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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2013년 [ 소설 - 이은자 - 귀항(歸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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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3,052회 작성일 14-01-17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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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강호 ’ 를 찾아라!

 

198x년 2월 25일 , 전 해상에 긴급 수색 명령이 내렸다 . 폭풍 경보는 해 제되었고 해경에는 사고수습 통보가 집계 되고 있었으나 삼강호는 삼일 째 행방불명이었다 . 당시 기상상태로 보아 당국에선 일단 조난 사고라 단 정 지었다 . 비행기가 사고 해상에 출동 했으나 . 표류하는 선원은 고사하 고 기름 띠 한 군데 , 파손된 선체 조각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

 

삼강호가 속초항을 떠나 출어에 나선 것은 사흘 전 정오 조금 지나서였 다 . 식량이며 식수와 연료 , 빈 상자 400개를 실었다 . 어장인 ‘ 대화 퇴 ’ 에 도착한 것은 그날 밤 10시경이었다 . 모든 것이 아주 순조로웠다 . 어구를 챙겨 수면에 드리우고 집어등을 밝혔다 . 언제나 마찬가지로 기대와 흥분 이 감도는 갑판 위엔 겨울 밤 바다의 독특한 바람마저 적당히 어우러져 있 었다 . 나는 담배에 불을 댕겨 여유 있게 한 모금 깊이 빨아 들였다 . 담배 연기 속에 딸려 들어오는 기름 냄새가 오늘 따라 심하다 싶었다 . 불길한 마음에 기관실 쪽을 돌아보는 순간 , 문틈으로 연기가 새 나오고 있었다 .

 

“ 어 - 어 , 저 , 저기 - ” 갑판 위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기관실을 향해 일어 섰고 , 그와 동시에 , ‘ 펑 ’ 하는 소리가 들렸다 . 기관실 창이 떨어져 내리며 시커먼 연기와 함께 주황색 불길이 누구라도 낚아챌 기세로 맹렬하게 치 솟았다 . 기관장이 기관실 안에 있었다 .

 

“ 장형! 나오라구 - . 빨리 나오지 않고 뭘 해 빨리 빨리 … ” 사람들이 발을 구르며 기관장을 불렀으나 . 기관장은 나오지 않았다 . 어 두운 밤바다를 환하게 밝히는 시뻘건 불길만 기세를 높였다 .

 

“ 탈출해야 한다 . 에어탱크가 폭발하는 날엔 끝장이다 . ”

 

사무장 김씨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

 

“ 구명보트 내렷! “

 

누군가 브리지 한 귀퉁이에 군더더기처럼 매달아 두었던 구명보트를 내 렸다 . 황망 중에 작동이 서툴렀던가 아니면 너무 다급하게 끌어 내리다 망가뜨린 것인지 반쪽만 펴졌다 .

 

“ 어물댈 틈 없다 . 그대로 던져! “

 

던지는 것 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구명보트가 배의 옆구리에 튀어 나온 녹슨 대못에 잠시 걸렸다가 떨어졌다 . 결국 나머지 그 반쪽 마저도 다 펼 쳐지지 않았다 . 불길이 점점 더 강렬해졌다 . 손 쓸 사이도 없이 선체 전체 로 번져나갔다 . 생사(生死)가 눈 앞에 놓이고 보니 저마다 보트에 먼저 타 려고 법석을 떨었다 . 본래 선원이 여덟 명에 구명보트는 8인승이다 .

 

오징어잡이 배들은 정원을 초과 승선이 허용된다 . 오징어잡이는 단순 개인 작업이기 때문에 손발이 맞는 본 선원 외에 임시 선원을 , 많게는 배 수(倍數)까지도 승선 시키게 마련이다 . 오징어 철이 한창이면 까까머리 중학생에서 머리 허연 할아버지라도 사내면 누구나 간단한 개인 낚시 도 구를 챙겨 승선 할 수가 있다 . 어촌 청소년들에게는 배도 타고 돈벌이도 하는 절호의 기회였다 . 실제로 여름 한 철 오징어잡이로 학비를 번 친구 도 여럿 있다 . 선주(船主) 입장에서도 이들의 승선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 잡은 오징어 한 두름(20마리)당 뱃삯으로 7 ~ 8마리를 걷어 들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

 

내가 ‘ 삼강호 ’ 선장으로 키를 잡은 것이 이제 겨우 3년차다 . 함경도 ‘ 신 포 ’ 에서 6 . 25 사변 통에 피란 온 아버지 역시 어부였다 . 아버지가 실향민 1세대라면 , 나는 1 . 5세대가 된다 . 속초가 수복지구의 작은 읍이었을 때 나는 겨우 중학교 저학년이었다 . 아버지는 당신이 그처럼 그리던 고향을 가보지도 못하고 한을 품은 채 결국 바다에서 생을 마감했다 . 졸지에 고 아가 돼버린 나는 중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고향 어른들 주선으로 일찍 장 가들어 가정을 꾸렸다 .

 

아버지와 나만 피란 온 데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 전쟁 중엔 사내들 의 앞날이 어찌될지 모른다는 것이 어른들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 어머 니는 연세 높은 조부모님이 생존해 계셨으므로 함께 올 수 없었다 .

 

다 이긴 전쟁이었다 . 연합군은 고향이었던 ‘ 신포 ’ 는 물론 ‘ 청진 ’ 을 지 나 압록강까지 북진을 거듭했다 . 그러다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 꽁 꽁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중공군이 대거 개입 했던 것이다 . 중공군의 인 해전술과 살을 에는 추위가 국군과 연합군 앞을 가로 막았다 . 군대는 작 전상 후퇴했다 . 전세를 다시 갖추어 2 - 3일 후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 그 말을 믿고 남정네들만 간단히 짐을 꾸려 국군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다 . 소위 1 . 4 후퇴라는 것이다 .

 

수복지구인 속초는 상당기간 군인들의 통제를 받았다 . 주민들은 물론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도 검문을 거처 왕래할 수 있었다 . 혹 어느 특정 마 을에 가서 치르는 학교 행사에도 군부대로 가서 ‘ 가는 목적 , 인솔자 선생 이름 , 어린이가 몇 명 , 머무는 시간 등을 보고하고서야 가능했고 , 돌아올 때도 일일이 점검 받아야 했다 .

 

청호동은 남동쪽 외진 곳으로 , 갯배를 건너면 꽤 넓은 사구가 펼쳐져 있 어 몇 걸음 안 가서 곧 바다로 이어진다 . 그 사구에 해당화 , 바다메꽃 , 해 녀콩 , 통보리사초 같은 사구 특유의 식물 군락지가 있고 해송이 울창했다 .

 

피난민들은 그 사구에 , 군(軍)부대에서 나오는 포장용 널빤지 , 골판지 , 그리고 빈 드럼통 따위를 얻어다 비바람 추위를 피할 임시 거처를 마련했 다 . 벽과 벽을 맞대고 지붕끼리 이어 덮은 다닥다닥 게딱지 모양 같은 집 들이었다 . 피난민들은 처음부터 좋은 집을 지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 가 솔을 편히 뉘일 곳 , 비와 바람을 막아 주고 따뜻한 온돌방 하나면 족했다 . 국군이 다시 북진하면 언제라도 미련 없이 버리고 가도 아깝지 않을 집이 었다 . 그 게딱지 같은 마을에 이름이 붙었다 . 신포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 신포마을 ’ 뒤따라 흥남 , 홍원 , 북청 , 마을이 들어섰다 .

 

전쟁이 교착 상태로 접어들면서 휴전 협정이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 다 . 피난민들이 읍사무소 마당으로 모여들었다 .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붉은 글자로 - 휴전 결사반대 -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 - 우리나라 일은 우리가 정한다.- 나가자 북진 통일 -이라고 쓴 피켓을 들고 비장한 얼굴로 함성을 지르며 몇 사람은 단상에 올라가 혈서를 쓰기도 했다 .

 

휴전은 고향 가는 길 앞에 넘을 수 없는 큰 산이었다 . 전국적인 궐기대 회가 열렸지만 유엔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휴전협정을 막을 길이 없었다 . 판문점에서 휴전협정 문서에 도장을 찍었다는 소식이 확실해 진 날 집집 마다 통곡소리가 흘러나왔다 . 삼사일을 기약하고 떠나온 고향인데 돌아 갈 길이 완전히 막혀버린 것이다 . 금강산도 북녘 땅이 되고 38선 대신 휴 전선이란 낯선 금이 그어졌다 .

 

고향을 눈앞에 두고도 졸지에 실향민이 된 난민들은 아무 연고도 없는 낯선 땅에서 고단한 삶을 꾸리게 되었다 . 망연자실했지만 그대로 손을 놓 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 우선 먹고 살아야 했다 . 가장 손쉬운 것이 바다로 나가는 일이었다 . 그래서 남자들은 뱃사람이 되었다 . 자기들 몸이야 부서 지든 찌그러지든 가솔들을 먹이고 자식들을 학교에 보냈다 . 나도 아버지 가 죽지만 않았다면 어부로 살지 않았을 것이다 . 고향인 신포에는 대학을 졸업하여 나름 성공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

 

나는 다행이 일찍 결혼한 탓에 아이 둘이 생겼다 . 이제 그 아이들에게 보람을 느끼며 산다 . 학교 선생말로는 공부도 잘하고 품행이 단정하다고 했다 . 바다일이 아무리 힘들고 위험해도 아이들을 생각하면 힘이 절로 솟 는다 . 선장이 된 후로 하늘이 도와서 지난 3년 동안 별 일 없이 무사했고 매 조업마다 어느 배 못지않게 좋은 어획을 기록했다 . 그래서 뱃사람들을 모을 때면 서로 내가 키 잡을 배를 타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이 늘었 다 .

 

이번 항차릍 끝으로 오징어 난바리를 마치고 곧 이어 겨울 명태바리를 나갈 것이다 . 그 다음엔 춘태바리 , 이런대로 몇 년 만하면 나도 작으나마 내 배를 장만할 수 있을 것이다 . 자(自)배 , 자(自)선장은 모든 어부들의 희 망 사항 이다 .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아내도 나를 도와서 한시도 놀지 않고 일을 한다 . 돈 버는 일이라면 오징어 활복 , 명태 주낙손질 , 밤샘 미역 널 기 , 손에 얼음 박히도록 일 해서 돈 다발을 꽁꽁 묶어 놓는다 .

 

이번 선원들 가운데 아직 20대 청년 창수와 만석이가 내 배를 타고 있 다 . 가정 사정은 서로 좀 다르지만 돈을 제 힘으로 벌어야 하는 처지는 같 다 . 내가 삼강호 키를 잡던 그해부터 두 사람은 줄곧 내 배에서 여름 오징 어잡이를 해 왔다 . ‘ 강구 ’ 울진 ‘ 등 가을 오징어 난바리에도 같이 다닌 녀 석들이다 . 언제나 작업 실적이 좋다 . 이번에도 내 배를 탔지만 조업기간 이 며칠씩 걸리고 기상 이변이 심한 ’ 대화퇴 ‘ 겨울 오징어잡이까지 데리고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조업을 나서기 전 선원을 새로 모집할 때 그들 이 제일 먼저 이번 항차에도 가겠다고 따라 나선 것이다 .

 

김씨가 내켜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들의 청을 딱 자르지 못했다 .

 

창수는 그렇다 치고 만석이를 조업에 데리고 가는 것은 입 . 출항 때 마 다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 만석이 아버지는 그의 동생이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겨울 철 어로작업 하다가 납북된 뒤 로 돌아오지 못했다 . 납북 당 한 선원 가족들은 모두 ‘ 빨갱이 ’ 아닌 빨갱이 취급을 받고 있었다 . 더구나 만석이 아버지의 경우 북한의 대남 방송을 통해 , 만석이 아버지를 비롯한 선원 전원이 ‘ 자진 월북 했고 그들은 . 남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당에 맹세 를 하여 공화국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 ’ 고 했던 것이다 .

 

당국 입장에선 그 방송이 허위일지라도 그들이 오랜 기간 세뇌교육을 받아 어느 날 간첩으로 남하 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 닐 것이다 . 소위 ‘ 연좌제 ’ 에 묶여 군 입대는 물론 직장을 구하려 해도 서 류심사에서 부터 제외되었다 . 밑천이 없으니 장사를 할 수도 없는 처지임 으로 막노동 아니면 오징어잡이 배를 타야 어머니와 동생을 거둘 수 있다 .

 

사무장 김씨는 초등학교가 학력의 전부 이지만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노장이다 . 내가 글줄이나 조금 더 익혀 선장 자격증을 땄지만 , 그는 나이 로 보나 마음 씀씀이로 보나 나보다 몇 수 위에 있는 사람이다 . 그는 물때 와 산세(山勢) , 바람 냄새 까지도 잘 안다 . 내가 가장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이다 .

 

연근해 여름철 오징어잡이가 끝나면 며칠 씩 바다에 머물러 작업하는 난바리(먼바다)의 겨울 오징어잡이에 완전 초보는 승선하지 못한다 . 바다 생활의 경험이 많은 사람 중에서 , 너무 늙지 않은 사람으로 가려서 기본 승선인원을 지킨다 .

 

이번 항차에는 창수와 만석이 , 사무장 김씨를 비롯해서 열두 명이 승선 했다 . 기관실에서 나오지 못한 기관장을 두고도 열한 명이 구명보트를 타 야 했다 . 그나마 반쪽짜리 보트에 . 젊고 날렵한 녀석들이 먼저 구명보트 에 뛰어 내릴 태세였다 .

 

나는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 이럴 때야말로 뱃사람 특유의 육두문자 로 해야만 말이 먹힌다 .

 

“ 저리 비켜! 연장자부터 내린다 . 함부로 날뛰는 새끼는 죽여 버린다 . ”

 

질서에 따라 한 사람씩 보트로 뛰어내렸다 . “

 

자리가 없다 . 더 못 탄다 . ”

 

먼저 내려간 선원들이 소리 지른다 . 당연한 일이다 . 하지만 어쩌랴 .

 

“ 보트 안에 있는 물건 전부 던져 버리고 사람부터 태워! ”

 

구명보트에 비치돼 있는 비상식량과 구급약들은 탈출 후 구조되기까지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물건들이지만 나는 그렇게 명령하지 않을 수 없었 다 . 죽고 사는 게 걸린 이 마당에 사람이 먼저란 판단이었다 . 보트에서 또 아우성이었다 .

 

“ 선장! 인제 정말 자리가 없다 . ”

 

“ 무릎에라도 앉혀 ”

 

가까스로 열 명을 보트에 태우고 나는 주춤 거렸다 . 기관장을 그냥 버 려두고 떠날 수 없었다 .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이 분명했지만 차마 그냥 갈 수가 없었다 . 모선과 이어진 로프 끝을 쥐고 다시 기관장을 소리쳐 불렀다 .

 

“ 장혀엉! . 대답해 . 우린 빨리 여기서 떠나야 된다구우 … ”

 

“ 선장! 시간 없어 . 우릴 다 죽일 작정이야 - ”

 

보트에선 어서 타라고 아우성이었다 . 구명보트는 될 수 있는 한 멀리 벗 어나야 한다 . 그렇지 않으면 모선의 침몰과 함께 바다 속으로 끌려 들어 갈 수도 있다 . 나는 어쩔 수 없이 기관장을 포기했다 . 로프를 자르고 . 보 트 안으로 뛰어 내렸다 . 보트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했다 .

 

“ 빨리 빨리 … ”

 

손바닥이건 모자건 물갈퀴가 될 만한 것이면 가릴 거 없이 물을 밀어내 기에 동원됐다 . 할 수만 있다면 빨리 , 그리고 멀리 모선으로 부터 떨어져 나가려고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 그렇게 해서 500여 미터쯤 모선과 멀어 졌을 때였다 .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엄청난 불기둥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 이어 두 동강난 선체가 불길에 휩싸여 서서히 물속으로 사라져 갔다 .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

 

“ 장형 . 장형 . 기관장 이보게 … ”

 

하나같이 기관장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 배와 함께 수장된 기관장이나 , 망망한 밤바다에 찌그러진 손바닥만 한 보트에 생사를 맡기고 있는 사람 들이나 별로 다르지 않았다 . 생사는 약간의 시차만 있을 따름이다 . 목숨 은 이미 하늘에 맡긴 것이다 . 물 흐름에 따라 표류하는 일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

 

아수라장을 빠져 나온 다음 , 추위라는 또 다른 복병 앞에 노출된 채 서 로 몸을 비벼서 이 상황을 이기려 했다 .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지만 근처 로 지나가는 배 한 척도 없었다 . 이상한 일 아닌가? 이럴 수가 있나 . 함께 출항해 나란히 예까지 왔던 다른 배 들은 다 어떻게 되었는지 , 지금은 우 리 뿐이다 . 조난을 알릴 수단도 없었다 . 오직 지나가는 배에 기대를 걸 수 밖에 . 밤바다를 대낮처럼 환하게 밝히던 집어등 불빛은 하나도 보이지 않 았다 . 죽음을 앞둔 절망적인 기분은 나만이 아니었다 .

 

성어기에 한참 조업하다 보면 어군을 따라 배들이 한곳으로 몰려드는 일이 생긴다 . 그럴 땐 좀 뚝뚝 떨어져 조업하자고 아귀다툼도 벌이면서 . 혼자서 그 해역을 도맡아 차지하고 싶어 한다 . 그러나 지금은 어느 배든 옆으로 지나가 주기만을 빌었다 . 같은 선단 배가 아니어도 좋았다 . 선적 이 어느 나라이던 상관없었다 .

 

“ 저 하늘 좀 봐라 ”

 

“ 바람이 좀 이상하지 않니? ”

 

김씨가 하늘을 보고 있었다 . 구름의 이동이 심상치 않았다 . 선장은 ‘ 나 ’ 이지만 바다생활에선 김씨가 대 선배다 . 그의 육감은 늘 정확했었다 . 그 러고 보니 날씨가 심상치 않다 . 멀리서 해명(海鳴)소리도 들렸다 . 그랬다 . 나중에 안 일이지만 태풍이 오고 있었다 . 그래서 배들이 없었다 . 무선국 으로 부터 긴급 대피 타전을 받은 배들이 태풍을 피해 떠났기 때문이다 . 불행히도 삼강호는 태풍 타전을 받기 전에 일이 난 거다 . 지금 상황이 다 소 정리가 되었다고 해도 그게 또한 구조의 기회가 더 더욱 희박하다는 의 미이기도 하다 .

 

나는 시계를 들여다보는 일 외엔 별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 새벽 한 시가 가까워지자 태풍의 기운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 이 밤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 사람이 겹쳐 앉아있는 보트는 가랑 잎에 불과하다 . 너울이 일렁인다 . 잦은 출렁임이 보트를 때린다 .

 

“ 어 어! 파도다 파도가아 … ”

 

집채만한 파도가 몰려오고 있었다 . 저것을 타 넘어야 할 건가 아니면 아 래턱으로 , 정면 돌파할 건가 오래 생각할 시간이 없다 . 천행으로 그 파도 는 보트 까지 도달하기 전에 꺾어져서 포말이 된다 . 다른 방향에서 돌격 해 오던 파도와 충돌하는 것 같았다 . 그렇다 . 바람 방향이며 파도의 방향 이 종잡을 수 없었다 . 바람 방향이 갑자기 바뀐다고 생각했더니 설상가상 으로 삼각파속에 휩쓸려들었다 . 삼각파는 태풍이나 한랭전선이 지날 때 바람의 방향이 급속히 바뀌면서 진행이 서로 다른 파도가 부딪히면서 생 긴다 . 서로 부딪힌 파도가 삼각형 모양이 되면서 꼭대기가 극단적으로 뾰 족해진다 . 이 파도에 휩쓸리면 웬만큼 큰 배도 살아남기 힘 든다 .

 

‘ 신포 ’ 에서 중학교를 나온 아버지는 이 삼각파를 곧잘 약소국을 집어 삼키려는 일본과 구소련 , 미국에 비유하곤 했다 . 지금은 열 한 사람이 타 고 있는 구명보트의 운명이 강대국 틈바구니에 끼어 살아남으려고 안간힘 을 쓰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와 다름없어 보였다 . . . 사방에서 밀려오는 삼각파는 언제라도 가랑잎처럼 간신히 떠있는 구명보트를 물 속 깊이 수 장시킬 수 있다 . 구명보트든 나라든 속히 이 삼각파도를 벗어나야 살 수 있다 . 파도 하나를 간신히 피했다고 생각하면 . 곧 이어 파도의 깊은 계곡 으로 곤두박질치 듯 내려 앉았다 . 그 위를 덮치는 다음 파도에 보트가 뒤 집히지 않고 무사할 수가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

 

“ 저기 또 온다 아 아 … . ”

 

야수처럼 덤벼오던 파도가 바로 눈앞에서 꺾이고 보트가 균형을 잃는 다 . 파도가 사정없이 덮쳐온다 . 고비 고비를 넘길 적마다 보트 밖으로 튕 겨나간 사람이 없는지 확인한다 . 바다 속으로 떨어져 버리면 그것으로 끝 장이다 . 숨 돌릴 틈이 없다 . 재우쳐 꺾이는 파도며 덮쳐드는 물보라 . 물보 라는 우리 얼굴이며 몸에 닿는 순간 서릿발이 돼버린다 . 우리의 처절한 사 투는 오직 하늘만 알 것이다 . 파도가 덮치는 순간순간마다 안도와 절망 이 교차되곤 한다 .

 

‘ 이 밤은 이대로 영영 새지 않으려나 , 이 바다에서 고기밥이 되는 건 아 닐까? ’

 

나는 또 다시 시계 침을 보았다 . 새벽 3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 두 시간 이상 더 견뎌야만 날이 밝을 것 이다 .

 

“ 배다 저기 배가 있다아 … . ”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기적이 눈 앞에 있었다 . 만 톤 이상이 돼 보이는 화 물선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 자세히 보니 러시아 국적의 화물선이었다 . 아무튼 그들이 우리를 보았다면 그냥 지나칠 리는 없었다 . 국제 해양법상 조난당한 배는 국적을 불문하고 구조를 하도록 명시하고 있었다 . 하늘이 우리를 살린 것이다 .

 

“ 사람 살려어! 사람살려어! ”

 

죽을 힘을 다 해서 외쳤다 . 그런데 그 배의 불빛이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었다 . 우리가 외치는 소리가 엄청난 바람과 파도 소리를 뚫고 거기까지 는 도달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 누군가 서로의 몸을 얽어 맨 로 프를 벗겨내고 있었다 . 헤엄쳐 가려는 것이다.

 

“ 정신 나갔어? 물이 얼음이란 걸 몰라? 물에 들어가는 즉시 사지가 마 비될 판인데 , 그리고 또 이 종잡을 수 없는 물살을 어떻게 헤쳐 나간다고? ”

 

김씨가 말렸다 . 옥신각신 하는 동안에도 파도는 연신 눈 앞에서 꺾이고 물보라가 사정없이 덮쳤다 .

 

또 얼마나 지났을까? 거짓말 같이 우리들 눈 앞에 다시 배가 나타났다 . 약 200m정도의 거리였다 . 화물선 같았다 . 선미에 일장기로 보이는 국적 표시기가 어렴풋이 보였다 . 보트 안은 다시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술렁 거렸다 . 그러나 그 희망도 잠깐이었다 . 그들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린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조금 전에 확인했다 . 우리에겐 구조를 요청할 아 무런 장비가 없었다 . 화물선 역시 우리를 못 보고 멀어 지고 있었다 . 멀어 져 가는 배 불빛을 보며 먼저 보다 더 거칠게 로프를 풀며 씩씩대는 녀석 들을 말로선 도저히 제압 할 수 없겠다 싶어 , 나는 창수 놈 부터 몇 놈에 게 주먹을 날렸다 . 예상 밖 타격에 놈들은 “ 허억 ” 앞으로 고꾸라졌다 . 보 트가 이리저리 요동치고 사정없이 물보라가 덮쳤다 . 우리는 기진맥진해 서 보트가 파도에 떠밀리는 대로 몸을 맡겼다 . 날이 밝고 있었다 . 다행히 무섭게 달려들던 삼각파도가 점차 사그라들고 있었다 . 태풍의 위험 반경 을 벗어 난 것이 틀림없었다 .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다시 배 한 척이 눈 앞에 덩그러니 나타났다 . 모 두 화닥닥 정신을 차렸다 . 우리 배 보다 두 세배 쯤 큰 어선이 틀림없었 다 . 잠시 아찔해 있던 녀석들도 부스스 일어났다 .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 른다 . 누구랄 것 없이 소리를 지르고 손을 흔들었다 . 손바닥으로 물을 밀 치며 필사적으로 어선 쪽으로 다가갔다 . 물살도(海流) 마침 우리가 탄 보 트를 그 쪽으로 밀어주고 있었다 . 자세히 보니 우리나라 어선이었다 .

 

그러나 그 어선도 우리를 못 보기는 마찬가지였다 . 물풍을 물 속 깊이 내리고 모두 선실에서 날씨가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게 틀림없었다 . 누구 라도 갑판으로 나와서 우리를 발견해 주길 바랐다 .

 

“ 사람살려어 … 사람살려 … ! ”

 

이제 마지막 힘을 다해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질렀다 . 손바닥으로 물을 밀 어내며 한 치라도 그 어선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 그 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전까지 조금씩이나마 움직이던 보트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 보트가 무엇엔가 걸린 게 틀림없었다 . 우리는 모두 의아해서 서 로의 얼굴을 처다 보았다 . 다음 순간 일제히 환호를 올렸다 .

 

“ 야아 물풍이다 . 저 배의 물풍이다 . ! ”

 

우리는 보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물풍을 매달고 있는 로프를 조심스레 당겼다 .

 

마침내 어선의 턱 밑까지 다가갔다 . 때마침 선실에서 사람이 나왔다 . 바 다를 일별하고는 고물 쪽으로 가서 오줌을 누더니 무언가 이상했는지 다 시 우리가 소리치고 있는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 바람과 파도소리 속에 희 미하지만 우리의 외침을 들은 것 같았다 . 오줌을 누다말고 급하게 돌아서 서 선실로 들어가더니 다른 두 사람과 함께 다시 갑판으로 나왔다 .

 

로프가 머리 위로 날라 왔다 . 로프를 잡고 한 사람씩 어선으로 올라가 야 한다 . 한 사람이 줄에 매달려 저 쪽 어선 갑판에 나무토막처럼 나뒹굴 면 안도의 숨을 , 다음 사람이 줄을 잡고 보트를 떠날 적마다 제발 무사해 주기를 빌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 우리 어선을 만난 것이 천만 다행이었 다 . 기관장 장씨를 빼고는 보트를 탄 사람은 모두 살았다 . 마지막으로 보 트를 버리고 로프를 잡은 나는 배의 갑판에 오르자마자 그대로 정신을 잃 었다 . 선원들을 살려야 한다는 중압감과 긴장에서 벗어난 때문이었다 .

 

그 다음은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잠시 기절 했던 것인지 아 니면 깊은 잠에 빠졌던 것인지 , 한기를 느끼고 눈을 떴다 . 하늘에서 함박 눈이 내리고 있었다 .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 다른 선원을 다 올려 보 내고 맨 마지막으로 올라 온 나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다 .

 

‘ 내가 얼마를 이러고 있었단 말인가? 선원들은 모두 어디에? 선실에? ’

 

나는 몸을 놀려 봤다 . 다리도 팔도 자유로웠다 . 엉금엉금 기어 선실로 들어갔다 . 구조된 선원들은 모두 탈진돼서 누워 있었다 . 그 배의 선원 몇 사람이 분주히 뛰어 다니며 응급조치를 하고 있었다 .

 

우리 일행은 공해상에서 해경에 인계 ,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 포항 ’ 항 구로 가고 있었다 . 나는 해경선 뒷 창을 통해 검푸른 물결과 스쿠류가 밀 어내는 흰 포말을 멍하니 바라보다 퍼뜩 생각 났다 .

 

구명보트의 작동 , 에어탱크 폭팔 전의 탈출 , 삼각파도 해역 , 번번히 목 전에서 꺾어지는 파도 , 우리 국적 어선 물풍 줄에 걸린 일 , 그 어부의 방 뇨 , … ‘

 

이 엄청난 기적들은 어데서 온 것일까?

 

우리는 ‘ 포항 ’ 항에서 땅을 밟았다 . 해경을 비롯해 관계기관에서 조사를 받았다 . 그리고 간단한 검역과 검진을 받은 후에 ‘ 속초행 버스 ’ 를 탔다 . 십여 년간 누비고 다녔던 동해안 포구들 , 바다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차창을 스쳐 지나간다 .

 

우리는 지금 기관장 ‘ 장형 ’ 과 ‘ 삼강호 ’ 를 잃고 빈손으로 ‘ 귀항 ’ 길에 있 다 . 부끄러운 ‘ 귀항 ’ 임에도 그간의 행운을 생각하면 하늘에 감사할 뿐이 다 . 우리의 귀환 소식을 듣고 어협 앞에 가족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 가족은 물론 사지에서 목숨 살아 돌아온 우리들을 향해 사람들이 눈물을 훔치며 박수를 쳤다 .

 

나는 아이들을 부둥켜안았다 . 자칫 영원히 다시 못 볼 수도 있었던 살 붙이들이었다 . 기관장 안사람이 나를 부여잡고 통곡에 태질이다 . 내 심 장이 찢어지듯 아팠다 .

 

집에 왔다 . 내 식솔들이 보낸 그 며칠이 ‘ 우리를 살린 기적이 어데서 온 것임을 짐작케 했다 . 우선 잠이나 실컷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 그러나 잠 이 오지 않았다 . 뒤척이는 내게 아내가 말했다 .

 

“ 왜 못 자고 그래요 . ”

 

“ 그러게나 , . 집에 오면 한 사나흘은 죽은 셈 치고 잘 거라 했는데 … ”

 

“ 나도 당신 맘 짐작은 하고 있어요 . 기관장 땜에 그러지요? . ”

 

“ 나는 선장이요 . 항해 도중 선장은 그 배 선원 모두 목숨을 책임지는 사 람인데 나는 기관장을 버리고 왔소 . 그리고 선주님 전 재산이나 진배없는 ‘ 삼강호 ’ 를 ‘ 대화퇴 ’ 바다 속에 수장시키고 왔소 . ”

 

“ 그게 어디 당신만의 책임이요 , 그간에 조난당했던 배나 사람이 어디 한 둘이었소? 오늘은 이만 자요 . 자고 나서 법의 심판이건 인정의 심판이던 있는 그대로 해요 . 다른 배 들이 그런 일 당했을 때처럼 말이요 . ”

 

“ 그렇긴 하지만 조석으로 보는 선주 얼굴을 무슨 낯으로 대하며 , 기관 장네 식구들 앞날은 또 어쩌겠소 .

 

“ 그만 하고 잠이나 푸욱 자요 . 산 사람은 살아야 의리고 면목 이고가 있 지 않아요? ”

 

아내의 말이 맞다 . 나는 돌아누워 애써 잠을 청했다 .

 

집채만한 삼각파가 사방에서 달려들고 있다 . 나는 다급히 기관장의 이 름을 불렀다 .

 

“ 장씨! 장씨 빨리 나와 . ”

 

“ 여보 여보 , 당신 잠꼬대를 … ”

 

아내가 세차게 나를 흔들었다 .

 

깜박 잠이 들었던 것 이다 .

 

 

※물풍은 어선이 정지해서 조업을 하기 위해 닻 대신 흐르는 바닷물의 마찰력을 최 대화 하기 위한 기구이다 . 일반적으로 천이나 두꺼운 비닐을 이용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