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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2013년 [ 소설 - 강호삼 - 이런 시벌 놈들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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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992회 작성일 14-01-1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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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어깨를 잔뜩 움츠리며 걷고 있다 . 3월이 가고 4월이 왔는데도 아침저녁 기온은 섭씨 영상 7도 안팎이다 . 전방이라 서울보다 상대적으로 위도가 높기 때문이다 . 겨울추위가 무색할 정도다 . 갑작스러운 기온 하강 에 제철을 맞아 일찍 피는 꽃들이 냉해를 입고 볼품없이 축 늘어졌다 . 그 래도 한낮의 기온은 섭씨 15 ~ 6도를 오르내린다 .

 

어디선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 다 .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다분히 위협적이었다 . 딛고 서 있는 땅이 몸서 리를 치는 것 같았다 . 사람들이 일시에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소리의 출 처를 찾아서 빠르게 이리저리 시선을 굴렸다 . 어느 한 곳에서 시선이 고 정되었다 . 소리의 진원지는 저 아래 , 내려다보이는 한길로부터다 . 한길로 지나가는 모든 차들이 일제히 길섶에 멈춰 서 있었다 .

 

맨 앞에 지프차와 쓰리쿼터가 선도하고 그 뒤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위 장막을 두른 육중한 탱크들이 기다란 포신을 치켜든 채 줄지어 따라오고 있었다 . 국산 K1전차로 알려진 탱크다 . 무게만도 45톤이나 나가는 쇳덩 어리다 . 얼굴에 검정과 갈색으로 위장크림을 짙게 바른 병사들이 탱크에 타고 있었다 . 포탑 위의 기관총을 잡은 병사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 두 눈이 유난히 날카롭다 . 연천 어디쯤인가에 있는 DMZ를 지키는 사단의 탱크 부대인 모양이다 .

 

탱크를 보자 사람들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 탱크의 출현이 요즘의 한 반도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 당국에서는 해마다 실시되는 정기적인 기동훈련이라고 하지만 여느 때와는 의미가 다르다 .

 

키 리졸브는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한 한미 군사 훈련이다 . 매년 실시하 고 있는 훈련인데도 북쪽은 반응이 민감하다 . 이번은 강도가 그 어느 때 보다 높다 . 훈련과 때를 맞춰 일방적으로 김정은 일당들은 정전협정의 효 력을 전면 백지화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 어처구니없게도 전쟁상태라는 것이다 . 동시에 북쪽 서해안의 장사정포를 개방하고 동해안에는 미사일 을 배치하면서 연일 , 서울과 남한이 곧 불바다가 될 것이라고 대남방송을 해댔다 .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지만 연평도 포격 때처럼 국지적인 도발의 가능 성은 배제할 수 없다 . 훈련기간 미국의 스텔스기와 B - 52폭격기가 오고 구 축함과 항공모함도 한반도 영해로 진입했다 . 북쪽이 도발할 경우 훈련은 바로 실전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

 

그런데 금방이라도 전쟁을 일으킬 것 같이 위협을 하면서도 평양은 오 히려 조용하다는 외신 보도다 . 실전 상황이 될 수도 있는 키 리졸브 훈련 에 지례 겁을 집어먹은 탓도 있겠지만 전에 없이 호전적인 언사를 마구 뱉 어내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 핵개발로 세계적인 고립이 가중되자 새로 등극한 김정은의 위상 세우고 대내적인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고도 의 정략이다 .

 

지하철이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 내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타는 사람 들만 플랫폼에 가득하다 . 종착역인 전역에서 탑승한 사람들로 전동차 안 은 좌석의 반이 찼다 . 대부분 인근 소요산에 산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등 산객들이다 . 전쟁이 곧 터질 것처럼 짖어대는 북한의 대남방송이나 호들 갑을 떠는 남쪽 뉴스 매체의 선동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일상은 여느 때 나 다름없다 . 아니라면 소요산의 경치와 진달래 철쭉이 아무리 흐드러지 게 피었다 해도 휴전선이 지척인 이쪽까지 산행을 올 리 없다 . 휴전 이후 , 60여 년 동안 저들의 거듭된 협박과 위협에 학습이 잘된 탓이다 .

 

좌석이 모두 차버렸다 . 미처 좌석을 차지하지 못한 사람들은 손잡이를 잡거나 전동차 벽에 등을 기댔다 . 지하철을 기다리며 플랫폼에서 노인의 뒤쪽에 서 있던 두 사내도 자리에 앉지 못했다 . 손잡이를 쥔 체 통로에 섰 다 . 키가 큰 사내는 까만 선글라스를 꼈다 . 전동차 안에 선글라스를 낀 사 람들이 더러 있다 . 봄이 되면서 강한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 키가 작은 사내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어둡고 표독스럽게 보인다 .

 

다행히 경로석엔 자리가 비었다 . 사내들과 같이 전동차에 오른 노인이 사람들을 비집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 건너편 좌석에는 두 사람 , 이쪽 좌 석에는 한 사람 , 모두 일흔이 넘었거나 일흔이 가까운 나이들이다 . 노인 은 한 사람이 앉은 왼편 자리로 가서 비틀거리며 엉덩이를 털썩 내려놓는 다 . 하마터면 옆자리의 노인 쪽으로 넘어질 뻔 했다 . 노인의 입에서 들쩍 지근한 술 냄새가 풍겼다 .

 

노인은 오랜만에 늠름한 손자를 만났다 . 기분이 너무 좋아서 평소에 삼 가던 술을 몇 잔 마셨던 게 이제야 취기가 오르고 있었다 . 술기운이 오른 불그레한 얼굴이 온통 백발인 머리와 눈썹 때문에 더욱 붉게 보인다 .

 

검정 천으로 넓게 두른 동전의 짙은 갈색 개량 한복이 노인에게 잘 어울 린다 . 술을 마셔서 몸을 잘 가누지는 못하지만 여든네 살이라는 나이답지 않게 건강한 모습이다 . 노인은 자세를 바로잡고 앉으면서 옆자리의 노인 을 돌아보았다 .

 

“ 아이구 미안합니다 . 기분이 좋아서 술 몇 잔 한 것이 지금에사 취기가 오르는 것 같습니다 . 양해하십시오 . 어디까지 가십니까? ”

 

말씨가 정중하다 .

 

“ 웬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 서울까지 갑니다 . 좋은 일이 계셨다니 반갑 습니다 . ”

 

옆자리의 노인도 희끗희끗한 머리가 반백이다 .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 에 미소를 떠올렸다 . 사회학을 전공한 전직 대학교수였다 . 정년퇴직했지 만 나이는 노인보다 훨씬 아래인 일흔 넷이다 .

 

“ 손자를 면회하고 오는 길입니다 . ”

 

“ 면회라면? ”

 

“ 예에 , 우리 손자가 군에 자원입대를 했습니다 . 훈련을 마치고 기성부 대에 배치를 받았다고 연락이 와서 면회를 왔습니다 . ”

 

“ 손주분께서 자원입대를 했다고요? ”

 

“ 예에 ,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자원입대를 했습니다 . 혹시 컬럼비아대학이라고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 ”

 

“ 네에 , 알고말고요 . 미국 동부의 명문 중에 명문대학이지요 . ”

 

“ 우리 손자가 그 대학의 정치꽈 3학년이었습니다 . 천암함 폭침 때 입대 하려고 했는데 학기 중이라서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 입대했습니다 . 가족 들이 모두 극구로 말렸는데도 듣지 않았어요 . 영주권이 있어서 군 입대가 면젠데도 막무가내였어요 . 자기 겉은 젊은이가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말 입니다 .

 

햐! 그 놈 말입니다 . 제 손자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참으로 똑똑한 아입 니다 .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 나라 안에 있는 저보다 인터넷이 나 외신을 통해서 더 훤히 꾀고 있는 놈입니다 . 저는 제 손자놈이 매우 자 랑스럽습니다 . 왕년에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지 증조부를 꼬옥 빼닮 았어요 . 지 애비보다는 백배 천배나 나은 놈입니다 . 지 애비는 겁쟁이죠 . 전두환이와 노태우 일당이 휴전선을 지키고 있는 병력과 탱크를 앞세우고 서울로 들어와 총칼로 위협해서 정권을 강탈하자 이 나라에는 이제 더는 희망이 없다고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미국으로 도망을 갔어요 . 손자가 저 를 보더니 ‘ 충성 ’ 하고 거수경례를 하는데 얼마나 믿음직하고 늠름하던지 이 늙은이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집디다 . ”

 

“ 아하! 그랬군요 . 정말 훌륭한 손주분을 두셨습니다 . 요즘 젊은 사람들 어떻게 해서든 군대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질 치고 있는데 … .

 

“ 그렇지요 . 젊은 사람들이 모두 군대 안 가려고 한다면 이 나라는 누가 지킵니까 . 나라가 위기에 빠질수록 젊은이들이 분발해야합니다 . 정말로 신체적 결함이 있어 군대를 못가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언제 쳐들어올 지 모르는 적을 코앞에 두고 군대를 안가겠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 까 . 이번 청문회 보셨지요 . 게중에 더러 불가피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군 대 가지 않으려고 벼라별 수단을 다 부렸는데 그들 대부분이 지도층의 권 력자들이거나 그들의 자식들입니다 . 그들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 로 마의 귀족들이나 영국의 귀족들 자제가 제일 먼저 자진해서 군복무를 했 던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 그게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 받은 지도층의 책임 있는 자세 아닙니까 . 요즘 신문에 나오는 총리 , 장관 후보자라는 놈 들 보세요 . 어쩌면 그 놈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군 면제자거나 아들이 군 면제자예요 . 군에 못간 변명도 가지가지예요 . 허리가 부실해서 , 눈이나 폐가 나빠서 , 심지어는 피부병이 생겨서 , 체중이 미달돼서 군에 못 갔다는 겁니다 . 신검과 진단서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 놈들은 군대도 못갈 새끼들 만 내질러 놨다는 이야깁니다 .

 

우리 사회는 돈 있고 권력만 있으면 그까짓 가짜진단서 한 장 발급 받기 는 문제도 아니지요 . 청부살인을 하고 무기징역형을 받은 여잘 보세요 . 세브란스라는 병원은 우리나라 굴지의 내로라 하는 사회적으로 가장 공신 력 있는 병원 아닙니까? 그 병원 의사라는 자의 가짜진단서 한 장으로 병 보석을 받아 형무소가 아니고 병원도 아닌 자기 집으로 들락거렸다지 않 았습니까 . 그 여자의 사위가 판사였고 청부 살해의 동기가 그 사위의 여 자관계를 의심해서 저질러졌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이러니 하지 않습니 까? .

 

모르면 몰라도 진단서를 떼 준 의사 , 그 여자가 불쌍해서 허위진단서를 발급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 그러니 의사들이라는 게 진료대상인 사람 은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 돈독이 오른 그렇고 그런 의사가 돈이나 권력 자의 청탁이나 압력에 허리 디스크가 있다는 진단서 한 장 떼는 것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 그들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공생관계지요 .

 

이야기가 좀 다르긴 합니다만 , 같은 의미에서 나라가 일제치하에서 신 음하고 있는데 일제 권력에 빌붙어서 제 민족을 죽이고 핍박했던 자들도 마찬가집니다 . 시대가 그래서 어쩔 수 없었던 것 아니냐는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뻔뻔스러운 자들도 있는데 같은 시기에 고향을 떠나 황량한 시 베리아와 만주벌판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한 사람도 있습니다 . 제 선친도 그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 제 선친은 일제에 빼앗긴 나라의 독립을 위 해 가족들을 고향에 남겨 둔 채 상해로 갔습니다 . 거기서 김구 선생의 지 시를 받고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습지요 . 해방이 되면서 피폐한 몸을 이 끌고 만주에서 일반 귀환동포와 함께 기차를 타고 귀국했습니다 .

 

그 때 제 나이가 열세 살이었는데 ,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 때 비로소 아 버지라는 사람의 얼굴을 뵈었어요 . 아버지가 돌아왔으니 이제 우리집도 잘 살게 되었다고 환한 얼굴을 짓던 모친의 얼굴이 지금도 선해요 . 그런 데 제 선친은 귀국하자마자 영문도 모르는 체 자유당 정권으로부터 요시 찰 인물로 박해를 당하기 시작했어요 . 그러다가 4 . 19 학생혁명으로 가까 스로 숨통이 트였는데 그것도 잠깐이었어요 . 선친이 살해당한 것은 역시 광복군이었던 장준하 선생이 경기도 포천의 약사봉 등산 도중에 바위에서 떨어져 의문의 죽음을 당한 그 이듬해였어요 .

 

일본 관동군 사령부의 일본군 장교였던 박정희가 1년을 겨우 넘긴 장 면 정부에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을 잡았을 때부터 더욱 노골적인 박해 가 시작되었어요 . 우리 가족은 영문도 모른 체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 도로 감시를 받고 살았습니다 . 아버지는 물론 가족들도 일정한 직업을 가 질 수도 없었어요 . 제 모친이 날품을 팔고 보퉁이 장사를 해서 겨우 입에 풀칠을 했습니다 . 밤낮으로 수상한 사람들이 우리집을 감시했습니다 . 사 정을 모르는 주위 사람들이 차츰 아버지와 우리 식구들을 경원하기 시작 했어요 . 우리집과 가까이 지내다가는 자신들도 박해를 당하지나 않을까 두려워 한 것이죠 . 심지어는 제 선친이 빨갱이였다는 소문까지 나돌았습 니다 .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한 사람 가운데 중국공산당의 팔로군 출신들 도 상당수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 그러나 그들도 이념적으로 공산당원이 되었다기보다 항일독립운동을 하기 위한 방편으로 팔로군에 배속되었던 겁니다 .

 

선친께 왜 그들이 아버지를 감시하느냐고 여쭈어보았지만 선친께서는 단 한마디 ‘ 너희들은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마라 . ’ 잘라서 말씀하셨어요 . 그런 얼마 후에 선친은 한밤중에 지프차를 몰고 온 중앙정보부 사람들에 게 끌려갔는데 한 달이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 그러던 어느 날 , 집 앞에 피투성이가 된 채로 버려져 있는 선친을 이웃 사람들이 알려줬어 요 . 선친은 간신히 숨은 쉬고 있었지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어요 . 집 앞에서 선친을 발견한지 사흘 만에 돌아가셨지요 . 그냥 돌아가신 게 아 니라 그들에게 잔인하게 고문당하고 살해되었던 겁니다 .

 

세월이 한참 흐르고 난 뒤 후에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당신이 그처럼 고 초를 당하면서 만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족들에게 말씀하시지 않았 던 것은 아버지 나름대로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방편이었던 겁 니다 . 제 선친이 그들에게 박해를 당한 것은 관동군 장교였던 쿠데타 주 모자들의 반민족적인 행위를 너무나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 죠 . 김구 선생으로부터 아버지가 부여받은 임무는 장춘에 사령부를 두고 있는 일본 관동군의 동향을 탐지해서 보고하는 일이었습니다 . 애석하게 도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그들이 같은 민족과 동포에게 저질렀던 천 인공노할 죄상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 ”

 

평소에는 별로 말이 없는 노인이었다 . 어쩌다가 한 잔씩 하는 술인데 오 늘은 너무 과음을 했다 . 손자를 만나서 그만큼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 손 자는 할아버지를 배웅하면서 조심하시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으나 노인은 걱정 말라면서 손사레를 했다 . 할아버지를 부축해서 택시에 태운 손자는 위병소 앞에서 걱정스럽게 노인이 탄 차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 노 인이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손자에게 손을 흔들었다 .

 

“ … … 전관예우(前官禮遇)라는 말이 있지요 . 저는 말입니다 . 그 말을 들 을 때마다 제 스스로 심한 혐오감을 느끼면서 어디로든 숨고 싶은 부끄러 움을 느낍니다 . 하도 전관예우라는 말이 많이 떠돌아다니기에 그기 무슨 의민가하고 사전을 뒤져 봤지요 . 소위 법조계 쪽에서는 ‘ 전직판사나 검사 가 변호사로 개업하여 처음 맡은 소송에 대해서 후배 현직판사가 유리한 판결을 내려 승소하게 해주는 것 . ’ 이게 사전적인 해석이더군요 . 세상에! 그건 말이죠 . 법의 판단이라는 게 진실이나 정의가 아니고 어떤 특정 계 층의 이해에 따라서 승소 판결을 하기도 하고 패소 판결을 하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다른 말로 하자면 법이라는 잣대는 없고 엿장수인 판 사나 검사가 제 마음대로 판결을 내린다는 말 아닙니까 . 어느 무엇보다 공 정하고 엄격해야 하는 것이 법의 판단입니다 . 가난하고 핍박 받는 억울한 사람들의 최후의 피난처가 법인데 그 법이라는 게 특정계층의 권력이나 부를 세습하기 위해 관례적으로 악용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있는 사회는 절대로 정의로운 사회가 아닙니다 . 두 말 할 것도 없이 공정 한 법의 판결과 집행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근간입니다 .

 

그런데 신문에 보도된 총리 후보자들 보세요 . 이 나라의 사법부의 수장 을 지냈다는 첫 번째 후보자는 비교적 청렴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평가 받 았던 인물이었는데 청문회 준비과정에서 재산 증식문제가 신문에 거론되 자 스스로 후보직을 사퇴했습니다 . 그는 그래도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었습니다 . 그런데 두 번째로 지명된 총리후보자는 정년으로 법관을 퇴직 한 뒤 , 로펌이라는 변호사 사무실에 영입되어 로펌에 있는 2년 동안 그가 받은 보수는 무려 10억이었습니다 . 월 보수로 2천만 원을 받았다는 계산 입니다 . 월 2천만 원이 아이 이름입니까? 그가 월 2천만 원의 보수를 받 았다면 전관예우를 받아 그가 로펌에 가져 온 소송비용의 수임료는 그 열 배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

 

한술 더 떠서 역시 법관으로 퇴직한 어느 장관 후보자는 로펌에 들어가 서 4년 동안 무려 16억이라는 보수를 받은 것으로 보도가 나왔습니다 . 이 사람은 이것 말고도 무슨 피부질환인지 모르지만 피부질환으로 병역면제 를 받았고 증여세 탈루와 부동산 투기 , 세금 이중 공제까지 받은 정황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

 

기업의 CEO가운데 연봉이 100억이 넘는 사람이 있다는 보도가 있었 지요 . 적정한 연봉인가에서는 문제가 있긴 합니다만 그러나 그들은 물품 의 생산과 판매의 수익에 의한 보수입니다 . 터무니없는 폭리를 취하는 경 우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들은 기업을 세우고 일자리를 창출해서 사회 에 기여하기 때문에 전관예우를 받아 거액 소송 사례비를 챙긴 변호사와 는 근본적으로 이야기가 다릅니다 .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말입니다 . 가장 청렴하고 도덕적이어야 할 우리 사회의 최상층 지도층인 그들이 뻔뻔스럽게 관례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 의 정의와 진리를 왜곡해 왔다는 데 있습니다 . 그들은 재직 중에 직위에 합당한 권한과 우리 사회가 감내할 만한 결코 적지 않은 보수를 이미 받 았습니다 .

 

어떤 성질의 전관예우인가 따라서 어느 집단에서는 전관예우가 미덕일 수도 있습니다 . 그러나 공직에 있던 자가 그 공직사회의 비호를 받아서 더 욱이 전직이 법관이었던 자가 법과 정의를 제쳐 두고 탐욕스럽게 돈을 챙 겼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입니다 . 그동안 , 우리의 사법부 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박정희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됩니다 . 민주주의의 한 축인 사법부가 부당한 권력에는 진실과 정의 , 법리에는 관 계없이 굴종하고 정작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할 국민에게는 전가의 보도처 럼 법이라는 이름으로 군림해 왔습니다 .

 

“ 예에 , 어르신 말씀이 모두 옳습니다 .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 한 나 라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정직하고 청렴해야 되지요 . 웬만 큼 먹을 게 있다면 다음으로는 자신보다 못한 이웃을 챙겨야 되는데 가진 사람이 더 가지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습니다 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가 결여되어 있는 것 같습 니다 . 진정한 의미에서 노블레스 오불리주 정신이 없다는 말이지요 . ”

 

노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데서 더욱 신이 났다 . 음성이 점점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 전동차 안의 사람들은 겉으로 무심한 표정이었으나 4 ~ 5십대의 나이 지긋한 사람들 중에는 더러 노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도 있었다 .

 

“ 그것뿐만 아니죠 . 헌재 소장 후보로 추천된 어떤 자는 업무추진비로 사용하게 되어있는 돈을 숫제 자기 통장에 넣고 가족의 생활비로 충당했 다지 않습니까 . 그 작자가 얼마나 권위적이었는지 자신의 법복까지도 직 원더러 입히게 했다는 보돕니다 . 그런 인사가 위헌을 가리는 헌법 재판관 이었다니 코가 막히고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 새 정부가 들어서 고르고 골 라서 발탁한 국가의 주요인사 후보자라는 게 전부 그 모양들이니 다른 기 득권자들은 불문가지이죠 .

 

그런데 , 이런 사실들은 그 사람들이 장관이나 총리 후보자가 되면서 검 증 단계에서 드러난 사실일 뿐입니다 . 다시 말하자면 우리 사회에 이런 사 실들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입니다 . 아직 드러나지 않은 지도층의 부패 와 뻔뻔함과 몰염치는 거대한 암조직처럼 우리의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 습니다 .

 

북쪽의 코흘리개가 뭘 달라고 시시때때로 일으키는 말썽과 통일이라는 환상에 목이 멘 철부지들의 좌파나 종북주의 자들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그로 인해 아무도 원치 않는 나라 안의 분열입니다 . 그들은 눈앞의 이익과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혈안이 되어 무엇이 문제인지를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지금 우리 사회는 빠르게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극단적으로 양분 되고 있습니다 . 이 늙은이의 눈에도 그 간극이 이제 돌이킬 수 없을 정도 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생각입니다 . 정치적으로는 진보와 보수로 그럴듯하게 표면화되고 있지만 그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승만의 자 유당 때부터 우리사회 각계각층에 침투해 교묘하게 위장하여 있는 친일파 들과 그들의 잔당이 일으킨 두 차례의 쿠데타에 영합해 신흥 졸부가 된 기 회주의자들과 그들의 지지 세력이 보수라는 기득권의 탈을 쓰고 있는 것 입니다 . 그놈들이야 말로 지금 우리사회의 분열을 조장하는 소위 지도층 이라는 기득권 세력들입니다 .

 

물론 잘 알고 계시겠지만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 글 자 그대로 해석하면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이지요 . 비유를 들자 면 , 아무리 큰 기업이라 해도 내수가 뒷받침되지 않는 기업은 망할 수밖 에 없습니다 . 돈을 많이 벌어서 고용을 늘이고 적정한 임금을 주어야만 내 수가 살아납니다 .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아무래도 무리수를 두 게 마련입니다 . 그걸 적절히 조정하는 것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국가 권력입니다 . 두 말 할 것도 없이 그 국가 권력을 위임 받은 자들은 전체 국 민을 위해서 투명하고 정직하게 행사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데 그 권력을 행사하는 자리에 자신을 지지했던 사람이라고 해서 사리사 욕에만 눈이 어둡고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을 앉힌다면 국가의 앞 날을 그르칠 수밖에 없습니다 .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는 것은 가진 것이라곤 처자식밖에 없는 무산대 중이 일으키는 피의 혁명이지요 . 기득권 세력이 그들의 기득권을 보호하 기 위해 아전인수 격으로 만든 제도와 법률로는 아무리 발버둥쳐 봐야 자 자손손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자각이 그들을 기존의 모든 제 도와 법률을 부인하는 혁명으로 표출되는 것입니다 . 그들은 가진 것이 없 으니 잃을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

 

 

“ 지하철이 속도를 줄이면서 다시 멈췄다 . 내리는 사람은 없고 타는 사람 만 있다 . 남자 노인이 두리번거리면서 경로우대석으로 왔다 . 옆자리에 앉 은 노인이 출입구 쪽 자리에서 노인 옆자리로 냉큼 옮겨 앉았다 . 뒤따라 들어 온 여자노인은 간발의 차로 자리를 놓치고 엉거주춤 서 있다가 다음 전동차 칸으로 갔다 . 날씨가 풀리자 전철을 타는 노인들이 부쩍 많아졌다 . 전동차에 오르는 사람들 때문에 잠깐 이야기를 멈춘 노인이 다시 입을 열 었다

 

“ … … 나라의 틀을 짜는데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지요 . 미국을 등에 업 은 이승만 박사가 만주 상해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을 철저히 배제시켜 버렸지요 . 새로 건국한 정부에 김구 선생이 귀국해서 만든 한독 당은 발도 붙이지 못했어요 . 급기야 김구 선생이 안두희에게 암살당하고 장덕수도 여운형이도 같은 길을 걸었어요 . 대신 일제의 주구 노릇을 하며 동포들을 죽이고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친일했던 사람들이 정부 요직에 다 시 자리를 잡고 적반하장으로 국민을 탄압하며 상전 노릇을 하게 되었지 요 . ”

 

“ 잠깐요 , 어르신 말씀 도중에 죄송합니다 . 당시엔 그게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다는 생각입니다 . 당시에는 훈련된 인적 자원이라는 게 일제치하 에서 일하던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 저는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 는 일들이 어쩔 수 없는 과도기적인 현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 아시는 것처럼 참혹한 6 . 25 전쟁이 끝나고 이제 겨우 60년 지났습니다 . 전쟁이 끝났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북쪽은 남쪽을 향한 총부리를 그대로 겨누고 있습니다 . 반쪽인 채 새로 건국한 정부는 출범 때부터 문제가 있 었지만 자리도 잡기도 전에 겪은 동족상잔의 전쟁과 전쟁이 끝난 후에도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정쟁으로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 이대로는 안된다는 젊은 지식층의 자각이 급기야 학생들로 주축이 된 4 · 19혁명이었지 않습 니까 . 저도 이 혁명에 참가했습니다 . 그 때 제가 대학 2학년 이었지요 . 집 안 사정이 어려워서 학교가 많이 늦었습니다 . 이 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물러나고 정부의 형태가 대통령 중심제에서 내각 책임제로 바뀌었습니다 . 내각수반이 된 장면 정부가 탄생했습니다 . 장면 정부는 나름대로 야심찬 국정계획을 세웠습니다 . 그 계획이 바로 제 1차 국가개발 5개년 계획입니 다 . 더러 , 잘 모르는 사람들은 박정희가 세웠다고들 생각하고 있지만 이 계획은 처음부터 장면정부가 세운 계획입니다 . 그러나 약체의 장면 정부 는 신민당의 신구파 사이의 갈등을 겪으면서 채 자리도 잡기 전인 일 년 여 만에 일제의 관동군 만군 사관학교 출신이며 군 내부의 남로동 총책이 었던 박정희의 쿠데타로 무너졌습니다 . 기세등등한 박정희는 정권을 찬 탈한 뒤 기존의 모든 계획을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 정권을 잡긴 했으나 따로 대안이 없었던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쓰레기통에 폐기했던 장면 정권 의 5개년 계획을 다시 사용할 수밖에 없었지요 .

 

어르신 제가 단적으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의 민주주의의 역사가 너무 짧았다는 것입니다 . 아시는 것처럼 서구의 민주주의는 오랜 세월 동안 피를 흘리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되풀이 하면서 정착한데 반해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는 고작 60년 안팎입니다 . 그것도 박정희 , 전두환 , 노태우의 군사독재정권을 빼고 나면 불과 30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 경제 는 세계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급속히 발달했으나 그에 따라야 할 의식과 모럴은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 지금 사회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도 모두 우리의 짧은 민주주의 역사와 정의롭지 못한 군사독재정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

 

그렇다고 결코 비관적이지만은 않습니다 .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 과도기의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 좀 더디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 대에서가 아니라도 점차 바람직한 쪽으로 민주주의가 발달해 나가고 있습 니다 . 어르신도 그렇게 믿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참혹한 동족상잔의 전 쟁을 겪은 우리는 지금까지 너 나 할 것 없이 제 것 챙기기에 바빠서 미처 옆을 돌아 볼 여유가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 그러나 어제와 오늘이 다 르듯이 미래는 오늘보다 더 바람직하게 발전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

 

“ 갑작스러운 반론에 노인은 잠시 당황하는 기색이었다가 이내 입을 열었 다 .

 

“ 예에 , 맞습니다 . 그건 선생의 말이 맞아요 . 그랬죠 . 갑자기 해방을 맞 아 훈련된 인적자원이 없었던 건 사실입니다 . 그러나 그들을 용서는 하되 일단 과거의 죄는 철저히 물어야 했습니다 . 그런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다 시 친일파들이 득세를 하고 오히려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알게 모르 게 박해를 당했습니다 . 혹시 ‘ 간도특설대 ’ 라는 말 들어 봤습니까? ”

 

“ 아닙니다 . 그게 얼핏 신문에 보도된 것을 읽은 적은 있습니다만 … ? ”

 

“ 그럴 겁니다 . 보아하니 인테리이신 선생도 그걸 모르시는군요 . 모르시 는 게 무리가 아닙니다 . 우리 역사책에 기술된 일도 없고 우리 아이들도 그런 역사를 배운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 다시 권력을 잡은 친일파들이 우 리 항일사에서 그 부분을 쏘옥 빼버렸기 때문입니다 . 간도특설대라는 건 말입니다 . ”

 

주위의 사람들이 하나 둘 , 노인의 말에 호기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 처 음에 사람들은 노인이 술주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 더러 , 지하철 안 에서 나이가 벼슬인 양 술주정하고 막말을 마구 쏟아놓는 노인들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셀룰러 폰으로 게 임을 하거나 문자 보내는데 열중이었다 . 그들은 전쟁이나 가난을 겪어보 지 못한 세대들이다 . 전쟁이나 가난을 겪지 않았다는 점에서 젊은 세대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두 노인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인 것은 4 ~ 5십대 장년 층으로 보이는 사람들이다 . 술을 마신 것은 분명했지만 노인의 이야기는 조리가 있고 시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 그들은 반신반의하면서 다소 지루 한 시간을 노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때우고 있었다 . 더러 눈살을 찌 푸리면서 짜증을 내는 사람도 없지 않았으나 대놓고 노인을 나무라는 사 람은 없었다 .

 

그 중에서도 의외로 자주색의 후드 티에 등에 책이 든 검정 배낭 차림의 젊은 친구 한 사람이 노인의 이야기에 호기심을 보였다 . 손에는 여느 젊 은이들처럼 셀룰러 폰을 들었다 . 노인이 앉은 전동차의 출입문 옆 좁은 공 간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 노인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기 전에는 음악 을 듣고 있었던 것 같다 .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빼버린 반대쪽 이어 폰이 젊은이의 어깨 위에서 시소를 하듯 흔들거렸다 . 노인의 시선이 젊은 이의 시선과 부딪혔다 .

 

“ 학생! ”

 

“ 네에! 저 말입니까? ”

 

느닷없는 노인의 부름에 학생은 적지 않게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다 .

 

“ 그래 , 학생 말일세 . 학생은 간도특설대라는 걸 아는가? ”

 

“ 아닙니다 . 처음 듣는 이야긴데요 . ”

 

학생은 겸연쩍게 웃으면서 손으로 뒷머리를 긁었다 . 그 표정이 요즘 들 어 젊은이들 얼굴에서 찾아볼 수 없는 순진함이 묻어 있었다 . “

 

그럴 걸세 . 간도특설대라는 거 말이야 . 일제치하 만주 장춘에 주둔하 고 있었던 일본 관동군 소속의 부대야 . 이 부대는 백두산을 근거지로 활 약하던 조선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해서 조직되었지 . 문제는 간도특설대의 조직과 구성원이야 . 일제는 악랄하게도 오랑캐는 오랑캐를 이용해서 잡 는다는 수법을 썼어 . 다시 말하면 중국고사에 나오는 이이제이(夷以除夷) 라는 말이야 . 일본군 장교 몇 명을 빼면 전부 조선인 장교와 사병으로 이 루어진 부대였지 . 이 부대가 독립군을 토벌해서 500여명이나 되는 독립 군을 학살하거나 고문을 자행했어 . 이 부대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던 사람 들은 이름을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인물들이지 .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인 물이 6 . 25 전쟁의 영웅이라고 칭송받는 백0엽 , 김0일 같은 자들이지 . “

 

“ 백0엽 장군이 정말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말입니까? ”

 

학생의 얼굴이 놀람으로 크게 일그러졌다 .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다 .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모든 언론매체를 장악한 친일파들은 그 들의 실체를 철저하게 감추거나 위장했다 . 민주화가 되면서 비로소 조금 씩 그들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 최근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어 느 주류신문은 당시의 인물이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구차한 변명을 늘어 놓는 것을 연재물로 게재했다 . 노인은 다시 한 번 청년의 얼굴을 힐긋 처 다 보았다 .

 

“ 학생! 그게 그렇게 놀라운가? 이 늙은이가 없는 말을 일부러 지어내겠 어 . 요즘 걸핏하면 명예훼손이다 뭐다 하면서 고소를 하는 판국에 말이야 .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야 . 더 큰 문제는 해방이 되자 이들이 다시 대한민 국 군부의 실세가 된 일이야 . 박정희가 일으킨 군사쿠데타는 그 연장선상 에서 일어난 일이야 . 이들 친일파 가운데서 대통령과 총리가 나오고 정부 의 요직이 그들 손에 농단되고 총과 칼과 협박으로 일관한 무시무시한 철 권통치가 시작된 거지 . 파렴치하게도 일제의 친일파들이 이 나라의 주류 세력으로 다시 등장했던 거지 . 권력 이동이 일제에 부역했던 친일파 쪽으 로 빠르게 진행된 거지 .

 

뭐랄까 , 이 나라의 혼란은 그 때부터가 시작이었어 . 박정희가 유신이라 는 것으로 영구집권을 꾀하다가 급기야 자신이 아끼던 부하의 총에 맞아 죽지 않았어 . 그 다음은 학생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고 . 박정희 밑에서 알 랑되던 전두환이라는 놈과 노태우라는 자가 나라를 지키라고 쥐어준 총칼 로 날강도처럼 뻔뻔스럽게 다시 정권을 탈취하지 않았어 . 그들은 사악한 놈들이야 . 그들의 눈에는 오직 권력밖에 보이지 않았어 . 국민들은 안중에 도 없었던 거지 . 국민들은 거저 그들의 부품이거나 소도구에 불과했어 . 그놈들 때문에 이 나라의 민주화는 다시 15년이나 더 기다려야만 되었던 거야 . “

 

그래도 어르신 . 그 사이 경제는 몰라보게 나아졌지요 . 우리나라처럼 빠른 기간에 경제가 발달한 나라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지요 . 그 건 전적으로 박정희의 공이라고 해야지요 . 어르신도 겪으셨겠지만 1960 년대에 봄이 되면 모두 먹을 양식이 떨어져서 멀건 나물죽을 먹고 보릿고 개를 넘기고 그런 것마저도 먹을 수 없었던 사람들은 얼굴에 부황이 들어 서 동네마다 굶어 죽는 사람들이 몇 사람씩 나오고 했습니다 . 그런데 지 금은 개인의 국민소득이 60년대에 60불에서 2만 불이 넘고 경제규모도 엄청나게 커졌지 않았습니까? ”

 

옆자리의 퇴직교수가 학생과 노인의 말 사이에 끼어들었다 . 학생에게 가 있던 노인의 시선이 다시 옆자리 노인의 얼굴로 향했다 . 무언가 잠깐 생각하는 표정이더니 입을 열었다 .

 

“ 그래요 ,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고 공포정치를 하긴 했지만 우리나라 경제를 살린 사람이라고요 . 그 말 , 말이죠 . 맞는 말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 듣기에 따라 좀 막 연하게 들릴지 몰라도 우리나라 국운이 구태여 박정희가 아니었다 해도 일어날 시기였다는 말입니다 . 우리나라 국민의 특유한 근면성이 꿈틀거 리기 시작하던 때였어요 . 다만 군사독재정권의 갖은 악행과 돌이킬 수 없 는 왜곡된 역기능에도 불구하고 효율적인 측면에서는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요 .

 

그러나 지금의 중국 사람들 보세요 . 물론 ‘ 백묘(白猫)면 어떻고 흑묘(黑 猫)면 어떠냐? 쥐만 잘 잡으면 된다 ’ 는 등소평이라는 걸출한 인물과 공산 독재라는 특이한 사회구조도 있었지만 싼 인건비를 무기로 , 이제 세계 경 제를 쥐락펴락하는 경제대국이 되지 않았습니까? ” 지하철이 다시 속력을 줄이면서 멈추어 섰다 .

 

지하철이 플랫폼에 설 때 마다 내리는 사람은 몇 사람 되지 않았다 . 대신 타는 사람은 점점 늘어났 다 . 몇 정거장 전에만 해도 통로에 서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 이 제는 이쪽 자리에서 건너편 좌석에 앉은 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 났다 . 노인과 같이 지하철을 탔던 사람들도 아직 내린 사람이 별로 없다 . 더러 중간에서 내리는 사람이 한 두 사람 있긴 했지만 대부분 서울까지 가 는 사람들이다 . 행선지가 어디인지는 몰라도 검정색의 선글라스를 쓴 사 내 일행도 내리지 않았다 . 승객들이 늘어나면서 사내들은 아까보다 더 노 인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 그들도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이 분명 했으나 공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 갈색 양털 반코트를 입은 키가 작은 사내가 노인의 이야기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

 

“ … … 외형적으로는 이제 이 나라가 완전 민주화가 되었다고들 하는데 자세히 살펴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낫도 달라진 게 없어요 . 그 비리 나 착취구조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꼭 같아요 . 과거의 친일파와 군사독재 정권 시절의 잔당들과 부동산으로 축적한 신흥졸부들 , 그리고 새로 권력 층에 편입된 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어요 . 부자는 임금 착취와 일감 몰아주기 , 교묘한 변칙 상 속 등으로 자자손손이 부자지요 . 서민들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끼어 들 틈 이 없어요 . 달라진 게 있다면 옛날보다 그 판이 좀 커진 게 달라졌어요 . 또 한 가지 있어요 . 겉으로 합법성을 가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 ”

 

열변을 토하던 노인의 목소리가 어느 틈에 점점 작아지는 것 같더니 갑 자기 말이 끊어졌다 . 노인의 고개가 이쪽저쪽으로 힘없이 건들거리더니 옆자리 노인의 왼쪽 어깨 위에 머리가 툭 떨어졌다 . 그리고 이내 드르릉 드르릉 코를 골기 시작했다 . 옆자리의 노인은 자기 어깨 위에 놓인 노인 을 돌아보며 오른 손으로 노인의 머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받혔다 .

 

환승역 플랫폼에는 언제나 사람으로 붐빈다 . 더욱이 이 지하철역은 세 개의 지하철이 한꺼번에 지나는 곳이다 . 플랫폼 하나 가득 사람들이 지하 철을 기다리고 있다 . 퇴근시간과 겹치긴 했지만 인근에서 해고 노동자의 복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든 탓도 있 다 . 이렇게 복작되는 환승역인데도 이 역엔 아직 스크린 도어가 설치되지 않았다 .

 

전직 대학교수인 노인은 노인을 한 걸음 , 한 걸음 조심스럽게 부축을 해 서 계단을 내려왔다 . 그리고 다른 사람의 양해를 구하고 노인이 타야 하 는 지하철 승차 표시 지점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 전광판을 바라본 뒤 노 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

 

“ 어르신 지금 도착하는 전철이 댁으로 가는 전철입니다 . 저는 다른 방 향의 전철을 타야 하기 때문에 이만 가보겠습니다 . 오늘 어르신 말씀 잘 들었습니다 . 부디 건강하십시오 . ”

 

“ 아 , 예에 . 감사합니다 . ”

 

노인이 어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아직 잠이 덜 깼거나 술이 덜 깼는 지 의식이 몽롱한 상태였다 . 노인을 부축해 온 노인은 돌아서서 자신이 내 려 온 계단을 되짚어 올라갔다 . 지하철이 도착하는 신호가 울리고 저만 큼 불빛과 함께 지하철의 앞부분과 운전하는 기관사의 얼굴이 보였다 .

 

그 순간이었다 . 노인의 몸이 뭔가에 밀린 듯 기우뚱하더니 그만 모잽이 로 철로 위에 떨어져 내렸다 . 노인이 철로 위로 떨어지는 것을 목격한 기 관사가 급하게 제동장치를 힘껏 잡아 당겼다 . 지하철 바퀴에 불꽃이 튀면 서 고막이 찢어지는 것 같은 굉음이 울렸다 .

 

그러나 이미 늦었다 . 노인의 몸을 스티로폼처럼 바스러트린 지하철은 20미터 쯤 더 가서 가까스로 멈추어 섰다 . 불과 4 ~ 5초 사이의 극히 짧은 순간이었다 . 여기저기 사람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

 

“ 사람이 떨어졌다 . 사람이 … ! ”

 

사람들이 우왕좌왕 하면서 노인이 떨어진 철로 쪽으로 몰려갔다 . 혼란 속에 까만 노인의 곁에 서 있던 선글라스를 낀 사내와 상대적으로 키가 작 은 사내 둘이 사람들 틈을 비집고 빠져나왔다 . 사내들은 철로 위에 떨어 진 노인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 별일 아니라는 듯이 허 둥대지도 않고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

 

계단 맨 위에서 키 작은 사내가 잠깐 걸음을 멈추더니 힐긋 , 노인이 떨 어진 곳을 일별했다 . 순간적으로 사내의 얼굴에 희미한 냉소가 떠올랐다 . 선글라스를 낀 키 큰 사내가 키 작은 사내를 향해 눈짓으로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 두 사내의 모습이 계단에서 오른편 방향의 출구 쪽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

 

― 2013년 7월 19일 . 토지문화관 창작실에서 쓰다 .