에서 낯선 바람이 불 어왔다 . 물기를 머금은 듯 약간 축축한 바람이었다 .

 

민호는 그 바람을 얼 굴에 맞으면서 몇 발짝 골짜기 위로 향했다 . 골짜기는 좁아지면서 구불거 리며 올라가다가 산모롱이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 골짜기가 사라진 곳 에는 오리나무들이 빽빽이 가리고 있었다 .

 

민호는 다시 몇 발자국 나갔다 . 낯선 바람에서 소리가 났다 . 처음에 바 람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했다 . 긴 한숨소리 같은 바람소리였다 . 민호 는 놀라서 우뚝 섰다 . 다시 소리가 들렸다 . 나무들은 움직이지 않는데 바 람소리라니 . 민호는 약간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 잠시 후 다시 소리가 들 렸다 . 누구를 부르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 아주 낮은 소리였다 . 처음 엔 한 사람의 소리 같았으나 잠시 후엔 여러 사람들의 소리가 섞여 들리 는 것 같았다 .

 

“ 골짜기 위에 뭔가 있는가 보다 . ’

 

순간 민호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 무서웠다 . 몸을 돌려 내려가고 싶었 다 . 그러나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았다 . 어느새 민호의 몸이 굳어 있었다 . 민호는 애를 쓰며 억지로 왼발을 내디뎠다 . 몸이 약간 말을 들었다 . 다시 민호는 오른발도 내디뎠다 . 몸이 움직였다 . 민호는 골짜기 아래로 달리기 시작했다 . 그 때 분명히 그 소리를 들었다 .

 

‘ 얘야 . 내 말 좀 들어주겠니? ’

 

민호는 귀를 막았다 . 귀를 막은 손등 위로 바람이 부딪치는 걸 느꼈다 .

 

‘ 내 말 좀 들어봐 . ’

 

그 소리는 손등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 민호는 땀이 번쩍 났다 .

 

‘ 내가 뭘 잘못 들은 거야 . ’

 

민호는 이런 생각을 하고 힘껏 달려 골짜기로 달려왔다 . 민호는 개울을 이리저리 넘어 달리다 미끄러졌다 .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엉덩이 반쯤은 개울 속으로 빠졌다 . 민호는 얼른 일어나서 물에 젖은 엉덩이를 털었다 .

 

“ 야 , 또 불러봐 . ”

 

“ 이미 세 번이나 소리 질렀거든? . ”

 

“ 또 불러보자 ” “ 민호야 . 민호야 ."

 

민호의 귀에 가재 잡는 친구들 목소리가 들었다 . 민호는 정신이 번뜩 들 었다 . 친구들의 목소리를 느끼자 민호는 귓가에 붙어 있던 바람소리가 사 라졌다는 걸 알았다 .

 

민호가 아이들 앞에 나타났다 . 현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맨 먼저 달 려왔다 . 급하면 더 더듬는 현수다웠다 .

 

“ 어 어 어디 매로 가 갔다 오 온 기야? ”

 

친구들도 제자리에 서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민호를 바라봤다 . 민호는 쑥스럽게 웃었다 .

 

“ 자 봐라 이 가재 . ”

 

형근이가 도시락 뚜껑을 열자 팔딱거리던 가재가 도시락을 뛰어넘어 냇 물에 떨어졌다 .

 

“ 아 , 내 가재 … ”

 

형근이는 냇물에 떨어져 냅다 도망치는 가재를 쫓아가다가 몸을 휘청거 렸다 . 그 바람에 도시락 뚜껑을 비스듬히 하는 바람에 가재들이 다 쏟아 지고 말았다 .

 

“ 야야야 가재 저 가재 … ”

 

아이들이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 물속으로 떨어진 가재들이 도망가는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다 . 뒤꼬리를 감아 채고 잽싸게 돌 틈으로 숨는 놈 , 어슬렁거리는 놈 , 죽은 듯이 가만히 있는 놈 …

 

“ 야 , 형근이가 어떻게 잡은 가잰데 . ”

 

정훈이가 물속에서 미처 몸을 숨기지 않은 가재를 잡느라고 허리를 굽 혀 두 손을 첨벙거렸다 , 민호도 얼떨결에 허리를 굽혀 가재를 잡았다 . 다 른 아이들도 달려와 형근이 가재를 잡느라 한바탕 물속에서 법석을 떨었 다 .

 

“ 어떻게 된 거야? ”

 

태영이가 다가오면서 말했다 .

 

“ 응 , 가재가 더 있나 하고 요 위로 좀 올라가다보니 … ”

 

민호는 이상한 바람소리 이야기를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 괜히 머리 가 살짝 돈 놈 취급 받기 싫어서였다 .

 

아이들은 가재를 담은 도시락에서 물을 빼고 뚜껑을 꽉 닫았다 . 형근이 는 아직도 다 찾지 못한 가재를 생각하느라 그런지 얼굴이 시무룩해 보였 다 .

 

“ 자 자 . 뭐 뭐해 치 칡 파 파러 아 안 갈꺼야? ”

 

현수가 삽을 메고 개울을 건너 앞으로 걸어갔다 . 약간 뒤뚱거리는 걸음 으로 걷는 현수의 뒷모습을 보며 네 친구들은 서로 쳐다보다가 어깨를 약 간 으쓱하더니 현수의 뒤를 따랐다 .

 

 

 

 

 

5 . 산철쭉나무 너머에서

산길로 난 좁은 오솔길이 끊겼다 이어졌다 하며 점점 비탈로 이어졌다 . 산으로 오를수록 산 속의 꽃향기가 코로 강하게 들어왔다 . 우거진 덤불 사 이에서 사람보다 더 놀란 꿩들이 꿩 , 꿩 하며 푸드득 날개를 치고 날아올 랐다 . 보이지 않는 산꼭대기 쪽에서 뻐꾹새가 뻐꾹뻐꾹 한참을 울다가 멈 췄다 .

 

아이들 이마에 제법 땀방울이 송송 맺혔다 . 청대산 속은 생각보다 깊은 느낌이 들었다 . 우거진 숲이며 비탈 , 실개천 같은 작은 냇물 줄기가 쉴 새 없이 나타났다 .

 

칡이 있는 곳을 아는 형근이가 어느새 앞장을 섰다 .

 

“ 혀 혀 형근아 . 어 얼마 더 가야 해 . ”

 

기진맥진한 표정을 지으며 제일 나중으로 처진 현수가 말했다 .

 

형근이도 조금은 당황한 모습이다 . 한 달 전에 갔을 때와는 산 속 모습 이 사뭇 달랐다 . 한 달 사이 산속은 많이 변했다 . 새순이 날 무렵에는 나 무 사이로 앞을 볼 수 있는 곳이 많았는데 이젠 그 시야를 무성한 나뭇잎 들이 다 가려버렸다 . 또한 덤불도 더 부풀어 오르듯 웃자란 것처럼 보이 고 있을 듯 말 듯 한 산길도 풀들이 다 점령해 버렸다 .

 

형근이는 가다 서다 하면서 신중하게 길을 찾아 걸었다 . 한참을 올라가 다보니 다시 작은 개울 줄기가 나타났다 . 민호는 그 개울이 자기가 아까 올라왔던 그 근방이란 걸 알았다 . 민호가 형근이 뒤로 바짝 다가갔다 . 뭐 라고 말하려고 하는 데 형근이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봤다 .

 

“ 민호야 , 이 근방 같아 . ” “ 어떻게 알아? ” “ 저기 봐 , 저 소나무 있지? ” 형근이가 가리킨 쪽에 키 큰 소나무 두 그루가 서로 엇비슷하게 서 있었 다 . 소나무 너머로 산철쭉나무들이 쭉 이어졌고 그 끝은 대나무 숲이었다 .

 

“ 저 소나무 뒤 대나무 숲을 지나면 돼 . 맞아 . 거기가 맞아 . ”

 

처음에 자신 없게 말하던 형근이가 말하면서 자신을 얻었는지 아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 현수가 힘들어 하면서도 그 소리에 입이 쩍 벌어지는 것 같았다 .

 

잠시 소나무 아래에 앉았다 . 계곡에서 조금 비켜간 곳이라 물소리는 들 리지 않았으나 산속에서 풍기는 온갖 산 냄새가 싱그럽게 콧속으로 들어 왔다 . 바람이 한 차례 불었다 대나무 숲에서 소리가 났다 . 물살에 모래가 함께 흘러가는 샤아 , 하는 소리다 . 바람이 대나무 숲을 한바탕 뒤흔들어 놓는가 보다 .

 

늦은 봄 산 속은 그런대로 시원했다 .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 땀을 흘리 고 있었다 . 앞 산등성이에 가려 딱사벌 들판을 보이지 않았지만 이미 한 참을 올라온 것이 분명하다 .

 

아이들이 조릿대 대나무 밭을 헤집고 나오니 갑자기 산사태가 난 것 같 은 헐벗은 비탈길이 나타났다 .

 

“ 여기다!

 

형근이가 소리쳤다 . 너무도 큰 소리였다 . 모두 깜짝 놀라 형근이를 바 라보았다 . 형근이의 기억력은 놀라웠다 . 정확히 장소를 맞췄다는 것을 형 근이의 표정에서 금방 알 수 있었다 .

 

“ 뭐야 . 이런 곳에 칡이 있다니 . ” 정훈이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 다른 아이들도 그렇다는 표정 이다 . 형근이가 얼른 눈치를 채고 말했다 .

 

“ 자 자 , 장소는 정확해 , 그러니 잠시 여기 앉아봐 . ”

 

형근이가 먼저 앉으며 손으로 원을 그렸다 . 아이들이 원 모양으로 앉았 다 . 형근이의 칡 경험담이 바로 오늘이 교육의 핵심이 된다는 걸 알고 있 었기 때문이다 .

 

“ 우선 칡의 생태를 알아야 해 … ”

 

형근이가 선생님처럼 폼을 잡으며 턱을 내밀고 말하다가 침이 목에 걸 렸다 .

 

“ 급하긴 … ”

 

태영이가 물병에서 물을 꺼내 형근이 입에 갖다 대주었다 . 아이들이 모 두 와아 하고 웃었다 .

 

“ 칡넝쿨은 태양 쪽을 향하고 뿌리는 물 쪽을 향해 . 그러니까 만약 언덕 위에 칡넝쿨이 있다면 뿌리는 어디에 있지?

 

형근이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 그 때 태영이가 나섰다 .

 

“ 야 , 뭐 퀴즈 대회 여니? ” 형근이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 민호가 옆에서 거들었다 .

 

“ 야 , 들어봐 . 모르는 문제 나오면 형근이가 알려주겠지 . 시험도 아닌 데 . . ”

 

아이들이 잠잠해졌다 . 형근이가 아까 물음에 어서 대답하라고 눈을 동 그랗게 뜨고 아이들을 바라봤다 .

 

“ 게게게 계곡 . ”

 

빨리 칡을 캐진 않고 뭘하느냐고 아까부터 투덜대던 현수가 말했다 .

 

“ 정답! ”

 

형근이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

 

“ 항상 칡뿌리는 물이 있는 곳을 향해 뻗어 있는 거야 . ”

 

아이들이 시선이 여기저기 흩어졌다 . 산비탈 쪽으로 , 소나무 뒤로 철쭉 나무 숲으로 . 그러나 물은 보이지 않고 계곡도 보이지 않았다 .

 

아이들의 시선이 다시 형근에게로 돌아왔다 . 형근이가 조금은 기가 죽었다 . 그 때 태영이가 나섰다 .

 

“ 그러니까 우선 바위가 없거나 적고 높은 산 계곡 물길 따라 오르다 보 면 언덕 쪽에 칡넝쿨이 있다는 말이지 . ”

 

태영이는 조금 전까지 가재골을 타고 올라온 걸 상기시키는 듯 자신 있 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 태영이는 머리가 잘 돌았다 . 순간적으로 주 변 환경에 맞게 말을 슬쩍 바꿨다 . 물론 이 이야기도 맞는 이야기다 . 태영 이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니까 . 태영이는 친구들과 물웅덩이 작업을 마치 면 청대산에 칡 파러 간다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 그러자 아버지는 칡에 대 해서 이것저것 얘기 해 주셨다 . 태영이 아버지는 청대산 마을에서 태어나 신 토박이다 . 그래서 젊었을 때 청대산에 올라가 칡깨나 파면서 살아온 분 이다 .

 

“ 너 지금 장난치지? ”

 

눈치 빠른 정훈이가 말했다 . 민호가 정훈이를 슬쩍 쳐다보았다 . 민호는 눈에는 이런 말이 씌어있는 것 같았다 .

 

‘ 야 , 내비도 , 좀 듣자 . ’

 

정훈이는 얼굴을 조금 찡그리다 픽 웃곤 펄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

 

태영이는 그것도 모르고 자기 말에 도취되어 있었다 . 칡에 대해 나만큼 아는 사람 나와 봐 . 라는 식으로 조금은 으스대었다 . “

 

그러니까 결국 칡뿌리는 물 쪽을 향하게 되어 있다 그 말씀이죠 . 히히 . ”

 

아이들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며 같이 히히 웃었다 . 태영이가 머쓱해 지고 말을 끊자 형근이가 다시 이야기를 했다 .

 

“ 칡넝쿨 줄기의 아래 부분 바로 칡이 있어 . 그러니까 넝쿨 줄기 어느 쯤 에 칡이 있는지 그걸 짐작을 잘 해야 돼 , 그런 다음 넝쿨을 보고 이 칡이 얼마나 클 것인가를 짐작하고 그 주위를 파야 하는 거야 . ”

 

“ 뭔 칡을 파는데 짐작이 그리 많냐? ”

 

정훈이가 다시 툴툴거렸다 .

 

형근이는 정훈이 말을 못 들은 척 계속 말했다 .

 

“ 그 다음 곡괭이로 파는 거야 . ”

 

“ 그 그럼 이 이제 파 파는 거야? ”

 

현수가 벌떡 일어났다 . 아이들이 현수를 빤히 쳐다봤다 . 현수는 썰렁한 분위기를 알고 다시 슬그머니 앉았다 . 형근이가 손을 털었다 . 자기 할 말 이 끝났다는 표현이었다 . 그 때 태영이가 말했다 .

 

“ 잠깐 ”

 

현수가 얼굴을 찡그렸다 .

 

“ 칡이 나왔다고 금방 그걸 자르면 안 돼 , 지면 가까이 있는 칡은 나무처 럼 딱딱하지만 깊이 팔수록 굵어지고 맛이 좋아 . 성질 급하게 금방 자르 면 딱딱하고 맛없는 칡만 파게 돼 그러면 헛고생이다 . ”

 

“ 맞아 . 딱딱한 건 나무칡 , 맛좋은 건 밥칡 . ”

 

형근이가 태영이를 살짝 째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태영이가 웃었 다 . 현수가 삽을 움켜잡고 뛰어 나갈 모양을 취하고 있었다 . 아이들이 한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 빨리 칡을 캐서 그 쌉쌀한 밥칡 맛을 봐야 하 는데 .

 

“ 내 발 들어봐 . ”

 

민호는 가지고 있던 짐을 그 자리에 내려놓았다 “

 

짐은 여기다 모아놔 . 그리고 칡은 각자가 찾아서 캔다 . 딱 두 시간이 야 . 멀리 가지마라 . ”

 

민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현수가 총알처럼 뛰어나갔다 . 현수가 달려 간 곳은 가재골 상류와 방향이었다 . 아까 이야기할 때 듣지 않은 것 같던 현수가 제일 먼저 물 있는 곳을 달려가는 걸 보고 모두 웃었다 . 형근이는 잠시 산속을 두리번거리더니 싸리나무가 우거진 산등성 서쪽을 향해 걸어 갔다 . 어디를 갈지 몰라 가만히 서 있는 서있는 정훈이와 태영이를 보고 민호는 얼른 가라고 턱을 앞으로 내밀었다 . 태영이는 방금 지나온 산철쭉 나무길 쪽을 행해 갔다 . 정훈이가 머뭇거렸다 .

 

“ 그래 , 넌 형근이 따라가 . ”

 

민호 말에 정훈이 얼굴이 밝아졌다 .

 

아이들이 사라진 사방을 바라보다 민호는 눈을 들어 산꼭대기 쪽을 바 라보았다 . 산 속이라 얼마쯤 올라왔는진 몰라도 산 중턱은 훨씬 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사라진 산 속은 다시 조용하였다 . 하지만 그것도 잠시 , 바람이 한 차례 휘익 불었다 . 조릿대 잎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다 시 요란하게 들렀다 . 오리나무 숲에서 이파리들이 팔랑거렸다 . 꽃향기가 콧속을 다시 비집고 들어왔다 .

 

민호는 물가와는 반대 방향인 산꼭대기를 향해 걸었다 . 길이 제대로 나 있질 않아 키가 작은 나무들이 늘어선 쪽을 골라 걷다 보니 한참을 이리 저리 방향을 바꿨다 . 잠시 후 작은 길이 나타났다 . 산 약초를 캐러 다니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 같았다 .

 

현수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비탈진 곳에서 칡잎을 찾았다 . 처음 보는 잎 이라 현수는 말만 들은 칡잎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 달랑 칡잎만 산에 있다면 몰라도 산 속은 수많은 나뭇잎과 풀잎이 널려져 있으니까 . 현수 는 먼저 달려온 것을 후회했다 . 형근이를 따라 가야 하는 건데 . 하지만 형 근이의 느긋한 성격으로 성질 급한 현수에겐 지금은 답답할 뿐이다 . 현수 가 간 가재골 상류는 개울이라기보다 샘터에서 졸졸 흘러나오는 작은 물 줄기라고 말해야 할 만큼 좁은 곳이었다 . 현수는 가재골 상류를 올라가면 서 칡잎 찾기에 정신을 다 쏟고 있었다 .

 

원래 칡은 잎이 나기 전 칡 줄기를 보고 캐는 겨울에서 이른 봄이 최적 이다 . 말라비틀어진 칡 줄기가 뻗어 나간 곳을 파면 겨울동안 양분을 비 축한 소담스런 칡뿌리를 만날 수 있다 . 그러나 새순이 나는 봄이 오면 칡 잎과 칡 줄기에 양분이 가기 때문에 토실한 칡뿌리는 한물 가는 것이다 . 칡잎은 산 속의 어떤 눈에 잘 띈다 . 마름모 모양의 크고 넓적한 잎이 잎자 루에서 세 갈래로 갈라져 두 손을 받쳐 든 모양을 하고 있으니 찾기 쉽다 . 하지만 칡잎이 벌써 크게 자라면 칡뿌리에 모아 둔 영양분이 잎으로 가기 때문에 좋은 칡을 얻을 수 없다

 

5월이 되어 칡 파러 온 민호네는 당연히 칡 줄기보단 칡잎을 찾는 게 쉬 운 일이다 . 그러나 5월에도 칡을 팔 수 있는 것은 게중에는 아직 남아 있 는 칡의 고유한 맛과 향기를 지니고 있는 칡뿌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 다 . 간혹 운이 좋으면 깊은 땅 속에서 토실토실하고 소담한 겨울철 못지 않은 칡뿌리를 만나는 행운도 있다 .

 

 

 

 

 

6 . 칡 캐기 대작전

 

현수는 형근이가 몇 번이고 학교에서 일러준 칡잎을 떠올리며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 마침내 가재골 상류에서 약간 언덕으로 처진 곳에서 칡잎을 발견했다 .

 

‘ 이건가 보네 . ’

 

현수는 칡잎을 들고 자세히 살폈자 . 형근이가 한 말이 귀에 쟁쟁하게 들 리는 것 같았다 . 잎은 크고 마름모 모양이야 . 잎자루에 세 개씩 붙어 있고 잎자루는 줄기에 붙어 있어 줄기는 잎들을 매달고 기다랗게 이어져 있고 …

 

“ 맞다 . ”

 

현수는 확신을 가지고 칡넝쿨을 당겨보았다 . 파르스름한 줄기가 바닥에 숨어 있다가 현수가 주는 힘에 따라 주르륵 따라 올라왔다 . 현수는 줄기 를 조금 더 당겼다 . 그러자 길게 뻗은 칡넝쿨이 언덕 너머까지 이어져 있 었다 . 현수는 슬슬 당기며 다가갔다 . 손에 까칠한 칡넝쿨 털이 느껴졌다 . 칡넝쿨을 따라 간 현수가 멈춰 섰다 . 갑자기 적당한 힘으로 당겨지던 칡 넝쿨이 더 이상 풀려지지 않았다 . 현수가 당기자 칡넝쿨도 현수를 당겼다 .

 

“ 됐다 . ”

 

현수는 직감적으로 칡뿌리가 묻혀 있는 곳에 도착했다는 걸 알았다 . 얼 굴이 밝아졌다 웃음이 입가에 살짝 스쳐 지나갔다 .

 

민호는 산꼭대기를 향해 가다가 작은 소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비탈진 곳에 한 눈에 보아도 무성히 덮여 있는 칡잎을 보았다 . 민호는 이 리저리 살피다가 끝이 말라비틀어졌지만 조금 아래쪽에 파릇하게 물이 오 른 줄기 하나를 골랐다 . 줄기를 살며시 당겼다 . 바람결에서 잔물결 같은 흔들림만 있던 잎들 사이에서 줄기 하나가 주르르 올라왔다 . 줄기에 붙은 칡잎들이 운동회 날 운동장에 매단 만국기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다가 바 람결에 흔들렸다 .

 

태영이는 산철쭉나무밭을 지나 가파른 언덕에 섰다 . 왼편에는 갈참나무 숲이 산 아래로 죽 이어져 있었고 오른편 아래쪽에는 야생 밤나무 숲이 보 였다 . 그 사이로 태영이네가 사는 동네 한 귀퉁이가 보였다 . 조금 비켜서 면 학교도 보였다 .

 

태영이는 자기가 알고 있는 칡 지식을 동원하여 칡이 있을만 한 곳을 찾 았다 . 태영이 아버지가 가르쳐 준 방법이다 .

 

칡은 줄기와 잎은 햇빛을 향하고 뿌리 쪽은 어둡거나 습한 곳 , 또는 물 기가 가까운 곳을 향한다는 점을 기억한다 . 그리고 칡넝쿨을 발견하면 비 탈진 곳이나 산사태 난 곳까지 그 뿌리가 이어졌나를 확인한다 . 만약 뿌 리가 이어졌으면 뿌리의 길이를 가늠하고 위부터 팔 것이냐 중간을 팔 것 이냐를 정한다 . 그 다음 호미 같은 것으로 긁어내리다 보면 칡뿌리가 보 인다 . 칡뿌리가 보이면 어느 부분을 팔 것인가를 정한다 . 그리고 그 지점 에서 넝쿨 쪽으로 올라가면서 판다 . 그러면 튼실한 칡뿌리를 얻을 수 있 고 쓸데없이 수고하는 일을 피할 수 있다 .

 

야생 밤나무 길을 벗어나자 흙이 보이는 비탈길이 보였다 . 잡초가 깔렸 지만 곳곳에서 흙이 흘러 내려 잡초들이 잘 자라지 못한 곳이다 .

 

‘ 이곳이다 . ’

 

태영이는 주위에 칡넝쿨이 있나 찾았다 .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칡넝쿨 은커녕 칡잎 같은 것도 보이질 않았다 . 태영이는 약간 실망스런 마음이 들 었다 . 분명 흙이 보이는 곳에 칡넝쿨이 있어야 아버지 말대로 할 수 있는 데 … 태영이는 커다란 소나무 아래 앉아 실망스런 마음을 달랬다 . 그런데 우연히 소나무를 보니 소나무 줄기를 빙빙 감고 있는 넝쿨이 보였다 .

 

“ 넝쿨이다 . ”

 

태영이는 소리를 질렀다 . 그러다 사방을 들러보고 입을 가렸다 . 산 속 에서 혼잣말로 외쳤으니 쑥스러웠다 . 칡넝쿨을 따라 태영이는 아래로 아 래로 몸을 낮추었다 . 넝쿨은 소나무 밑동까지 내려와서야 친친 감았던 줄 기를 풀어주었다 . 넝쿨은 북쪽 방향으로 약간 벗어나더니 바로 땅 속으로 이어졌다 거기가 바로 칡뿌리가 있는 곳이다 . 태영이는 엄청 생명력이 강 한 칡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가는 칡은 결국 나무 를 말라죽게 한다는 말을 아버지에게 들은 적이 있다 . 칡이 때로는 사람 들에게 이로운 뿌리를 주고 산사태 같은 것을 막아주는 역할도 하지만 나 무에게 해를 주기도 한다는 것을 태영이는 직접 보고 놀랐다 . 칡의 뿌리 끝이 드러나거나 비탈진 곳에 있는 칡이 아니라서 아버지가 가르쳐준 대 로 할 수는 없게 되었지만 태영이는 특별한 칡을 발견하였다고 생각하여 괜히 마음이 들떴다 .

 

형근이는 싸리나무가 우거진 숲을 끼고 조금 더 서쪽 방향으로 나갔다 . 앞산에서 낮 뻐꾸기가 졸린 목소리로 가끔씩 울고 있었다 .

 

“ 형근아 . 같이 가 . ”

 

뒤에서 정훈이가 불렀다 . 형근이는 약간 놀란 모습을 하며 제자리에 섰 다 . 정훈이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

 

“ 너 , 산 잘 탄단 말 들었는데 정말이네 . ”

 

정훈이는 가쁜 숨을 내쉬며 형근에게 다가왔다 .

 

“ 진작 말하지 . ”

 

형근이가 뒤늦게 자기를 따라 온 정훈의 손을 잡았다 .

 

“ 어딜 가게 .

 

” 정훈이가 물었다 .

 

“ 나만 따라와 . ”

 

형근이는 이렇게 말하고 한 달 전 아버지와 삼촌이랑 칡을 파던 장소를 떠올렸다 . 싸리나무 숲 아래는 제법 그늘이 짙었다 . 잠시 싸리나무가 우 거진 길로 둘은 걸어갔다 . 정훈이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 칡을 캐는 데 는 형근이만 한 친구가 없다는 생각이다 .

 

싸리 숲이 끝나자 자작나무 몇 그루가 눈앞에 나타났다 .

 

“ 여기야 , ” 형근이는 정훈이를 힐끔 바라보다 낯익은 풍경에 안도하는 숨을 내 쉬 었다 . 정훈이도 형근이가 하는 대로 큰 숨을 내쉬었다 .

 

“ 정훈아 , 저기 흙 보이지? ” 형근이가 가리키는 곳을 보고 정훈이는 얼른 알아채지 못했다 .

 

“ 뭐? ”

 

“ 저기 말이야 . 흙 파헤쳐진 곳 안 보여? ”

 

형근이가 허리를 굽히면서 손가락으로 자작나무 사이를 가리켰다 . 정훈 에게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

 

“ 도둑도 아는 놈이 한다니까 , ”

 

불쑥 형근이 입에서 이상한 말이 뛰어나왔다 . 정훈이는 영문을 모른 채 멍한 눈으로 형근이를 쳐다보았다 .

 

형근이가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 자작나무 앞에 이르자 흙이 파헤쳐 지고 작은 구덩이가 보였다 .

 

“ 이거? ”

 

정훈이가 비로소 아는 체하고 말하자 형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

 

“ 여기 칡을 다 파지 못했어 . ”

 

형근이는 한 달 전 아버지와 삼촌과 함께 와서 칡을 캘 때 뿌리가 너무 깊어 끝까지 캐지 못하고 도중에 톱으로 자르고 갔다는 말을 그렇게 했다 . 아직도 정훈이는 내용을 다 모르면서 고개를 연실 끄덕였다 .

 

형근이가 구덩이 앞에 섰다 . 대충 덮고 간 구덩이지만 그 사이 비 , 바람 에 많이 메워져 있었다 .

 

정훈이가 삽을 들고 다가왔다 . 구덩이를 팔 기세다 . 그러자 형근이가 손 으로 막았다 .

 

“ 잠깐 . ”

 

형근이는 너무 깊게 박힌 칡뿌리를 캐느라 온 몸에 땀을 뒤집어썼던 한 달 전을 떠 올렸다 . 이제 이 구덩이를 더 판다는 건 무척 힘든 일이 될 것 이다 . 물론 이보다 더 실한 칡뿌리를 새로 발견한다는 보장이 없다 . 그리 고 이미 파여진 구덩이가 있다 . 그 속을 더 파면 잘린 뿌리에 이어진 토실 한 칡이 있을 것이다 . 하지만 다시 이 구덩이에 들어간다는 건 상상만 해 도 힘든 일이다 . 더구나 아버지도 삼촌도 아닌 정훈이를 데리고 장비도 변변치 않는 상황에서 말이다 . 형근이가 가벼운 한숨을 품어내자 정훈이 가 멈칫했다 .

 

민호는 방금 걷어 올린 칡넝쿨이 별로 튼실해 보이지 않은 걸 느꼈다 하지만 민호는 따질 생각은 없었다 . 이미 가재골에서 느꼈던 이상한 감정 이 다시 되살아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그 느낌은 청대산 꼭대기에서 내 려 부는 바람과 같이 자꾸만 민호를 올라가게만 했다 .

 

민호는 칡넝쿨이 땅에 묻힌 곳까지 따라갔다가 칡넝쿨을 세게 당겨보았 다 . 꿈쩍도 하지 않았다 . 민호는 더 세게 당겼다 . 칡넝쿨도 끌려가지 않으 려고 버티는 것 같았다 . 더 이상 줄기가 끌려오질 않는 걸 확인한 민호는 삽을 들어 둘레를 파기 시작했다 . 얼키설키 뒤엉킨 칡넝쿨을 정리하고 칡 줄기가 묻힌 지점에서 지름 30센트 정도 원으로 그려 가장자리를 만들어 파기 시작했다 . 땅은 비교적 부드러워 잘 파졌다 조금 파니 뿌리 부분으 로 이어진 곳이 나타났다 . 민호는 힘을 주어 칡뿌리를 옆을 파기 시작했 다 . 한참을 파 들어가도 칡뿌리는 그다지 통통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 더 깊이 파도 여전하다 . 거기에다 칡뿌리는 곧게 땅속으로 들어가다가 조 금씩 구부러져 가고 있었다 . 구부러진 칡뿌리를 더 파려면 그만큼 더 넓 게 땅을 파야 한다 . 힘에 지쳐 삽을 놓고 싶은데 더 넓게 판다는 건 죽기 보다 싫다 . 거기에다 칡뿌리가 팔수록 굵어진다면 그 재미로나마 팔 수 있 을 텐데 여전히 민호 손목 보다 가는 칡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 정말 맥 이 빠질 지경이다 . 그러자 민호는 갑자기 힘이 쭉 빠졌다 . 의외로 칡 파는 일이 힘들었다 . 민호는 왜 이리 힘이든지 생각하다가 혼자 히죽 웃었다 . 이유가 분명히 잡히기 때문이다 . 딱사벌 물구덩이를 팔 때 이미 있는 힘 은 다 뺐다 . 거기에다 청대산에 오르느라 힘을 빼고 가재골에서 가재 잡 느라 힘을 뺐다 . 그리고 자긴 가재골 꼭대기 계곡까지 갔다 왔다 . 다른 친 구들 보다 더 힘을 썼다 . 민호는 힘을 뺀 이유를 생각해 내자 힘을 더 쓸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 민호는 더 이상 파지 말자 . 파 놓 은 칡이라도 건지자 , 하고 생각했다 .

 

민호는 웃통을 벗었다 . 그리고 무릎까지 판 구덩이 속으로 들어갔다 . 민 호는 두 손을 칡뿌리에 갖다대고 양쪽으로 꽉 움켜잡았다 . 민호는 칡뿌리 를 당겼다 . 아주 힘껏 . 남은 힘을 다 해 . 그러면 칡뿌리가 뽑혀 나오던지 안 나오면 마구 위아래로 흔들어 부러진 채 나오던지 결판이 날 것이다 . 칡뿌리가 조금 빠져나오다가 멈췄다 . 더 힘껏 당겼다 . 칡뿌리도 반대로 민호를 당겨졌다 . 아까보단 조금 더 힘을 주어 당겨졌지만 칡뿌리도 같은 힘으로 당겼다 . 그래도 뽑히지 않는다 . 민호는 잠시 허리를 펴고 큰 호흡 을 몇 번 했다 .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봤다 . 옆으로 늘어선 나무들의 꼭대 기 위의 나뭇잎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고 조각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 민호는 힘을 비축하기 위해 한 번 더 큰 숨을 들여 마셨다 . 민호는 다시 칡 뿌리를 잡았다 . 최대한 힘을 쓰기 위해 두 발을 구덩이 구석에다 자리하 고 단단히 밟았다 .

 

“ 하나 , 두울 , 셋! ”

 

민호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당겼다 . 갑자기 빈호의 몸이 뒤로 재껴졌 다 . 뿌리가 생각보단 쉽게 빠져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 잔뜩 힘을 줬는 데 너무 쉽게 빠지는 바람에 허탈했다 . 칡뿌리는 아까 힘을 쓸 때 이미 어 느 정도 빠져 나온 게 틀림없다 . 민호는 두 손에 잡혀 빠져 나온 칡을 내 려다보았다 . 칡뿌리는 대략 길이가 50센티미터 정도 되었다 . 거의 다 뽑 혀 나오고 끝 부분이 끊어져 있었다 . 칡은 더 이상 굵어지지 않은 채 뽑혔 다 . 끊어진 부분에서 칡향이 퍼져 나왔다 . 향긋한 냄새가 좋았다 . 민호는 칡뿌리를 툭툭 덜어 흙을 떼어냈다 . 이것으로 자신의 칡 캐기 작전을 마 치고 싶었다 .

 

민호는 잠시 풀밭에 드러누웠다 . 아까 보이지 않던 산꼭대기 봉우리 부 분이 얼핏 보였다 . 민호가 자세를 약간 비틀자 산꼭대기 소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 청대산의 소나무들 . 산 아래 어디에서 봐도 언제나 사슴의 뿔 처럼 우아하게 늠름하게 위엄 있게 서 있던 청대산 꼭대기의 소나무들 , 보 기에 따라 다섯 그루가 되기도 하고 세 그루 , 일곱 그루가 되기도 하는 청 대산의 소나무들 .

 

민호는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청대산의 소나무가 신비하게 보였다 . 멀리서 볼 때 보다 더 늠름하고 더 멋있었다 . 구불구불 우람한 몸통 위에 푸른 솔을 머리에 가득 이고 서 있는 청대산의 소나무 사이로 구름이 흘 러가고 있었다 .

 

“ 휘이익 . ”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 잠깐 민호는 주위에 있는 나무들을 보았다 . 나 무들은 조용히 서 있었다 .

 

“ 휘이익 - ”

 

다시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 분명히 휘파람 소리다 . 산 위에서 들려오 는 소리다 . 청대산이 부른 소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